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맑은아찌 2015. 8. 16. 11:18

어제 저는 일원동 삼성병원 영안실에 있었습니다. 정말 갑자기....친한 친구 한 사람을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김진형 남영비비안 대표이사가 바로 그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내의/언더웨어 업계에서는 신화 그 자체입니다. 저와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1964년에 처음 만났으니 만 51년을 알고 지내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108명 뿐인 이 춘천교대부속국민학교 동창들을 끔찍히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1970년 2월에 받은 이 초등학교 졸업장이 그의 유일한 "학교 졸업장"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와의 추억 이야기를 하기 앞서  언론을 통해 그의 공적인 삶을 알려 드립니다.



우선 그는 공식적으로 1955년 생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957년 생입니다. 사회에 일찍 투신하여 빠르게 승진하다 보니 나이를 올려붙이게 된 것이 그리 알려졌습니다. 그 추억도 아래에 함께 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그의 죽음을 8월 14일 오후 5시 경 친구의 문자로 통보받았습니다.


"김진형군 금일 8/14 오후 별세 자세한 장례일정과 빈소는 추후 재공지하겠음 삼가 영면안식을 빕니다"


보고 또 보았습니다. 1년에 몇 차례 우리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의 모임이 있고 그러면 바쁜 가운데에도 늦게라도 꼭 참석하고 특히 여자 동창들에게는 비비안의 제품을 선물로 꼭 준비해 오던 친구..그는 작년에 장모님 상을 당한 바 있기에 설마 본인이라고는 믿지 못하겠고 살아 계신 어른이 누가 있나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영 황망해만 하고 그러나 곧 본인의 상임을 알게 됩니다.


"폐암 말기 + 간으로 전이. 지난 주 순천향병원  진단 금주 월요일 세브란스 옮겨 치료 초기 금일 사망. 진단시 이미 병세 악화 회복 어려운 상태였다 함. 아직 빈소 정리와 회사측 준비 등으로 어수선함"


한 시간 뒤 우리 동창 모임 총무로부터 받은 전언입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빠르게 그 친구는 저와 친구들 곁을 떠났습니다.


 김진형 군과의 추억


 

이 날 빈소에 온 수많은 사람들 모두 그와 매우 특별한 인연과 추억이 있을 겁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어릴 때의 추억들이 더 많지요. 그리고 그것은 언론 등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내면과 살아온 궤적일 겁니다.


김진형 군은 작달막한 키지만 단단한 체구였고 싸움을 잘 했습니다. 속칭 '학교 짱"이라 할 수도 있었겠는데 뭐 초등학교 시절이니 요즘 말하는 그런 청소년들의 일진 같은 건 아니었고 자기보다 체구가 큰 아이들과 맞붙어도 근성이 있어 지지 않고 결국에는 항복을 받아 내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일단 겨루기 한 판 하고는 바로 친구가 되어 어울리던 "귀여운 악동" 급이었지요.  어릴 때 부터 그런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2000년에 제가 있는 대학으로 불러 그의 삶에 대한 강연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력 중심 사회에서 학력 없이 성공한 표본으로써 수업 시간에 제가 가끔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학생들이 "그 거짓말 정말이예요?" 했기에 정말 기회를 만들었었죠. 대학에서 강연하는 건 처음이라고 매우 수줍어 하기도 했었는데요 이후 숙명여대 멘토링 사업의 멘토가 되면서 많은 대학 강연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때 네 제자들에게 한 첫 강연이 제일 떨렸어. 그 경험이 있어선지 나중엔 대학생들 앞에서도 말 잘 하게 되더라고..' 했던 친구입니다. 


그의 집은 제 기억으로는 어릴 적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헌데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969년 경에 뭔가 일이 생겼고 그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은 채 춘천을 떠나 원주로 갑니다.


그러다가 1970년  전국체전 강원도 예선 때 춘천에 와서 제게 연락합니다. 그는 원주 중학교 펜싱 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 가세가 기울어 원주로 갔지만 13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나 시기를 놓친 상태였지요 헌데 운동부를 하면 학교를 등록금 없이 다닐 수 있다 하여 거기에 자원하게 된 것이죠. 워낙 운동신경은 뛰어났으므로 어렵지 않게 펜싱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펜싱으로 대성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학교를 다니는 수단으로 펜싱을 했던 것인데 당시의 운동부는 학업을 제끼고 있었고 또 내부 폭력(선배가 후배에게, 코치가 선수에게)이 공공연하던 때였습니다.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어느 날 대들었고 결국 퇴학을 당합니다.


가세는 이후 약간 나아졌다 합니다. 1973년 그는 서울로 와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죠. 저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 해 5월 경의 어느 날을 그는 나중에 저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 토요일이었어. 광화문의 학원에 갔다가 독서실에 가는데 육교 건너편 서울 고등학교 교문 앞에 네가 있는 거야. 너무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어. 그 순간은 "검정고시 준비생" 인 내 처지도 망각하고...친구가 너무 그리웠던 때니까. 헌데 말이다 넌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꽤 오래 손을 흔드는데도. 그러더니만 누군가를 만나서는 사라지더군. 그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자식이 내가 이런 처지고 자기는 명문 고등학교 다니니까 이젠 날 알아보지도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도 대학은 명문대 갈 거다....


사실 저는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그 날은 서울고등학교 다니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던지라 길 건너편에 시선을 두지도 않았건만 그는 그렇게 제대로 오해를 해 버렸고요 제게 복수하기 위해 결국 검정고시는 가볍게 합격합니다.


그러나 그 1974년부터는 고교 무시험 진학제도여서 그는 인창고등학교로 배정을 받게 됩니다. 동년배 보다는 한 학년 아래지요. 그 인창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친구들의 리더였고 결국 2학년 때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헌데 그만 취임사에서 "인창고 재단의 비리를 찾아내 투명한 학교 경영이 되도록 하겠다"는 충격 발언을 하고 맙니다. 나중에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어쩌면 70년대에는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학내 비리 같은 것이었는데 의협심에 불타 있는 이 신임 회장은 흥분에 겨워 정제되지 앟고 계획되지도 않은 발언을 조회에서 공개적으로 했다는 거고요 결국 대노한 학교측에 의해 제적됩니다.


그는 이후 실의에 빠져 방황했었다고 합니다. 대학을 가려면 정식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고 물론 검정고시를 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기에 맞은 "제적"은 그를 실의에 빠뜨리기 충분했겠죠. 헌데 그러다가 저도 이야기로만 들은 '교회 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 누나는 당시 연세대 신학과 학생이었는데 김 진형 군에게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주게 됩니다. 해서 그의 목표는 연대 신학과 합격이 되고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1977년 드디어 바라던 대로 연대 신학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저와 다른 친구들을 다시 자랑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물론 친구들은 그의 여러 변신에 놀람을 멈추지 못합니다. 펜싱 선수였다가 신학도가 되어 나타난 이 친구를.....


그의 대학 생활은 그러나 짧았습니다. 원래 신앙 때문에 신학과에 갔다기 보다는 삶에 희망을 준 누나의 뒤를 따라 온 것이다 보니 신학 공부 자체가 그에게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했다 합니다. 그래서 한 학기 후 휴학을 하고는 이런 저런 막일을 하다가 "남영나일론 영업사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됩니다.


문제는 그의 학력입니다. 연세대 신학과 1학년 중퇴..이게 공식 최종 학력이겠는데 그 당시 모집 자격이 "대졸 및 졸업 예정자" 였나 봅니다. 그래서 그는 무모하게 "졸업 예정자"로 서류를 꾸밉니다. 그래서 1955년 생이 되는 거죠.


그의 카리스마, 그리고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임기 응변은 면접 때 임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합격했습니다. 헌데 본사의 전화 한 통화가 그를 고민스럽게 했다 합니다.


- 김진형 씨 입사 준비 서류에 성적 증명서와 대학 졸업 예정 증명서가 빠져 있어요.보완해서  제출하셔야 정식 직원이 됩니다.


당연한 이 전화에 그는 다시 좌절하고 며칠을 뒹굴며 고민하다가 남영 나일론을 찾아 갑니다. 면접 때 특히 자신을 잘 보아주고 "합격하면 한 번 찾아 오게" 하며 명함을 주었던 한 임원을 말이죠. 그 임원의 방에 들어가니 기억하더랍니다. "어 그 용감한 신입사원이군. 그래 무슨 일로 왔나? 합격했다 들었는데.."


그는 그 임원 앞에 무릎꿇고 사실대로 고했다 합니다. 그리고는


- 정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뽑아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러자 이 임원이 말하더랍니다.


어차피 그 자리는 대졸자 사원 자리니 자네가 들어갈 수는 없네. 하지만 나도 자넬 놓치고 싶지 않으니 이렇게 하세. 본사에는 자리 마련이 어렵지만 공장에는 가능할 걸세 일은 좀 고되겠지만 견뎌 주게....  


그래서 그는 1978년 남영나일론 공장(영등포던가 그랬는데요 기억이 좀 가물거립니다)의 영업 보조사원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업무는 사람을 만나 마케팅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 사원이다 보니 주로 원단 나르고 공장의 잡무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합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던 그 해 말 그에게 거짓말같은 기회가 옵니다.


남영나일론은 그 해 (1978년) 영업 실적을 각 공장에도 소개하며 영업 부진 지역의 영업사원 지원을 받기로 했답니다., 공교롭게도 실적 꼴찌 지역은 그의 고향인 강원도였지요, 그는 앞뒤 안 가리고 손을 번쩍 들었답니다. 


-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서 1년 뒤 실적을 두 배로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누가 가도 잘 안 되는 지역이라는 평이다 보니 그는 정식 영업사원이 되어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런데다가 남영 나일론이 파는 주 상품은 여성 속옷 - 브라자, 팬티, 스타킹 - 입니다. 20대 초반의 남자가 팔기엔 정말 어려운 품목이지요. 그는 "참 무모하게도 저질렀다"는 생각을 하며 춘천의 재래시장인 중앙 시장을 걷고 있었답니다. 여자 속옷을 누구에게 어찌 파나 고민하면서..그 때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습니다. "진형이 아니니?"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동창생은 "내가 해결해 줄게. 제품 줘 봐. 그리고 나 따라와" 합니다. 그 동창생은 그 재래시장의 총무로 일하고 있었기에 시장 점포 사람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를 데리고 다니며 소개하고 진형 군의 표현에 따르면 '강매하다시피' 물건을 안겼다 합니다.


어쨌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영업 실적은 예상 외로 크게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1년 후 본사로 오게 됩니다. 그에게 나중에 '정말 200% 한 거야?' 물었더니 "에이 200%는 아닌데...그 해 말 지역별 영업 신장률은 강원도가 1등했어 워낙 그 전에 형편 없기도 했고.."합니다.


그 뒤는 언론에 알려진 바 대로 승승장구합니다. 청량리 신세계 점포 대표, 남영 명동점 관리 과장, 그리고 본사 부장, 이사, 2000년 계열사 사장, 2002년 드디어 영업맨 사상 처음으로 남영나일론 대표이사 취임....


2002년 말에 용산 사장실에 찾아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 내가 사장 되고 제일 먼저 사인한 게 뭔지 아나? 공장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바꾼 거야. 눈에 안 보인다고 그런 데 신경 안 쓰면서 직원들을 닥달만 하면 능률이 오를 수 없어. 공장 직원들이 그랬대. 역시 공장에서부터 일해 본 사장이라 우리 아품을 안다고.....


그가 CEO가 된 후 한 때 인사부장이 역시 고향 초등학교 후배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여러  번 만났는데 그 후배 왈...


- 제가요 다른 회사 있다가 여기 스카웃 되어 온 건데 김진형 선배 이야기야 숱하게 이미 들었죠. 하지만 그래도 인사부장이 되어 서류를 뒤져 보니 이건 뭐...어느 회사나 나름 승진하는 데 걸리는 평균 연수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과장에서 차장까지 5년 차장에서 부장까지 3년 하는 식으로...김진형 사장님은 이걸 꼭 절반만 채우고 승진하셨어요. 모든 직급에서 "최저 기간 승진"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설 맞아요....


 아 그 중간 알려지지 않은 비사 한 토막을 더 추억합니다.


저는 1984년에 결혼했고 김 진형 군은 가끔 제 신혼 집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헌데 어느 날 고민이 있다 합니다.


남영 회장님의 비서로 있던 사람이 아마도 근무 연수가 차서 타 부서로 가던가 해야 했던 모양인데 회장님이 "자네 시집은 안 가? 우리 회사에 맘에 드는 친구 없던가? 있으면 내가 다리 놓아 줄까?" 했답니다. 그러자 그 여비서는 "김진형 과장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소개시켜 주세요" 했다 합니다. 갑자기 회장님이 불러 들어가 보니 그 이야기 하며 둘이 사귀어 봐 했다고 이를 어찌하냐고요..... 


그게 아마 제 기억으로는 1985년의 일인가 본데 어쨌든 그 비서를 만나 아직 자신은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식구들도 챙겨야 하니 결혼할 때가 아니다 라고 잘 수습했다 합니다.



어제 모인 친구들도 의아했던 것이 술/담배를 즐기던 친구였으므로 폐암이 발병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찌 그렇게 늦게 발견되었으며 또 그리 빨리 진행되었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매 해 하는 건강검진을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고 비록 본인이 소홀히 하더라도 남영비비안 같은 큰 기업이 13년 째 CEO 하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그리도 몰랐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조짐은 본인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의사 친구의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주 본인이 느낌이 좋지 않아 순천향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보다 큰 병원의 검사가 필요하다 해서 옮긴 것이 월요일이고 그만 5일만에 가 버렸으니...


짧다면 짧은 58년을 다른 사람의 100년에 가깝게 바쁘고 의미 있게 살다 간 친구.... 

 

이제 편안함을 즐기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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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이렇게 멋진분의 일화를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잘 모르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분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네요. 올바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기업을 이끌 수 있음을 더 보여주실 수 있었을 텐데..더 안타깝습니다. 아프고 보면, 더없이 소중한 것이 건강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더 느끼는 듯합니다. 바쁘시더라도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아찌님! *^^*
휴 50 넘으면 순서가 따로 없어서....
우리 사회에 꼭 오래 계셔야 할 분들이 자꾸 빨리 가시네요.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빕니다.
너무 갑자기..주변이 미처 마음으 준비를 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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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아찌님 좋은 친구분을 잃은 아픔 정말 이해가네요. 얼마나 아프셨겠어요.
그 슬픔 잠시 잊고 50년지기 친구분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으세요. 천국에서 아마도 보고 있을 겁니다.
그 친구분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얘기입나다.. 읽다 보니 고인과 저는 인창고 입학 동기거 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 되시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처음 부터 끝까지 정독했어요..감동이 느껴지는 한편의 자서전이네요. 잘 몰랐던 분이지만 정말 멋있는 분이시고 우직함이 느껴지는데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우직하고 성실하고 그러면서 따뜻했던 친구였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할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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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이별이었으나 친구분들의 마음을 받아가셧을거에요 가시는길 외롭지 않으셧길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읽다보니 또한번 자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세상 참으로 멋지게 살다가셧으니 가시는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을것같습니다
아찌님도 힘내세요
친구들 중 가장 건강한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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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가슴에 힘있는 울림을 주는 58년의 생을 사셨네요. 필자께서 먹먹하게 써 내려간 글의 내용을 통해 '벗' 이라는 말의 진심어린 의미를 알게 됩니다. 감사드리며,
마음의 진심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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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분을 두셔서 가시는 걸음이 그리 무겁진 않았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좋은 분의 향기를 블로그에서 맡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분이셨군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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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폐암 말기라도 발견 후 며칠만에 급사할 수는 없습니다. 병원에서의 조치 중 사고는 아니라 할 지언정 부작용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아까운 인생 스러진 겁니다. 어즈버.
너무 늦게 발견된 거라 해요....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바로 지난 학기에 CEO강의에서 김진형 대표이사님의 강의를 굉장히 인상깊게 들었었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라고 슬펐습니다...대표이사님의 너무나 열정적이셨던 삶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인자하신 표정에서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꼭 또 뵙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이렇게 급작스럽게 하늘로 가시게 되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글을 통해 대표이사님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표이사님께서 좋은 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계시기를...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숙대 멘토링 프로그램을 특히 아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