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朱子)는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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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2008. 12. 8.

 

 

 

글: 월초(越楚)

 

남송 영종 경원2년, 일대거유인 주희(朱熹)는 하룻밤만에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주자는 이후 몇년간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다" "가짜군자" "가짜도학자"라는 오명을 들어가며 비참하게 세상을 뜬다.

 

그렇다면, 역사상 주희는 도대체 비구니를 첩으로 삼은 사실이 있는가?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이 일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역시 "경원당안(慶元黨案)"부터 시작해야 한다. <<송사>> 권37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은 남송 영종 경원2년 12월(1196년)에 일어났다. 당시 감찰어사 심계조는 주희를 탄핵했는데, 주희의 10대죄상을 나열했다. "군왕에 불경하고" "나라에 불충하고" "조정을 가지고 놀며 모욕하고" "풍기와 교육을 해하고" "사사로이 사람과 재물을 쓰고"등등이 있는데, 그 중에 "비구니 2명을 유인하여 첩츠로 삼고 매번 관직에 나갈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집안의 며느리가 남편이 없는데도 임신을 했다" 이 두 가지를 들어 주자는 "나이가 들어서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호색하여, 일찌기 두 비구니를 유혹해서 첩으로 삼고, 외직에 나갈 때마다 곁에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고, 그의 집안에 며느리가 있는데, 남편이 죽은 후에 임신을 하게 만들어, "시아버지인 주자와 관계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심계조는 주희를 참수하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경원당안"이다.

 

"경원당안"은 확실히 잔혹한 정치투쟁이다. 영종때의 외척인 한택주가 한때 조정을 좌지우지 했다. 주희의 친한 친구이자 당시에 재상을 지내던 조여우(趙汝愚)는 한택주가 조정을 독단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한택주는 조여우를 공격하고자 했지만, 그의 제자가 너무 많은 것때문에 꺼렸다. 잘못하다가는 자기의 발등을 찍을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가짜학문"이라는 것을 통하여 동시에 조여우와 주희 그리고 그 제자들을 타도하려고 하였다. 원래 이 상소문은 당시 감찰어사를 맡고 있던 호굉(胡紘)이 초안을 써놓았는데, 호굉이 태상소경으로 승진해가면서 언관의 자격을 잃게 됨에 따라 잠시 방치하고 있었다. 마침, 심계조가 감찰어사로 승진하자, 한택주는 개인관계를 통하여 호굉으로 하여금 초안한 상소문을 심계조에게 건네주게 하고, 심계조로 하여금 상소문을 올리게 한다. 최종결과는 영종이 원칙적으로 '상소문을 윤허'한다: 조여우는 영주로 귀양가고, 주희는 탄핵받아 관직을 잃는다. 송영종은 도학(道學)을 위학(僞學, 가짜학문)으로 선언하고, 도학을 전파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후 도학선생을 "역당"으로 몰아 타격을 가하고 제거해버린다. 당시 조정에서 "위학역당"으로 몰린 관리가 59명이나 되었다. 주희는 당연히 이 "위학역당"의 괴수가 된다. 그리하여 주희의 여러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숨어서 겨우 스스로의 목숨을 보전하거나, 다른 사람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이는 한택주, 심계조, 호굉등이 고의로 주희를 모해한 것이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송영종 조확이 왜 자기의 스승이며 당대의 거유에게 이처럼 심한 처벌을 했느냐는 점이다. 사실 문제는 바로 주희 자신에 있었다.

 

주희는 실제로 글만 읽은 사람이다. 성격이 지나치게 강직하다. 송효종때 일찌기 연속 6번 상솔르 올려서 당시 부정부패한 태주지부 당중우를 탄핵하여, 권력자의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 송영종이 즉위한 후, 재상 조여우의 추천을 받아, 주희는 환각장시제 겸 시강을 맡았다. 황제고문 겸 황제스승이 된다. 당시 주희는 이미 65세여쓴데, 이치대로라면 안분지족하여야 하는데, 그는 여전히 늙은 것을 무기삼아서 황제에게 이런 저런 충고를 했다. 한편으로 송영종에게 <<대학>>을 강의하면서, 한편으로 상소를 올리거나 대면하여 황상에게 "극기자신, 준수강상"을 요구했고, "좌우측근들이 권한을 빼앗아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러니, 황제가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라, 어느 황제 혹은 제1인자가 늙은이가 항상 곁에서 쉬지않고 이게 잘못되었다, 저게 잘못되었다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리하여 송영종은 아주 예의바르게 말한다: "당신은 연세가 많으니, 서서 강의하는 것이 힘드실테니, 궁관에서 관직을 맡으시는게 좋겠다" 그러나, 주희는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다시 계속하여 사직하겠다는 것을 가지고 황제를 협박한다. 송영종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류한다: "사직한다는 말은 짐의 그대와 같은 현명한 인물을 우대하려는 본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황제는 입으로는 아주 예의있게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노해서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두고보자고.

 

주희의 언행은 자연히 한택주 일당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들은 주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리하여 심계조의 주희를 탄핵한 글이 나오게 된 것이고, 영종이 즉시 주희의 직위를 박탈해버린 것이다. 이번에 황제는 아주 시원시원하게 처리했다. 마치 누군가가 주희를 탄핵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중요한 것은, 주희가 글을 올려 자신의 "사람과 재물을 사사로이 쓰고"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다"는 등등의 죄목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오늘 바른 길을 찾겠다"고 한다. 주희가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역대이래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만일 이 일이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면, 주희는 왜 스스로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다'고 인정했는가? 자기 스스로 자기의 머리에 오물을 끼얹는 꼴이 아닌가? 만일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타협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전의 주자의 성격에 비추어 맞지가 않다. 그리고 이 죄를 인정하는 글이 이후 후세에 주희를 '가짜군자'로 공격하는 중요한 꺼리가 된다.

 

일대 거유를 이처럼 낭패하게 만들고, 명예를 땅에 떨어지게 하였는데, 그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