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향

釜岩 2015. 2. 13. 17:50
이난영ㆍ강남향 - 유선형 아리랑 1936 (이난영 아리랑 情報有)|♬─……유성기 복각음반
시나브로 | 조회 101 |추천 0 |2012.08.25. 23:01 http://cafe.daum.net/firebird5108/fbCw/905 

 

 

이난영ㆍ강남향 - 유선형 아리랑 1936

 

유선형 아리랑 / 이난영&강남향

1.

아리랑 아리랑 아아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버리고 가시는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리

아리랑 아리랑 아나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청한 하늘에는 잔별도많고, 요내 가슴에 상심도 많다

2.

아리랑 아리랑 알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공연이 ᄆᆞ음이 산란하여, 발걸음 따라서 산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명사 십리의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설워를 마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서산에 지는해는 지고싶어 지며,

날버리고 가는님은 가고싶어 가랴

 

 

 

 

글 ‘이난영의 아리랑’ (월간 ‘춤’ 2010년 7월호, ‘국악살롱’ / 윤중강)

한국전쟁 60주년이다. 전쟁과 연관된 인물이 많지만, 이난영(1916~1965)과 주변인물이 줄곧 머리에 맴돈다. 이난영하면 ‘목포의 눈물’(1935)로 대표되는 ‘트로트가수’로 알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난영은 이미 그 시절에 여러 장르를 두루 넘나들었다.

 

1936년 7월, 이난영은 오까랑꼬(岡蘭子)라는 예명으로 일본가요계에 진출한다. 데이고쿠레코드(帝國畜音器會社)에서 <아리랑(アリランの唄)>을 취입했다. 이에 관해 친일 운운은 당찮다. 이난영이 이 노래를 불렀기에, 일본 엔카(戀歌)가수가 아리랑곡조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아리랑의 가사와 선율에 관련해서, 유성기음반에서 이난영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이난영은 다른 가수와 함께 <신아리랑>과 <도라지타령>(고복수, 강남향, 이난영, 1934)을 불렀다. 이후 <또 도라지>(1936)를 단독으로 노래했다.

역시 그녀가 혼자서 부른 <신(新)강남> (고마부 작사, 오락영 작곡, 1934)은 <그리운 강남>(김석송 작사, 안기영 작곡, 1934)과 대조된다. 후자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를 노래하지만, 이난영은 ‘머나먼 강남을 갈 생각을 말고, 이 땅에 강남을 꿈 이여보세. 에헤나 디여라 아라리요, 지화자 강남은 별 곳이런가’라고 현실인식 속에서 이상을 노래한다. 신강남은 곧 조선땅이다.

 

<유선형 아리랑>(이난영, 강남향, 1936)에서는 자신의 시김새(장식음)를 살려서 아리랑을 소화해낸다. 간주의 죽관(竹管, 대금)반주와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아리랑 관련 노래의 백미로 꼽고 싶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이란 미명 아래 조선민중이 상심과 비탄에 빠졌을 때, 이난영은 <열일곱 낭낭>(김다인 작사, 이봉룡 작곡, 1941)을 부른다. ‘아라리 아라리 음~ 무슨 아라리’라는 후렴 속에서, 아리랑은 넋두리아라리(1절)요 몸부림아리리(2절)라 했다. 해방 후 그녀는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데, 첫사랑 아라리(2절), 꿈꾸는 아라리(3절)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이난영의 가요 중에서 국악적이고 민요적인 정서를 담긴 노래도 적잖다. 아니, 사실 그 시대에서 민요와 가요(트로트)를 이분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둘이 습합(襲合)되면서, 그 시대의 노래를 만들어냈다. <봄맞이>(윤석중 작사, 문호월 작곡), <사랑의 고개>(김능인 작사, 김교성, 1934)에선 이난영의 풋풋함이 끌린다.

 

남편이 된 김해송(1911~1950)이 함께 부른 <올팡갈팡>(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 1937)과 <연애함대>(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1937)에선 이난영 특유의 애조(哀調)가 달아났다. 박향림(1921~1946)과는 또 다른 애교(愛嬌)와 적당한 ‘강짜’가 매력적이다. <호이타령>(이난영, 고복수, 1935)을 들으면, 아직 내가 들어본 바 없는 <녹스른 거문고>(1934)는 어떤 노래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이난영은 일제강점기 그 시대의 여성을 노래했다. 날마다 그 시간에 오는 남정네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담은 <담배집 처녀>(1939)와, 간주에 피리가 등장을 하는 <돈반 정반 (1939)은 그 시대의 기생을 대변해주는 노래다. 요즘 대한민국에선 사대강사업으로 시끄럽지만, 나는 이난영의 <오대강타령>(김능인 작사, 문호월 작곡, 1934)을 들으면서 그 시절의 오대강, 곧 압록강(북), 두만강(동), 대동강(서), 노들강(한강, 중앙), 낙동강(남)에 빠져든다.

이난영의 삶을 영화로 각색한 <임은 가시고 노래만 남어(남아)>(양명식 감독, 최은희 주연, 1964)에서 담배를 물고 노래를 하는 이난영을 상상도 해본다. 그 시절 블루스의 명곡인 <다방의 푸른 꿈>(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1939)이 자생된 것이 진정 위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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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이 남긴 마지막 노래(영상)는 무엇일까? 육이오때 남편을 잃은 이난영은 딸들을 열심히 가리켜서 미국으로 진출(1959)시켰다. 걸그룹의 원조라 할 김시스터즈(김숙자, 김애자, 이민자). 수차례 에드 설리반쇼에 출연했다. 성공한 김시스터즈는 어머니를 초청(1963)했다.

 

모녀가 함께 이 쇼에 출연한다. 어머니와 함께 <Michael, Row the Boat Ashore>를 노래했고, 이게 이난영의 마지막 모습이다. 딸들의 하모니를 배경삼아 이난영은 팝송에 이런 우리말 가사로 노래한다. “아리랑 아리랑 고개는 / 우리 님이 넘던 고개요 / 그 고향 산천고개는 / 우리들이 가고픈 고개요.”

 

참, 이상타. 조선 땅에 살다간 최고 소리꾼의 마지막 노래에 ‘아리랑’이 있다. 김소희(1917~1999)는 <봉화아리랑>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박동진(1916~2003)은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젊은 청년(MR-J)이 자신에 노래에 아리랑을 담고자 했을 때 흔쾌히 응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