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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2010. 8. 12. 03:42

결혼의 성 생활

 

현대는 성(sex)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이 너무 많아 마치 인간의 삶에서 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처럼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문제가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문제요, 이혼과 부부간의

긴장관계에 가장 큰 요소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5,OO0명의 아내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부간에 성문제는 여자들을 괴롭히는 문제 중 여섯 번째로 나타나 있다(James dobson, What wivers wish Their Husbands Knew About Women).

 

1. 자신의 무가치감

2. 피로와 시간 부족

3. 고독, 소외감, 무료함

4. 로맨틱한 사랑의 부족

5. 가정 경제문제

6. 부부간의 성문제

7. 월경과 육체적 문제

8. 자녀 문제

9. 시부모와 시대문제

10. 노쇠 현상

대부분의 결혼문제는 성생활의 문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결혼생활의 다른 성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Ⅰ. 섹스에 대한 현대인의 잘못된 태도

예수님께서도 당시 사람들에 대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나무란 적이 있다. 이 성적 문란상을 역시 표현하고 있다. 분명한 하나님의 법을 무시고 있다. 잘못된 견해를 살펴보자.

. 자기만의 쾌락을 위해 섹스를 이용한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섹스를 하나의 감정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 하는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올 수 없다.

나. 두 사람이 사랑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져도 된다.

성인들 간에는 서로 합의만 하면 성관계를 가져도 된다. 애정은 한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고

여러 사람과도 가능하다. 사랑하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고 또 결혼도 할 수 있다. 사랑이 사라지면 성생활을 중단하고 결혼도 끝낼 수 있다.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로의 관계를 중단할 수 있다. 버트란드 럿셀과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 약혼은 두 사람에게 성관계의 권리를 부여한다.

약혼 후 성관계는 일생동안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무판하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잘못일 뿐만 아니라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규범 있는 삶을 포기하는 일이요 둘 중 누군가

약혼을 파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한 동안의 성관계를 갖고 나서 둘 중에 한 쪽이 일생을 같이 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 사람 다 큰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여자 쪽이 이용 당 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분노, 의심, 상처가 따르기 마련이고 미래의 결혼에 대한 정신적장애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인은 성경에서 가르친 삶에서 후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섹스를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의 삼자간에 서약한 결혼 관계속에 허락하셨다.

. 물건을 고르듯이 배우자도 시험해 보고 정한다.

“만일 저희 상품에 만족하지 못하시면 쓰지 않은 부분을 가져오십시오. 기쁘게 돈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품 광고처럼 배우자를 써보고 합격하면 결혼을 한다는 식이다. 한동안 실험해서 적합하면 결혼은 성립되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 둔다. 그 실험 가운데 한 가지가 성관계이다. 자유화된 성의 기준을 두고 실험을 해본다는 것이다.

마. 성인들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섹스도 허용된다.

현대사회에서 점차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있는 악한 태도 가운데 하나는 성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종류의 성관계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간의 성관계가 세계적으로 전염병처럼 강하게 퍼져 가고 있다. 이런 사람을 죄인이라든지 동성연애자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서양에서는 ‘게이즈’(gays, 즐거운 사람들, 화려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러 하나님께서 가장 증오하는 행위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극심한 성적타락으로 인해 가정의 파탄, 온갖 정신병, 성병, 최근에는 에이즈, 성폭행의 증가, 어린이의 학대와 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 섹스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견해

가. 섹스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고 결혼 생활의 성공은 성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디를 가도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것으로 둘러 쌓여 있다. 밤이나 낮이나 어디를 가나

눈을 뜨고 있으면 선정적인 것을 대하게 된다. 세상과 마귀와 육정은 섹스가 인생의 전부인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온갖 종류의 불륜한 성관계나 외설적인 성을 신문, 잡지, 영화, 소설, 만화, 간판, 비디오, 심지어 옷차림 등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어떤 성관계든지 다 바람직한 것처럼 계속 선전하고 있다.

성생활에 만족하면 결혼생활에 성공한다는 인상을 주고 그것이 행복한 결혼을 위한 대답인 듯 말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깊이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신앙적 부부는 그 사랑을 성적으로도 표현하게 된다. 사랑이 있는 결혼생활이 성관계를 이루는 것이지 섹스 자체가 결혼생활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 성은 심지어 결혼한 부부간에서도 더러운 것이요, 수치스러운 것이요, 어쩔 수 없는 필요 악이다.

이 견해는 성경적이 아니다

다. 부부간의 성행위를 지나치게 영적으로 미화하려 한다.

결혼생활과 부부간의 성생활에 영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혼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상징하기도 했다(엡 5:32). 그러나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부부의 성생활을 강조하는 나머지 세상에서 섹스를 천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반대로 성올 지나치게 영적으로 중요하게 해석해서 거의 초월적 영성의 표현으로까지 말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의 성에 대한 책들을 보면 “섹스는 아름다운 것”이라든가, “섹스는 두 인격체의 완전한 조화” 라든가 “섹스는 인간의 전인적 만남, 즉 몸과 혼과 영이 만나는 사랑의 장이다”라는 황홀할 만큼 성을 높여 놓는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성관계는 심오하리만큼 영적인 것이다” “소외된 남녀의 상태를 하나로 묶어주는 다리는 성행위이다.”

위의 표현에 다소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부부의 성행위를 너무 고상하게만 성의 기본적 면모 속에 있는 육체적, 감정적 즐거움이 약화되지 않는가 싶다. 기독교의 성전문가들이 성을 너무 미화하는 나머지 현실적인 부분을 관과 할 필요는 없다.

 

 

. 성에 대한 성경적 견해

가. 섹스는 거룩하고, 깨끗하고, 선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섹스는 20세기 현대인이 발명해낸 것이 아니요 인간이 성에 대한 표준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결혼은 어느 면에서 보나 귀한 것입니다. 잠자리를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히 13:4).

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성의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성은 깨끗하고 거룩한 것일 뿐 아니라 극히 사사로운 것이고 성스러운 것이다. 결혼한 부부들은 완전한 자유 속에서 부부관계에 임할 수 있다. 믿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영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것과 갈이 성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생활에서 성적인 즐거움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창 1 : 27, 2:18, 22-24, 히13:4)

나. 동성간의 성행위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완전히 상반되는 것임으로 악한 죄이다.

창세기 19:4-9은 동성애의 결과를 보여준다.

례위기 18:22, 20:13에도 동성간의 성관계률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것 중에 한 가지요 사형에 처할 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사기 19장도 동성간의 성행위의 무서운 결과를 보여준다.

열왕기 상 14:24에 나타나는 남자 매춘부는 도덕적 타락의 바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에스겔 l6:49-50에서 동성애 행위가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를 소돔성의 멸망을 통해 보여준다.

로마서 1:26-27에 동성애 행위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타락한 행위로 간주하고 “자연에 위배되는 수치스러운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전6:9, 딤전 1:9-10에 의하면 동성애 행위의 최는 우상숭배, 도적질, 폭행, 사기, 살인, 인신매매와 같은 죄악 가운데 갈이 취급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이상과 같은 여러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동성간의 성행위를 합리화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연애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고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사랑하고 주께로 인도해야 한다(고전 6:9-11).

다. 성행위는 결혼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는 절대로 성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음란과 간음은 가장 악한 죄에 속한다(마 19:18, 출 20:14, 살전 4:3-8, 고전 7:2-5).

. 성은 사랑의 종이라야 한다.

부부간의 성적 결합은 사랑과 현신의 표현이라야 하며 사랑의 동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엡 5:25, 28, 33 고전 13:4-8).

부부간의 성생활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 호의에 대한 댓가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서

# 욕정의 표현 방법으로

# 말로 하는 대화 대신으로

# 열등의식을 극복하려고

# 배우자를 움직여서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 불안과 긴장에 대한 방어책으로

마. 결혼과 결혼생활 안에서의 성적결합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결혼과 성적결합이 모든 기독교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결혼을 하지 않고 성생활을 하지 않고도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마 19: 10-12, 고전 7:7-9).

 

 

IV. 성의 성경적 목적

. 인류의 존속을 위해 후손을 제공한다(창 1 :27-28).

자손의 출산-자손의 번식

자손을 원하는 것은 정상적이요 자신의 비정상척인 두려움이나 이기심 때문에 자식을 원치 않는 것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위배된다.

결혼한 부부간에만 성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자녀들이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고 성장과정 속에서 부모로부터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성에는 창조의 신비와 쾌락이 함께 있다.

자녀를 처음부터 원치 않으면서 결혼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부부간의 육체적, 심리적 쾌락은 결혼한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나 자녀의 선물도 역시 하나님의 의도이다. 자녀가 없을 수는 있으나 자녀를 가질 수 있는데 갖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자녀를 낳으면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책임성이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부부가 낳은 자기 아기를 쳐다보고 안아주고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을 가져다 안겨준다. 자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창조에 우리가 참여 했다는 생각을 해보며, 깊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아내가 임신할 수 있는 만큼 아기를 다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계획은 성경에 없는 것이지만 가정경제와 부양능력과 아내의 건강상태를 모두 감안해서 적절하게 할 수 있다.

부부간 사랑의 행위로 태어난 아이는 가정의 완성을 이루어 주고 아이는 사랑을 받으며 살고 때가되면 그 사랑을 부모에게 베풀어 준다. 이것이 결혼에 포함된 성의 의미도 된다.

성의 의미에는 사회적인 것도 있다. 부부관계를 통해 자녀가 태어날 때 새로운 관계가 성립된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가 새로운 사회적 책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 성은 남성과 여성으로서 인간의 완성이다(창 2: 18,24).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는 서로가 완성됨이 포함되어 있다. 아담이 혼자였을 때 하와 없이는 불완전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통해 아담의 삶이 완성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관계가 결혼의 필수조건이요 성관계가 없으면 결혼은 무효화 된다. 이것이 바로 한 몸의 원리이다.

부부의 사랑에는 성관계가 들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지신이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을 성관계에서 결국 발견한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됨으로 남녀가 완성된다.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서로간의 만족을 주게 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전서 6:1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이와 같은 행위는 참된 관심도 사랑도 없는 행위로 용납될 수 없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조롱하고 참된 목적과 내용을 더럽히는 일이다. 참된 하나 됨이 없는 결합이다. 결혼한 사람이 혼외에 성행위를 할 때에 이것을 간음이라고 한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나 오늘날 많이 일어나고 묵인되고 있다.

부부간의 성행위에 있어서 가장중요 한 것은 서로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다. 사랑은 나누고 대화하고 느낌을 전달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준다. 깊은 대화는 성행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평상시에 있어야 한다.

성행위는 일상생활에서의 대화가 연결되는 것 뿐이다. 참된 사랑의 대화는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성행위도 자기 자신이나 동성간에나 매춘부와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고린도전서 7:3에 부부에게 “의무를 다하라”(render)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을 서로간에 완전히 배우자에게 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서로에게 자신을 철저히 내놓으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스스러움이 없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완전히 개방된 모습이다. 서로간에 배우자의 만족이 사랑의 중심내용이다.

부부의 성관계는 영적으로 거룩한 행위이다.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자기 완성과 계발이 결혼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성올 창조하셨고 계획하셨고 허락하셨다. 부부간의 성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 육체적 심리적 요구를 채워주고 즐거움을 제공한다.

창세기 2:18, 22, 24-25

성적욕구는 정상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다(고전 7:2-5)

결혼생활에서 성적만족을 주고받는 것은 정상적인 기대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속해있고 서로에게 성에 대한 의무가 있다.

성관계의 중단은 상호합의에 의해서라야 하고 일시적인 것이라 하고 영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있을 수 있다.

창세기 18: 12에 “쾌락”이란 표현이 결혼한 부부간의 성적관계에 쓰여 져 있다.

신명기 24:5에 나타나는 단어도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은 역시 “쾌락”, “쾌감”을 주어야 한다는 단어이다.

잠언 5:15-20이나 솔로몬의 아가 6:1-9, 7:12-10 등도 뜻이 자명하고 부부의 성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말해 주고 있다.

결혼생활에서 섹스의 의미는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근거하여 볼 때 두 인격적인 사람사이에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또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일이다. 이와 같은 하나 됨은 즉시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저절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배우려는 노력과 서로 나누고 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 서로를 향한 사람을 북돋는 것이 목적이다.

창세기 2 : 24의 한 몸 원리는 동료의식, 완성감, 상호 헌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성행위는 전인적인 사랑의 표현이라야지 단순한 욕정의 행위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마음을 상하거나 해(害)가 될 수 있다.

사랑은 “친절하며 부드럽다.”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의 유익을 구한다. 결국 주는 것이다.

주는 자가 받는 것이 영적인 진리이다.

완전히 줌으로서 완전히 받게 된다.

성을 자기의 만족을 위해 배우자를 이용함으로서 자기 만족의 도구로 쓸 수 없다.

섹스는 행복과 기쁨과 상호이해의 수단이어야 한다.

섹스는 가장 심오한 대화요 만족이어야 한다.

 

 

V. 성생활의 기본적인 문제들

부부간의 성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가운데 성행위의 육체적 장애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거의 없다. 어쩌다 예외적으로 그와 갈은 문제가 발생할 시에는 의사를 도움을 받으면 대부분의 경우는 해결된다. 이런 경우 부부가 의사의 도움을 구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부부간에 성생활에 있어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심리적, 감정적인데 원인이 있거나 잘못된 태도 때문에 나타난다. 불신자들의 성적 문제들은 결혼생활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믿는 부부의 경우 비교적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성생활에 관한 긴장과 논쟁을 경험하고 있다면 대개는 아래의 네 가지 원인 때문이다.

가. 성에 대한 잘못된 태도

성행위는 부정하고 더럽고 비영적인 것이라는 느낌이나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거나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양심의 가책 없이 부부관계를 자유로이 즐겁게 참여할 수가 없다·

성은 결혼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태도와 배우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을 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섹스를 극대화시켜 남용하는 것을 지혜롭게 분별 하여야한다. 때로는 의사들이 성에 대해 써놓은 책들이 불필요한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과장되고 현실성이 없는 기대감을 일으켜서 사람들에게 실망과 불만을 일으킬 수 있다.

신앙인들은 비기독교인들이 과장해서 써 놓은 글이나 책이나 비디오에 영향을 받아 세뇌당하지 말고 부부 사이에 가장 적합한 만족스러운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한다. 적절한 성생활을 위해 기도의 제목을 삼을 수도 있다.

. 남녀 간의 육체적, 감정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이 문제는 비교적 심각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배우자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그에게 만족을 주려고 한다. 남녀의 육체적, 감정적 구성은 다르다· 그래서 배우자의 구성과 요구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 자기 중심적 이기심

배우자에게 만족과 즐거움을 주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만족만을 얻으려 하는 이기심이 있을 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대화의 부족

부부관계에 있어서 이 문제는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함께 살아가면서 많은 부부들이 원만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다. 그래서 성생활에 있어서도 대화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많다. 어떤 부부들은 삶에 대한 온갖 대화는 하면서도 성관계에 대해서는 자신의 원하는 것과 같지 않는 것, 성행위의 문제점과 즐거움에 대해서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이 다 손해를 보게 된다.

출처 : 아일라뷰
글쓴이 : Oasi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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