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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2013. 4. 1. 22:20

◈성도에겐 피해의식이 없다          마6:9~12        11.04.13.설교스크랩,   출처보기



◑피해의식은 불신앙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를 고백하는 사람은, 용서의 사람이 되고,

다시 말해서「피해의식」이 없어야 된다 이거에요.


피해가 될 만한 일을 아예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게 나한테 손해가 끼쳐진다고 하는 것을 인식할 순 있어요.

그러나 마음이 피해를 느끼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습니다.

저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건 인식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손해 본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피해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거예요.


내 돈을 부당하게 떼어먹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인식하지만

그 사람이 내 돈을 떼어먹었다고 그래서

내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은 안 갖는다 이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이 피해의식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이 될까요?


▶피해의식은 불신앙

하여간 중요한 것은, 피해의식이 있으면

내가 지금 피해본다고 하는 마음에 실감이 아주 절절하게 느껴지면,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나라가

그 전지전능하심을 통해서

100수 1,000수를 내다보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일은

멈춰지고 방해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시인/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용서가 안 되면, 피해의식이 쌓여지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되니까,

‘땅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되죠)


▶예수님은 피해의식을 뛰어넘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팝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알고 계세요. 당신 자신을 팔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그 현장으로 이끌어 갈 자가 가룟 유다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근데 그를 용납하고 제자의 무리 안에 그대로 두십니다.


이 일을 통해서 십자가 복음 사건이 진행되어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 가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냥 당신 자신을 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손해라고 하는 피해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진행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속 진행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복음사건이 이루어져 나갔습니다.



도대체 피해의식이라는 게 뭘까요, 여러분?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피해망상」입니다.

신앙인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주님의 죽음에 연합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망상(delusion)일 뿐입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왜 피해의식이 망상입니까?


자,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의 삶 속에,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통치를 해가십니다. 주님의 삶을 통치하시듯이 통치해나가십니다.


이때에 그 분이 나의 아버지로서 내 삶을 이끌어 가는데

그 하나님의 이끄심에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나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건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로서

더군다나 그 분은 내가 손해 볼 일,

내 인생이 내 생애가 이 세상에서 죽고 나면 지옥으로 들어갈까 봐

내 영혼의 손해를 막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실 만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할 때

혹시 이 땅에 있는 부모님 같으면

능력과 지혜가 부족해서 내게 본의 아니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겠지만,

전지전능한 아버지께서 그 사랑을 가지고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실 때,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그 사랑과 그 능력과 그 지혜를 거스르고

내게 손해가 주어질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손해를 느끼고 피해를 느끼고 어떤 사람이

나한테 잘못함으로써, 나의 장래가 그르쳐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망상이거나 완전 불신앙입니다. 그거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겠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어느 피조물(내 대적)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서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지혜와 권세보다

이 세상 피조물적인 권세나 능력을 더 강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의식>은 불신앙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죄’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께서 나를 해고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런데 외아들까지 십자가에 못 박으시면서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가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데...

사장님이 나를 해고할 때에,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고, 보시고,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해고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셔서 해고했는데

그게 어떻게 나한테 피해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이 나를 해고하는데

나한테 손해가 될 수 있고 피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거는

사장님의 능력이, 사장님의 인사권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우위에 있고

더 힘이 세고 더 권세가 있다고 믿는 거예요. 

그러므로 피해의식은 망상일 뿐만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시어머니가 나한테 이유 없이 박해를 합니까?

그래서 내 인생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불신앙이에요.

시어머니가 누군데,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겁니까?


▶혹시 남편이 직장을 잃었습니까?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이 피조의 세계 안에서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남편을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 가정을 사랑하고 계시는데


그 직장이 일시적으로 없어진 것이 우리 가정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손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처럼 불신앙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직장이 당장 없으면, 아버지 품에서 쉬면 돼요. 쉬게 해주실 수 있어요.


그 직장 그만 두게 된 것도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고 있는 거니까.

아버지가 아시고 일이 일어난 거니까.. 그 일이 나한테 피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사업 파트너가 돈을 떼먹고 도망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 파트너가 돈을 떼먹기로 결정할 때부터

도망가는 현장까지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근데 놔두신 거예요.


그렇다면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가고 계시는 중이고

천국이 임하여 이루어져 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 사람 원망할 거 하나도 없어요.


단지 하나님이 나를 더 좋게 인도해 나가시는데.. 그 사람이 악역을 담당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악역을 담당하는 파트너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저렇게 남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데.. 아버지, 저야 피해볼 거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신데 내가 어떻게 피해를 봅니까?


저 사람이 돈 떼어 먹기로 결정할 때부터 도망갈 때까지

저 사람의 생명도 붙들고 계시고

그 파트너의 생각도 아시고 도망가도록 길도 열어주셨는데 (허락하셨는데)

내가 손해 볼 거 없지요.


그렇게 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라 그러면

그 일 때문에 손해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돈을 떼어 먹는 저 심성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여러분, 그런데 막상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 비방 한마디 해도 발끈하게 돼요.

우리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아요.



◑십자가에서 내가 죽어야.. 피해의식이 없어집니다.


어떻게 용서적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다른 길이 없어요.

여러분. 아무리 용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용서의 중요성을 문학적인 감동적인 어떤 표현을 통해서 설득을 시키고

“맞아! 용서해야 돼”라고 백번 천번 다짐해도 안 돼요.


내 돈 10만원 떼먹는 사람 있으면.. 당장 화가 납니다.

내가 기분 좋아서 10만원 줄 수도 있지만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10만원 떼어먹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요.

이런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우리가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붙잡을 수밖에 없어요.

내게 손해 보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주어졌을 때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이 세상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내 몸으로 이루어진 삶에 대해서 아예 죽는 수밖에 없어요.


“너는 죽었는데 죽은 자가 무슨 피해를 느낀다는 말이냐?”

십자가 붙잡고 나를 타이를 수밖에 없어요.


“이천년 전에 주님과 함께 죽었잖아. 그런데 너한테 손해를 끼칠 수가 있겠어?

그 누가 손해를 끼치겠어? 넌 죽은 자야. 네가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게 말이 안 돼!

넌(나는) 죽은 사람이야!” 타이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붙잡고 피해의식이 죽어야 돼요.

그때 피해망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피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불신앙이 제거돼야 됩니다.

십자가 하나 붙잡으라는 얘기에요.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피해의식을 다 버리고 기꺼이 손해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께서 통치해나가실 때에

예기치 못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의 행위를 통하여.. 서서히 이루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요셉이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이거는요 평생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와 상황이 주어지면.. 원수들을 다 멸절시켜도 돼요.


근데 요셉이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당신들은 나를 팔았지마는 하나님은 나를 보낸 겁니다.”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게 참 절묘한 반전이에요. 기가 막힌 반전이에요.


분명히 팔려 갔는데,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가운데 형들이 나를 팔았다면

이건 팔린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형들은 시기와 질투로 어머어마한 손해를 요셉에게 끼쳤지마는

하나님은 그 손해로 보이는 일을 이루지게 함을 통하여 애굽으로 보내시고

애굽에서 총리의 자리에 앉히시며

그 근동지방 전체의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해내시는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아! 감동 그 자체에요..


총리도 그냥 됐어요?

보디발의 장군 집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 했습니까?

근데 보디발의 아내가 못돼 먹은 마음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가

자기가 수치를 당하게 되니까, 모욕감을 느끼고선 요셉을 중상모략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옥에 들어간 거예요.

근데 그 모든 손해, 손해, 손해만 봤는데... 결국 총리가 되는 거예요.


우린 총리가 되기 위해서 내게 이득이 되는 일만 찾아요.

내게 이득이 되는 사람만 만나고, 내게 이득이 되는 일만 하고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은 하나도 안 해요.


손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잘라 버리고, 제쳐버립니다.

그런데 요셉은 손해만 봤는데 총리자리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런 식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나한테 피해를 많이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그 피해를 잘 이겨내면 그래서 그 사람들을 잘 용서하면

용서하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 나라가 더 빵빵하게 임한다.. 이겁니다.


왜요? 내가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느끼는 피해의식을 다 죽여 버릴 때

하나님 나라가 더 많이 임하시니까요. 더 큰 역사가 일어나니까요...



▶남을 용서해 주다가, 자기가 회개하고 용서를 체험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안 임하고, 주님이 나를 용서도 안 해주세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종종 진정한 용서가 아닐 때가 많아요. 그냥 체념해버려요.

돈 떼이고 체념해버리는 거예요.

신경 쓰기가 싫으니까.. 그냥 체념해 버리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지요.


용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아야만 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죽어야 돼요.


십자가를 붙잡고 용서를 하려고 할 때에

내가 십자가 붙잡은 그 자체가..

덤으로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는 계기가 된다... 이겁니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려고 십자가를 붙잡았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죽지 않으면

용서가 안 되고,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이 살아서 꿈틀거리니까요)


그래서 내가 십자가를 붙잡고,

원수를 용서하며 기도하다 보니까..

(덤으로) 내 죄까지 회개하게 되고, 내 죄까지 용서해주시더라... 이거예요.

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하더라 이겁니다.


기가 막힌 기도 아닙니까? 기가 막힌 기도예요.


▶그러므로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자기를 죽이는 기도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죽이는 기도예요.

모든 인류가 그렇게 원하던 행복의 길이 이 안에 있어요.

이 주기도문 안에...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주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계속 나를 죽여가면서, 주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원수에 대해 가졌던 피해의식을 떨쳐버릴 뿐만 아니라,

내가 주님께 용서를 받고,

(요셉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면서,

내가 주님께 쓰임 받는 사명자가 된다는 거지요...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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