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수레의산 2019. 3. 2. 20:39

표해록, 최부, 보리출판사


조선 선비 최부의 중국 표류 여행기

최부는 1454년 나주에서 태어나 1504년까지 살았다. 호는 금남이고 교서관 저작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서거정 등과 동국통감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87년에 제주 세 읍의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되어 내려 갔다가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하여 급하게 귀국하다가 배가 제주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중국 태주해안에 닿아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귀국하여 성종의 명으로 표해록을 적어 바치고 바로 귀향하여 상을 치렀다. 그러나 이때부모의 상을 당하여 바로 귀향하지 않고 표해록을 썼다고 하여 연산군때 그의 정적들이 상소문을 올려 어려움을 당하였고,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휘말려 쉰한 살에 효수당했다.중국에서 배워온 수차를 만들어 바치고, 그때만 해도 중국 강남쪽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는 실정에 비추어 대단한 경험의 소유자였음에도 정쟁때문에 아까운 인재를 죽이는 우를 범했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국토종단때 나주에 들렀다가 나주 '서부길'을 돌다 보니 '최부와 양부자집 터' 라는 곳을 방문하였고, 거기에서 최부라는 사람이 표해록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읽게되었다. 최부는 서해바다에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다행히 살아남아 중국의 台州 앞바다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왜구들이 많던 시절이기에 왜구로 오인받아 죽을 고비를 맞았다. 그래도 최부가 유학자이기에 필답으로 자신이 조선의 관리라는 사실을 알려 나중에는 제대로 대접을 받으며 북경을 거쳐 귀국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제주에서 고깃배를 모는 민초들이 풍랑을 만나 중국연안에 닿았어도 문자를 모르기에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왜구로 오인되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중국 강남쪽에, 특히 산동반도 쪽에 역관을 파견하여 우리 백성의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벼슬이 없는 민초들의 목숨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통해야 뭐가 되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문자도 모른다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이야 그래도 스마트폰 앱이 있어 다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