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대기

무적위연 2009. 6. 29. 15:07

조조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의 여러가지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일화 두가지를 보겠습니다. 먼저의 이야기는 『세설신어』「가휼편」에 있는 내용이고, 뒤의 내용은 『삼국지』「무제기」에 인용된 『조만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위 무제(조조)는 소년 시절 원소와 유협의 행동을 즐겨 했다. 어느 날 어느 집에 혼인 잔치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집 정원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밤이 으슥해지기를 기다려 마침내 "도둑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혼인식에 참석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 위 무제는 신부 방으로 쳐들어가 칼을 들이대고 신부를 겁탈했다. 그리고는 원소와 더불어 도망쳐 나왔는데, 잘못하여 탱자 덤불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위 무제는 먼저 빠져 나왔으나 원소는 종내 움직이지 못하였다. 위 무제는 이때 다시 "도둑이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이에 놀란 원소는 스스로 황급히 뛰쳐나와 도망함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조조는 어릴 적에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사냥을 즐겼는데, 늘 그의 숙부가 그의 방탕한 모습을 보고 못마땅하여 조숭에게 일러바쳤다. 그러면 조숭은 성을 내어 곧 조조를 불러 책망하곤 했다. 이에 조조는 문득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어느 날 숙부가 오는 것을 보다 짐짓 땅바닥에 쓰러져 중풍 앓는 시늉을 했다. 이를 본 숙부가 깜짝 놀라 조숭에게 알렸다. 그러나 조숭이 급히 달려와 보니 조조는 아무 탈이 없었다. 조숭이 놀라 묻기를, '네 숙부는 네가 중풍을 맞았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냐'라고 하자 조조가 대답키를, '저는 본래 그런 병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숙부님의 총애를 잃어 그런 애매한 말을 들은 듯 합니다' 라고 했다. 이에 조숭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후 조숭은 자신의 아우가 아무리 조조의 허물을 고해바쳐도 귓등으로 흘려듣게 되었다. 이에 태조는 더욱 마음대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두가지 일화 외에도 조조의 어린시절을 다루는 일화는 몇가지 더 있지만, 이 두 이야기가 그중 가장 '그럴듯' 합니다. 가장 '있을법한' 이야기라는거죠. 아마 그런 이유때문에 이 두가지 일화가 유독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크게 2가지 점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조조가 구제불능의 망나니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조조의 양친이 자식 교육에 대단히 방관적인 태도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이 두가지 특징은 서로 별개의 특징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조의 집안은 후한을 주무르던 권문세족이었습니다. 모두가 조조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양친조차 방임적인 태도를 보였으니 조조의 인성이 잔혹하고 성급하여 화를 잘내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인간으로 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죠. 이런 인간성은 그의 숙적인 원소나 유비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뒤떨어지는 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조가 교육을 받지 못했음은 훗날 조조가 지은 「선전행」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조조는

 

 일찍이 삼사교(三徙敎)를 받지 못하고

 과정어(過庭語)도 들은 바 없네』[1]

 

라고 술회했습니다. '삼사교'란 맹자의 모친이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해서 나온 '삼천지교'를 뜻합니다. '과정어'는 공자가 일찍이 뜰을 지나가는 아들 자어에게 『시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훈계한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내용은 조조의 양친이 조조의 교육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알려줍니다. 진수역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기지와 총명함과 권모술수가 있었으며, 의협심이 강하고 멋대로 놀기를 좋아해, 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을 등한히 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삼국지』「무제기」

 

 확실히 조조는 어린시절, 집안의 위세를 믿고 날뛰는 철업는 양아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집안이 비록 탁류로 멸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뒤에서 수군대는 것이죠. 후한의 실권자인 조등집안을 어떻게 대놓고 멸시하겠습니까? 조조가 후한 최고의 명가인 원씨집안의 자제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이같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양친마저 자식을 방임적으로 키웠으니 조조가 비뚤어진 것도 이해못할 일은 아닙니다. 흔히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뒤늦게 철들고 공부하는 경우입니다. 조조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공부하지 않은 유비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조조로 하여금 책을 가까이하게 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중 한기지 동기는 그의 주변 환경을 통해서 얻게 되었을 겁니다. 그의 집안은 권문세족으로 무엇하나 부족한 바가 없었습니다. 재물도 풍족했고, 권력도 넘쳤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인성의 조조가 '효렴'으로 추천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조조가 어딜봐서 효렴으로 추천될만한 사람입니까? 『삼국지』「하후연전」에는 일찍이 조조가 죄를 지었는데 그 중죄를 하후연이 대신 떠맡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말이지 효렴과는 거리가 먼 사람 아닙니까? 남의 결혼식 날 신부를 겁탈하고, 숙부를 희롱하고, 자신이 받을 벌을 남이 받게 하는 이런 사람이 효렴으로 추천이 되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비록 진수는 사람들이 조조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점잖게 말했지만, 사실 '빌어먹을' 인간으로밖에 더 봤겠습니까? 후에 조조가 불인불효라도 능력만 있으면 뽑으라고 한 것도 조조의 이같은 면과 무관하지는 않을겁니다. 바로 조조 본인이 능력은 있으되 행실이 극히 불량한 사람이있으니까요. 교현이 조조를 가리켜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이니, 당대의 걸출한 인재가 아니면 구제할 수 없을 것이오. 천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대일 것이오』-『삼국지』「무제기」

 

이러한 극찬을 한 것도 그의 집안 배경과 무관치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물론 직접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현의 이같은 말은 확실히 이상합니다. 그가 조조를 저렇듯 극찬할만한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조는 널리 알려진대로 인물이 별로였습니다. 행실도 좋지 못했습니다. 인성조차 나빴습니다. 공부도 안했습니다.(교현으로부터 저 말을 들을 당시에는 책을 가까이하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딜 봐서 천하를 구할 영웅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교현이 왜 저같은 말을 하게 되었는지 아무런 배경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의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주에 인용된『위서』에는 한술 더떠서 교현이 자신의 자식들을 조조에게 맡기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저는 이해가 안됩니다. 아직 관직에도 나아가지 않은 20대의 햇병아리 조조에게 자신의 자식을 맡기느니 차라리 자식들한테 열심히 살라고 당부하는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다소 터무니없는 믿기 힘든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허소가 조조를 품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 허소의 발언을 놓고 세가지 서로 상반되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요』손성의 『이동잡어』

 

『태평한 시대라면 간적, 혼란한 시대라면 영웅』『후한서』「허소전」

 

『난세의 영웅, 치세의 간적』『세설신어』

 

『이동잡어』와 『후한서』에는 허소가 이 말을 한것으로 나오나 『세설신어』는 교현으로 되어있는데 이 부분은 대부분 허소가 한 말이라는것이 정론입니다. 그럼 『이동잡어』와 『후한서』를 보면 서로 내용이 상반되는 주장이 실려 있습니다. 이 서로 다른 내용과 관련하여 신동준의 『조조통치론』과 이중톈의 『삼국지강의』에서 각기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동준 선생의 설명은, 중국어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기가 버겁더군요.

 

아무튼, 조조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건 '치세의 간적, 난세의 영웅' 이건 간에, 그보다는 이중톈 선생의 말처럼 허소가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배경을 『후한서』「허소전」에서는 이렇게 알려줍니다.

 

『조조가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 늘 공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써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구하였다. 허소는 그를 하찮게 여겨서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가 빈틈을 노려 허소를 협박하자, 허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대는 태평한 시대에는 간적, 혼란한 시대에는 영웅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조는 매우 즐거워하며 떠났다』

 

여기서 우리는 조조의 못된 버릇이 성인이 되었을때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허소는 조조를 상대하지 않았는데, 이는 조조의 평이 대단히 나빴기 때문임이 틀림없습니다. 조조는 당시의 평가가 굉장히 나빴습니다. 때문에 교현이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자 이를 큰 은혜로 여겼던 것이죠. 조조는 허소의 명성을 등에 업고 자신에 대한 악평을 날려버리고 대신 명성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허소가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그만 못된 버릇이 나와서 그를 강제로 협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허소는 설마 이런 난폭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므로 크게 당황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빌어먹을 자식! 너는 집안을 말아먹을 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협박당하는 처지에 그렇게 말할수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좋은 말을 해주어 조조의 기분을 맞추어주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말을 해주자니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소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 말을 함으로, 조조도 만족시키고 자신도 만족시켰던 것입니다.

 

허소가 조조를 무시했던 것이 혹시 조조가 탁류여서는 아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조의 가문은 조부인 조등때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규족으로 권문세족이라 할만했습니다. 당시 최고 명문인 원가의 자제들과 조조가 교우 관계를 가진 점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조의 조부인 조등은 비록 환관이었지만(걍 환관은 아니고 끗발날리는 환관이었죠) 기록에 의하면 평가가 상당히 좋습니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환관 자신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행실을 통해 얼마든지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그런 환관의 자식도 아니고 손자인데 탁류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도 안한다는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에 따라 무시하는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상대조차 하지 않은것은 다소 이상합니다. 허소가 조조를 무시했던건 조조가 탁류인 이라서가 아니라 '평판이 좋지 않고 실제 행실도 극히 불량한' 탁류인이었기 때문에 무시한것입니다. 만일 조조가 평소 행실을 통해 영웅의 모습을 보였다면 어찌 허소가 그를 탁류인이라 하여 무시했겠습니까. 실제 조조는 허소를 난폭하게 협박함으로써 그 불량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조는 성인이 될 무렵부터 헛된 명성과 명예에 대단히 집착했습니다. 그가 허소를 협박해서까지 좋은 말을 듣고자 했던것도 그런 조조의 욕망이 표출된 것입니다. 정치인에게는 거짓된 것일지라도 그러한 명성과 명예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어지는 내용에서 계속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1]이 내용은 신동준씨의 『조조통치론』에 나와있는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해당 책에는 조조가 지은 「선전행(善戰行)」이라는 이름의 시로 일부가 소개되었습니다. 다만 다음 三國志 카페의 박상진씨의 견해에 따르면 다른 책에서는 전(戰)이 아니라 재(哉)로 나와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일 : 2009년 6월 27일

- 작성자 : 무적위연

6월 29일이후로 글이 없네요... 계속해서 쓰시지.. 좋은 지식 얻어갑니다 ^^
아! 이거 제가 너무 늦게 확인을 했네요^ ^ 답글 감사합니다. 제가 살기가 힘들어서 ㅠㅡㅠ 아래의 몇몇 글들에 달아주신 댓글은 추후 답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