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수레의산 2019. 2. 17. 16:14

발가락 물집도 물집이고, 월출산을 넘어 오느라 무리한 것 같아서 하루 쉬기로 했다. 느지막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러 식당을 가보니 주인이 없다. 그냥 컵라면 한개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나주 시내 관광안내도를 보니 금남동 주민센터 앞에 자전거 무인 임대소가 있다. 그래서 자전거를 빌려서 시내 탐사를 하면 발가락도 좀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택시를 타고 갔다. 5,800원. 그러나 어디에도 자전거를 빌려주는 비슷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주민센터에 들어가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운영을 했었는데 지금은 하지 않으며, 운영하지 않은지 여러해가 지났다고 한다. 이 안내도가 작년 봄에 나주시에서 받은 것인데 이래서야 되겠는가?


할수없이 걸어서 다녀보기로 한다. 우선 양말을 파는 곳에 들러 발라락 양말을 한개 사서 신고(그러면 발가락 물집이 좀 덜할 것 같아서) 약국에 가서 립크림을 사고(바람이 몹시 불어서 입술도 텃다), 절룩거리며 다닌다. 우선 서부길을 걷기로 하고 이리저리 출발지를 찾아보니 지도는 알아보기 힘들고 거리의 안내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처음 출발하는 금성관에서 부터 바닥에 표시하던지, 아니면 방향표시로 제대로 해야 하는데 참 난해하다. 이 지도와 표시를 도대체 누가 했는지 알고 싶을 정도다. 보리마당이 어쩌구, 일제시대 하수구가 어쩌구... 그렇게 헤매이다 보니 구.나주잠사가 있다. 이 건물은 1910년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설립되었는데 전라도 최대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문화예술 창작발전소 나비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건물은 동부길에 있다. 그렇게 하수구를 찾아가다 보니 나주천 넘어 무슨 고택이 보인다. 그러나 고택은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참내...



다시 돌아 금성관으로 와서 골목길을 헤매이다 보니 제7일 예수재림교회가 보인다. 그곳에 이르러서야 서부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정말 지도제작과 안내판 만든 사람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다음 최부와 양 부자 집터를 안내판을 따라 가 보니 뭐 그냥 연립주택이 서 있다. 그냥 거기가 집터라는 것이다. 연립주택이 지어지기 전에 미리 손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없어졌는가 보다. 그 터만 해도 굉장히 큰 것을 보아서 꽤나 부자였던듯 하다. 최부는 제주목사로 있다가 아버님 부음을 듣고 귀가하던중 풍랑을 만나 중국을 다녀오며 기행문을 일기 형식으로 썼다고 한다. 그 후 이 집터에 양 부자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서성문길의 일부는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담장도 아랫쪽을 보면 큰 돌로 놓여 있고 윗쪽은 작은 돌이다. 그리고 그 담장길을 돌아가니 서성벽이 복원중에 있다. 많이 무너지고 거의 흔적만 남은 곳도 있다. 이 길 맨끝에 서성문(영금문)이 있다. 



나주향교에서 사마재길로 이어지고 둑제사길과 이로당과 소나무를 지나고 무슨길 어쩌구 하는데 새주소로 만들어진 길 이름은 또 다른다. 뭐 이따위 길을 안내하고 있는지 짜증이 절로 난다. 빙돌아 다시 금성관으로 와서 점심을 먹기로... 얼마전에 와서 먹어본 나주곰탕은 한마디로 맛대가리 더럽게 없음이다. 그래서 중국집 '연경'에 들러 자장면으로 해결했다. 오히려 자장면 맛이 좋았다. 6,000원



동부길은 더욱 더 가관이다. 일단 금성교는 찾기 쉬우니 그리 시작해서 좌측으로 꺾으면 구.나주경찰서가 있다. 여기까지는 쉽다. 좌우지간 구.나주경찰서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로 경찰서 답게 딱딱한 직각 모양이다.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해방 이후에는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장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광주전남 건설기계지부 나주지회가 입주해 있는 모양이다. 



다음 찾아갈 곳은 '전라우영터' 라는데 나주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못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정문에 아무 표시도 없다. 학교 입구에는 학생들 교육시간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시만 있다. 헐~ 짜증.


그리고 다시 돌아 나오다 보니 남고문이 있다. 남고문을 보고 더이상 찾기도 귀찮고 해서 곧바로 구.나주역사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주역사가 멀리 있다. 다리를 절름 거리며 걷는다. 대신 고생보따리 처럼 짊어지고 가던 배낭이 없으니 할만하다. 우선 나주학생운동기념관에 들러서 역사 기록물을 관람했다. 우리는 학교 다닐때 광주학생운동으로 배웠는데 이게 원래 나주역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학생들사이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문재인대통령께서 후보시절인 2016년에 다녀가시며 써놓은 방명록도 있다. 나주역사는 바로 옆에 있다. 생각보다 나주역사는 크기가 아담했다. 역사의 긴 의자에 잠시 앉아 옛날을 상상해 보았다. 이 역사에는 밀정놈들도 있었을 테고, 친일파 놈들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독립투사들도 다녀 갔을 것이다.



다시 택시를 불러 영산포 홍어의 거리로 돌아왔다. 6,400원. 영산포 영산강 육지 등대를 보았다. 유일한 육지등대라고 한다. 영산포는 일제시대까지 서해바다에서 영산강으로 올라오는 배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가 물품을 들여오고 물품을 빼가는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건축물이 많이 있다고 한다. 원래 황포돗배를 체험하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죽산보를 개방해서 물이 부족하여 더 하류로 옮겼다고 한다. 아직도 강변에는 물빠진 흔적이 보인다. 이명박때 쓸데없는 짓을 해서 영산강에 죽산보와 승촌보를 막아 강이 많이 썩었었다고 한다.


흑산도 앞바다에서 홍어를 잡아서 영산포로 들어오는 고깃배들이 오랜기간 걸리기에 홍어가 그동안 삭아서 못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고기맛이 냄새는 좋지 않지만 톡쏘는 맛이 점점 전해져서 영산포 홍어의 거리가 조성되었다 던가. 영산포는 모두 홍어 천지다. 나는 홍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패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