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과 허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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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노신)

2014. 4. 4.

글: 사비상(史飛翔)

 

허광평은 노신보다 17살이 어렸다. 1923년 가을, 노신은 친구 허수당(許壽棠)의 초청을 받아,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로 가서 강의를 한다. 거기서 그는 허광평을 만났다. 처음에, 허광평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노신에 대하여는 그저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점점, 허광평은 노신이 일부 사람들의 소문처럼 그렇게 "괴벽(怪僻)하고 두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첫번째 줄에 앉아서, 걸핏하면 노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하여 노신의 관심을 끈다. 허광평은 과감하게 노신과 가까워졌을 뿐아니라, 과감하게 그에게 장난도 치고 그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신은 허광평이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여,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가진다.

 

1925년 3월 11일, 허광평은 노신에게 최초의 서신을 보낸다. 그후 그들은 서신왕래를 시작한다. 1025년 3월부터 7월까지, 노신과 허광평은 4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공동의 이상과 신념은 점점 애정의 불꽃이 생겨나게 만들었다. 1925년 10월, 허광평은 노신이 주편을 맡은 <국민신보>의 부간(副刊)에 '평림(平林)'이라는 필명으로 <동행자>라는 글을 발표하여, 공개적으로 노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허광평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인간세상의 냉막, 압박"은 두렵지 않다. 위도사(衛道士)의 '맹렬한 습격'도 두렵지 않다. '한마음 한뜻으로 사랑의 방향으로 달려가겠다' 그녀는 산문시 <바람은 나의 사랑>에서 이렇게 맹세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서로 상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합법이어도 좋고, 불법이어도 좋다. 이것은 모두 우리와 상관없다. 녀희와 관계없다...."

 

노신과 허광평이 진정으로 연애관계를 확립한 것은 광주에서이다. 1926년, 노신은 허광평을 데리고 남하한다. 노신은 하문대학으로 가서 교편을 잡는다. 허광평은 광주로 돌아간다. 당시 두 사람은 이년의 시간을 들여, 먼저 경제자립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한다. 그 결과 반년도 되지 않아, 노신이 하문대학이 교직을 사임하고 중산대학의 초청을 받아 광주로 온다. 광주에 도착한 후, 노신과 허광평의 연애는 기본적으로 공개된다. 두 사람은 자주 밖으로 놀러나가고, 영화를 보았다. 1927년 10월, 노신은 광주에서의 교직을 끝내고, 허광평과 함께 상해로 가서 정착한다. 이때, 노신은 하나의 거대한 문제에 부닥친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원래 명매정취(明媒正娶)한 본부인 주안(朱安)(당시 북경에서 노신의 모친과 같이 살았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법률의 방식으로 본부인과 헤어질 수 없었다. 이것은 허광평의 신분을 아주 난감하게 만들었다. 노신은 장기간 허광평에게 적합한 신분을 줄 수 없다는데 고뇌했다. 매번 친구가 찾아가면, 그는 항상 허광평에게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떤 때는 부득이하게 대면하게 되면, 노신은 항상 친구에게 해명하곤 했다: "여기는 내 학생이다. 와서 내가 원고를 교정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다행히 허광평은 활달하고 구대받지 않는 현대신여성이었다. 그녀는 노신의 어려움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명확히 자신은 명분문제는 신경쓰지 않고 단지 쌍방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하에서, 노신과 허광평은 정식으로 동거를 시작한다.

 

1928년, 노신과 허광평이 정식으로 동거한지 반년도 되지 않아, 자칭 노신숭배자라는 사람이 보낸 서신을 한 통 받아보게 된다. 내용은 이러했다: "어제 XXX와 여러 사람이 동석했는데, 두 사람이 선생께서 첩에게 잘보이기 위하여, 북경의 본부인을 버리고 여학생과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이 일은 선생의 명예와 도덕에 관계된다...선생에게 크게 불리하니, 선생이 이 서신을 받으면 경계하기 바랍니다..." 이 서신은 노신을 다시 한번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해 여름, 노신과 허광평은 항주로 유람을 간다. 노신은 특별히 먼저 항주로 간 학생 모진(矛塵, 章廷謙)에게 그를 위해 3인방을 하나 예약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학생 허흠문(許欽文)을 데리고 같이 항주로 놀러 간다. 저녁에 노신은 허흠문에게 말한다: "흠문, 너는 낮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마음껏 다니면서 일을 봐라; 그러나 밤에는 반드시 여기로 돌아와서 자야 한다. 매일 밤에는 반드시 이곳으로 와서, 우리가 상해로 돌아갈 때까지." 이렇게 하여, 항주에서 노는 기간동안, 노신의 요구로, 허흠문은 착실하게 그 침상의 중간에서 잤다. 노신과 허광평은 각각 양쪽의 침대에서 잤다. 허흠문은 이해했다. 노신의 이러한 행동은 가급적 불필요한 골치거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결혼이후, 노신과 허광평의 감정은 일반적인 부부보다 좋았다. 허광평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은 그와 부부의 관계라기보다는 차라리 부지불식간에 스승과 제자의 우의를 유지했다고 하는 편이 낫다." 허광평은 일찌기 천진스럽게 노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왜 항상 당신이 나의 스승이라고 느껴지지요. 당신은 이런 느낌이 없습니까>" 노신이 그 말을 듣고는 기분좋게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바보같은 녀석!"

 

노신은 허광평을 '바보같은 녀석'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전혀 바보같지 않았다. 장석금의 <장회허광평선생>이라는 글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노신과 결합후, 허광평은 시종 노신의 수입과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입을 엄격하게 나누었다. 이것은 그녀가 광주에서 가르칠 때 번 300위안대양이다. 그것을 그녀 자신의 예금통장에 넣었다. 그녀는 말했다. 당연히 그녀는 주선생과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다만 가정은 해야 했다. 만일 부득이 헤어져야하는 상황이 오면,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이 300위안을 써서 자신이 몇달 심지어 반년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고." 다행스러운 점은, 결혼후 노신과 허광평은 계속 잘 지냈고, 같이 붙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