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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2015. 11. 9. 14:38
동녘이 터올무렵 세사람은 주막을 나섰다.
간밤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지만 날이 밝자 고을 백성들이 수군거렸다.
누구는 산신이 노했다고 하고 혹자는 개태사 귀신들의 소행이라고도 했다. 난데없이 짐승들이 밤새 울어댔으니 길함은 없고 흉한 소문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왕정은 평소의 경장을 벗고 검은 두루마기에 흑립(黑笠)을 쓰고 있었다. 인목과 천둥도 따라서 나섰지만 행선지를 알수없었다. 다만 어젯밤의 소란과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왕정의 표정이 워낙 무거워보여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사람의 궁금증은 채 한시진이 걸리지 않았다. 왕정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적사암 입구였기 때문이다.
대문은 열려있었다.
섬돌위에 있던 두개의 초리도 그대로였다.
왕정은 착잡한 표정으로 방문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주군. 불러볼까요?"
천둥이 망서리는 듯한 왕정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럴 필요가...없어졌습니다."
"예?"
"휴.... 천둥형. 방문을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예?. 예...."
천둥이 왕정과 인목의 눈치를 살폈다. 웬지 어제 본 괴팍한 노인의 호통소리가 날아올것 같아 지레 주눅이 든 표정이었다. 인목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둥이 그제서야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어제 노인이 입고 있던 검은 도포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몸만 쏙 빠져나간 듯 했다.
왕정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깊이 숙인체 한참을 있었다. 천둥이 멀뚱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니 인목도 합장을 한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천둥은 엉겹결에 자신도 따라 합장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왕정이 방안으로 들어가 도포를 정성껏 접더니 받쳐들고 나왔다. 그리고 칠성단 제단위에 도포를 올려 놓았다.
"지난밤 육신을 벗고 선계(仙界)에 드셨군요."
그래서 밤새 짐승들이 그렇게 울었던가.
왕정의 말에 인목이 다시한번 조용히 합장을 했다.
"도련님. 어제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개태사의 노스님으로 알려져 있는 노인은 자신을 절간의 불목하니이자 문지기라고 했다. 그리고 두사람은 선문답을 하듯이 몇마디 주고 받은게 다였다. 인목과 천둥이 아는것도 들은것도 그것이 다였다.
그러나 두사람이 눈싸움을 하듯이 마주보며 또다른 대화를 나눴음도 알고 있다. 그것이 심통(心通)인지 심안(心眼)인지 알길이 없지만 분명 두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인목의 말은 그 대화를 묻고 있는 것이다.
"저도 많은 것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분은 칠십년전에 벗어야 할 육신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칠십년 전이라면 그분의 연세가?"
"그것도 알수가 없습니다. 백세는 확실히 넘었겠지만 이백년을 살았는지 삼백년을 사셨는지는 알수가 없지요."
"주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이백년 삼백년을 살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모를 일이지요. 확실한건 이미 생과사의 경계를 넘어선 분이란 것이지요.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벗지 못하고 기다린 인연이 저였다는 사실이고요."
"주군을 기다리셨다구요. 칠십년 동안?"
천둥이 뚱한 눈으로 왕정을 바라보았다. 왕정의 나이가 이십도 채 안되는데 칠십년을 기다렸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눈치였다.
"예. 그분은 스스로를 문지기라고 하셨지만 아마도 복씨세가와 긴한 인연이 있어 보였습니다."
"복씨세가와요?"
"복씨세가의 가신이거나 어쩌면 세가분 일수도 있겠지요. 지금으로선 저로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주군께서 찾고자 하는 비문과도 관계가 있겠군요."
"그분은 당신이 죽어야 그것을 볼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만나 칠십년 기다림이 끝났으니 홀가분하게 육신을 벗으신 것이지요. 그 무거운 짐을 내려 주어서 제게 고맙다고 한 것입니다."
두사람은 그제서야 어제의 선문답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이 모르는것 투성이지만 말이다.
그 노인은 왜 이곳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며 왕정을 기다려 온것인가.
왕정이 명도에서 본 개태란 글자와 그 노인 그리고 이곳 적사암은 무슨관계가 있는건가.
"주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지요?"
천둥의 머리로는 풀수없는 난제였다.
칠십년을 기다려 왔다는 노인은 속시원한 말 한마디 없이 선문답 몇개만 던지고 하룻밤 사이에 해탈해 버렸다고 한다. 육신도 없이 선계로 훨훨 날아 갔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전날은 꿈속에 나타나 급살 운운하더니 다음날 생시에 멀쩡히 나타나 호통을 치니 천둥의 눈에는 반귀신쯤으로 보이는 것이다.
"눈으로 본대로 해보려 합니다."
"?"
왕정이 말없이 품속에서 명도를 꺼냈다. 청동으로 된 명도가 지금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얼굴로 다가왔다.
왕정이 두눈을 감고 기운을 부르자 명도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동경을 비추듯이 제단을 향하자 불길이 솟아올랐다.
선계로 떠나며 남긴 노인의 도포자락이 명도의 불길에 휩싸였다.
이승의 흔적이 아쉬웠던지 검은 도포는 명도의 불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각이 지나도록 도포는 타버리지 못하고 호롱불의 심지처럼 불길만 피워대고 있었다. 태우려는 불길과 타지 않으려는 도포의 기이한 대치는 또 일각동안 계속되었다.
천둥은 불에 타지않는 신기한 도포를 보고있고 인목은 왕정의 손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명도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도포의 불길이 사그라들더니 어느순간 팟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붉게 달아올랐던 명도도 제 빛깔을 찾아갔다.
제단위의 검은 도포는 멀쩡했다.
휘이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왕정을 휘감고 제단위 도포를 쓸듯이 지나갔다.
천둥과 인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스스스슷.
왕정의 손에 들린 명도와 제단위의 도포가 티끌처럼 잘게 부서지며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도포도 그리고 명도도.... 마치 업장이 소멸되듯이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왕정이 눈을 뜨더니 전투를 치르고 난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길게 내뿜었다.
"휴우."
몇년동안 막혔던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하고 개운해 보였다.
"도련님. 명도는?"
왕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양손을 탁탁 털었다.
"사백년 천형(天刑)이 다 끝난게지요. 명도도 도포도."
"아아. 드디어.... 명도에 봉인되어 있다던 비문이 해결 된거군요. 아가씨 가문의 한을 풀었으니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인목이 감개가 무량한 듯 또다시 합장을 하고 칠성제단에 거푸 절을 올렸다.
어느듯 함께한 세월이 이십년이었다. 주인과 주군으로 모셔왔지만 가족만큼이나 끈끈한 애정으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인목의 감개무량함은 가족의 정이었다.
"고마워요 서호위. 이제 어머니의 한을 풀었으니 제게는 또다른 시작입니다."
왕정이 결의에 찬 소년처럼 주먹을 쥐고 흔들어 보였다. 천둥이 왕정을 따라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 보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시작이고 말고요. 주군은 이제 이 천둥만 믿으십시요. 핫하하."
"예. 이 왕정, 서호위와 천둥형만 믿습니다. 자 그럼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볼까요?"
왕정이 성큼성큼 제단으로 걸어가더니 맨위에 얹혀있는 칠각석(七角石)툭툭 때렸다.
두사람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둥형. 이 돌을 좀 치워 주시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제가 좀 부실해서..힘쓰는건 역시 천둥형 아닙니까?"
왕정의 엄살에 천둥이 영문도 모른체 또 한번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힘하면 천둥. 천둥하면 힘. 이까짓꺼 새참거리도 안됩니다. 끙차!"
힘자랑이라도 하듯이 단숨에 칠각석(七角石) 하나를 번쩍들어 집어던졌다.
"핫하. 어떻습니까 주군!"
천둥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왕정을 돌아보다가 머쓱했다. 두사람의 시선이 두번째 칠각석에 꽂힌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인목이 뽀얀 먼지를 닦아내자 음각으로 새긴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둥도 가까이 다가갔다.
유려한 필체로 새겨진 글씨들이 풍파를 피해 숨어있다가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하늘에 죄를 진 나 한란(韓蘭)이 딸 영령(英玲)에게 이글을 남긴다. 네가 이 글을 읽어보지는 못하겠지만 먼후일 너의 후인에게 인연이 닿는다면 이 애비의 글을 볼 수 있으리라.
하늘에 닿을 죄를 짓고 그값을 치르지 못한체 다시 태어나니 육신에 업장(業障)이 따라왔구나. 내가 받아야 당연한 죄업이 하필이면 네게로 가니 그것이 천추(千秋)의 한이라. 너는 삼십수명에 무녀의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구나.
이 모두가 애비의 죄업이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 하나 애비는 너를 그렇게 보낼수 없다. 다행히 애비의 지척에 해동제일의 술사(術師) 복지겸(卜智謙)노사가 있으니 이제 너의 운명을 그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하여 나는 보배로운 나의딸 영령(英玲)을 해주모처로 보낸다. 부디 한씨(韓氏)성임을 잊지말고 가문의 천형(天刑)을 이겨내서 세세년년 부녀의 인연을 이어갈수 있기를 소원한다.
태어나 삼년도 되지 못한 젖먹이 너와, 살아 생이별을 하자니 애비의 가슴은 만갈레로 찢어지는구나. 어쩔수 없이 가문의 식솔들을 택했으나 애비는 너를 버리지 않았음을 알아다오. 이는 애비 전생의 업보이니 어찌 필설로 그 사(赦)함을 다 받으리.
후인이 이글을 보거던 염치없다 탓하지 말고 내 딸 영령의 영전에 이글을 올려주기 바란다.'

 
청주한씨(淸州 韓氏)의 시조인 한란(韓蘭)의 글은 구구절절 한을 담은체 끝을 맺었다.
왕정은 어머니가 당신은 청주한씨지만 집안은 해주에 있는 가문이라고 한 이유를 알것 같았다. 세살도 되기전에 해주로 보내진 딸 한 영령(英玲)이 바로 어머니께서 말한 시조(始祖)할머니일 것이다.
천형의 업장를 쓰고 태어난 여아는 낳아준 부모와 이별하고 전대의 신모에게로 갔다. 그렇게 칠성당을 지키다 삼십을 못넘기고 스러지는 운명을 살아야했다.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도련님..."
인목도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내용을 모르는 천둥이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왕정이 두번째 칠각석을 가리켰다.
"천둥형. 한번더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천둥이 이번엔 용쓰는 소리도 내지않고 두번째 돌을 살며시 들어 옮겼다. 드러난 세번째 칠각석에도 역시 음각으로 새겨진 글씨가 있었다. 천둥이 재빨리 다가와 슥슥 먼지를 닦아냈다.
 

'하늘이 재주를 주었으나 그릇이 미치지 못하니 그것이 한이로다. 나 복지겸(卜智謙)이 평생 묻어야 할 이야기를 후손에게 남긴다.
천기를 보아하니 사백년을 주기로 천문(天門)이 열리는구나. 왕조를 열었으나 영원치 못하니 복씨는 사백년간 왕조의 용혈(龍血)을 지켜야 할것이다. 이는 의형이신 왕건태조의 부탁이 아니라 복씨가문의 칠백년 지한(之恨)을 풀기 위함이니 후손은 원망을 버리고 심간(心間)에 새겨주기 바란다.
가문의 신물 현무기(玄武旗)를 찾지 못하면 복씨는 대륙에서 사라질 것이니 선조의 통한을 씻을길이 없다. 연이나 현무기가 없는 복씨의 칠성기운(七星氣運)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니, 모산의 살성을 결코 당해내지 못할것이다.
하여 여기 개태암(開泰庵)에 해동의 힘을 안배한다.
칠성의 기운과 용혈의 신물(神物)이 만나야 가능한 힘이니 모든것은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무릇 같은 기운이라도 처처(處處)마다 천지조화가 다른법, 해동의 선기(仙氣 )가 사백년이 쌓이면 능히 역천을 감당할수 있으리라.
해동의 칠성은 한씨가문의 여아(女兒)에게 이어지고 있음이니 후인은 이들을 형제와 같이 여기고 부디 선조의 통한을 풀수 있기를 기원한다. 거듭 당부하거니와 모든 인연이 하늘에 있음이니 후인은 천기를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라.
그대가 복씨라면 여기서 멈추고 만약 용혈의 후인이라면 아래 칠각석을 들어 신물(神物)을 취하시라. 대륙(大陸)의 강호천하(江湖天下)가 그대 발 아래 열리리라.

개태암(開泰庵) 칠성각에서 무공 복지겸(武恭卜智謙) 서(序).'

 
또하나의 봉인이 풀렸다. 여기엔 복씨세가에 말로써 전하지 못한 복지겸의 유지가 담겨있었다.
왕정은 개태암(開泰庵)이란 글자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적사암이 아니라 원래 개태암이었던가. 대명이라는 법호를 가진 비구스님도 어쩌면 복지겸 장군의 안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신물을 보존하기 위한 천장지비(天藏地祕)라면 호국사찰인 개태사보다 비구암자인 적사암이 더 적지(適地)였을지도 모른다.
왕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한번 생각에 잠겼다. 용혈의 신물을 취하라는 말에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는 것이다.
"주군!"
"도련님."
망설이는 듯한 왕정을 보던 두사람이 지체하지 않고 세번째 칠각석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하아!"
순간 세사람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듯 엷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흑색 목함이었다. 폭은 한자가 채 못되고 길이는 다섯자정도되는 목함을 슬쩍 닦으니 햇빛에 반짝일만큼 윤이 났다. 아래위 칠각석은 목함의 크기만큼 정확하게 파여 있었다.
두사람이 침을 꿀꺽삼켰다.
이 안에 무슨 신물이 들어있는 것인가.
두사람은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두손으로 목함을 받쳐들고 왕정앞에 섰다. 왕정이 마침내 목함의 윗두껑을 열었다.
번쩍.
반사된 섬광이 세사람의 눈을 때렸다. 검집이었다.
금방이라도 힘차게 뛰쳐나와 승천할 것같은 용이 양각되어 있었다. 왕정은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검을 빼들었다.
스르릉 촤앙.
경쾌하고 맑은 소리와 함께 검이 집을 빠져나왔다. 온통 새까만 묵빛이었다. 검날 한쪽에는 용과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고, 다른면에는 글씨가 총총히 입사(入絲)되어 있었다.
왕정은 검을 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이제는 망설임도 물러섬도 없어야 한다. 이 신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받들것이다. 이검이 어떤힘을 줄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그힘을 받아들일 것이다.
검을 잡은 왕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군!"
천둥의 손에 미처 보지못한 황색 서찰이 하나 들려있었다. 왕정이 받아 조심스레 봉인을 열어 펼쳤다.
투명 옻칠을 한 한지에 용사비등(龍蛇飛騰)한 서체로 쓰여진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왕건이 천명을 받잡아 왕조를 열어 검을 남기니 이 검은 용의 정혈을 받은 사진 참사검(四辰斬邪劍)이라 칭한다. 사진(四辰)이라 함은 용의 해(辰年), 용의 달(辰月), 용의 날(辰日), 용의 시(辰時)를 말하는 것이니 이검은 바로 이때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이 사진검(四辰劍)으로 왕조를 세우고 삼한을 통일하니 어찌 이 검의 영험함과 신묘함을 의심하랴. 후인은 나의 뜻을 받들어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고 아래로는 백성을 이롭게하되 이검은 천지의 삿된 것들을 참하는 참사검(斬邪劍)이 될 것이라.
北斗九辰(북두구진)은 統制乾坤(통제건곤)이요
璿璣玉衡(선기옥형)은 調理綱紀(조리강기)라.
북쪽에 있는 아홉개의 별이 하늘과 땅을 통제하고, 칠성은 바른 이치와 조화로 다스리니 후인은 이검의 현묘한 이치를 만방에 떨치고 산천을 평안케 하라.'

 
태조왕건의 친필을 보고 있는 왕정은 세찬 폭포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듯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삼한을 통일한 태조의 검, 몸소 전장을 누비며 호령하던 태조의 사진검(四辰劍)이 오백년의 시간을 격하고 눈앞에 있는것이다.
뜨거운 용의 기운과 차가운 칠성의 정기가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왕정이 천천히 검신을 뒤집었다.
검파에 입사(入絲)된 스물네자의 글자가 나타났다.
건강정(乾降精) 곤원령(坤援靈) 일월상(日月象) 동선형(動宣形) 휘뢰전(撝雷電)
운현좌(運玄坐) 추산악(推山惡) 현참정(玄斬貞)
하늘이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형상을 갖추고 산천이 모양을 이루어 번개가 몰아친다.
현좌(玄坐.옥황상제.현무대제)를 움직여 산천(山川)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玄妙)한 도리로 참(斬)하여 바르게 하라.
글자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힘들이 느껴졌다. 그 힘들이 조화롭게 어울려지자 천하를 벨수 있는 거대한 힘이되어 나타났다.
이것이 왕건태조의 진정한 힘이었는가.
이것이 용혈과 칠성의 조화요 힘이었는가.
왕정이 사진검을 하늘로 쳐들었다.
"오늘 나 왕정은 태조께서 내리신 사진검으로 하늘을 우러러 그 유지를 받잡고자 하오니 열성조께서는 부디 굽어 살피소서!"
제왕의 검, 용의 검, 칠성의 검, 그것은 태조의 사진참사검이었다. 용혈과 칠성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