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6. 23. 22:15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안동 하회마을 
2005-03-15 오후 12:18:07

 

 


2005년 3월 9일 포항으로 출장을 갔다오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안동의 간고등어를 파는 것을 보고 불현듯 다녀온 곳이 안동의 하회마을이다.


예전에 한번 갈때는 예천을 거쳐서 국도의 좁고 커브진 길들을 돌고 돌아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었다.
요즈음은 국도도 휑하니 잘 둟려있지만 중앙고속도로가 하회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을 스쳐 지나기 때문에 그만큼 접근성이 좋아졌다.

 

 

하회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하회탈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도는 한이 많은 곳이다. 변방의 섦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한을 표출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보니 전라도 지역은 소리가 발달을 했고
경상도 쪽은 춤이 특별하게 발전을 해왔다.


가만히 지도를 놓고보면 전라도의 영산강이나 바닷가쪽은 서편제..동편제등의
판소리나 진도아리랑등의 이름난 소리가 많다.


반면 경상도쪽은 낙동강을 따라서 하회탈춤이나 동래야류나 고성의 오광대처럼
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하회마을이 알려지기 시작을 해서 절정을 이룬것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이제 하회마을은 세계적인 문화장소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회마을의 입구 주차장 옆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방문했을때 앉았던 의자..잠을 잔 침대..그리고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국은 문화적 자존심이 대단한 나라다.
따지고보면 그들도 유랑민족에서 영국이라는 섬을 정복하고 정착한 도적떼 였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문화민족으로 거듭났다.
그런 나라에서도 유구한 우리역사와 전통에 무척 감명을 받고 갔다고 한다.

 

 

눈에 확~ 뜨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필 방명록도 전시되어 있다.
나는 만년필 메니아다. 많이 가지거나 고급품을 가진것이 아니라 상용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모든 필기를 만년필로 한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썻다는 만년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하회마을은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물돌이동]이라고도 부른다.
산과 흐르는 물이 서로 감싸 안고 휘돌아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절묘한
지형을 빚어냈다. 자연의 조화란....

풍수지리로는 '태극형' 또는 마을의 생긴 모양이 물위에 활짝 핀 연꽃과 같다고 해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한다고 한다.
또는 배에 짐을 가득싣고 막 떠나려고 하는 형국인 '행주형(行舟形)'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풍수학상으로는 길지(吉地)라고 해서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도 천하제일
길지로 손꼽을 만큼 이름난 명당(明堂)인 곳이 하회마을이다.

 

 


사람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하회마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마을에서 구전(口傳)되는
"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 " 이라는 향언(鄕言)과 하회탈의 제작에 얽혀있는
허도령의 애뜻한 전설로 미루어 대개 고려시대 초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하회마을의 모습은 고려말 조선 초에 이르러 풍산 류씨 공조전서
류종혜공이 풍산 상리에서 길지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이다.

 

 

마을의 구성은 화산의 얕은 능선을 따라서 길이 나고 그 길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진다.
이 마을의 건축물들은 능선과 길을 등으로 하고 밖으로 향하여 지었기 때문에
동서남북향의 모든 좌향(坐向)이 나타나는 특색을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좌향(坐向)의 건물일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강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 줄 뿐 아니라 앞이 시원스럽게 트이고 강물이 흐르는
풍치를 즐기기 위함에서이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여 그 속에서  동화되고자 하는 선조들의 슬기로움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하회마을은 고건축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살림집들이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세운 거대한 규모의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북촌댁), 염행당(남촌댁) 등의
기와집과 작은 규모에서부터 제법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초가(草家)들이 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학문을 탐구하고 몸과 마음을 닦던 옥연정사, 빈연정사, 겸암정사 등의 정사(亭舍)가
있으며 선현들을 제사하고 인재를 교육한 병산서원과 화천서원등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요민속자료 177호인 하동고택이다.
이 건물은 조선 헌종 2년(1836)에 건축되었다.
하회마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이라고 한다.

 

 

 


주요민속자료 90호로 지정된 이 집은 하회남촌댁이다.
이 건물은 충효당과 함께 하화마을의 남촌을 대표하는 주택이다.
조선 정조 21년(1797)에 형조좌랑 류기영이 건립한 것이다.
대문채,몸채,별당,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양반주택이였다.
1954년에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는게 아쉽다.

 

 

 

 

 


보물 414호인 충효당이라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서애 류성룡의 후손과 문하생들이 그의 덕을 기리고자 166년대에
지은 건물이다.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처음 건립햇고 그후 그의 증손인 류의하가 전체
52칸의 대형 건축물로 확장을 했다.
건물 옆에는 영모각이 있고 서애 류성룡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영모각앞에 있는 만지송(萬枝松)이다.
서애 류성룡의 13대 종부였던 무안박씨가 1959년 야산에서 옮겨 심었다고 한다.

 

 

 

 

 


보물 3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안동 양진당이다.
하회마을에서 충효당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 겸암 류운룡(1539~1601)이
살던 집으로 풍산류시의 대종가이다.
1500년대에 세워진것으로 추정된다.
하회마을의 北村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안채는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중요민속자료 84호인 하회 북촌댁이다.
이 건물은 경상도 도사를 지낸 류도성이 조선 철종 13년(1862)에 건립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양반주택이다.

 

 

하회마을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깜빡하고 스쳐지나치기 일쑤인 골목이다.
두사람이 어깨를 붙여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골목인데 저 끝에서 ㄱ 자로
다시 꺽어지면 삼신당이 나온다.

 

 

 

 


삼신할매...
우리를 엄마의 뱃속으로 점지해주시는 삼신할매를 모시는 곳이다.
수령 600년...
지금 서울의 나이와 맞먹는 것이니 얼마나 오래 되었겠는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몇백년을 거쳐서 들인 치성이 무거워 가지가 쳐진
삼신할매..당산나무와 그 앞을 지키는 벅수...
그는 지금 턱이 무겁다...사람들의 소망의 무게가 너무 큰 탓이리라..

 

 


하회마을 찾아가는 길은 예전보다 너무 쉽게 되었다.
여기저기 좁던 길이 넓혀지고 없던 길이 새로 뚫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쉽게 가는 법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서안동 나들목을 나와서 예천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면 34번 국도를 만나는데
예천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풍산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5분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