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교수문학실☎

청파 윤도균 2020. 3. 22. 10:43

184~196] 제2장 주제와 소재의 이론적 접근...1.소재, 제재,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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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주제와 소재의 이론적 접근


  이제 주제와 소재의 뜻을 바르게 정립하기 우해서 진전된 논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뜻을 가진다는 말이 처음이 된다. 그러기에 시작이 절반이란 말이 있다. 시작이 좋으면 일의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글 역시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글은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충실하지 않으면 좋은 글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부터튼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작의 과정, 즉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소재, 제재, 주제


  1) 무엇에 대해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고 글을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무엇에 대해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는 일이다. 무엇에 대해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지 않고 글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어서 이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에 무엇에 대해 쓸지도 결정하지 않고, 자기가 무엇에 대해 쓰는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아주 형편없는 것들만 가르쳐주고 있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아주 많은 사람ㄷ르이 무엇데 대해 글을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지 않은 채 글을 시작 하고 있고  그 결과 자신이 무엇에 대해 쓰는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고 있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일러주면서 매일매일 일기를 써 볼 것을 권하곤 한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내게 하소연을 해왔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며칠 간은 그럭저럭 하루도 빠집없이 이릭를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간은 그럭저록 하루도 빠집엇이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지금껏 쓴 일기를 읽어보니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고 강의 듣고 또 친구 만나고 이런식으로 매일같이 쓴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일들은 쓰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영 일기를 쓰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한두 줄 생각나는 것이 있어 쓰고 나면 그 다음에 쓸 것이 영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았어도 가끔씩 한두 줄씩 머리에 더오를뿐 한 페이지의 절반조차 채워저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힘이 들어 일기 쓰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전 아무래도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그 학생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곧 깨달았다. 그 학생은 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를 모르니 생각이 떠오를 리 없다. 한두 시간 아니라 열시간, 스무 시간을 앉아 있어도 그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며칠 간은 그럭저럭 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그 당시에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일기나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그대로 한번 써보자' 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무엇에 대해 쓸지가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일기를 슬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는 며칠 후 매일같이 일기의 내용이 똑같은 것에 화가 나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은 쓰지 않기로 마음억었다. 이제 그는 비일상적인 특별한 일을 써야 할 무엇으로 결정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갑자기 무슨 특별한 일이 매일같이 일어날리가 없다. 여기서 그는 써야 할 무엇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일기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대충 이런 내용의 충고를 해주었다.

  "일기를 쓰기 전에 너는 그날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볼 것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곳엘 갔으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너는 그중 단 한가지에 해해, 지겨웠던 국어학개론 시간의 강의에 정경에 대해, 또는 때를 놓쳐 혼자서 늦게 핀 뒷동산의 여름장미에 대해, 심지어는 담벼락에 붙어 있던 지저분한 영화 포스터의 구도에 대해서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오래 생각하고 글을 써보도록 해라. 너는 매일같이 만나는 것들이 똑같아서 며칠 쓰고 나니 금방 쓸 것이 없어졌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런 식으로 매일 한 가지씩 쓸 것을 고르다보면 너는 네가 매일같이 만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너는 1년 내내 일기를 써도 그것들을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학생은 참으로 밝은 얼굴을 하고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처럼 내게 말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매일같이 제가 만나는 것들 중에서 단 한 가지씩만 쓸 것을 고랄 거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후 일기를 썼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하루 종일 있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해 쓰는 것보다 그중의 단 한가지에 대해 쓰는 것이 오히려 쓸거리가 더 많다는 사실이엇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한결 글쓰기가 쉬워졌습니다. 매일같이 같은 내용을 쓰는 일은 물론 없어졌고요. 그리고 어떤 한 가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보니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도 많이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사물의 겉모습만 그려내는 데 급급하던 제가 이제는 제법 그 속에 감추어진 의미까지도 생각해보게 되엇습니다. 어떤 때는 이게 정말 내 생각일까 싶을 정도로 대견한 글을 써내기도 합니다. 아직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때보다는 못 채우는 때가 더 많지만 이제는 글쓰기가 즐거워졌습니다. 오늘은 또 무엇에 대해 쓸까 하고 생각해보는 일이 참 즐겁습니다.

  그는 참으로 진심 어린 감사의 표시를 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과분한 감사를 받은 것 같아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 대해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 나는 그에게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 하나를 가르쳐준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무엇에 대해 쓸지를 분명히 결정하는 일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설령 이 사실을 모르는 이라 하더라도 그릉ㄹ 쓸 대는 우선 무엇에 대해 슬지를 결정하고 쓸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학생처럼 훨씬 글쓰기가 쉬어져야 할 텐데 정작을 그리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엇'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국화에 대해 그릉ㄹ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자. 그런 그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만으로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사작한다. 하지만 그는 글을 쉽게 써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신은 그 써야 할 '무엇'을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성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란 무엇일까? 이제부터 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2) '무엇' 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그 '무엇' 을 대략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소재로서의 무엇, 그리고 제재로서의 무엇, 그리고 주제로서의 무엇이 바로 그 세 차원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의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보겠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보내고

낙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 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소재란 바로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구체적인재료, 즉 얘깃거리를 가리킨다. 구체적인 어떤 대상이 소재가 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어떤 행위나 사건이 소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재란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재료의 있는 그대로의 본디 모습, 즉 거기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나 해석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조는 국화에 대해서 썼다, 라고 할 대의 국화가 바로 소재인 것이다.

  소재에는 여러 가지 속성과 측면이 있다. 소재가 지닌 여러 가지의 속성과 측면 중에서 글쓴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중심적인 측면이나 속성, 바로 이것을 가리켜 제재라 한다. 예를 들어 위의 시조에서 작가는 국화가 지닌 여러 가지 속성과 측면 중에서 주로 가을에 피기 시작하는 생태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가 바라보는 국화는 그저 들에 아무렇게  피어 있는 국하가 아니다. 작가가 바라보는 국화는 바로 다른 모든 꽃이 시드는 가을에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고 홀로 꿋꿋이 피어나는 국화인것이다. 이러한 국화에서 작가는 과연 어던 느낌을 받게 되었을까. 아마도 시련에 굴하지 않는 고고함과 강인함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위의 시조에서 제재는 국화의 고고함과 강인함, 바로 그것이다.

  주제란 바로 이 제재에 글쓴이가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여 글 전체의 중심적인 의미나 사상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위의 시조에서 국화의 고고함과 강인함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우리도 이러한 국화를 본받아 지조 있고 절개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충고고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주제이다.

  위의 시조의 주제는 바로 지조 있고 절개 있는 삶의 추구, 그것인 것이다.

  소재가 같다고 해서 모두 같은 글이 나오진 않는다. 하나의 소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재가 나온다. 다시 국화를 두고 얘기해보자. 국화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다. 많은 국화에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속성으로서 둥글넙적한 모습, 노란 색깔, 가을바람이 불 무렵 피기 시작해 순식간에 가장 아름다운 절저의 순간을 맞이하고는 갑자기 시들어버리는 생태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제재가 될 수 있다.

  제재가 달라지면 당연히 주제도 달라진다. 국화의 둥글넓적한 모습에서는 원만한 인격에의 추구가, 노란 색깔에는 뜨거운 정열에의 추구가, 절정의 순간에 갑작스레 시드는 모습에선 삶의 무상함에 대한 자각이 각각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제재가 같다고 해서 또한 항상 같은 주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위의 시조에서 작가는 국화가 가을에 홀로 피는 생태를 지조와 절개를 지닌 인격에의 추구라는 주제로 연결시켰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거기에서 같은 무리와 화합하지 못하는 고독이나 힘든 운명을 자처하는 고지식함을 주제로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소재에서 수많은 제재가, 그리고 그 많은 제재에서 또 더 많은 주제가 나올 수 있다.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였다는 것은 곧 소재와 제재, 그리고 주제, 이 세 가지를 모두 결정하였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결정해놓고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국화라는 소재만 정해놓고는 대뜸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몇 마디 쓰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고민만 계속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는 제재와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따라서 실상 무엇에 대해 쓸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글이 쉽게쓰여지겠는가.

  이처럼 무엇에 대하여 쓸지를 결정하는 일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대상에 대한 끈질긴 사색과 성찰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힘든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결정되었다면 글의 절반은 이미 쓰여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이제 글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무엇'의 세 가지 차원, 즉 소재와 제재, 그리고 주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나는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국화라는 소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 이로부터 이끌어낸 제재에 대해, 그리고 다시 이로부터 이껄어낸 주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순서를 밟았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오해를 하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이를 모엇에 대해 쓸지르 결정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로 소재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 이로부터 제재를 이끌어내고 다시 이로부터 주제를 이끌어내는 과정도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의 한 좋은 방식이 될 수 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 주제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이로부터 제재를, 그리고 다시 이로부터 소재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제 위의 시조를 대상으로 하여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작가는 우선 국화라는 대상에 매혹되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국화에 대해 찬찬히 생가해본 결과 그것의 가을에 홀로 피는 생태에 주목하게 되었고 바로 여기서 지조 있고 절개 있는 삶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소재- 제재- 주제의 과정을 밟아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 일수도 있다. 즉 작가는 우선 지조와 절개의 인간상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상의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결과 시련에 굴하지 않는 고고함과 강인함이 떠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성격을 가장 효과저으로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본 결과 국화라는 자연물에 주목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주제 - 제재 - 소재의 과정을 밟아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단일한 것이 아니다. 두 방식 다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방식 중에서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완전히 글쓰는 이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쓰고자 하는 글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가에 의해 많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주관성이 많이 허용되고 정서적인 경향이 강한 글,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지닌 글에서는 소재 - 제재 - 주제의 순서로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는 일이 많다. 기술방식으로 따지면 주로 묘사나 서사의 글, 그리고 비교적 둗어진 형식을 많이 따지는 글에서는 주제 - 제재 - 소재의 순서를 밟아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 하는 일이 많다. 기술방식으로 따지면 설명과 논증의 글, 그리고 문의 종류로 따지면 논설문과 같은 형식의 글이 역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로 든 글이 상당히 특수한 형식의 글인 시조였기 때문에 아직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글을 예로 들어서 소재와 제재, 그리고 주제의 의미에 대해 한 번만 더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문명(文明)의 발생론(發生論)은 수없이 많은 원시사회(原始社會) 가운데서 어떻게 하여 특정한 몇몇 제1대의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수많은 윈시사회 가운데서 어는 특정한 인간집단만이 '문명'으로 질적 비약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집단만이 자연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挑戰)' 에 대하여 '응전(應戰)'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초대 문명 중 이집트(Egypt) 문명과 수메르Sumer) 문명은 해야(海洋) 이라는 도전, 인도 문명과 마야 문명은 열대성 삼림의 와성한 번무(繁茂)라는 도전, 안데스 문명은 해안지대의 건조한 고원(高原)과 사막(沙漠)이라는 도전, 중국 문명은 소택(沼澤)과 홍수(洪水)라는 도전으 받고 거기 응전하는 데 ㅓㅅㅇ공한 결과로 각각 문명으로 탄생하였다고 한다.

  이집트 문명과 수메를 문명의 예를 들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아프리카 지방의 기후는 본시 열대성이었는데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온대선 한발이 다가오게 되어다. 이 기후의 변화는 거기 살고 있던 많은 윈시사회의 주민들에게는 일대 도전이었다. 그들은 종래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열대성 기후가 남쪽으로 이동해가는 데 따라 삶의 터를 옮기든가 그렇치 않으면 생활양식을 새 기후에 적은시키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두 웅전의 중의 어느것도 하지 앟은 자들을 멸망하였다. 생활양식을 고치지 않고 남쪽으로 이동한 자들은 현재의 중앙 아프리카 열대지방의 원시인의 조상이 되었다. 삶의 터를 옮기지 않고 생활양식만을 바꾼 자들은 아프라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이 되었다. 그런데 삶의 장소와 생활양식을 둘 다 변경시키는 이중(二重)의 응전을 한 자들이 바로 나일 강 유역과 메소포타미아 평야에서 농경문화(農耕文化) 라는 새 문명을 창조하였다.

  여기서 토이비는 문명을 발생케 한 자연환경은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 살기 힘든 환경라고 규정한다. 살기 좋은 환경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할 만큼 충분히 자극적인 도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 문명이 양자가(揚子江) 유역에서 발생하지 않고 황하(黃河) 유역에서 발생한 것은 후자의 자연조건이 전자의  자연조건이 너무 가혹할 경우에는 그 조건에 직면한 인간들에게 지나친 정신적, 육체적 긴장을 강요하여 문명이 잉태하더라도 결국 도태하고 만다. 그러므로 가장 성공적인 응전을 불러일키는 자연환경은 너무 살기 힘든 데도 아니고 너무 살기 어려운 데도 아닌 '중용(中庸)'의 도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연환경의 도전에 대한 응전에 성공한 결과 원시사회에서 문명으로 비약한 사회들이 계속 성장하려면,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응전에 계속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문제의 해결에서 또 새루운 문제가 일어날 때 그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지 않으면 문명은 성장을 계속하지 못한다. 이 성장의 도전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이기도 하고 이웃의 다른 문명이나 야만사회(野蠻社會)의 침략과 같은 인간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일 수도 있으나 가장 중대한 도전은 그 문명 자체가 만들어내는 문제다. 그 문제는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고 도전적일 것일 수도 있으나, 한 문명이 성숙하면 할수록 도전의 성질이 물질적인 데서 도전적, 정신적정인 데로 그 차원이 높아진다. 이 과정을 그는 '승화과정(昇華過程, etherialzation)' 이라고 한다.

  성장하는 문명이 부딪치는 문제는 그것이 어떤 성질의 문제이든 간에 그 문제는 항상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은 항상 창조성(創造性)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 해결이 곧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사회는 계속 창조적으로 새 문제의 해결에 성공해야 한다.

-노명식, <토인비의 문명사관> 중에서


  조금 길고 딱따한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상기해보면 이 글이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재에 대해 알아보자.소재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구체적인 얘깃거리라 하였다. 이 글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영이었던 이집트와 수메르, 그리고 중국의 문명에 대한 여려 가지 이야기를 통해 글의 논리를 풀어가고 있다. 바로 이 이야기 들이 소재이다.

  그렇다면 제재는 무엇일까. 소재의 여러 측면 중에서 글쓴이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측면이 바로 제제라 하였다. 윗글에서 글쓴이는 소재로 삼은 여러 이야기들의 어떤 측면에 주로 관심을 지니고 있을까. 우선 그는 이 소재들을 일단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이 소재들은 모두 문명이라는 측면에서 글쓴이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명이 바로 이 글의 제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문명이란 상당히 넓은 의미에서의 제재일 뿐이다. 글쓴이는 이 소재들을 일단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다시 그 관심을 좀더 좁은 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문명의 발생과 성장의 측면이다. 결국 글쓴이는 이 소재들을 문명의 발생과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글의 보다 분명한 제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제에 대해 알아보자. 주제란 제재에 글쓴이가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여 글 전체의 중심의미나 중심사상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글에서 글쓴이가 문명의 발생과 성장에 대해 말하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일 것이다. 이를 어구식으로 요약해보자. '문명의 발생과 성장의 원동력으로서의 도전과 응전' 정도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글의 주제다.

  이제까지 우리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결정하는 구체적인 방벅과 과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