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歷史)

김대근 2006. 12. 8. 00:09

 
12월 8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70(조선 선조 3)  퇴계 이황(1501-1570) 별세
  1863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 별세
  1880  사학자 단재 신채호 출생
  1900  태극기 규정, 흰바탕에 길이 2척 넓이 1척 태극 7촌 청홍색
  1902  음악가 현석 현제명 출생
  1924  경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 결정
  1943  국어학자 환산 이윤재 별세(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에서 옥사)
  1950  유엔군,원산에서 철수 완료
  1963  일본 동경의 카바레에서 역도산 피격(15일 사망)
  1964  TBS 동양방송국 개국
  1977  쌀막걸리 제조 14년만에 재허용
  1987  대륙붕 6광구서 처음으로 가스층 발견
  1991  SBS-TV, 방송허가 취득
  2006  경부선 철도 전구간 전철화 완료


해외
  1865  핀란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 출생
  1903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별세
  1914  독일 순양함 4척 포클랜드 부근서 침몰. 1,800명 사망
  1974  그리스, 국민투표로 142년간의 왕정종식
  1980  록그룹 비틀스 리드싱어 존 레논, 뉴욕서 피살
  1987  미국과 소련, 중거리전략핵(INF) 폐기
  1999  20세기 최고영화에 '스타워즈'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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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 때의 성리학자이자 사상자로 중국 성리학을 한층 더 발전시켜 우리
성리학이 중국을 능가 하게 할수 있었다. 이러한 퇴계 이황의 학문은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
근세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542  42세  충청도 암행어사가됨
1548  48세   단양군수가됨
1570  70세  세상을 떠남 (영의정으로 추증됨)


현재에 이르러서도 퇴계의 학문적 성과를 연구하는 단체도 많고 학술지 여러종이 있다.
그러나 퇴계 이황은 민족적인 관점에서 볼때 모화사대(慕華事大)에 찌들은 지식인의
전형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예조판서로 재임하고 있을때 일본으로 보낸 서신에서
"하늘에는 두개의 해가 없고 인류에는 두 임금이 없다. 춘추전국이 통일된 것은 천지의
법칙이고 고금에 변치않는 대의 인 것이다. 큰 명나라는 천하종주국이므로 해 돋는 동방에
처한 우리나라가 어찌 감히 신복(신복)치 않으리오"라고 썼다.


또 그는 "우리 조상은 아득히 먼데 떨어져 있으면서도 번국노릇을 하며 중국을 종주국으로
모시고 있다."라거나 "단군에 대한 기록은 허황되어 믿을 수 없다"거나 "기자(기자는 중국인
으로 알려져 있다.)가 와서 통치하게 되어 비로소 문명국이 되었다", "고려때는 불교가 성행
하여 오랑캐의 나라가 되었다"는 등의 민족 정체성을 부정한 대표적 사상가의 한사람이다.


그는 11월 25일 출생했는데 "11월 25일의 지나간 오늘"의 포스트를 참고할 事~
http://blog.daum.net/roadtour/7939895   ◀ 클릭

 



1880년 민족정신을 일깨운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출생하였다.


본관 고령(高靈). 호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皇城
新聞)》에 논설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주필로
활약하였다.


또한 민족의 영웅에 대한 전기들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며 민족의식 고양에 매진했으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등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1908년에는 순 한글
《가정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1910년 4월 중국 칭다오[靑島]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안창호(安昌浩)·이갑(李甲)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권업신문(勸業新聞)》에서 활동
하다가, 1914년에 강제 폐간되자 그 해 남북 만주와 백두산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하였다. 1915년 상하이로 가서 박달학원(博達學院)의 설립하여 운영에 힘썼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중책을 맡았으나, 한성임정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공직을 사퇴하고 주간지 《신대한(新大韓)》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과 맞서기도 하였다.


그 후 비밀결사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단장, 신대한청년동맹(新大韓靑年同盟) 부단주
(副團主) 등에 피선되었다. 1923년 민중의 폭력혁명으로 독립의 쟁취를 부르짖고 임시정부
창조파(創造派)의 주동역할을 하다가 다시 베이징[北京]으로 쫓겨가 다물단(多勿團)을 조직
지도했으며, 중국과 본국의 신문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였다.


1925년경부터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로 변신하였다. 1928년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옥사했다.

 

 


그동안 독립투쟁을 하며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그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역사의 사건들을 새롭게 해석했으며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
(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로 민족사관을 수립, 근대사학(近代史學)의 기초를 확립했다.


저서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
(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이탈리아 건국삼걸전(建國三傑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 《동국거걸(東國巨傑)》 《최도통전
(崔都統傳)》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화륜거의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라』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 하루전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간 33.2km를 개통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철도의 시대가 열렸다. 세계최초의 철도인 영국철도가 개통한지 74년,
동양에서 최초로 인도에서 철도가 부설된지 46년뒤의 일이니 철도만은 그다지 뒤처진
것은 아니였다.


이후 일본의 침략이 거세어 지면서 일본의 손에 의해 국토의 동맥이라 일컫는 경부철도가
1905년에 개통되었다.


석탄을 연료로 하던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발전을 거듭해왔다가 이제는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기관차가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에 강원도
증산~고한구간에서 처음으로 전철의 시운전이 시작된 이후로 전철화에 박차를 가하여
운행구간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2006년 12월 8일 오늘은 우리나라 교통발전사에 또 하나의 획이 그어지는 날이다.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대한민국의 대동맥 경부철도가 전철화를 완료한 날인 것이다.
작년쯤에 완공되었다면 경부철도 100년을 맞은 좋은 기념이 되었겠지만 101년을 맞는
경부철도가 이제 전철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으므로 축하할 일이다.

 

우리 철도 발전사의 중요한 몇 장면을 보자.

 

철도교통 50주년에 발행한 우표다. 증기기관차는 70년대 초에도 가끔 볼수 있었다.

나는 유년기를 낙동강 하구의 구포라는 곳에서 보냈는데 집은 철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서 늘 기차와 친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했던 모갈링크형 기관차.

 

 

 

일제로 부터 해방되면서 첫 운행을 시작한 해방1호 증기기관차.

 

 

 

1972년 6월 9일 강원도 증산~고한간의 10.7Km 구간에서 역사적인 전철의 첫 시운전 시행..

전기라는 새로운 수단이 열차의 동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효시다.

 

 

 

신형 전기 전동차... 앞으로는 경부철도에도 소음이 적고 매연이 없으며 안정적인 힘을

발휘할수 있는 이런 전기 전동차가 운행될 것이다.

 

모갈링크형 기관차 모양은 첨 봅니다.
오늘도 유익한 기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