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韓信)은 왜 독립하지 아니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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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신)

2007. 11. 30.

 

한신이, 유방, 항우와 삼분천하(三分天下)를 할 실력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가 유방에게서 독립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이중천(易中天)교수는 "부인지인(婦人之仁, 아녀자의 약한 마음)"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한신이 주관적으로 삼분천하를 준비할 결심이나 의지가 없었고, 정치적인 식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한신의 주관적인 데서 이유를 찾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같다

 

첫째는 한신이 '부인지인'과 같은 류의 우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둘째는 한신이 시국을 잘 살펴보았지만, 유방을 벗어나서 독자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포기한 것이라는 것.

 

이 중에서는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한신이 유방에게서 독립하여 독자세력을 갖추는데 가장 좋은 시기는 항우와 유방이 대치하면서 누구도 상대방을 꺽지 못하던 기간이면서, 마침 항우가 보낸 용차(龍且)의 대군을 무찌른다음 병력이 크게 증가하였을 때였다. 이 때 두 사람이 그에게 독자세력화를 권유했다. 한 사람은 항우가 보낸 무섭(武涉)이었는데, 항우가 거절했다. 이것은 정상적이다. 그는 아무래도 항우의 이익을 위하여 그에게 권한 것이고 결국은 항우는 적국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은 괴철(徹, 즉 通)이었다. 그는 어떤 배경을 지닌 것도 아니고, 그의 말에서 살펴보더라도 한신의 이익에서 출발해서 그에게 권한 것이었다.

 

괴철이 한신에게 유방을 벗어나서 독자세력을 구축하도록 권유한 요점은 네가지이다.

 

첫째, 초한이 3년이나 서로 대치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 한신의 군사력은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두 주군의 운명이 한신에 달려 있다. 한신이 한의 편을 들면 한이 이기고, 한신이 초의 편을 들면 초가 이기게 되었다"

 

둘째, 사람은 욕심이 많고 마음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며, 유방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원래 문경지교였던 장이, 진여도 나중에 서로 적이 되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되었다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셋째, 전투능력과 용감함이 주군보다 뛰어난 자는 몸이 위험하고, 공이 너무 커서 천하를 뒤덮는 경우에는 내릴 상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월왕 구천과 문종, 범려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넷째, 좋은 시기는 얻기는 힘들지만, 잃어버리기는 쉬우므로 주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었고, 예로 든 것들도 모두 적당했다. 한신의 지혜로 그 말을 못알아들었을리는 없다.

 

괴철이 위의 4가지중 앞의 3가지를 얘기했을 때, 한신은 며칠을 생각한 후, 그래도 유방의 휘하에 남겠다고 결정했다. 이것이 한신의 우유부단함을 설명하는 것인가? 한신은 상승장군으로 절대 결단을 내릴 때 주저하는 나쁜 습관은 없다. 한신이 며칠이나 생각하고서도 그저 '부인지인'에 의하여 어찌할 바를 결단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 며칠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괴철의 방안을 시행가능할 것인지를 분석해 보았을 것이다. 한신이 처음에 유방을 만났을 때, 항우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준 바 있고, 그것은 아주 정확했다. 이로써 볼 때, 한신은 절대 전투만 할 줄 알지,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승장군이 되려면 반드시 정확하게 적군의 장수와 병력, 그리고 아군의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즉,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인 것이다" 한신이 유방을 잘 몰랐을까? 그럴 리는 없다. 괴철이 얘기한 것은 확실히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는 즉시 거절하지 않고, 며칠간이나 생각해본 것이다. 한신은 일생동안 전투에서 패배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로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성공할 수 없는 일은 벌이지 않는 사람이다.

 

한신이 자세히 생각한 후, 그가 유방의 휘하에서 벗어나서 독자세력화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크고 성공가능성이 낮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괴철이 다시 시간이 없다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한신이 유방에 대하여 은혜를 받았다는 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란시대에 사람의 욕심과 비교해보면 은혜의 작용이라는 것은 그저 얇은 가리개에 불과할 뿐이다. 만일 은헤가 그렇게 큰 작용을 했다면, 한신은 왜 가짜 제왕에 임명해달라고 유방에게 요구하고, 해하지전때 유방이 그를 왕에 정식으로 봉하기 전에는 병사를 출정시키지 않았겠는가? 역사의 기록이 없어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정리상으로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문제는 당시 한신의 병력이 그렇게 강했고, 그가 삼분천하를 하려고 하더라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같은데, 왜 그는 성공가능성이 적다고 보았을까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유방의 무서운 점이다. 유방은 "장장(將將, 장수를 거느리는 것)"의 고수였다.

 

유방은 일찌기 한신에게 얼마나 많은 병사를 거느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물어본 적이 있다. 한신은 유방이 10만을 거느릴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신 자신은 다다익선이라고 하였다. 유방이 그에게 그런데 왜 당신이 내 밑에 있느냐고 물으니, 한신이 대답한 것이 "폐하는 장병(將兵, 병사를 거느리는 것)은 잘 못하지만, 장장(將將, 장수를 거느리는 것)은 잘합니다"라고 답변하였다는 것이다. 무엇이 "장장"인가. 이것은 단순히 장군을 지휘해서 전투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을 알고, 사람을 잘 쓴다는 것이다. 적어도 장수를 통제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성공한 군주는 모두 "장장"의 능력을 지녔다.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고, 사람을 통제한다. 고금이래로 이런 것을 잘 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유방은 확실히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유방이 한신을 잘 통제했다는 것을 알아보려면, 유방이 몇 차례에 걸쳐 한신의 군대를 빼앗고, 한신을 붙잡은 일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번째는 BC205년이었다. 한신이 위왕 표를 대파하고 위, 대의 땅을 평정하고 난 후, 유방은 사람을 보내어 그의 정예병사를 회수했고, 한신에게는 겨우 수만명만을 남겨주었다. 그리고는 조나라의 수십만대군과 맞붙으라고 했다.

 

두번째는 BC204년이다. 한신이 조나라와 연나라를 멸하고 북방을 평정했을 때였다. 유방은 돌연 한신의 군영에 들어가서 그의 침실에서 병부인신(兵符印信)을 회수하였는데, 한신은 아직 자고 있었다.

 

세번째는 BC202년이었다. 해하지전에서 항우를 이긴 후, 유방은 돌연 같은 방법으로 한신의 대군을 빼앗았다(高祖襲奪齊王軍)

 

이 중의 첫번째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두번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사람은 이를 근거로 하여, 한신은 자기의 군영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며, 한신이 무슨 위대한 총사령관의 자격은 없다고 한다. 위대한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반적인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군영을 지키고, 최소한 자기의 침실이라도 지킨다. 그러나, 한신은 그러지 못했다.

 

한신은 절대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는 적군을 기습할 줄도 알았고, 한번도 적군에게 기습을 당한 적은 없다. 유방이 그의 침실을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한신의 곁에는 유방의 첩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