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匈奴)” 명칭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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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한)

2011. 5. 11.

 

 

작자: 미상

 

흉노라는 단어는 외국어를 번역한 용어이다. 중국고대문헌에서 흉노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아래의 몇 가지 서적에서이다:

 

첫째, <<전국책.연책>>을 보면, 진나라의 장군 반어기가 반란을 일으켜 연나라의 태자단에게 도망을 치는데, 연나라의 태부 부국무는 태자단에게 반어기를 받아들이지 말고, 반어기에게 흉노로 도망치도록 하자고 한다. 그러나 태자단은 단은 강국인 진나라가 압력을 가한다고 하여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버려서 흉노로 보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사건은 진시황19년에 발생했다(기원전227)

 

둘째, <<사기.진본기>>를 보면, 진혜왕후칠년, “, , , , 제가 흉노와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기원전318년에 발생했다.

 

셋째, 한나라초기의 정치평론가인 가의(賈誼) <<신서>>에는 대량의 흉노라는 단어가나타난다.

 

넷째, <<일주서.왕회해>>에는 흉노교견(匈奴狡犬)”이라는 네 글자가 있고, 책의 뒤에 첨부로 붙여놓은 <<성탕헌령>>에는 북방의 13개 이민족을 열거하고 있는데, 바로 공동, 대하, 사차, 고타, 단략, 맥호, 융적, 흉노, 누번, 월지, 섬리, 기룡, 동호이다.

 

아래에서 이를 분석해보자.

 

<<일주서>>는 진()나라 태강2(281ss)에 발급군의 고묘를 도굴해서 얻은 것이다. 이 묘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전국시대 위나라 안리왕의 묘이다. 위나라 안리왕은 기원전243년에 사망했다. 18년후에, 위나라는 진나라에 멸망한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전국시대 말기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책은 전국시대 말기의 인사가 쓰면서 상,주 시대의 일을 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에 서역의 제국중 사차(莎車)등이 나오는데 이는 장건이 서역에 사신으로 가고 나서야 중국인들이 알게 된 것인데, <<일주서>>의 작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일주서.왕회해>>가 후세인의 위작인데, <<일주서>>에 붙어서 후세에 전해진 것일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일주서>>가 전국시대 말기의 작품이라는 것은 비교적 믿을 만하다. 다만, 우리는 <<일주서>>이외에, 전국말기의 다른 저작에서는 흉노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북방의 유목민족부락은 왕왕 호맥()’ 혹은 ()”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이를 보면 전국시대 말기에 이미 흉노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널리 쓰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흉노라는 명칭은 한나라초기에 저명한 정치평론가이자 문학가인 가의가 저작에서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다. <<사기>>의 작자인 사마천, <<전국책>>의 작자인 유향은 모두 가의보다 후대의 사람이다. 그들의 저작에서 흉노라는 단어를 쓴 것은 모두 가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흉노라는 두 글자는 글자 자체만 보더라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았다. 원래 부르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고, 이것은 원래의 발음을 참고하여 만든 것일 것이다. 우리가 현재 미국(美國)’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한자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둘은 좋은 뜻의 글자를 골라서 한자로 만든 것이고, ‘흉노(匈奴)”라는 것은 좋지 않은 의미의 글자를 모아서 만든 것일 뿐이다. 유럽에서 흉노의 후예에 대한 칭호는 “Huns”이다. ‘족인 것이다. 고대 한어에서, “()”()”는 발음이 비슷했다. , “Huns”의 앞부분 “hun”과 비슷한 것이다. 아마도 흉노의 정상적인 음역이었을 것이고, “은 악의적인 음역이었을 것이다. “흉노라는 것은 흉의 노예라는 뜻이니 악의적인데다가 악의적인 것을 더한 음역이었을 것이다.

 

만일 이상의 추리가 정확하다면, 전국말기의 저작자의 글에서 나오는 또는 호맥은 후세의 흉노를 가리키는 것이다. , 이 전국시대에 굴기하기 시작한 유목국가의 2개의 한자표기는 한편으로는 또는 호맥으로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흉노라고 한 것이다. 하나는 객관적 음역이고 하나는 악의적 음역이다. ,한 시대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쓰였다. 다만, 이때 흉노가 중원을 자주 침략했기 때문에 가의와 같은 사람이 그들을 흉노라고 불러버린 것이다. 이렇게 부름으로써 그들에 대한 분노의 뜻을 표출했던 것이다. 후세에도 이를 따라서, 흉노라는 명칭이 계속 전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흉노족들도 한족과 교류할 때는 스스로를 흉노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다. 서한말기에 왕망은 흉노를 강제로 항노(降奴)”라고 고쳐부르게 한 적이 있다. 선우(單于)복우(服于)”로 고치게 했다. “자조차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원래 선우(單于)”탱리고도선우(撑梨孤塗單于)”의 줄임말이다. “탱리는 하늘()을 뜻하고, “고도는 아들()을 뜻하며, ‘선우넓고 크다(廣大)’는 뜻으로 수식어이다. ‘탱리고도선우를 줄인다면, 당연히 탱리고도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한어의 규칙에 따라 전반부를 수식어로 보고 줄여버리고, 후반부의 형용사를 오히려 주체로 인식하여 남겨버렸던 것이다.

 

라는 칭호는 진한시기에는 동시에 사용되었다. 예륻 들어, “동호(東胡)”도 동호부족의 자칭은 절대 아니다. 한족들이 그들을 부른 칭호일 뿐이다. 그 뜻은 동쪽의 호인(오랑캐)’ 혹은 (흉노)의 동쪽에 사는 부족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흉노의 동쪽에 살았고, 이는 흉노에 대한 상대적인 위치를 표시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 의 의미는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이민족 특히 북방의 이민족을 통칭하여 라고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