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6. 23. 21:20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MBC의 첫방송地 - 인사동 
2005-03-05 오후 12:31:28

 

 


요즈음은 3.1절에 대한 의미기 점점 퇴색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그냥 휴일이니 하루를 나름대로 즐겨야 겠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이제 3.1절의 행사는 오직 나이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느낌이였다.


2005년의 3.1절도 역시나 마찬가지 였다.
우리집에도 고딩..중딩..초딩이 나란히 있지만 요즈음은 학교에서도 3.1절 행사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교육은 학교와 사회 그리고 가정이 정확히 삼분지일씩 나누어 부담을 해야한다는게
나의 확신이기도 하다.


3.1일 하루전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독립기념관을 데리고 갈려고 했다.
요즈음 큰놈이 일본 노래를 몇곡 좋아하는 지라 그에 대한 논쟁을 벌인적이
있는데 그 아이이야기로는 일본을 좋아하는게 아니고 노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좀 대답이 궁색해졌고 너무 내 사고가 치우쳐져 있는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날 밤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의향을 이야기했더니 독립기념관은
소풍으로 몇번을 간적이 있는 곳인데 하며 큰아이가 반대를 한다.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생가를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 터인데 의외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그외에 가까운 제암리도 생각을 했으나 요즈음 이웃동네인 천안으로 수도권전철이
다니니 3.1운동의 첫 시발지인 탑골공원을 제안했다.
바로 옆에 인사동이 있으니 구경을 하고 싶다는 와이프의 호응으로 결정되었다.


앞으로 해마다 3.1절에는 그에 맞는 가족테마여행을 해보려고 한다.
아이들 교육에 그만한게 없을 듯 싶어서 생각해본 것이다.

 

 

3.1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탑골공원과 인사동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우리는 탑골공원을 들러서 이곳으로 왔는데 70대~80대의 노인들만 모여있는 그곳과
같은 시각대의 인사동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여기는 젊은층이 위주로 바글대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열린 3.1만세의 날 거리축제가 한참 벌어지고 있다.
지금 무대에 서있는 인간들은 倭人딴따라인데 왜 저사람들이 저 무대에 서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내셔날리스트는 아니고 글로발리스트가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 축인데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바로 길건너에서는 일본대사의 독도발언으로
규탄의 함성을 높이고 있고 이곳에서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아마도 이 대회를 주관한 측이 인사동 상인들이라 장사수완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뭏던지간에 無腦蟲이 머리에 든것은 분명해 보인다.

 

 

 

 


외국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라 춘향전같은 공연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메뉴를 좀 바꾸어서 3.1절과 맞는 공연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안용복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일본막부와 독도문제를 담판지어서 문서를
받아내는 이야기등을 공연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반디불이만 국수주의자로 몰리는 것은 아닌지....

 

 

 


민족의 인물들을 굵은 붓으로 터치해 놓은 민족인물의 벽...
그중에서 반디불이가 무지하게 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초상화가 마음에 든다.
이승만의 권력욕이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한달만 일찍 귀국을 했더라면 훨씬 우리 현대사가 달라졌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인....
나는 이 말을 해석할때 남으로 하여금 도데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라는 감탄사를
받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몇가닥의 철사와 벤치만으로 만들어내는 조형물을 보면서 이 분에게 장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었다.
다음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와서 찍어가서 독학해볼까하고 생각중...

 

 

 

쌀 한알에다 반디♥무소유 등의 글씨를 새겨서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아주는 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문구도 있지만 나라는 좁은데 인재는 왜이리 많아라고
말하고 싶다.


여의도에 있는 동그란 지붕의 통기레쓰에 居하는 쓰레기쉐이들 빼고....

 

 

 

 

 

 

 


인사동에서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쌈지길의 모습들이다.
제일 위는 쌈지길의 입구다. 인사동이라는 도시에서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두번째는 쌈지길 건물내의 모습이다.
각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계단으로 되어 있지않고 보도로 되어 이동성이 참 좋다.
맨꼭대기에는 망원렌즈를 가진 찍사들이 무지 많다.
그 위에서 망원으로 주욱 당겨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찍고 있었다.
두가지를 크게 느꼈다. 하나는 역시 사진은 장비다라는 거..다른 하나는 이곳은
초상권이 없다는 거...
사진전이 있으면 잘 다녀봐야 겠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찍혀서 나다닐지
모르니까 말이다.


세번째 사진은 쌈지길내의 업소들 간판이다.
마지막 사진은 각층의 표시다. 두오름길이란 2층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뜻으로
참 괜찮은 발상이 아닌가한다.

 

 

 


일정때문에 다음의 숙제로 남긴 두곳이다.
위에 있는 칼박물관은 저번에 무소유와 둘이서 한 번가본 곳에다 식구들이 흥미가
없어하는 관계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반디불이가 좀 관심이 있는데...ㅠㅠ..

다음은 아이들이 아직 미성년인 관계로 다음에 와이프와 손잡고 가서 보아야 할
성문화박물관이다.

 

 

 

 

 

이집에서 수편의 영화가 촬영이 되었다고 한다.
내부 구경은 못해 보았다.
이 집 역시도 다음 숙제로 남기고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둔다.
다섯식구가 들어가 차를 마시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한때 정말 열심히 구독했던 선데이 서울...
20대 초반의 젊은 시절에 이 선데이 서울을 열심히 구독한 이유는 펜팔란을
보기 위해서 였다.
당시에는 펜팔이 참 유행을 했었는데....
나역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또 받기도 했다.

 

 

 

아마 작년에 왔던 사람들은 인사동이 MBC 문화방송의 첫방송지였다는 것을 몰랐을
것 같다. 나도 작년에 한번 갔다왔는데 올해 1월 3일날 표식을 박아놓았다.


그때만 해도 이곳이 MBC의 첫방송지였다는 것을 몰랐는데 워낙 반디불이가 길을
걸을때는 위 아래 좌우를 살피는 버릇이 있어서 발견한 것이다.
1961년의 일이라고 한다.

 

 

인사동에서 꽤나 소문이 나서 전국방송도 탄 길가의 간이 떡볶이집에서 한참을
줄을 선 끝에 사기는 했지만 앉아서 편하게 먹을 처지가 못된다.
그냥 외진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