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6. 24. 07:14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보물 465호 신월리 3층 석탑 
2005-03-25 오후 2:53:12

 

 

거울은 변화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대로 비추어 주지요.
그것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아래와 위는 절대로 바꾸어 주지 않고
좌우만을 살짝 바꾸어 줍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야 비로소 주름살도 늘었음을 알고 머리카락이
쉬어감도 알게 됩니다.
거울이란 결국에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로소 인식시켜주는 도구
이기도 하고, "내일은 이쯤에 주름이 생기겠는걸.."하며 미래를 짐직하는
예지력을 발휘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상하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서 돌아갈수 없는 과거에 대한
연민과 뛰어 넘을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느끼곤 합니다.


문화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신라시대의 젊은 화랑과 또 젊은 아낙이 호젓히 손잡고 거닐었을 그런
시간적 공간도 형상적 공간속에 녹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적 공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렸지만 형상적 공간을 통해 오래전에
그 공간을 흘러간 시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왜 이리 사설이 긴것인가 하면 우리나라 사찰이나 산야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탑들의 형식이 그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8세기 중엽은 신라가 완전한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시기였는데 이때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탑이 불국사 삼층석탑, 즉 석가탑인데 이 시기에는
그에 맞먹는 우수한 석탑들이 곳곳에 세워 졌습니다.


그러나 9세기를 지나서 그 후반으로 내려오면 화려하고 기교가 넘쳐나는
탑들이 많아지고 탑의 크기도 5~7미터에 이르던 것에서 4~5미터 가량으로
작아지고 왜소해져 가게 됩니다.


이는 신라가 쇠락해가면서 신라사람들의 정신적 빈곤과 상실한 자신감을
충족시켜보려는 경향이 심화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영천 신월동 심층석탑은 보물 제 406호입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의 하대..즉 쇠락하여 지방의 호족들이 활개를 치면서
중앙정부의 힘이 점점 약해져 가고 전체적으로 신라 사람들의 정신적인
면도 피폐해져 가던 시기에 만들어진 탑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높이 3.7미터 정도로 나지마한 탑이기는 하지만 기단부가 튼튼하고
상부와 하부의 비례가 무척 잘 맞는 빼어난 수작으로 꼽을 만합니다.
이 탑을 보물로 지정한 것은 상층과 하층의 중대석에 탱주를 하나씩 새기고
상층 기단 면석에 탱주로 분할된 여덟개의 면에 팔부중산이 조각되어 있는
통일신라 하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신월리 3층 석탑을 만나고 나오는 길을 배웅해주는 봄꽃들입니다.
하핫~~~ 봄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