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지나(支那)"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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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2007. 1. 28.

글: 임사운(林思雲)

 

일본인들이 "지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중국을 멸시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이것은 최근에 아주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신랑망(新浪網)이 "Sina.com"이라는 웹사이트명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일부 중국의 애국인사들의 성토대상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나"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왜 "지나"라는 말로 중국을 부르게 되었는지의 문제는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지나"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깊이있게 검토해보기로 한다.

 

1. 명치유신(메이지유신)전의 일본의 중국에 대한 칭호

 

일본과 중국의 교류는 역사가 매우 길다. 그리고 오랫동안 일본은 중국문화에 대하여 경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수당이래로 일본은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를 중국에 보내서 중국문화를 배워왔다. 그 결과 일본은 세계에서 중국과 문화적으로 가장 친밀한 국가가 되었다. 현재 세계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일본뿐이다(한국, 월남은 한자사용을 폐지했다). 일본문화는 중국고전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일본문화는 중국의 소수민족, 위구르족, 티벳족, 몽고족등의 문화보다 훨씬 한족문화에 접근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언어문화상의 유대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언어문화상의 유대는 둘을 원수로 만들었다. 이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비록 중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이라는 명칭은 의외로 역사가 길지 않다. 1912년 중화민국의 성립이전에 중국의 정식명칭은 한번도 "중국"인 적이 없었다. 고대중국은 진, 한,...명, 청등의 왕조가 서로 다를 때마다 국호도 따라서 변해왔다. 예를 들어, 청나라때 중국의 정식명칭은 "대청" 또는 "대청제국"이었다. 비록 정식 국호로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중국의 민간에서는 '중국' 또는 '중국인'이라는 속어단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중원지구를 가리키는 것이고, '중국인'은 바로 중원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신강, 티벳, 몽골의 변방주민과 구분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중국'을 국가를 대표하는 용법으로 쓴 적은 없다.

 

일본은 중국과 밀접하게 접촉하였으므로 중국의 왕조명칭으로 중국을 불러왔다. 중국과 접촉이 적었던 서방국가는 중국이 무슨 왕조시대이건 간에 모두 일률적으로 China라고 불렀다. 일본은 수나라때는 중국을 "수"라고 부르고, 당나라때는 중국을 "당"이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견수사" "견당사"라는 용어가 나온 것이다. 이전의 일본은 중국을 통틀어 부를 때에는 중국을 "한토(漢土)", "당토(唐土)"로 불렀다. 중국글자는 "한자(漢字)"라고 불렀고, 중국어는 "한문(漢文)"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고대에 '중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아니라, "지나"를 중국을 대표하는 용어로 쓰지도 않았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일본의 근대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일본의 에도(江戶)말기와 메이지(明治)초기에 일본의 대외개방에 따라, 외래어가 아주 유행했다.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중국을 '한토'라고 부르지 않았다. 외국어 China의 음역(音譯, 발음나는대로 번역하는 것)에 따라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의문도 가질 것이다. 일본인들이 중국을 China의 음역으로 "지나"라고 부른다면, 거기에는 중국을 멸시하는 의미는 담겨있지 않지 않은가?

 

한자는 표의문자이고, 모든 글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자를 발음기호로 사용하면 어느 글자를 선택하여 쓰느냐는 것고 큰 문제이다. 한어에서의 "미국(美國)"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좋은 뜻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미국'이라는 것을 무슨 존중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미국을 고쳐서 "매국(霉國, 중국어 발음은 mei guof로 같음. 재수없는 나라라는 뜻)"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일본에서 사용하는 것이 표음문자였다면, "Sina"로 중국을 부를 필요가 없고, "China"로 중국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도 그 말에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자의 표의라는 각도에서 보면, "지나"라는 단어 본 뜻은 원래 무슨 멸시하는 뜻이 담긴 것은 아니다. 만일 문자옥(文字獄, 문인들이 쓴 글을 트집잡아 처벌한 사건)의 방식대로 한다면, "지나"라는 단어의 뒤에는 멸시하는 뜻이 담겼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일본어에서 "지(支)"는 한자의 '말단'이라는 의미이다. 중국에서 자주 말하는 "지부(支部)" "지대(支隊)"등응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 단어이다. 일본어에서 "나(那)"라는 한자는 '지방'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지나'라는 것을 표의로 보면 '말단의 지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라는 단어는 '말단의 지방'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혹시 일본인들이 일부러 '지나'라는 글자를 골라 중국을 폄하하려 한 것일까?

 

그러나, "지나"라는 단어를 고증해보면, 최초에 중국을 "지나"라고 부른 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 자신들이다. 고대에 인도인들은 중국을 cina라고 불렀는데, cina는 중국의 진(秦, 중국발음으로 친)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고로마에서는 중국을 Sinoa라고 불렀다(구약성서). 나중에 영문에서의 China와 불어에서의 Chine는 모두 이 로마어에서 왔다는 것이다. 현재 영어에서의 Chino와 Sino는 중국을 대표한다. 예를 들어, Sino-Japanese War는 "중일전쟁"이다. Sinology는 "중국학"이다. 중국은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도입하면서 산스크리트어를 아는 사람이 적다보니,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고성들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cina를 음역에 따라 "지나(支那)"로 번역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불경에서는 여전히 "지나"라는 칭호를 쓰고 있다. 불경이 일본에 들어온 후에 "지나"라는 단어도 일본에 들어왔다.

 

"지나"라는 단어를 발명한 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 자신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자의 뜻을 가지고 일부러 중국을 폄하하기 위하여 '지나'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은 없다.

 

2. 신해혁명전의 '지나' 칭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나"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명치유신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때의 중국의 정식국호는 "대청"이었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정식장소에서는 중국을 "청국" 또는 "대청제국"이라고 불렀다. 갑오전쟁도 "일청전쟁(日淸戰爭)"이라고 부르고, 의화단의 난도 "북청사변(北淸事變)"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신문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을 "지나"라고 불렀고, 일청전쟁을 ㅍ"일지전쟁(日支戰爭)"이라고 불렀고, 중국말을 "지나어"라고 불렀다. 일본인들이 중국의 정식국호 "대청"을 부르지 않고, "지나"라고 부른 것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화를 냈는가? 그렇지 않았다. 원래 그 때의 중국한족들, 특히 중국의 혁명가들은 일본에 대하여 중국을 "지나"라고 부르는데, 화를 내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 때, 중국의 한족들은 이민족의 통치하에 있었고, 일본은 암중으로 중국혁명을 지지했었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혁명가들의 낙원이 되었다. 동맹회, 광복회등 반정부조직이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 때 많은 한인들은 일본에 온 다음에 가장 먼저 하는 두 가지 일은 첫째는 변발을 자르고 더 이상 청나라조정에 대한 충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지나인'으로 부르고 자기가 '청국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이라는 용어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으므로, 많은 혁명가들은 일본식의 칭호를 빌려 자기들을 '지나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1902년, 장태염등이 일본 동경에서 <<지나망국242년기념회>>를 발기했고, "한족을 광복시키고, 우리 산하를 되찼고, 몸을 나라에 바치며, 성공한 후에는 물러나겠다"는 선서를 한다.(지나망국이라 함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한 것을 의미한다). 1904년, 송교인이 동경에서 <<20세기의 지나>>라는 잡지를 발간한다. 이것은 동맹회의 당보인 <<민보>>의 전신이다. 입헌파인 양계초 조차도 "지나소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강유위의 차녀인 강동벽도 시에서 "나는 지나제일인"이라고 하였다.

 

많은 중국의 혁명가들이 "지나"로 스스로를 호칭했다는 것은 일본이 "지나"라고 중국을 부른다고 하여 폄하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오히려 중국의 한인들에 대한 존중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일본인들이 당시의 중국국호인 "대청"으로 부르고, 중국인들을 "대청인"으로 부르며, 중국어를 "대청어"라고 불렀다면 중국의 한인들에게는 오히려 모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신해혁명전에 "지나"라는 단어는 중일 양국에서 모두 승인된 단어였고, 아무도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해혁명후에 중국의 정식국호가 "대청제국"에서 "중화민국"으로 변경된 후, 이때부터 중일간에 "지나"논쟁이 발생하게 된다.

 

3. 신해혁명후의 "지나" 칭호

 

1912년 중화민국의 성립으로 중국은 새로운 정식칭호 "중화민국"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세계각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청왕조가 멸망한 후, 중국에서는 내란이 발생하였고, 각 성이 독립하였으며, 남방의 혁명당은 남경에 "중화민국"이라는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그러나, 당시 "중화민국"의 범위는 그저 남방의 몇 개 성에 불과했고, 북방의 큰 땅은 '중화민국'에 속하지 않았다. 이 때는 청왕조가 이미 무너졌으므로 이미 중국을 '청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첫째, 당시 '중화민국'은 중국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었다(남북협상후 북방이 비로소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승인했다). 둘째, 일본정부는 당시 잠시동안 '중화민국'을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일본정부는 '청국'이라는 칭호를 포기하고, 민간에서 많이 쓰이던 '지나'라는 말로 중국을 부르기 시작했다. 1913년 7월 일본정부는 명문의 규정으로 이후 중국의 국호가 어떻게 변화하든 일본은 모두 '지나'로 중국을 부르기로 한다.

 

1913년 10월,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정식으로 중화민국 대총통이 된 후에, 일본은 정식으로 "중화민국"을 승인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그저 중문의 문서에서는 "중화민국"을 사용하지만, 일본어 문서에서는 "지나공화국"을 사용하였다. 일본이 이렇게 한 것에 대하여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수십년간 사용되었고, 중국인들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1915년 일본은 위안스카이정부에 "21조"를 제기했다. 이것은 중일관계악화의 기점이었다. 1919년 일본이 독일조계를 승계하는 문제에 관하여 다시 "5.4운동"의 반일열기가 고조된다. 당시 애국인사들이 제기한 하나의 항일주제는 바로 일본이 중국을 "지나"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일부 애국청년들은 일본이 중국을 "지나"라고 부르는 것은 고의로 중국을 모멸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리하여 애국의 불길은 한꺼번에 크게 번졌다. 애국지사들은 줄줄이 정부에 글을 써서 일본정부가 "지나"와 "지나공화국"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항의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중화민국정부는 여러차례 일본정부과 교섭하였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일본이 "중화민국"의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상술한 1913년 7월 일본정부의 규정외에, 또 다른 원인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중화(中華)"라는 단어가 일본을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본 것때문이다. 원래 역사상의 "중화", "중원"은 주변의 이민족국가와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이다. 이전의 중국은 동방의 이민족을 동이(東夷, 일본인과 한국인)라고 불렀고, 남방의 이민족을 남만(南蠻, 동남아인)이라고 불렀으며, 서방의 이민족을 서융(西戎, 서아시아인)이라고 부르고 북방의 이민족을 북적(北狄, 몽고족)이라고 불렀다. 중화와 오랑캐국가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상하의 조공관계였다.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이 스스로 "중국"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천하의 가장 존귀하고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중국을 "지나"에서 "중국"으로 고쳐부르는 것은 스스로른 "동이"의 조공국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고, 모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적은 일본이 "중화민국" 또는 "중국"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 내재적인 원인이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이 그것을 '중앙의 나라'라는 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글자 자체로서 중국이 중앙에 있는 나라라는 것을 표시하고 있다. 당연히 '중화민국'을 국호로 사용할 때, 일본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지나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도 중국을 모욕하려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는 표의문자이고, 한 단어는 여러가지 뜻을 담고 있는데, 한자단어에서 트집을 잡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중국에서는 여러차례 문자옥이 일어났던 것이다.

 

청나라의 어느 대신은 "청풍(淸風)은 글자도 모르면서, 왜 책은 어지럽게 넘기고 있는가"라는 시를 썼다. 바로 문자옥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청풍"은 바로 "청나라 사람 즉 만주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했고, 그 결과 그 대신은 목이 잘렸다. 근대 중국과 일본의 애국지사들은 문자옥을 국제무대에까지 들고 나왔다. 중국인들은 일본이 '지나'라고 하는 것이 중국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일본인들은 중국이 스스로 '중화'라고 하는 것이 일본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의 단어가 가진 뜻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인하여 국제분쟁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서방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여러 차례의 항의와 재촉하에, 1932년, 일본정부는 마침내 정부공문서에서 더 이상 '지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중화민국'으로 쓰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민간신문에서는 여전히 중국을 '지나'라고 불렀다. 일본의 패전후 1946년, 일본정부는 전국에 반포한 <<'지나'칭호의 사용을 회피하는 데 관한 건>>의 통보를 통하여 이후 '지나'라는 단어는 일본정부의 공문서, 교과서, 신문, 잡지에서 없어지게 되었다. 중일간의 중국국호를 둘러싼 분쟁은 일본전패후 일본의 전면적인 타협으로 철저히 해결되었다.

 

4. 현재의 "지나" 문제

 

일본의 패전후 중국의 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여,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더 이상 "지나"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지나"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에게 잊혀졌다. 1960년대 미국이 월남에 파병하면서 중국대륙의 신문에서는 다시 "인도지나(印度支那)"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원래 유럽인들은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있는 지역을 "인도지나"라고 불렀다. 월남등의 국가가 소재한 반도는 "인도지나반도"로 불렀다. 중국의 대륙에서는 서방의 칭호인 "인도지나"를 따라서 썼다. 당시 대륙사람들은 "지나"라는 단어에 대하여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대만의 국민당정부는 "인도지나반도"를 "중남반도(中南半島)"로 고쳐 불렀다.

 

그러나 1990년대이후, 대륙의 반일감정이 드높아지면서, "지나"라는 단어를 다시 중국인들이 기억해 냈다. 그래서 일본이 중국인들을 모욕하는 죄악중의 하나로 거론되었다. 현재 일본의 주요한 매체에서는 "지나"라는 단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우익분자들은 자주 이 주제를 끄집어 내고 있다. 동경도지사인 이시하라(石原)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지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로써 중국 애국인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시하라는 "지나인"이 중국인을 폄하하는 단어가 아니라 중국인을 존중하는 뜻이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지나'라는 단어는 최초로 중국인들이 발명한 것이고 중국인들이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시하라의 말은 억지였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왜노(倭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분명히 멸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고대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왜노"라고 부른 적이 있고, 중국의 한자로 된 기록에는 "왜노국"이라는 기재가 있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한나라 황제가 하사한 "왜노국왕"의 금인이 발굴된 바 있다(금인에는 "한왜노국왕"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일 현재 어떤 사람이 이시하라를 "왜노"라고 칭한다면, 이것은 이시하라를 존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왜노"라는 단어는 최초로 일본인들이 발명한 것이고 일본인들이 승인한 것이지만 이시하라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일부 일본의 우익인사들은 고의로 이 주제를 끄집어내고 있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슈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애국인사들이 일본은 욕하는데 대한 '응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애국인사들은 웹사이트에서 매일 "왜노" "귀자(鬼子)" "소일본(小日本)"등의 일본을 욕하는 칭호를 쓰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애국주의자들의 반격을 불러올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다시 "지나"라는 중국인들이 화를 내는 중국을 욕하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이 "왜"라는 용어를 써서 일본인을 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역사상 매번 반일운동이 벌어질 때마다 동일한 일은 반복되었다.

 

1919년 "5.4운동'의 반일열기중에 1919년 11월에 출판된 왕공벽의 <<동유휘한록>>은 당시 아주 선동적인 글로 유명했다.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왜의 최근 50년년이래의 외교진상은....신문계에서와 저작에서 모두 "지나"라는 두 글자를 사용하고 있고, 정부공문은 중국 민국의 글자를 쓰지 않고, '지나공화국'이라는 다섯 글자를 쓰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 대하여 국제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국가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중화민국성립 8년이 지났지만, 왜인들은 아직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상의 글 중에서 작자는 한편으로 일본신문이 "지나"라는 칭호로 중국을 부르는 것이 중국인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항의하면서 작자는 스스로 공개된 출판물에서 일본을 "왜" "왜인"이라고 능멸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 "지나"라는 모멸적인 단어를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면서 왜 일본인들도 "왜인"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중국인들이 일본인의 "지나"라는 단어로 중국을 차별하는 것에 항의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이 '지나'라는 말을 쓰는 것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왜인' '귀자', '소일본'등의 차별적인 문구를 써서 일본인들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한 말중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이라는 말이 있다. 만일 중국인이 일본인에게 "왜인" "귀자" "소일본"으로 부를 권리가 있다면, 왜 일본인들이 마찬가지로 중국인을 "지나인"이라고 부를 수 없단 말인가. 만일 중국인들이 이런 차별적인 언어로 일본을 모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찌 일본인들이 '지나'라는 말을 써서 중국을 모멸하는 것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나"라는 단어가 도대체 중국에 대한 멸칭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렇다면, 경멸하는 정도는 얼마나 되는가? 위에서 본 상황으로 보면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은 에도시기말기부터 '지나'라는 단어로 중국을 불렀다. 당시 일본이 '지나'라는 칭호로 중국을 부르는데는 중국을 모욕하는 의도가 없었다. 중국인들 자신도 '지나'라는 칭호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해혁명후의 중국이 국호를 변경한 후에 문제가 생겼다. 중국의 정식국호는 '중화' 또는 '중국'이었다. 일본인들은 그것이 일본등의 '예전 조공국'에 대한 오만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국을 '중국'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고, 계속 중국을 '지나'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때 일본인들이 '지나'라고 부르는데는 중국인들에 대한 약간의 경멸의 의미가 있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 정도가 크지는 않았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을 '귀자' '소일본'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약했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은 흑인들을 왕왕 "노흑(老黑)"이라고 부르는데, "노흑"에는 약간의 경멸의 뜻이 있지만, 그다지 강하지는 않다. "흑귀"보다는 훨씬 약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지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인들이 흑인을 "노흑"이라고 부르는 느낌과 비슷하다. 특별히 악독한 차별적인 언어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약간은 미묘한 경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나" 문제는 주로 중곡과 일본간에 "지나"와 "중화"의 한자 의미해석이 다른데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문자옥의 변형적인 산물이다. 일본의 패전후 어쩔 수 없이 "중국"의 국호를 인정했는데, 현재의 일본인들은 "중국"을 그저 보통의 국명으로 인식하고 있고, "중국"에 대하여 "중앙의 나라"라는 오만한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국인들이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2004년 3월 8일 일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