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6. 21. 21:34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국보40호-정혜사지13층석탑 
2004-11-20 오후 12:32:48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독락당을 구경하고 나서 한 500미터쯤 산골 길을 난 아스팔트
외길을 죽~ 올라가면서 안내서에 나와있을 만한 위치를 잘 탐색을 했다.
하마터면 그냥 스쳐지나가고 말뻔 했다. 명색히 국보다. 국보 제40호...
국보라는 이름과 지위에 걸맞지 않게 은행나무에 가려져 있는데다가 시멘트로
만들어진 농로같은 진입로 입구에서는 아예 이정표나 안내판도 하나가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옥산서원이나 독락당중에서 옥산서원은 사적으로 독락당은 보물로 등록되어 있다.
원래 문화재라는 것은 그 희귀성이나 학문적 중요성등의 무형적 가치로 그 중요성을
부여하고 국보..보물..유형문화재..사적등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이 세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지역이라면 당연히 큰길에서 진입을 할때의 이정표에서
문화재표시는 국보가 우선이 되어야 할것이며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곳에서 진입을 할때 옥산서원과 독락당은 보이지만 국보에 대한

어떤 안내판도 없다.

 

문화재를 다루는 공무원도 무식한 소치이겠지만 아마 경주시 안강일대가 이언적의

후손들이 이루고 있는 세력의 표시라고 하겠다.

 

참으로 비 이성적이다.
조선 500년동안 우리의 민족세가 형편없이 약해져

버린것은 양반계층의 비이성적인 사고의 횡행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본적인 관리자세도 되어있지 않다.
그냥 앉아서 원성이나 듣지않으면 되고 월급만 제때에 챙기면 되는 철밥통~~
그러면서 파업을 하겠다고 하니 싸늘한 시선을 보낼수 밖에 없지를 않겠는가.

 

 

본래 이곳에는 신라때 창건된 유서깊은 절인 정혜사(淨惠寺)라는 절이 있었다.
1834년에 큰 화재가 나서 절이 모두 소실이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불교가 침체기에
들어있었던 탓에 결국 폐찰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탑만 남기고 주변은 과수원과 눈밭으로 바뀌었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국보 제40호인 이 석탑의 이름이다. 원각사탑과 더불어 3대 이형석탑중의 하나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들중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수 없을만큼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석탑은 기단을 흙으로 쌓았는데 이런 형태는 신라의 초기탑의 방식이다.
이 기단위에 13층의 몸통을 올렸는데 전체 높이가 5.9미터이다.
1층탑의 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이 급격하게 작아지는데
그래서 마치 2층부터는 1층의 악세사리같아 보인다.
탑의 1층 몸체에는 높이 131센티..폭 166센티인 모서리 기둥이 있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신 감실(龕室)이 있다.


통일신라기인 9세기에 세워졌을것으로 추측되는데 13층이라는 보기드문 층수에다가
기단부역시 일반양식에서 벗어난 파격을 보여주어 당시의 석탑연구에 귀한 자료이다.

 

 

28번 국도...포항과 영천을 이어주는 28번 국도변을 지나다가 보면 포항쪽에서는
풍산금속을 지나서 영천쪽에서는 딱실못이라는 저수지를 지나서 옥산서원이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을 진입하면 옥산서원을 거쳐 독락당이 나오고 다시
500미터쯤 산골을 가다가 왼쪽에 은행나무 몇그루가 삐죽히 솟아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