여행기

김대근 2006. 4. 16. 15:47

매천 황현 선생의 흔적을 찾아..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리는 복중에서 부모를 잘만나는것과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것과
같은 개인적인 복이외에도 이웃을 잘만나야 행복한 삶을 온전히 누릴수 있다.
좁게 말해서 생활근거지의 이웃을 잘못만나면 이사를 가던지 아예 상대를 하지 않으면
해결이 될터인데 나라의 이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만난 나라의 이웃으로 치면 정말 만나지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갖게하는 것이 바로 이웃에 있는 일본이다.
고래로부터 아이누족이 살던 야만의 땅에 사람을 보내고 지식을 나누어서 사람이 사는
형상으로나마 갖추어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악연이 최고 절정에 달한것이 한일합방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비분강개하였다.


`머리털 다 세도록 하 많이 겪은 난리/ 몇 번이나 죽으려도 뜻을 못 이뤄/이제는 참으로
어쩔 수 없으니/ 가물거리는 촛불만이 창천에 비추네/… / 날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울어
/ 무궁화 이 강산은 끝이 나고 말았네/ 읽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하니/ 지식인의 사람
구실이 참으로 어렵네.`


어떤사람은 만주로가서 무장투쟁을 하고 어떤 사람은 단식으로 굶어죽기도 하였으나
더 많은 사람들은 마치 역사의 방관자인양 시류에 몸을 실어 살아온게 사실이다.
오늘날 이 시류에 몸을 실어서 살면서 오히려 일본에 동조하고 협력하였던 소위말하는
친일파들의 자손이 더 잘살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오늘날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저위의 시는 매천의 절명시로써
지식인의 용기를 보여주는 시이다.

 

절명시란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유서를 대신한 시를 말한다.


에선스 미디어 포탈 시안에는 그때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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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의 소식을 듣고, 남쪽 초야의 한 시인이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독한 다량의
아편을 삼켜서. 십절도십폭병이 둘러 쳐진 서재에서 였다. 파르르 떨던 촛불도 꺼지고
천장에 맞닿은 삼천 권장서만이 비슥이 쓰러지는 시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 뒤의 노고단 영봉은 아직 검은 구름 속에 있었다.


1910년 9월 7일 새벽, 한일합방수약 체결의 비보가 날아든지 꼭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심한 통곡과 식음 전폐 엿새 후의 새벽이기도 했다. 시인 이름은 황현. 일찌기 나라로부터
녹을 받은 적 없건만 하나 남은 목숨을 그렇게 내놓아 무너지는 나라를 호곡했다.
시인이 떠나간 자리에는 피어난 꽃 처럼 네 편의 절명시가 선혈처럼 붉었다.


날 밝아 소식 듣고 달려온 아우 원에게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약을 삼키려다 입에서 뗀 것이 세 번이었다. 이다지도 어리석었던가.』


매천필하무완인, 누군들 매천의 서릿발 같은 붓끝에서 온전할수 있으리요 라는 평을
들었던  그였다. 언제나 카랑한 목소리 표표한 직필이었다. 아우 원은 돌아앉아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그 역시 훗날 선형 의 길을 따른다. 머리 풀고 유시 한 편을 남긴 채 독을
마신뒤 집 뒤의 넘실거리는 월곡저수지를 향해 걸어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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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1855∼1910) 구한말 시인이자 우국열사. 자는 운경. 호는 매천. 본관은 장수. 현조는
세종조 때의 명정승 황희이다. 보거과에 장원하였으나 타락한 정치현실에 회의를 품고
구례의 만수동으로 낙향,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직필을 휘두르며 역사비평과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이건창,김택영,강 위와 더불어 한말 한시사의 네 집성 중 한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저서로는「매천야록」, 「오하기문」, 「동비기략」 등이 있다.


매천 황현이 남긴 매천야록은 암울하던 한말의 사건들을 잘기록하고 있다.
여러가지 사건들 중에서 특히 마음을 끄는 내용은 민후암살사건인데 그 전말이야 모두
다아는 내용일테고 반디불이 주목하는 것은 무능력한 고종에 대한 은밀한 질타의 글이다.

 


고종에게 성은을 입고 왕자를 생산했으나 민후에게 쫓겨난 엄상궁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엄상궁이 궁에서 내쫓긴 지 10년 만인 을미년(1895년) 음력 8월20일에는 경천동지할 참극이
조선 왕궁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서울 주재 일본공사 마우라 고로(三浦梧樓)의 흉계로
일본인 폭도들이 왕궁에 뛰어들어 칼을 휘둘러 민후를 시해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할 일은 지금도 우리가 민비 민비하는데 당시 중전 민씨의
공식 칭호는 「왕비(王妃)」가 아니라 「왕후(王后)」였다는 것이다.
현재 을미사변을 두고 정평 있는 역사책들에조차 흔히 「민비(閔妃) 암살사건」이라고
쓰여 있는데 마땅히 「민후(閔后) 암살사건」으로 불러야 한다.

 


을미사변은 민후(閔后)의 운명 못지 않게 전직 상궁 엄씨의 삶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민후가 원통하고 처참하게 시해된 지 불과 닷새만에 고종이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구한말의 대학자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다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전에 상궁으로 있던 엄씨를 불러 대궐에 맞아들였다. 민후(閔后)가 살아 있을 때 상감은
두려워서 감히 곁눈질도 못하다가 십년 전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다. 민후가 알고 크게
노하여 엄상궁을 죽이려 들자 상감이 간절하게 빌어서 죽음을 면하게 하고 궁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이르러 부름을 받고 입궁하니 그 참변으로 민후가 돌아가신 지 겨우
닷새밖에 안된 때라 장안 사람들이 모두 「상감에게 심간(心肝)이 없다」면서 한스럽게
여겼다. 엄씨의 생김은 민후와 비슷하고 권모(權謀)와 재략(才略) 또한 같았다.
이미 입궁함에 상감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정사(政事)에 간여하여 뇌물을 받았으니 그
침침함이 민후 때와 똑같았다』

 


당시 서울 사람들이 을미사변으로 민후가 그렇듯 참혹하게 시해된 지 불과 닷새만에 고종이
엄상궁을 궁안으로 불러들인 것을 보고, 『상감에게 심간이 없다』면서 한스럽게 여겼다는
그 「심간」은 「깊이 감추어 둔 마음」 곧 「진심(眞心)」이나 「단심(丹心)」을 말한다.
미증유의 국가적 참변과 치욕으로 고통받고 또 왕의 도덕성에도 실망한 백성들의 무력한
탄식이 마치 오늘날의 정치판을 보는듯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또 매천 황현의 기록에는 독도문제도 있다. 독도학회에 나와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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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당시에는 일제의 ‘을사5조약’ 강제집행과 국권침탈에 대 항하여 국민이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의병 무장투쟁 을 전개하던 시기이므로, 국민은 물론 일제의
독도 침탈 사건을 국권 침탈 시도에 대한 저항운동에 포함하여 전개했음은 더 말할 필요
도 없다. 영토 침탈은 국권 침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기 록에 나와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오하 기문
(梧下記聞)’과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들 수 있다.


황현은 ‘오하기문’에서 “울릉도 100리 밖에 한 속도(屬島)가 있 어 독도라고 부르는데,
왜인이 이제 일본영지가 되었다고 심사(審 査)하여 갔다” 고 기록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것은 “울릉도 100 리 밖에 한 속도가 있어 독도라고 부르는데”라고 하여
‘독도’가 울릉도의 ‘속도’임을 명확히 해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이어서 “왜인이 이제
일본영지가 되었다고 조사해 갔다”고 기록해서 지금 막 일본측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고
있음을 폭로하고 비판한 것 이다.


황현은 또 ‘매천야록’에서 “울릉도의 바다에서 거리가 동쪽으로 100리 거리에 한 섬이 있어
울릉도에 구속(舊屬)했는데, 왜인이 그 영지라고 늑칭(勒稱)하고 심사하여 갔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독도가 그때까지는 울릉도에 구속한(예부터 속한) 섬”이라고 하여
대한제국 영토임을 명확히 밝힌 점과, 이어서 “왜인이 그 영지라고 늑칭”했다고 하여 독도를
일본인들이 일본영토라고‘ 늑칭’했다고 비판한 점이다.
‘늑칭’은 ‘강제로 칭했다’, ‘억 지로 칭했다’, ‘거짓으로 칭했다’ ‘부당하게 칭했다’ 등의 뜻이
모두 들어 있는 용어다. 즉 독도는 오래 전부터 당시까지 울릉도 에 부속해온 한국 영토임이
명확하고, 독도를 이제 일본 영토라고 칭하는 것은 부당한 주장, 억지주장임을 황현은 명백하게
밝혀 기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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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의 해변에서 만난 갈대와 작은 여울들..

 

 

 


매천 황현을 배향한 사우 매천사는 지리산 밑 수월리의 월곡에 있다.


광양에서 840번 지방도로를 타고 순천쪽으로 가다가 만난 매천선생 유적 안내판을 따라
샛길로 들어가서 만난 동네어궤에 세워진 안내판..


차가 갈 수 있는 소로가 있기는 했는데 반디불이 늘 즐겨하는 방법대로 마을어귀에
차를 세우고 걸어갈 참이다.
그래야 우리가 알지못하는 놓치고마는 자잘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제법 넓은 동네길..매천이 살던 동네의 뒷산이 지리산의 자락이다.
꼭대기의 철탑이 눈에 거슬린다.

 

 

 

얼마만에 보는 표어인가..세멘트 담벼락에 씌어진 향수를 느끼게하는 표어!!

 

 

 

이곳이 매천의 생가..

 

 

 


안채의 모습..찾아오는 사람이 귀한 탓인지 왠지 썰렁해보인다.
오다가다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는 나그네가 많아지기를...

 

 

 


돌담옆으로 계단과 정자의 모습..

 

 

 


추억을 자극하는 물건 또 하나..등잔..
저안에다가 호롱불을 넣고 밤에 뒤간갈 때나 손님이 오시거나 제사가 있는 날에
켜던 옛생각이...


 

 

생가입구의 모습을 다시 가까이서 한컷트..

 

 

 

이제는 사당으로 가는 길이다.
450미터면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이렇게 시골길을 혼자 걸으니 동네 아주머니가
이상한 눈으로 보신다.
행여 113으로 간첩신고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다.

 

 

 

산 모롱이를 돌자 나타나는 사당..
사색의 길을 지나서 이렇게 나타나는 목적물이 주는 그 반가움이야 어찌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찾는이 없어서 퇴락해 버린 선생의 사당..

 

 

 

 

안내판은 정숙하게 일독(一讀)하고 넘어갈것..

 

 

 

아쉬운 마음만 가득...

 

 

그래도 문틈사이로 찍어본다.

 

 

 

낮은 담건너로 보이는 사당의 모습..

 

 

 

사당을 참배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찾은 선생의 묘소..

반 듯한 길을 가신 前人의 흔적을 꼬불꼬불한 인생을 살고 있는 後人이 와서
겨우 1분의 묵념을 하고 가다.

 

 

선생의 묘소에 피어난 구절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돌아나오는 길..아랫마을에도 역시나 오랜세월전의 표어가...

 

 

 

오늘 하루도 진다.


시속 130키로로 달리면서 찍은 석양의 모습..충청남도 견훤장군의 묘소가 있는 저산너머로
오늘도 하루해가 저문다.

아름답군여...산하..
글 잘보고 갑니다. 이번에 광양으로 답사를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녜... 광양의 봄은 어느곳 보다 멋진 곳이지요. 매화마을,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의 꽃굴, 옥룡사지도 꼭 들러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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