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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2011. 3. 11. 09:24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표현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릅니다.  스승과 제자가 똑같을수 없고 그 제자의 제자는  윗 스승과 또한 같을수 없습니다. 칼빈의 제자들은 이땅에 수없이 많지만  칼빈을 뛰어넘는 제자는 얼마나 될까요?  각자 자기의 개성이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웨슬레를 존경한다고 하는 분들, 칼빈을 존경한다는 분들....하나님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웨슬레만큼만 해라?  칼빈만큼만 해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일까요? 아니면 무엇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소망일까요? 

다들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까지만 해라!  한달란트 받았으면  한달란트 남길 수준이면 충분하고  다섯달란트 받았으면 다섯달란트 남길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수준이고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논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이 땅에서 죽지 못해.....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을까요?  살아가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하루 빨리 죽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숫하게 질문을 던지는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말을 배우면 우리는 제일먼저 하는것이 질문입니다.  나는 왜 태어났어...난 어떻게 태어났어...날 뭣하려고 났어?  이건 뭐야?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난 왜 엄마랑달라?  난 왜 아빠랑 달라?   이런 질문부터....우리는 커갈수록 질문을 하게되고 해답을 찾게 되는 삶을 살게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질문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난 죽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죽으면 끝일까?  아니면 다른 세상이 존재할까?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우리는 마지막까지 질문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에 해답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의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죽기전에 이렇게 말하고 죽고 싶습니다. 주님을 만나러 갑니다.  먼저가서 기다릴테니...천천히 오십시요.  

내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은  내가 가진 달란트만큼의 달란트를 남기고 가는것입니다.  전 전도를 잘 못합니다.  그러나 가르치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20년을 넘게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쉬고 있지만 때가되면 또 일을 해야하겠지요.... 

누구는 가르치기를 잘 못하지만 전도를 잘하는 분이 계실것입니다.  가르치기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런 분에게도  약점은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모든것을 다 가질수 없습니다. 열달란트를 가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그 부족한것으로 일함으로 나머지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인것입니다. 

성경한구절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두고  누구는 이렇다 누구는 저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삶과  미국인의 삶은 차원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북한 사람들과 유럽사람들과 호주사람들 일본사람의 생각....각자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우리 아랫집 사람과  나와 생각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누굴 만나느냐!  누구에게 배우느냐!  어떤 환경속에 있느냐?  강남이냐 강북이냐!  제주도냐 서울이냐.......비만오면 홍수나는 삶을 산사람이냐? 비피해를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사람이냐.....서울대를 나왔느냐 지방후진대학교를 나왔느냐.....

사람은 걸어온길이 다르고 걸어갈길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보니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그 방식가운데서 성경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된경우를 저는 많이 보게 됩니다.  

누구는 알파코스를 사단의 계략이라고 보지만  어떤 사람들은 알파코스를 전도를 잘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보기도 합니다.  대형교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며 그것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형교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면서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같이 정치를 중요시 여기는 기독교인이 있는 반면 기독교인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모든것이 다 개성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이 달라진것이고  그 달라진 생각들이 성경을 보는 눈까지 다르게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만큼은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머리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믿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몸에  각자의 역활이 다르듯이  우리의 삶과 생각과 행동이 다를지라도 한가지 똑같은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손가락과 같이 합심해서 일해야 하는 분들은 같은 생각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겠지만  발가락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개성은 서로를 더욱더 풍성하게 해주는 다름입니다.  서로 다투게 하는 다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것을 채워주는 다름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족한것들을 채우는 과정이 바로 사랑인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되었고  한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우리는 한몸인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몸일때 비로서 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기독교가 하나되지 못해 분열되는것은 바로 한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아니라  각자의 하나님을 따로 섬기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따로 하나님을 섬기는것은 옳은 모습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라 열분 스무분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것입니다.  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을 구원하여 사단을 물리치려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실것을 약속하셨으며  어린양으로  이땅에 오셔서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실 분을 믿는 믿음이 바로 우리가 믿는  참된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인것입니다.  

구약의 성부 신약의 성자  현재의 성령하나님이 아닌  창조때부터 마지막때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합니다.  구약은 모형이고 신약은 현실이고 현재는 적용이라고 구분짓는것은 무의미합니다.  구약을 모형이라고 한것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언제나배워야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도 현실이고 신약도 현실이고 종말도 현실입니다.  이 모든것이 현실이아닌 모형쯤으로 생각해버린다면? 우리의 삶도 현실이 아닌 모형이 되어버리고 말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실입니다.  그들을 모형삼아야하는것은  그들의 실패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외에는 다른 이름으로는 하나님나라에 올수 없다고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은 100%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가상이 아닌 실제이고 현실입니다.  이것을 실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기에  예수님은 지어낸 얘기라고 하는 자들이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부터 지금까지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신약을 위해서 지어낸 구약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서 구약은 무시하고 신약을 중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약은 모형일 뿐이라고?  그런데 구약의 모형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언제나 무시하고 지나가버립니다. 

우리가 과연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백성들입니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다른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통일에 대해서 우리는 각자 여러가지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통일은 바로 이것아닙니까?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올수 있는 길로 주신 분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구별해야하니 얼마나 골치가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천주교도 그리스도를 말하고  많은 이단들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른 말이 없어야합니다.  내생각은 접어야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자들만이 예수님을 바로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알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토론하고  또 공부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쉬운데......너무 쉬운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형제이기 때문에 금방알수 있고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계시 분이십니다.  창조주이십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것으로 예언되신 분이십니다.  어린양으로 오셔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도살장으로 가는 어린양처럼 반항하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실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으며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또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러 이스라엘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자기 백성이 예수님을 거부하니  이방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하여 구원얻게함으로  자기 백성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기를 바랬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가운데서 신음하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주이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율법을 더 소중히 여겼고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저들이 하는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때에 자기 백성들을 환란에서 구원하시며  왕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회개케하시고  온전케 하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구원할 백성 온전케 할 백성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기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이미 구원받은 백성은 더이상 의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한 백성들은 더이상 온전케 하실 분이 필요없으신것입니다.  이미 온전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복음으로 불러 온전케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셨은데? 우리를 또 구원하러 오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분으로 착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닌  자기 백성들  회복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며 구원하기 위해서 오실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실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얻은 백성들이니  예수님이 오실때  그 잔치자리에 우리는 당연히 가게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개성은  각자의 삶을  다르게 살게 하지만   우리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믿음을 주신 그 믿음은  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체된 우리는 한몸으로  서로를 보좌하며  사랑으로 하나되어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된 우리를  끝까지 연결시키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한 성령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의 생명은 한 성령님으로부터 받은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같은 생명을 얻었으니 우리는 한몸인것입니다.  이 한몸을 지키시는것은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교회마다 분열하고 교회마다 경쟁하고 교회마다 싸우는것은 우리가 한 성령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다는것을 망각하거나  아니면  각자 다른 성령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고 말하는것은  내안에  성령님이  다른 사람안에 있는 성령님과 다르다고 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한 서로 한 성령님을 섬기는 자들로  우리는 서로 하나입니다.  

신앙은 하나이지만  생각은 다를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이지만 삶은 다를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이지만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은 다를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것이 틀린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틀린것입니다.   성경에서 계시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십니까? 그럼 우리는 서로를 인정해주며  서로를 보충해 줘야 하는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단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삶은 다를수 있지만 신앙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셨고 다르게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를 세우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호흡하는것도 밥을 먹는것도  걸음을 걷는것도 손이 하는 일도  몸 각자 자기 맡은 일을 하는것은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이지만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몸이 죽게되는 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몸이 죽으면 나도 결국 죽게되는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이익을 위해  내 이웃을 죽이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무시한다면  결국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세우고 하나되어  힘을 모아야지만  하나님의 기쁜 뜻을 행할수 있습니다.  서로 헐뜯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으며  나를 위해서 몸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몸은 세워지지 못하고  죽고 말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것  그것은 어려운일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자들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빛의열매
글쓴이 : 빛의아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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