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자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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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2012. 5. 30.

글: 진사황(秦四晃)

 

진왕 영정은 육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고나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친다: "짐은 시황제이다. 후세는 숫자로 계산한다. 이세부터 삼세, 만세까지 영원무궁하게 전해지도록 할 것이다."(<사기.진시황본기>). 시황제의 뜻은 그를 시작으로 하여 그후 중국의 황권은 모두 영씨자손들이 장악하여, 일대 일대 전해져 내려가고, 대대손손 강산은 색깔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이천여년의 '가천하'의 전통은 이때 기초를 놓은 셈이다.

 

기원전211년, "겨울, 십월, 계축, 시황제가 바깥으로 순유를 떠났다: 좌승상 (이)사가 따라갔고, 우승상 거질(去疾)이 함양을 지켰다. 시황제는 스물몇명의 아들중에서 어린아들 호해(胡亥)를 가장 사랑했다. 따라가고 싶다고 청하니, 황상이 허락했다." (<자치통감. 진기이>) 영정이 황제가 된 후 10년째 되는 해, 그는 좌승상 이사, 어린 아들 호해등을 데리고, 그의 황제임기내의 다섯번째 순유를 떠난 것이다.

 

"가을, 칠월, 병인, 시황제가 사구평대에서 붕어하다."(<자치통감.진기이>). 기원전210년 가을, 그는 도성 함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막 쉰 살이 된 진시황은, 오늘의 하북성 형태시 광종현 경내의 사구평대에서 돌연히 사망한다. 그는 자신의 사후 이세, 삼세에 관한 일을 안배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눈을 감고 만다. 그가 희망을 걸었던 자손들은 그의 바람대로 황제의 자리를 계속 유지해가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황권으로 인하여 하나하나 비명에 간다.

 

첫번째로 죽은 것은 큰아들 부소(扶蘇)이다. 부소는 성격이 부드럽고 착했다. 그는 부친의 폭정에 계속 반대했고, 시황제에 의하여 북방의 변방으로 보내어졌다. 거기서 몽염장군의 감군으로 있었다. 돌연 어느 날, 그는 부황의 <조서>를 받는다: "부소는 아들로서 불효하여, 검을 내리니 스스로 자결하라!"(<사기.이사열전>). 부친이 죽으라고 하니 그는 조서를 받들고, 곡을 하였다. 그와 함게 병력을 이끌던 몽염은 이 조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좀 기다려서 사실확인을 해본 후에 결정하자고 한다. 부소는 부친의 말을 잘 듣는 착실한 아들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몽염에게 말한다: "부황이 죽으라는데 어찌 다시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자치통감.진기이>). 부친이 아들을 죽으라고 하는데, 다시 물어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말을 마치고 사신의 앞에서 검을 꺼내서 자결한다. 이렇게 그는 젊은 생명을 마감한다.

 

이것은 진시황의 자손들이 참혹하게 죽는 서막에 불과했다. 후세에는 모두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고 있다. 바로 진시황의 생활비서 겸 호위대장인 조고(趙高)였다. 조고는 진시황의 생전에 가장 신임하던 자이다. 그런데 그가 어찌 이런 음모를 꾸몄을까? 진시황의 이번 순유때 조고는 당연히 따라갔다. 진시황이 죽을 때, 조서 한 통을 큰아들 부소에게 보낸다. 그것은 자살하라고 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빨리 함양으로 돌아와서 뒤를 이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조서를 다 쓴 후, 비서인 조고에게 맡겼다. 황제의 어새를 보관한 조고가 황제의 어새를 찍은 후 보내야 했다. 조고는 진시황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보고는 이 조서를 발송하지 않고 묵혀 둔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시황제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목숨을 거둔다. 조고는 그의 학생이자 항상 그의 말이라면 모두 따드던 호해를 조용한 곳으로 부른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호해에게 말한다: "황제가 죽었다. 유서로 누구를 태자로 삼을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오로지 너의 큰 형님인 부소에게만 서신을 남겼다. 큰형이 함양으로 일단 돌아오면, 용상은 분명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호해는 천진한 아이였다. 그는 말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명군이 신하를 가장 잘 알고, 명부가 자식을 가장 잘 아는 법입니다. 부친이 큰형을 선택했고, 나에게 뒤를 잇게 하지 않았으니 부친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조고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너는 어찌 그렇게 멍청하냐. 황제와 신하는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사람을 지배하는 것과 지배당하는 것은 절대로 다른 것이다." 호해는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을 몰아내고 동생이 황제가 되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부친의 명을 듣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효입니다. 능력도 없고 재능도 얕으면서 다른 사람의 공을 억지로 차지하는 것은 불능입니다. 세 가지는 덕에 역행하는 것이니 천하가 따르지 않을 것이고, 몸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고, 사직도 흔들릴 것입니다."(<사기. 이사열전>). 그의 뜻은 스승이 나에게 불의, 불효하고 또한 능력이 없는데도 억지로 형의 자리를 빼앗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조고는 소리친다: "고대이래로 부친과 형을 죽이고 황제위에 오른 자는 수두룩하다. 네가 신경쓸 것없다. 내가 처리하면 된다." 호해는 결국 스승의 말에 설득을 당한다. 그래서 응락한다. 조고는 이익으로 유인하고 위력으로 협박하는 수단을 써서 승상 이사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장남 부소에게 자결하라는 조서를 보낸다. 호해는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큰형의 목숨을 빼앗게 된다.

 

조고의 수완하에 호해는 '진이세'로 황제에 오른다. 그는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다. 모든 것을 스승 조고의 말대로 했다. 조고는 말한다: "네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의 공이다. 지금 '선제의 대신'들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네가 그들의 계하수가 될지 모른다." 진이세는 "좋습니다"라고 말한다(<사기.진시황본기>" 여기서 '좋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노신들과 형제들에 대한 살륙이 시작된다.

"몽의등 대신을 죽이고, 공자 12명이 함양시에서 죽임을 당한다. 공주 10명은 두(杜)에서 죽임을 당한다."(<사기.이사열전>). 호해의 12명 친형제는 함양의 길거리에서 참수되고, 10명의 자매들은 두우(함양의 동쪽)에서 분시된다.

"공자장려 곤제 3인은 내궁에 가둔다. 그의 죄를 나중에 논의한다. 진이세는 사신을 보내어 장려에게 말한다. '공자는 신하답지 못하니 죄가 죽어마땅하다." 장려가 말한다. '궁정의 예를 나는 따르지 않은 바가 없고, 사당의 자리에서 나는 예절을 잃은 바가 없으며, 명을 받아 응대함에 나는 말을 잘못한 바 없다. 그런데 어찌 신하답지 못하다고 하는가. 원컨대 죄가 무엇인지는 알고 죽고 싶다.' 사신이 말한다. '신은 같이 애기할 수 없습니다. 명대로 따를 뿐입니다.' 장려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하늘'을 세번 외치고 말한다. '나는 죄가 없다.' 곤제 3인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검을 ㅃ보아 자살했다. 종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자치통감.진기이>). 진공자 장려의 형제 3명은 내궁에 구금되어 죄를 둗기를 기다렸다. 호해가 사람을 보내어 이 몇몇 형제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신하답지가 못했다. 그러니 모두 죽음을 당해야 한다. 그러자 장려가 변명했다. 조정에서 우리는 황제를 위하여 찬송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우리는 잘못한 바가 없다. 황제의 앞에서 명을 받을 때도 우리는 글자 한자 한자 똑바로 말했다. 어찌 신하답지 않다고 하는가. 우리는 죽더라도 이유나 알고 싶다. 그러자 온 사신은 말한다. 이것을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명대로 따를 뿐입니다. 장려는 그 말을 듣고 절망하여 하늘을 우러러 하늘이시여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를 외친다. 설마 호해가 황제가 되고 나서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려 한단 말인가? 형제 세 명은 서로 붙들고 울면서 원망속에 목숨을 마감한다. 일시에 종실자제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불안해 했다.

 

"공자고는 도망치고 싶었으나, 멸족을 당할까 두려워 글을 올려서 말한다: '선제가 건강하실 때 신이 들어가면 먹을 것을 내리고 나올 때는 가마를 타게 했습니다. 왕실의 옷도 신에게 내렸고, 왕실의 말도 신에게 하사해주었습니다. 신은 마땅히 따라죽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는 아들로서 불효이고 신하로서 불충입니다. 불효불충한 자가 세상에 살아남을 명분이 없습니다. 신은 따라죽고자 하니 여산의 자락에 묻어주시고, 황상께서 가련히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올리자 진이세는 아주 기뻐했다. 조고를 불러서 서신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건 다급해졌다는 말이겠지.' 조고가 말한다. '신하로서 죽음마저도 신경쓸 여지가 없다면 모반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진이세는 이를 허락하고 십만의 돈을 내려 후히 장사지내준다."(<자치통감. 진기이>). 공자고는 형제자매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혼자 도망치고자 했다 그러나 자기가 도망치면 일가족이 멸족당할 것이다. 어쨌든 죽을 거라면 그래도 체면있게 죽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호해에게 글을 올린다. 부친 시황제가 그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지금 부친이 죽었는데도 아들로서 보답을 못하고 있으니, 이는 불효불충하다. 그러므로 선제를 따라가겠다. 순사할테니, 사후에 여산의 진시황릉 아래에 묻어주어서 영원히 부친을 모시도록 해달라. 마지막으로 부탁하니 가련하게 여겨서 바라는 뜻을 이루게 해달라. 호해는 공자고의 서신을 보고, 아주 기뻐한다. 그 자리에서 조고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렇게 쓴 걸 보면 놀라서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말이겠지. 조고는 말한다. 신하들이라면 이렇게 죽음마저도 돌보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반같은 것은 신경쓸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공자고는 이렇게 목숨을 거둔다.

 

형제자매들을 거의 죽여버리고 나자, 이제 호해의 차례가 된다.

조고는 승상 이사를 함정에 빠뜨려, 이사는 요참을 당한다. 승상의 자리는 조고가 차지한다.

진이세 원년(기원전209년), "가을, 칠월, 양성 사람인 진승, 양하 사람인 오광이 기에서 거병하였다" "구월, 패 사람인 유방이 패에서 거병하였다. 하상 사람인 항량이 오에서 거병하였고, 적인(狄人)인 전담이 제에서 거병하였다." 호해가 황제에 오른지 1년도 되지 않은 칠월에, 하남 등봉 사람인 진승, 태강 사람인 오광이 안휘성 기현에서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 구월에는 유방이 강소성 패현에서, 항우의 숙부인 항량이 강소성 숙천등지에서 차례로 진나라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진이세는 조고가 눈과 귀를 가린 상태에서 하루종일 놀고 먹기만 한다. 삼년(기원전207년), 진나라의 관군이 계속 패퇴하고, 유방의 수만대군이 함양으로 다가간다. 호해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거의 반쯤 죽은 상태가 된다. 그는 급히 승상 조고에게 묻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네가 말하기로 관동의 도적들은 별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찌 나의 경성부근까지 밀고 온단 말인가?" 조고는 이때 병을 핑계로 진이세를 만나지 않는다. 진이세는 계속 사람을 보내어 물었다. 조고는 이때 감추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감출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왕조는 이미 끝이 났다고 여긴다. 그리고 호해같은 어린 녀석이 자꾸 뭐라고 하는 것이 귀찮아 그부터 처리하려고 한다.

"조고는 두려웠다. 그래서 사위인 함양령 염락, 동생인 조성(趙成)과 공모하여 말하기를:'황상이 간언을 듣지 않는다. 지금 일이 급하니, 화를 우리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나는 황상을 바꾸고자 한다. 다시 공자영을 세우자. 자영은 인자하고 검소하니, 백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들을 것이다.'"(<사기.진시황본기>). 진나라황제의 부하로서 조고는 황제를 쫓아내려고 하였다. 그는 사위인 염락, 동생인 조성과 공모하여,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호해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리고 진시황의 손자인 자영을 내세우려고 했다.

 

호해는 정말 진시황의 씨를 받지 않은 것같다. 조고는 궁전의 문을 지키는 낭중령을 자기편으로 매수하여 내부에서 호응하도록 하여, 거짓으로 진이세에게 대적이 왔다고 보고하게 한다. 그후에 함양령인 염락에게 도적을 추격한다는 명목으로 궁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러면서 조고는 아주 세심했다. 염락의 친모를 다른 곳으로 모셔둔다. 즉, 인질로 잡은 것이다. 염락은 천여명의 병졸과 관리를 이끌고 호해가 거주하는 망이궁으로 간다. 거기서 문을 지키는 자를 묶고 말한다: '적이 이곳으로 들어갔는데, 왜 막지 않았는가?' 위령은 무슨 일인지 모르고 그냥 대답한다. '궁은 병졸들이 엄밀하게 지키고 있는데 어찌 도적이 궁으로 들어갔다고 하십니까.' 염락은 위령을 참하고 직접 궁안으로 들어가서 활을 쏜다. 낭관 시위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치기도 하고 막기도 한다. 길을 막은 자들은 모조리 죽였다. 죽은 자가 수십명이었다. 낭중령과 염락은 함께 대전으로 들어가서 황상이 잠을 자는 침상을 향해 마구 화살을 쏜다. 진이세는 놀라서 깨어나, 곁에 있던 시종들을 부른다. 그러나 시종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 감히 나와 싸우지 못했다. 다 도망치고 마지막에 겨우 한 명이 남는다. 호해는 내실로 도망가서 그에게 묻는다: "너는 왜 일찌감치 나에게 난적이 들어왔다고 말해주지 않았느냐?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어지지 않았느냐?" 그러자 그 시종이 답한다: "바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했다면 일찌감치 죽었을 것입니다." 염락이 호해의 앞으로 다가간다. 기세등등하게 소리친다: "너는 교만하고 방종하여 사람을 함부로 죽여, 천하인들이 너를 등졌다. 네 생각에 어떻게 하면 될 것같으냐?" 호해는 그제서야 어찌된 일인지 깨닫는다. 그는 조고의 인자함에 마지막 기대를 걸기로 한다. 그래서 염락에게 묻는다: '조승상을 한번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염락은 차갑게 말한다: '안됩니다.' 호해는 다시 한걸을 물러나서 말한다: '나는 황제위를 내놓겠다. 나에게 일군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를 줄 수 없겠는가?' 그러자 염락은 그것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시 말한다. '만호후는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진이세는 마지막에는 애걸한다: 나는 처자식을 데리고 평민으로 살겠다. 그러자 염락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차갑게 말한다: 나는 승상의 명을 받들어 그대를 죽이고자 왔다. 네가 이렇게 말이 많으니 승상이 아예 듣지 않으려 한 것이다. 말을 마치고는 병사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호해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보고 스스로 자결한다.

 

진시황의 후예중에서 자영은 총명한 편이다. 그는 조고가 그를 진왕으로 세운 것이 미봉책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를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고, 조만간 그는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이 그에게 하던 방식 그대로 돌려주기로 한다. 진왕으로 46일간 있으면서 자영은 조고를 재궁으로 속여서 불러 죽여버린다. 그는 목애 줄을 걸고, 백마가 끄는 흰 수레에 앉아서, 손으로 천자의 어새와 부절을 들도, 함양성 밖의 길 가에 나가 유방에게 투항한다. 자영의 뜻은 명확했다. 스스로 무기를 내놓을테니,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유방은 확실히 자영의 목숨을 살려준다. 자영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겨우 한달여만에, 각 반란군들이 관중으로 몰려오고, 초패왕 항우도 위무당당하게 함양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는 자영을 포함한 진왕실의 모든 자제와 종실을 죽여버린다. 함양성을 피로 씻고 궁궐을 모조리 불태우며, 부녀자와 재물을 약탈한다. 진나라의 땅은 셋으로 나누어, 세 명의 진나라에서 투항한 장군들에게 나눠준다. 진왕실은 땅도 없고, 사람도 없게 된다.

 

진시황이 등극한 때로부터 자영이 멸족될 때까지, 앞뒤로 다 계산해봐야 15년이다. 진시황은 그의 가족들에게 거대한 영광을 가져다 주고 싶어했지만 그의 사후에 자손들은 죽어도 묻힐 곳이 없는 처참한 지경에 처하고 만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황권이 치러야 하는 댓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