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歷史)

김대근 2006. 12. 10. 00:07

 

 

12월 10일 오늘의 역사


국내
  1895  독립운동가 설산 장덕수 출생
  1913  호남 창의대장 이석용 체포
  1922  안창남 모국 방문 시범 비행
  1926  유일한박사, 유한양행 설립
  1948  한미간 경제원조협정 조인
  1950  상해임시정부 부주석 역임한 우사 김규식 납북, 별세
  1954  부산부두에 화재. 국보급 문화재 3,400여점 소실
  1960  박태선장로교 신도 2,500여명, 기사에 불만을 품고 동아일보사 습격
  1971  해방후 처음으로 전국에 민방공훈련 실시
  1981  국회 내무위, 통금해제건의안 가결
  1991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
  1996  공군사관학교, 창군 이래 처음으로 여성 사관생도 20명 선발
  2000  김대중 전대통령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


해외
  1520  종교개혁가 루터, 교황의 파문장 불태워버림
  1987  쿠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96  발명가 노벨(1833-1896) 별세
  1901  제1회 노벨상 수상자 수상
  1903  마리 퀴리, 여성과학자로 최초의 노벨상 수상(제3회)
  1910  프랑스의 작가 장 쥬네 출생
  1913  아시아 최초로 인도의 시인 타고르 노벨상 수상
  1936  영국왕 에드워드 8세, 평민인 심프슨 부인과의 사랑 위해 왕위버림
  1948  유엔, 세계 인권 선언 공포
  1951  유엔총회, 군축위원회 설치안 채택
  1961  소련, 알바니아와 단교
  1965  런던에서 미니 스커트 최초로 등장
  1970  페루에 강진. 5만 명 사망
  1979  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 수상
  1983  아르헨티나 민간정부 출범. 대통령에 라울 알폰신
  1993  넬슨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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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비행기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13년 일본 해군 기술장교가 용산의 연병장에서
공개비행 행사를 가진것인데 이는 1903년 라이트형제가 동력비행을 성공한 이후 10년만의
일이였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 비행기를 조종한 사람은 안창남으로 1922년 12월 10일 여의도에서
5만여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발쌍엽 1인승인 금강호로 비행행사를 가진것이다.

 

 


안창남은 서울출생으로 미국인 스미스의 시범비행을 보고 비행사가 될것을 결심, 1918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자동차학교를 거쳐 아카바네 비행기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조법을
배운뒤에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운뒤 이 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921년 비행사 시험에 합격했고 이 해에 우편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1922년 동아일보의
후원으로 고국방문을 하여 시범비행을 하므로써 일제하의 동포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후에 그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비행학교 교관이 되었으며 중국의
혁명전선에 참가했다가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어릴때 퀴리부인에 대한 위인전기 한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1903년 여성과학자로는 최초로 '마리 퀴리'가 제3회
노벨상을 수상했다.


특히 약소국의 하나였던 폴란드 출신이여서 그에게나 조국에게나 더 없는 영광이였다. 그러나
연구와 강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물리학계 최대 연구 테마는 `어떤 종류의 물질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와 원자구성 입자를
방출하는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었는데 그 현상에 대하여  `방사능`이란 이름을 처음 붙여준
이가 '마리 퀴리' 부인이었다.


그녀의 업적은 20세기를 방사능의 시대로 만든 초석이 됐다. 방사능을 이용한 치료법이라던지
핵분열을 이용한 전력 생산등도 보두 그녀의 연구를 토대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지질학-인류학-고고학자들은 방사성 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이란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녀는 1911년 금속 라듐 분리에도 성공, 노벨 화학상까지 받아 최초로 2회 수상자가 됐다.
1934년 7월 4일 숨을 거뒀는데 공교롭게도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얻은
백혈병이 사인이었다.

 



`빈자들의 성자`라고 불리던  마더 테레사 수녀가 1979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테레사 수녀는 일체의 축하행사를 거부하며
상금 전액을 한센병(나병)환자 구호소 건립기금으로 희사했다. 게다가 수상자도 자신이름이
아닌 `사랑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받아 세상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스코페(현재의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인을 부모로 1910년에 태어난 테레사는 어린시절을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으나 7세때 부친 별세로 갈곳이 없어져 카톨릭에 귀의했다.


그녀는 '가난한 자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계시를 실천하기 위해 원래의 수녀명인 '아그네스'를
테레사로 개명하고 인도 시민권을 얻은 뒤 캘커타 빈민가로 들어갔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그녀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 내었고 많은 신도들이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1950년 마침내 그녀의 `무한사랑`이 담겨있는 `사랑의 선교회`가 섰고, 그녀는 199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가난한 자들에 헌신하며 일생을 보냈다.

 



런던에서 런던 최초로 의상실을 열었던 디자이너 메리 퀸트는 1965년 12월 10일 유행하던
드레스 스타일 옷에서 탈피하여 최초로 미니 스커트를 만들었다.


이 디자인은 'The Look'이라 불리며 마침내 미국에 상륙하게 되는데 그녀의 패션쇼가 열려
미니 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이 출연했을 때 몰려드는 사람들로 주변의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가수 윤복희씨가 귀국하면서 미니 스커트를 입고 들어와 사회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뒤로 미니 스커트 열풍이 불었는데 경범죄가 있던 당시 경찰들은
대나무자와 가위를 들고 다니며 무릎위 20센티 이상 올라가면 현장에서 가위로 찢어버리고
풍기문란 경범죄로 처벌하기도 했다.

 

오늘은 멀리 여행가시나 봐요?
일찍 오늘의 역사를 올리시는 걸 보니
열성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울러 좋은하루 되시구요
오늘은 방송통신대학교 기말시험이 있어어요...ㅎㅎ..올해 졸업했어야 하는데 1,2학년때 펑크낸 과목이 몇개 있어서..때우러 갑니다..ㅠㅠ~
ㅋㅋㅋ
저 어제?? ^0^
아참!! 저녁에 다녀와서 단 답글이군요..때우고 왔습니다로 수정합니다...ㅋㅋ
간만에 들렸네요 어제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했는데 눈이 소복히 쌓여 있더라구요 예전 같으면 햇살에 비치는 눈을 한움큼 집어 입으로 넣어 먹기도 했었는데 어째 입에 넣기가 좀 그렇더군요 ㅋㅋ~
반디불의 똥고에 오면 웬지 그 옛 까까머리하고 순수하게 생활했던 그 추억이 되살아나는듯 하는 공간이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 주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강 하세요! 꾸벅^^*
아~ 양평! 드라이브 코스로는 그만이지요..게다가 눈까지 소복하게 쌓인 곳이라면 꽤나 낭만적이였겠네요..그렇지요..요즈음은 눈 먹었다가는 큰일 나지요..예전에는 겨울밤 날씨가 꾸무리하면 장독대위에 냄비며 바가지들을 올려두었지요...아침에 그득한 눈...그기다가 '신화당'이라는 사카린 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어디 지금의 아이스크림과 같겠어요?..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못하고 말이지요...감사합니다.복분자대왕님도 한해 건강하시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