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 blog ver.1/보컬

    싹이 2009. 5. 21. 12:13

     

     

     

     

     1.가스펠이란 


     가스펠 음악이란 복음 적인 내용 담고 있는 노래다. 전통적인 찬송가와는 달리

    주관적인 내용이 많고, 사람들에게 권고하여 설득하는 수평적인 내용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전통 찬송에 비해 보통 경쾌한 리듬과 단순한 화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가스펠 음악이란 형식적으로는 전통 찬송과 구별이 되지만 내용상으로는

    일반 대중음악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가스펠음악 중에서도 가스펠은 그 형식이

    흑인음악인 R&B, 소울, 전통적 흑인의 가요와 흡사하다.

     

     

     

    이 가스펠 음악은 ‘컨템퍼러리 크리스챤 뮤직’과 ‘블랙 가스펠’로 나누어진다.   

     

     
    2. 가스펠의 기원

     

     

     

    가스펠이란 종교적인 민속 음악 또는 대중 음악의 형태에서 파생됐다.

    그 기원은 남북전쟁 후 이며, 이러한 주장은 미국 시골의 남부 지역에서의

    원리주의자들의 종교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주장하면서 대두되었다.

     

     가스펠은 아프로-아메리칸과 백인 솔로 가수, 그룹과 종교 집회에서

    모두 불려졌다. 하지만, 가장 짙게 표현된 것은 흑인들의 교회와 흑인 공동체에서 였다.

    가스펠은 영가와 크게 교체되었으나 상당 부분은 영가에서 가져왔다.

    따라서 가스펠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영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가는 미국에 남아 있는 민요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흑인영가(negro spirituals)라고도 한다. 영가는 드보르작에서 버질톰슨에 이르는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와 콘서트홀에도 등장하였고, 영어권 내에서는

    학교와 성가대에 의해 불려져 왔다. 영가는 이처럼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했음에도

    그 기원이 확실치 않다. 사도바울의 골로새서에서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s)가

    존재하는데 이를 영가(spirituals)의 기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흑인영가에 관해서는 초기의 논평가들을 통해 아프리카적인 요소에 관한 추측이 많다.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영가를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가를 흑인영가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있다. 알렌은 흑인영가에 관한 아프리카적인 요소들이 점차 유럽 음악의

    정신과 양식을 닮아 갔으나 여전히 아프리카 토착의 색조를 명백히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다수의 필사본들을 연구했던 월레이셰크는 그의 저서 「원시음악(Primitive Music, 1893)」

    에서 아프리카적인 요소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가본적도 없고 흑인들이

    부르는 영가를 직접 들어본 적도 없었다. 500여 영가를 분석한 후 크레비엘은 특징과 기원면에서

    본질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리히 폰 호론 보스텔은 이 음악을 아프리카와 미국 두 나라 사이에서 모두 들어본 최초의 학자였다.

    1926년 그는 필사본으로 된 영가와 미국 흑인이 직접 부른 곡들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알아냈다.

    요컨대 “미국 흑인의 성악곡(Negro songs)은 스타일과 패턴에 있어서는 유럽적이나,

    미국의 풍속과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한 그것은 미국의 민요이며 흑인들에 의해 불려질 때 아프리카적인 것이다.”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흑인영가의 기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는데,

    로멜은 크레비엘이 말한 것처럼 영가는 흑인 노예에게 있어서 하나의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1972)

    그러나 뉴먼 화이트, 가이존슨, 조지풀런 잭슨 등은 흑인과 백인의 영가에 대한 일반적인

    근거를 명사들의 야영 집회와 남부 시골의 백인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로 예증했다.

     잭슨은 백인으로부터의 기원을 옹호하는데 있어서, 많은 흑인영가가 이전에 출판된 백인의 노래를 변형한 것이며,

    이와 같은 근거는 음표의 형태로 표기한 전통에서 드러난다고 예시했다.


     

    확실한 것은 영가가 백인과 흑인의 상당한 정도의 상호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흑인들은 노예의 신분에서 노동을 할 때 슬프고 우울한 노래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에 낙천적인 노래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었다.

    여기에다 흑인 특유의 창법이 가세하여 독특한 특징들이 사운드를 풍부하게 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들이 해방되자 해방된 노예들은 이 음악을 노예제도의 흔적이라고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음악을 슬픔과 갈등의 자연스런 표출로 배웠던 사람들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그로부터 35년후에 남부의 곳곳에서 학생들에 의해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남북전쟁 이전의 영가 창법을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다.

    1870년대부터 극단과 연출가들은 영가를 부르는 노예를 등장시켜 대농장을 무대화했다.

     

     

     

    이것은 영가의 대중화에는 도움을 주었으나 그 기원과 형태를 상투적인 것으로 고정시켜 버렸다.

    민속음악이였던 영가는 무대에서, 성당에서 심지어는 교향악에서도 연주 목록의 일부가 되었다.

    이 장르를 세계의 무대에서 대중화시킨 아티스트나 작곡가는 대부분 흑인이었다.

    예컨대 돌랜드 헤이즈(1887-1976), 폴로비슨(1898-1976), 윌리엄 그랜트 스틸(1895-1978),

    제임스 웰런 존슨(1871-1938)등이 바로 그들이다. 영가는 금세기를 통해서 대중성을 얻었으나

    흑인 교회에서는 이미 그 매력을 상실해 갔다. 19세기말에는 가스펠이 영가를 대신해 가기 시작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이미 전통적인 영가 창법을 배제한 비교적 세련된 편곡의 가스펠이 레코딩되었다.

    비록 민속 음악으로서의 영가가 노예제도와의 연관성 때문에 흑인들 사이에 대중성을 잃었지만

    가스펠이 옛 전통을 대신하게 되어 흑인 사회에서 여전히 애창되고 있으며,

    콘서트 형태의 영가 역시 유명한 가스펠 가수나 그룹의 레코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IxR4AweLeXE 

    제목: Ghetto Gospel>

     

    현대의 Ghetto Gosp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