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6. 23. 20:36


담양- 가사문학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과서에서 한번씩은 읽었을 정철의 사미인곡이다.
우리는 이 장르의 문학을 가사(歌辭)라고 배워왔다.


가사(歌辭)는 시조(時調)와 더불어 한국 고시가의 대표적 장르이다.
그 형식은 1음보 4음량에 1행 4음보라는 기본 율격을 지닌 유장(悠長)한
운문체로서 노래·읊조림·율독의 형태로 향유되었다.


발생 시기는 대체로 고려 말이나 조선 초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특히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와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은 그 발생기를 가늠하는 초기의 작품으로 주목된다.


조선 중기 이후 가사는 사대부층에 의해 폭넓게 향유되면서 사대부 시가문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의 강호 자연 생활에서 몸에 밴 물아 일체적
(物我一體的) 삶을 비롯하여 명승지의 유람·유배의 체험·유교적 이념의 구현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송순(宋純)과 정철(鄭澈)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면앙정가(仰亭歌)와 성산별곡
(星山別曲)·관동별곡(關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 등을
통해 사대부가사의 절정을 이룬 작가들이다.


조선 후기 사회를 지나면서 가사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전에는 사대부
위주였던 향유 계층이 서민과 여성 등으로 확대되면서 서민가사와 여성가사가
새롭게 성행하였으며, 작품의 내용도 전쟁·기행·역사·산업·애정·현실 비판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또 개화기에는 종교가사·개화가사 및 의병가사 등이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사는 점차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차차 창가 또는 현대시로 옮겨지는
길을 걷게 되었다.


시조는 아직도 널리 통용되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조고 있는데 반하여 가사문학은
이제 완전히 우리곁에서 사라져 버려 아쉬움을 준다.


전라남도 담양은 예로 부터 가사문학이 발전을 했다.
그 이유는 정쟁이 극심하여 잦은 정권의 교체로 귀양을 오는 사대부들이 많았고
그들은 수려한 자연과 풍성한 인심을 바탕으로 귀양에서 풀려날만을 고대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보니 주로 임금에 대한 그리움..즉 정치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기다림..그리고 실망들이 뭉뚱거려져 빼어난 가사문학을 이루었다.
유난히 가사문학이 담양지방에서 많이 발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담양에 얼마전에 문을 연 가사문학관은 참 뜻깊은 공간이라고 하겠다.
시조와는 달리 지금은 그저 옛날 작품들만 남아서 화석이 되어버린 가사문학을
집대성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관에는 면앙 송순, 송강 정철, 석천 임익령, 소쇄처사 양산보, 하서 김인후,
사하당 김성원,제봉 고경명등의 우리나라 가사를 대표하는 이들의 작품들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관의 입장권이 정말로 칭찬받을만한 아이디어로 꾸며졌다.
가져와봐야 아무 작에도 쓸모없어 지는 다른 유적지나 박물관의 입장권과는 달리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문화시설들에서도 배워봄직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의 메타콰세이아길....
잎이 무성하면 무성한대로 지금처럼 가지만 남아있는대로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 찾아가는 길
소쇄원과 지근 거리에 있다.
88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만나는 고서나들목에서 내리면 담양쪽으로 가다
화순쪽으로 길을 바꾸면 되고 호남고속도 창평나들목을 이용하면 담양쪽으로
오다가 소쇄원이라는 입간판을 보고 길을 바꾸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