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대기

무적위연 2008. 4. 5. 22:13

박한제 교수는 그의 저서인 『영웅 시대의 빛과 그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정치의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면 황제 권력도 독재화해 간다. 측근인 외척과 환관을 중용하게 된 것은 그 표현이다. 황제의 권한은 점점 강대화된 반면, 황제 개인은 문약으로 흘러 병마에 시달리고, 또 요절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황제를 보좌하는 외척과 환관의 권력이 날로 강대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유학으로 무장한 재야인사들은 한 제국 본래의 모습 회복을 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다. 후한 말 사대부층에 의해 주도된 청류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재야 운동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그 운동의 이면에도 엽관獵官 운동이라는 불순한 동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 제국이 안고 있는 모순은 이제 출구가 없는 모순이 되어 버렸다. 청류와 탁류로 나누어져 사생결단의 대결을 벌였던 당고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은 그토론 견고해 보이던 영원한 한 제국의 평화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당고 사건을 통해 중앙지배층사이의 분열을 드러낸 한 제국은 이제 관동의 대규모 반군이 조직됨으로 인해 귀족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반군의 중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원소였습니다. 그가 반발한 것은 동탁이 기존의 황제를 폐하고 헌제를 옹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동탁이 동성제후를 강조하며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함으로 대권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반발한 것입니다. 이는 얼마후 원소가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한 것을 통해서도 그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여 이른바 망명 정부를 수립할 경우, 자연 원소가 만든 이 정부의 수뇌는 원소가 될테니까요. 동탁이 그랬듯, 자신도 황제를 새로 옹립하여 대권을 차지하려 했던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동탁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중톈의 『삼국지강의』에 나오듯이 이러한 망명정부란 기존의 정부를 무너뜨렸을때에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 보면 원소의 행동은 오히려 동탁보다 훨씬 더 난폭한 행동입니다. 반란군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것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아무튼 이때 원소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 상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조조도 있었습니다. 아마 조조가 동탁을 떠난 것은 처음부터 원소로 인한 것이었을겁니다. 조조는 동탁을 떠나 도주하자마자 병력을 모아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동탁은 헌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으므로 이같은 행동은 분명 '반역'으로 몰릴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조조가 이때 당시 모은 군대는 『세어』의 기록에 따르면 고작 5천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급하게 끌어모은 오합지졸에 불과한데 어떻게 감히 그같은 일을 획책할 수 있을까요? 사실 조조는 이 반군의 주역이 아닌 조연. 그것도 단역에 불과했습니다. 주연은 단연 원소였습니다. 조조에게는 사람을 끌어모을만한 명성도 없었고, 그만한 인품도 없었습니다. 능력이 안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조조는 원소를 따라 이 반군에 가담한 것이라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조조는 원소가 환관을 제거하는 계획을 짤 때부터 반군에 가담할 때 까지의 과정에서 줄곧 수동적인 입장에 서 있었지, 결코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조조는 원소가 환관들을 몰살시킬 때도 그와 함께 행동했을겁니다. 동탁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한 것은 원소였습니다. 당시의 대립 구도는 처음부터 동탁 VS 원소라 할만했습니다. 그 근거로 『삼국지』「무제기」의 주에 인용된 『영웅기』의 기록을 들 수 있습니다.

 

『한복의 자는 문절(文節)이며 영천 사람이다. 어사중승이었다가 동탁이 천거하여 기주목이 되었다. 이 때 기주의 백성과 호족들(民人,각주1)이 부유하고 그 수가 많았으며 병량 또한 월등히 풍족하였다. 원소가 발해에 있을 때(각주2), 한복이 그가 병사를 일으킬까 두려워서 여러 부에 종사를 보내어 지키게 하여 동요하지 않게 하였다. 동군태수 교묘가 거짓으로 경사(京師, 황도)의 삼공이 썼다 하여 편지를 여러 주군에 전달하였는데, 동탁의 죄상을 진술하여 이르기릴 "핍박을 당하였으나 스스로 구할 길이 없어 의병이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나라를 환란에서 해방시켜 주시오"라고 하였다. 한복이 전달된 편지를 얻어 여러 종사들을 청해 물었다. "지금 원씨를 돕는 것이 마땅하겠소, 동탁을 돕는 것이 마땅하겠소? 치중종사 유자혜(劉子惠)가 말하였다. "지금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인데 하필 동탁이냐 원소이냐를 말하는 것입니까!" 한복이 스스로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음(短, 각주3)을 알고 부끄러운 빛을 띄었다. 유자혜가 다시 말했다. "전쟁이란 흉사이니 우리가 앞장설 수는 없습니다.(不可爲首, 각주4) 지금 마땅히 다른 주의 돌아가는 바를 살펴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함께하여야(和, 각주5) 합니다. 기주는 다른 주보다 약하지 않으니 다른 이들의 공적이 우리 기주보다 더 낫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복이 그렇게 하였다. 한복은 이내 원소에게 편지를 써서 동탁의 죄상을 말하고 청하여 함께 거병하고자 하였다.』 

*각주1 : 이렇게 구분할 때 '人'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民'과 구분하여 호족들을 이른다고 봐야 합니다. 조기빈은 <논어>에서 나오는 民人 역시 이와 같이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좌전> 등 일반적인 곳에서도 '인'이 일반명사로 사용되는 경우와 귀족들을 지칭하는 경우를 엄격하게 구분한 데서 유래합니다.

*각주2 : 원소가 도주하였으나 곧 발해태수에 봉해진 이후를 이르는 듯 합니다.

*각주3 : 단점의 뜻으로 해석하여 "잘못"으로 의역하였습니다.

*각주4 : "머리가 될 수 없다"는 뜻으로 결국 앞장 서서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각주5 : '和'는 논어의 "和而不同"에서 온 듯하며, <좌전>에서 음식에 적절히 맛이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1][2]

 

한가지 재미있는건, 원소는 동탁이 헌제를 옹립하는 것을 반대하여 군대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는 헌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거지요. 이에 많은 이들이 원소에 호응하였으나 모두가 호응한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휘하에 3만의 정병이 있었던 황보숭의 경우, 동탁과 사이가 상당히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원소와 접응하여 황도로 진격하는 대신, 동탁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동탁이 다소 난폭하게 헌제를 옹립하긴 했지만, 헌제는 결국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유우가 황제가 되라는 원소의 요청을 거절했을까요? 어쨌거나 헌제는 공식 절차를 밟아서 황제로 공인된 인물입니다. 명분은 동탁에게 있었습니다. 물론 원소측은 동탁을 조적으로 몰아붙였겠으나, 사실 조금 터무니없는 소리죠.

 

조조가 동탁에게서 달아날 때, 원소와는 달리 동탁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 도주 과정에서 '싹퉁 조조' 전설의 핵심 부분을 이루는 '여백사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서로 같은 듯하면서 다른 세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위나라 왕침王沈이 쓴 『위서魏書』와 서진의 곽반郭頒이 쓴 『세어世語』, 그리고 동진의 손성孫盛이 쓴 『잡기雜記』입니다.

 

『태조는 동탁의 계획이 반드시 실패로 끝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결국 임명에 응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아났다. 수행원 몇 기를 이끌고 아는 사이인 성고의 여백사 집에 들렀더니, 여백사는 집에 없고 그의 아들들이 식객과 한패가 되어 태조를 위협하여 말과 재물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에, 태조는 몸소 칼을 빼어 몇 명을 죽였다.』- 왕침의 위서

 

『태조는 여백사 집에 들렀다. 여백사는 외출하고 집에 없었지만, 다섯 아들은 모두 집에 있었고, 주인이 손님을 대접할 때의 예의를 다했다. 하지만 태조는 동탁의 명령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의심하여 밤중에 칼을 휘둘러 여덟 명을 죽이고 그곳을 떠났다.』- 곽반의 세어

 

 『[여백사의 아들들이 그를 대접하려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태조는 그들이 그릇을 준비하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를 해치려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밤중에 그들을 처치했다. 그후 [자신의 오해를 깨닫고]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차라리 내가 남을 배반할망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곳을 떠났다.』- 손성의 잡기 

 

 위의 세가지 내용 중 『위서』의 내용에 따르면, 조조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어』나 『잡기』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는 그 의심많은 성격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친것이 됩니다. 어느 내용이 맞는 것일까요? 『위서』의 경우, 친조조적인 성향의 책이고 『잡기』의 경우는 반조조적인 성격이 있는 책입니다. 『세어』의 경우, 그 중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나미 리츠코의 『삼국지 깊이 읽기』에서는 위 - 서진 - 동진을 거치면서 점차로 '악인' 조조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에 와서 서로 다른 세가지 내용 가운에 어느것이 맞는지는 가리기 어려울 듯 합니다. 신동준은 『조조통치론』에서 『삼국지』본문과 『자치통감』에 이 내용이 실리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 사건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조조에게 한껏 호의적으로 기록된 『위서』를 포함하여 서로 다른 세가지 책에 기록된 사건을 허구라고 보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잘잘못을 가리기는 어렵겠으나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인 것은 사실이겠지요. 연의에서는 『잡기』의 내용을 약간 변형시켜서 조조의 간웅적 기질을 형상화시키는데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하지만 연의에서 변형된 내용과 본래의 잡기에 실린 내용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거지요.

  

[1]『영웅기』의 내용은 다음 '三國志'카페(http://cafe.daum.net/sam3)의 '朴祥辰' 님이 번역한 내용으로, 5개의 각주 역시 '朴祥辰'님이 다신 것입니다.

[2]여기 적은『영웅기』의 내용은 『자치통감』중평6년의 기사 말미에도 인용되어 기재돼 있습니다.

 

                                                                                                   2008년 03월 28일

                                                                                                  written by 무적위연

 

p.s - 혹시 있을지 모르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1차 자료2차 자료의 색상을 구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주의 색상도 마찬가지로 구분을 짓겠습니다. 앞으로는 가능한 한 지금 표기한 3가지 색으로 구분지어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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