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필요한 정치인은 원세개와 같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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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원세개)

2013. 4. 13.

작자: 미상 

 

중국군벌의 사고방식은 기본적으로 카다피와 같다. 타협은 모르고, 그저 권력과 공존공망하는 것이다. 서방인이 보기에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양당이 서로 돌아가며 정권을 잡고, 서로 타협하고, 서로 양보한다.

 

그러나, 닉슨이 모택동과 장개석을 평론하면서 중국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타협을 잘 모른다 -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의 사성은 중국에서 뿌리가 깊다 - 장개석과 모택동은 모두 이런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 모두 자신과 정적과의 관계를 죽기 아니면 살기의 관계로 본다 - 모두 타협을 통하여 정적과 공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만일 장개석과 모택동이 타협할 수 있었다면, 정적과 공존하기를 원했다면 국공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방면에서, 원세개는 모택동이나 장개석보다 고명하다. 그는 타협을 알았다. 타협을 통하여 그는 혁명당과 공동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그는 혁명당인을 총리로 삼는다.

 

이와 비교하면 손중산을 우두머리로 하는 혁명당인은 너무나 자잘하다. 그들은 한적불양립의 사상을 가지고 원세개와 협력을 원치 않았다. 원세개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고자 하지 않았다. 원세개가 총리의 지위를 혁명당에 주려고 해도, 혁명당은 그와 합작하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 원세개는 손중산에게 부총통을 맡기려 했다. 그러나 손중산은 협력하지 않고 거절한다. 그리고 무슨 정부의 위에 있는 "전국철로독(全國鐵路督)"을 하겠다고 한다.

그후, 원세개는 송교인을 총리에 앉히려 하고, 황흥을 총장에 앉히려 하나, 역시 거절당한다.

결국. 혁명당인은 원세개와 합작하려 하지 않고, 한적불양립의 사상을 견지한다. 이는 중국에서 수십년의 내전을 불러오고, 최종적으로 일본의 전면적인 침략을 받는다.

 

1945년 내전이 발발한 근본원인은 국공양당이 모두 정적과 권력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택동도 좋고, 장개석도 좋고 모두 상대방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권력을 나누는 것이 현대정치문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1911년, 원세개는 정적과 권력을 나누고자 했다. 그러나 손중산은 그러려고 하지 않고, 원세개와 합작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끝도 없는 군벌혼전이 벌어진다.

만일 1911년, 원세개와 손중산이 권력을 나누었다면, 원세개는 총통이 되고, 손중산이 부총통이 되고, 중국은 평화를 실현했을 것이고, 원세개가 황제를 칭할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