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국번(曾國藩)의 부인과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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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증국번)

2008. 6. 23.

 

증국번은 7살때 부친의 곁에서 글을 읽시 시작하고, 20세가 되어서 비로소 집안 바깥으로 나가 학문을 익힌다. 그는 여러명의 스승을 모셨는데, 구양(歐陽) 선생과 뜻이 잘 맞았다. 구양선생은 증국번이 총명한데다 학문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또한 그의 '팔자'를 살펴보니, 운세가 괜찮다고 나왔다. 그리하여 그가 나서서 중매를 서게 된다. 그리하여 주(周)씨성을 가진 대부호가문의 딸을 소개시켜준다. 주씨집안에서도 처음에는 응락했고, 길일을 택하여 사주팔자를 교환했다. 증씨집안은 매우 기뻐했으며, 적극적으로 혼례와 주연을 준비했다. 그런데, 쌍방이 정한 길일이 되었는데, 증씨집안의 손님은 모두 도착했는데, 주씨집안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중매를 선 구양선생은 마음이 조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급히 주씨집안에 사람을 보내어 재촉을 하니,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이렇게 보고했다: "주씨집안의 어르신과 부인 그리고 아가씨가 상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두 집안이 문벌이 맞지 않고, 남자가 아직 공명을 못이루어 주소저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여, 혼약을 폐기하기로 정했답니다." 그러자 증씨집안의 위아래는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술도 준비되고, 손님도 왔는데, 어떻게 마무리하란 말인가? 구양선생도 호랑이등에 탄 격이라 할 수 없이 증국번부자와 상의를 했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방법이 없는 것같습니다. 우리 집안이 미천한 것을 거리끼지 않으시고, 집안이 청빈한 것을 꺼리지 않으신다면 우리 집에 딸이 있습니다. 약간 글도 알고, 여홍(女紅)도 할 줄 압니다. 단지 용모가 좀 추합니다(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이 곰보자국이 있음). 괜찮으시다면 우리 두 집안이 사돈을 맺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이 맺어진다. 구양선생의 딸이 바로 증국번의 부인인 구양부인이 된다.

 

증국번 부부는 모두 아들 셋을 둔다. 장남은 증기제(曾紀弟)인데, 두 살때 요절한다. 그 후에 낳은 증기택(曾紀澤)과 증기홍(曾紀鴻)은 모두 장성하여 성인이 된다. 증국번은 자녀교육에 아주 힘을 쏟았다. 일찌기, "자손이 큰 관리를 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글을 읽고 이치에 밝은 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들이 글을 읽고 이치에 밝게 하기 위하여, 그는 매일 아들에게 반드시 네 가지를 하도록 했다. 바로 간(看), 독(讀), 사(寫), 작(作)이 그것이다. 간,독은 5페이지 이상, 사는 100자이상, 작은 매 3일, 8일마다 글하나 시하나였다. 비록 부자간에 천리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시간을 내서 집으로 편지를 쓰고 세심하게 지도했다. 이렇게 지도하는데서 어른의 자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스승처럼 잘 지도했다. 그는 자주 자기의 득실을 가지고 자식들에게 교훈을 내렸다. 그리고 자식들이 중국의 경,사,자,집을 공부할 뿐아니라 외국지식도 익힐 것을 요구했다. 가능한 많은 지식을 쌓도록 요구했는데, 당시 수구 봉건적인  사람들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증기택은 부친의 지도하에 중국의 시문서화에 조예가 깊을 뿐아니라, 서방의 수학, 물리, 화학, 언어에도 강렬한 흥미을 보인다. 일찌기 <<기하원본서>>, <<문법거고서>>, <<서학술략서>>등의 글을 써서 당시 서방과학을 전파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는 또한 스스로 여러나라의 문자를 배워서, 영어에도 능통했다. 그리하여 나중에 청나라의 유명한 외교가로 성장한다. 나중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4국 흠차대신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주러시아공사를 지내면서 러시아와 다투어 마침내 청나라정부이부좌시랑 숭후와 러시아가 체결한 <<리바지아조약>>(일명 숭후조약)을 폐기시킨다. 1881년 2월 24일, 다시 러시아외교대신 키르스와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중러이리조약>>을 체결한다. 그리하여 이리의 9개성 길이 600리, 너비 200리의 토지를 회복하는 외에 숭후조약에서 빼앗긴 이리남부 길이400리, 너비 200여리의 트크스강입구남쪽의 광대한 토지를 가져오고, 제정러시아의 신강일대에서의 여러 특권을 폐지시키며, 일부 영토주권을 회복한다. 이는 날로 부패하는 청왕조에서 거의 유일한 외교적 승리였다.

 

증기홍은 증기택보다 9살이 어리다. 동치3년(1864년) 7월, 그의 부친이 막 후작을 받았을 때, 16세인 그는 장사로 가서 향시에 참가하고 있었다. 당시 정치가 부패하여, 과거시험에서는 쪽지를 주고받는 것이 성행했다. 증국번은 자식이 잘못된 길로 들어갈 것을 우려항, 시험을 치기전인 7월 초7일 증기홍에게 보낸 서신에서, "시험장에서 주현과 교류하지 말라, 쪽지를 보내지 말라, 관료의 길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자중해야 한다" 시험을 마치고 방이 붙기전에 아들이 다니면서 활동을 할까 걱정하여, 7월 24일 다시 아들에게 경계하도록 한다:"절대 쪽지를 보내지 말고, 선물을 돌리지 말라" 이번 향시에서 증기홍은 낙방한다. 이후에 여러번 응시하지만, 겨우 "승록부공생"에 오를 뿐이다. 증기홍은 한번도 쪽지를 보내지 않았고, 증국번도 주시험관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특권이 성행하던 봉건시대의 관료사회에서 이는 드문 일이었다. 증기홍은 나중에 스스로 성장하여 <<대수평해>> <<원율고진도해>> <<율포연초>>등의 수학관련 전문서적을 남긴다. 그는 중국근대의 저명한 수학자였으나, 아쉽게도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증국번의 직계 제4대손은 모두 15명이다. 관례에 따라, 족보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올리지 않는 것이지만, 이 족보에는 두 명의 여자이름이 올라 있다. 증보손(曾寶蓀), 증보함(曾寶)이 그들이다. 보손과 보함의 앞에는 '정녀(貞女)'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다. 이는 두 사람이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15명중에서, 소윤(昭潤), 소규(昭揆)가 20세에 요절하고, 소용(昭榕)이 24살에 요절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2명이 모두 대학학력을 지녔으며, 각자 전문분야에서 활약했다. 증보손, 증약농은 영국유학을 했고, 증소권, 증소환은 미국유학을 했다. 증보손, 증약농은 나이가 가장 많은데, 둘 다 광서19년(1893년)에 태어났다. 영국유학후에 둘은 장사에 "예방"여학교를 창립한다. 1946년봄, 호남극강학원을 만들고, 증약농이 원장이 되고, 증보손은 다시 "예방"여학교를 만든다. 해방전날, 두 사람은 홍콩을 거쳐 대만으로 간다. 증보손은 국민대회대표를 지내다가 1978년 7월에 병사한다. 향년 86세이다. 증약농은 대만대학 교수, 동해대학 최초학장을 지내다가 1987년 12월에 병사하니, 향년 95세이다. 다른 형제자매들중 소엽은 1949년 홍콩에서 비행기사고로 사망하니 나이 겨우 43세이다. 소가는 미국으로 가서 1992년에 병사하니 나이 74세때이다, 소권 소면, 소간과 보함은 모두 대륙에 남는다. 보함이 의사를 하는 외에 나머지는 모두 문화교육계에서 활약한다. 소권은 일찌기 호남대학 전기과 주임을 맡았는데, 문혁때 무한에서 죽는다. 소면은 호남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이미 퇴직했다; 소간도 퇴직해서 북경에서 일한다.

 

증국번에게는 네명의 동생이 있다: 둘째가 증국황(曾國湟)이고, 셋째가 증국화(曾國華, 나중에 숙부 증고헌의 양자가 되어 입적한다), 넷째가 증국전(曾國), 다섯째가 증국보(曾國)이다. 이 4명의 형제들은 모두 6명의 아들을 두고, 14명의 손자, 41명의 증손자를 둔다. 제5대 제6대는 이미 국내외에 퍼져 있어서 통계를 내기조차 힘들다. 이들 후대에서 재화가 뛰어나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서는 6명만 소개하기로 한다.

 

증광식(曾廣植)은 증국화의 손자이다. 1948년 미국에 유학하여, 인디아나주 파드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한다. 1956년, 대륙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미국이민국에 의하여 정신병원에 불법입원당한다. 14개월간 고생한 후에도 여전히 귀국하겠다고 하자, 미국이민국에서 축출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1957년 7월에 대륙으로 돌아온다. 귀국후 그는 중국과학원 상해화학연구소 부연구원을 지낸다. 그는 무독당정을 개발하여 국내외과학게의 주목을 받는다. 이 성과는 미국에서도 응용되고 특허권을 취득한다.

 

증소륜은 증국황의 증손자이다. 1920년 국비로 미국에 유학한다. MIT에서 화공을 전공한다. 1926년졸업하여 화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졸업후 그는 학교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하여 화공방면의 연구를 한다. 중앙대학, 북경대학 화공계에서 교편을 잡고, 화학과주임이 된다. <<중국화학회회지>>를 창간하여 20여년간 총편집을 맡는다. 그리고 <<과학>> <<화학>> <<화학공정>>등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많은 논문을 발표한다. 1946년 다시 서양으로 가서 MIT에서 교편을 잡는다. 1947년에는 유럽에서 강의하고, 1948년에는 홍콩에서 신문업계의 일을 한다. 해방전날 주은래총리가 정협회의에 참가해달라고 부르자 흔쾌히 참석한다. 북경대학 교무장 겸 화학계주임, 교육부부부장 겸 고등교육사사장, 전국과학연맹 부주석, 중국과학원 화학연구소장, 전국고분자위원회주임등의 직위를 맡는다. 불행히 1957년에 우파로 몰린다. 1967년 12월에 무한에서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다. 1981년에야 명예가 회복된다.

 

증헌식은 증국전의 현손녀이다. 일찌기 혁명에 투신한다. 해방후 전국부녀연맹에서 일한다. 전국부녀연맹 부주임등의 직을 지낸다. 그녀는 섭검영의 부인이기도 하다. 섭검영과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섭신평(葉新平)이다. 항일전쟁시기에 두 사람은 일이 바쁘다보니, 아들을 호남 고향에 있는 증헌식의 부친 증진위에게 대신 길러달라고 한다. 이때 함께 맡긴 것이 섭검영의 전처의 아들인 섭선평(葉選平)도 있다. 두 형제는 모두 증씨집안에서 자라고, 학교다닌다. 섭검영도 여러차례 증씨집안을 찾아 아들을 봤다. 섭선평은 증씨집안을 좀 일찍 떠나고, 섭신평은 해방초기에 섭검영이 광주에서 일할 때 비로소 떠난다. 섭신평은 나중에 국방부에서 일하는데, 문혁때 박해를 받아 오른손이 절단된다. 지금은 왼손으로 글을 쓰는데, 서법이 뛰어나다.

 

증후희도 증국전의 현손이다. 그는 어려서 회화를 좋아하여, 부친인 증소평이 그에게 팽씨성의 스승을 붙여준다. 1948년 8월, 그는 장사에서 구룡으로 가고 홍콩에 자리를 잡는다. 1950년, 그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등에서 화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받는다. 오래지 않아, 그는 화남대학 예술학원장을 맡는다. 나중에, 그는 저명한 화가 장대천과 브라질, 프랑스로 가서 화전을 연다. 그의 족적은 유럽, 미주, 아프리카, 아시아,대양주의 20여개국가와 지역에 걸쳐 있고, 이란, 요르단, 프랑스등에서 영예상을 받았고, 유엔에 의하여 문교위원으로 피선된다.

 

증소귤은 증국황의 증손녀이다. 금릉대학 국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에서 문학석사를 받고, 런던대학에서 조교를 지낸다. 중국의 저명한 여자고고학자로, 남경박물원 원장을 지낸다. 중국박물관학과 고고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중 하나이다.

 

증헌해는 증국전의 현손녀이다. 장사예방여학교를 졸업하고, 호남대학 문과에서 공부하고, 연경대학의 문학석사를 지낸다. 중국인민대학 교수 겸 역사연구소 부소장을 지냄 <<칠칠노구봉화>>들 저작이 있으며 대량의 시사와 논문을 발표함. 평생 결혼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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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번의 자녀

 

장남: 증기택  청나라말기의 외교가

차남: 증기홍  청나라말기의 수학가

 

장녀: 증기정(曾紀靜) : 상담진사 원방영의 아들 원유생(袁楡生)과 결혼

차녀: 증기요(曾紀耀) : 동릉 진애운의 아들 진송생(陳松生)과 결혼

삼녀: 증기침(曾紀琛) : 상군유장 나택남의 아들 나윤언(羅允言)과 결혼

사녀: 증기순(曾紀純) : 곽숭도의 아들 곽의윤(郭依允)과 결혼

오녀: 증기분(曾紀芬) : 섭운봉의 아들 섭집규와 결혼(강소,안휘,절강순무를 지냄)

 

증국번의 손자녀

 

[증기택의 자녀]

1. 증광전(曾廣銓, 원래 기홍의 넷째아들이나 입적) : 이품 한국, 독일 흠차대신, 평강 이원도의 딸과 결혼

2. 증광란(曾廣) : 2등의용후를 물려받음. 도찰원좌부도어사, 어전산일대신, 장사 진창수의 딸과 결혼. 측실은 무강 주씨, 유양 황씨.

3. 증광선(曾廣璇, 여): 이홍장의 조카, 이학장의 아들 이경복과 결혼

4. 증광순(曾廣珣, 여): 귀안 오영과 결혼

 

[증기홍의 자녀]

1. 증광균(曾廣鈞) : 광서진사, 광서지부, <<환천실시집>> <<하락산술>>을 저술, 장사 당수남의 딸과 결혼, 계실 조씨, 측실 사씨, 진씨, 사씨가 있음.

2. 증광용(曾廣鎔): 이품, 호북보임도, 서리호북안찰사, 안화 황자원의 딸과 결혼, 후실 장사 주명달의 딸.

3. 증광종(曾廣鍾): 절강후보도, 덕양 소소의 딸과 결혼, 후실은 본읍 진의생의 딸.

4. 증광산(曾廣珊, 여): 완평 유민이와 결혼, <<만화산관시초>>가 전함.

 

증국번의 증손자녀

 

1. 증약농(광전 장남): 저명교육자, 영국런던대학 이과공정과학사, 영국황실광학원 채광계 엔지니어, 대만동해대학학장, 대만총통부국책고문

2. 증소항(광전 차남): 상해미술전문학교 졸업, 장사화중미술학교 교장

3. 증소엽(광균 삼남): 홍콩대학 문학사, 광서성정부고급고문

4. 증소가(광균 오남):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5기 졸업, 군정부 외사국 소령참모

5. 증소건(광용 삼남): 호남대학 상과 학사, 천진공로국 선위단 회계주임

6. 증소억(광용 사남): 국립 남양대학 철로관리과 학사, 북평철로관리학원 교통박물관 주임

7. 증소면(광용 오남): 상해무선전문학교졸업, 한구공로국 무선전시대대장, 해방후 호남성 광보전시국근무

8. 증소간(광용 육남): 교통대학 공무관리과 경제학 학사, 북경중앙희극학원 근무

9. 증소권(광종 장남): 미국 MIT 전기공정학 학사, 호남대학 전기과주임, 교수

10. 증소환(광종 차남): 미국 일리노이대학 철로토목공정 학사, 복단대학 교수

11. 증소용(광종 사남): 산동일화공장 담임주임

12. 증보릉(광용 장녀): 선화 요원륜에 시집감. 그녀의 아들 장경(원래 성은 요)은 연안노예희극계 주임, 해방후 중앙희극학원장을 지냄.

13. 증보순(광전의 딸): 우수교사, 상해노강대학 졸업, 예방소학교 교장, 장사낙고도항소학교 교장, 모정자소학교 교장등응 역임. 이속의의 증손 이진송과 결혼

14. 증보소(광란의 딸): 화중대학 이과 학사, 익양의 채성서와 결혼, 미국으로 이주

15. 증보손(광균의 딸): 영국런던대학 이과 학사, 현대교육가

16. 증보묘(광균의 의녀): 광동 중산대학 도서관 근무

17. 증보지(광용 이녀): 장사복상여학교 졸업, 완평 풍대가와 결혼

18. 증보형(광용 삼녀): 장사예방여학교 초,고등부 졸업, 장사 우희걸과 결혼

19. 증보시(광용 사녀): 저명한 여성번역가, 연경대학 졸업, 장사 우희검과 결혼, <<과학가분투사화>> <<과학세계명인전>>등의 저작이 있음.

20. 증보사(광용 오녀): 북평패만중학졸업, 유양 유작섭과 결혼

21. 증보하(광종 장녀): 본읍의 주국전과 결혼

22. 증보함(광종 차녀): 농해, 월한철로 엔지니어, 절강항주광제의학원 의학박사, 광제의원 아동골과 주임, 영,미,독,프,스위스 5개국 의학연수, 결혼하지 않음.

 

증국번의 현손자녀

 

1. 증헌문(증소규의 아들, 원래 증소권의 차남인데 입적): 상아의학원 졸업, 북경협화의학원 졸업, 낙양인민병원 주임의사

2. 증헌형(증소항의 아들): 호남의학원 교수

3. 증헌화(증소가의 아들): 미국이민

4. 증헌화(증소면의 아들): 장사원림국에서 은퇴

5. 증헌삼(증소권의 장남): 중국인민대학 마르크스레닌주의교육연구실 교수, 사망

6. 증헌이(증소용의 아들, 원래 증소권의 삼남): 전력엔지니어, 산동대학에 근무

7. 증헌희(증소항의 딸): 서안철로국

8. 증헌개(증소가의 장녀): 미국이민

9. 증헌지(증소가의 차녀): 미국이민

10. 증헌동(증소건의 장녀): 부대전업, 대동시제일건축공사 회계에서 은퇴, 산서대동시 간부휴게소

11. 증헌장(증소건의 차녀): 계약인민의원 주임의사. 은퇴

12. 증헌기(증소건의 삼녀): 화남이공대학 졸업, 장사화공연구원 고급엔지니어

13. 증헌염(증소면의 장녀): 의사, 광동 중산 거주

14. 증헌장(증소면의 차녀): 악양면방공장 근무

15. 증헌평(증소면의 삼녀): 장사철로국 근무

16. 증헌방(증소면의 사녀): 장사대학 근무

17. 증소연(증소간의 딸): 중앙희극학원 근무

18. 증헌원(증소권의 장녀): 북경대학 졸업, 인민교육출판사 편집심의위원

19. 증헌황(증소권의 차녀): 은퇴 성인민정부

20. 증여검(증소환의 딸): 병독학자, 미국 디트로이트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