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대기

무적위연 2008. 2. 2. 11:40

일촉즉발. 원소의 패착

 

중평 6년(189) 8월 25일 밤. 하진이 태후에게 상시들에 대한 처단을 요구하기 위해 장락궁으로 들어갔다가 중상시 장양이 주도하는 환관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맙니다. 이것은 대단히 뜻박의 사태였습니다. 당시 하진은 금군의 수장인 환관 건석을 제거하고 모든 금군을 장악함으로써 사실상 환관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더구나 사례교위에 원소를, 하남윤에 왕윤을 임명함으로써 환관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무력적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켜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진이 환관들을 제거하는것은 그야말로 여반장이라 할만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허무하게 하진이 죽어버릴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한치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당시 실질적인 군사적 기반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던 환관들은 하진을 제거한 즉시, 번릉과 허상을 각기 사례교위, 하남윤으로 삼는 조서의 초안을 만들어서 역습을 꾀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원소가 과감히 숙부 원외와 함께 조서를 위조해 번릉과 허상 들을 불러 참한 다음, 군사들을 이끌고 반격에 나서 환관들을 도륙합니다. 이때 원소의 모습을 보자면,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습과는 참으로 달랐습니다. 과감한 결단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만일 이때의 원소가 머뭇거렸다면 원씨 일족이 몰락함을 물론, 또 한번의  당고지화가 일어났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원소는 몇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첫번째 잘못은, 너무 많은 피를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환관들을 모조리 도륙했는데, 이때 죽은 환관들의 수가 2천여명에 달했으며 수염이 없어 환관으로 오해를 받아 죽은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참극을 피하기 위해 남자의 주요 부분을 옷을 벗어야만 했던 이들도 있었으니, 난리중일 때는 괜찮지만 난리가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고 조정이 안정화된다면 분명 적지 않은 비난 여론이 조성될 것이며 이는 원소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가 저지른 두번째 잘못에 있습니다. 이 두번째 잘못으로 인해 그는 천하를 거머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황제의 신변 확보에 소홀했다는 점입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따르면 25일 밤, 하진이 살해되고 26일까지 극도의 혼란이 계속됩니다. 26일 원소가 환관들을 모조리 도륙하면서 궁내의 소란은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이 과정에서 하진의 배다른 동생인 하묘가 오해를 사 살해됩니다. 25일밤, 소제와 진류왕 등을 인질로 삼아 북궁으로 몸을 숨겼던 장양과 단규등은 27일 포위를 뚫고 필사의 도주를 감행합니다. 그런데 이 때 중 상서 노식과 하남중부연 민공만이 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27일 밤. 노식등은 장양등을 처치합니다. 이 후 28일. 변고가 있음을 알아채고 낙양으로 달려온 동탁은 공경들과 합류한 후 황제가 북쪽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공경들과 함께 황제를 맞이하러 가서 황제를 모시고 궁으로 돌아오던 노식 일행을 겁박하여 황제를 넘겨받습니다.

 

일단 자치통감의 내용대로라면 원소는 충분히 동탁보다 먼저 황제를 맞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겁니다. 동탁이 황제가 북쪽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원소가 듣지 못했을리가 없습니다. 결국 원소는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원소는 그 본인이 금군을 모두 장악하는데 보다 중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환관은 물론이요, 외척인 하진, 하묘 형제마저 모두 주살되었으니 이제 자신이 금군을 장악하기만 하면 대권이 그의 것이 되리란 기대를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설마 동탁이 그처럼 신속히 행동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듯 합니다. 만일 예측했다면 공경들과 함께 황제를 맞이하러 간 것은 동탁의 군대가 아닌 원소가 이끈 금군이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제아무리 동탁이라도 금군에 의해 보호받는 황제를 빼낼 수는 없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원소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대권을 양주의 정예병단을 보유하고 황제까지 끼고 있는 동탁에게 내어주고야 말았습니다.

 

세번째 패착은 그가 동탁의 군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동탁의 군세는 대단치 않았습니다. 동탁은 불과 3천여의 병졸을 이끌었을 뿐인데,  이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밤마다 병사들을 몰래 밖으로 내보내, 다음날 북을 치며 들어와 새로 증원병이 오는 것처럼 속였습니다. 물론 이런 속임수가 통할만큼 당시 낙양의 혼란이 극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동탁을 불러들인 원소는 그의 군세를 파악하고 있었어야만 했습니다. 만일 원소가 동탁의 군세를 파악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규합하여 동탁과 과감히 승부를 갈랐다면 천하의 권력은 동탁이 아닌 원소에게 돌아갔겠지요. 동탁이 막 낙양성내로 들어왔을 때 포신이 동탁에게 말하기를

 

"동탁이란 놈이 야심이 만만치 않아보이는데 실력도 있는 놈이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그놈이 모든 대권을 장악하는걸 막을 수 없을겁니다. 다행히 멀리서 급하게 온지라 피로하고 지쳐있으니 지금 그를 습격해야만 합니다"

 

포신의 말은 실로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원소는 아직 어렸고, 경험이 일천했으며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그가 망설이는 사이 동탁은 근위병을 흡수하고, 정원의 군대마저 통합하였으니 이제는 감히 대항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존심만은 살아있던 원소는 결국 동탁을 피해 도망가고 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원소는 동탁이 들어온 그 즉시 그와 결착을 내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동탁과 협조하는게 더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도망을 치고 말았으니 그의 미숙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가 앞서의 두가지 선택을 택했다면, 한은 멸망하지 않고 꽤 오래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그가 도망쳐 반군의 우두머리가 됨으로써 결국 후한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 시한부 인생은 몇십년 후, 조비에 의해 거두어지고 말이지요.

 

                                                                                                      2008년 02월 02일

                                                                                                     written by 무적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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