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張敖): 유방의 사위는 얼마나 힘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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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2015. 2. 10.

글: 진사황(秦四晃)

 

장오라는 사람은 원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방의 큰딸 노원공주(魯元公主)와 결혼하는 바람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장오는 자신의 혼인이 부친들끼리 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유방, 장이(張耳)는 항상 함께 어울려 먹고 놀던 술친구였다. 유방의 집은 패현(沛縣)에 있고 장이의 집은 외황(外黃)에 있었다. 두 곳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일찌기 유방은 걸핏하면 외황으로 가서 장이를 찾는다. 그리고 장이의 집에서 한번 머물렀다 하면 몇달씩 지내곤 했다. 두 사람은 네것내것을 가리지 않았고, 서로간의 정은 형제와 같았다.

 

장이는 능력있는 인물이다. 교제에 능했다. 바로 이것때문에, 항우가 제후왕을 분봉해줄 때 많은 사람들이 장이에 대하여 좋게 말을 해주어, 장이는 비록 적지만 괜찮은 영지를 받게 된다. 바로 조(趙)나라땅이다. 즉 지금의 하북성 남부일대이다. 그는 상산왕(常山王)이 된다. 기원전205년 장이의 또 다른 결의형제인 진여(陳餘)는 장이는 왕이 되는데 자신은 겨우 후밖에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어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진다. 그리하여 진여는 병력을 이끌고 형태(邢台)를 함락시키고 장이를 내쫓고 그의 영지를 차지해버린다. 장이는 어쩔 수 없이 오랜 친구인 한왕 유방을 찾아와 호소하게 되고, 유방은 한신에게 병력 수만을 이끌고 가서 진여를 참살하고 실지를 회복하게 해서, 장이는 다시 조왕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장이에 대하여 한두가지 더 얘기하기로 하자. 장이의 부인 즉 장오의 모친은 아주 개성있는 인물이었다. 외황의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아주 예뻤다. 그런데,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아주 못난이였다. 집안에서 그녀는 남편을 아예 제대로 쳐다봐주지도 않았고, 남편을 노예부리듯이 부려먹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남편의 못난 모습을 견디다 못하여 그녀는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부친의 친구집으로 간다. 그 아저씨는 그녀의 원망과 생각을 듣더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명한 남편을 찾으려면 장이를 따르다" 만일 네가 큰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장이가 적합하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 부잣집딸은 바로 남편과의 관계를 끊고 장이에게 시집간다. 장이는 뜻밖에 미인을 품에 안게 되었을 뿐아니라, 많은 재물도 얻게 된다. 장이는 장인의 재물로 사방의 친구들을 사귄다. 그중에는 패현의 유방도 있다.

 

한고조5년(기원전202년), 장이가 사망하고, 장오는 부친의 작위를 이어받아 조왕이 된다. 바로 이 때, 그는 노원공주와 혼인한다. 이때부터 불안한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한나라황제의 사위(부마)이면서 왕이라는 작위, 그리고 영지, 혼인등등 모든 것은 장인 유방이 그에게 안배해 준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인의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말을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으며, 항상 조심했다. <사기>, <한서>를 보면 장오가 금지옥엽을 가진 후에 행복했던 기억은 찾아볼 수 없고, 곳곳에서 그는 저두순목(低頭順目), 저삼하사(低三下四),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하는 우울하고 가련한 모습만 찾아볼 수 있다.

 

한고조7년(기원전200년), 유방은 한왕신을 정벌하는데, 도중에 조국(趙國)을 지나게 된다. 거기서 사위 장오의 집에 머문다. 장오는 공손하게 몸에는 일하는 막옷을 입고, 손에는 수투(袖套)를 끼고, 허리에는 허리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인의 곁에서 맴돌았고, 친히 차를 올리고, 친히 잠자리를 봤다. 그 태도는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장오에게서는 그저 온 힘을 다하여 장인의 말을 듣고 예의를 차리려는 사위의 모습밖에 없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노비같았다.

 

관건은 사위가 공손하더라도, 만일 장인으로부터 몇 마디 칭찬이라도 들으면 다행힌데, 유방은 장오가 이렇게 성의를 보이는데도 전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마치 장오는 원래 그의 집의 하인인 것처럼 대했다. 유방은 장오를 대할 때 아무 오만불손했다. 장오도 왕야인데, 그의 집에서 두 다리를 쩍벌리고, 몸은 키처럼 비스듬이 눞여서 옆으로 흘겨보면서, 입으로는 계속하여 욕을 해댄다. 그리하여 장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모르는 장면이 연출된다. 장오로서는 체면은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억지로 참고 견뎌야 했다.

 

유방의 뒤에서 장오의 부하, 막료들은 참지 못했다. 승상 관고(貫高)는 심지어 충동적으로 "죽여버려야할 늙은 물건"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장오는 그의 말을 듣고, 놀라서 조용히 제지하며 좋은 말로 달래면서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참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부하들이 분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있자, 장오는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서 깨면서, 사람들에게 맹세한다: 선부와 본왕의 모든 것은 한고조가 주신 것이다. 너희는 절대 다른 생각을 품으면 안된다. 모두 입을 닥쳐라!

 

선배가 후배를 얕보고, 황상이 신하를 가볍게 대하고, 장인이 사위를 부리고 모욕주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어쨌든 남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까.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보다 윗사람이니까. 이어진 또 한 건의 일은 장오와 그의 막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한고조8년(기원전199년), 한고조는 한왕신의 잔당을 토벌하면서 다시 장오의 왕부로 와서 머문다. 장오는 자신의 몇몇 애첩들을 유방이 머무는 곳에 보내어 기거를 보살피게 해준다. 장오가 죽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은 장인이 그중 한 미인을 마음에 들어한 것이다. 그리고 딸과 사위의 집에서 그 조나라미인과 잠을 잔 것이다. 더더구나 이를 갈 일은 그 조부인이 용종을 잉태한 것이다.

 

장오는 이 일을 듣고, 놀랐지만 그렇다고 떠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상이 친히 잠을 잔 여인을 그가 아찌 계속 자신의 내궁에 남겨둘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예쁘고 아무리 아까워도 다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장오는 사람을 시켜, 주야로 공사를 벌여 바깥에 화려한 집을 한 채 지어서 조미인이 혼자서 살도록 해준다. 조미인의 배는 하루하루 불러갔다.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한단 말인가? 장오는 생각만해도 골치가 아팠다. 장인에게 가서 말해야 하나? 만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기군(欺君)의 죄나 모함의 죄를 덧씌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목위의 머리는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알라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면? 조미인이 가진 것은 분명 한고조의 아이이다. 그녀의 임신기간과 해산기간에 조그만큼만 잘못된다면, 그의 과실인 것뿐아니라, 잘못하면 황자를 죽인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 죄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오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의 승상 관고의 일이 들통난다. 관고를 우두머리로 하여, 천자를 죽이려고했다는 일이 누군가에 의해 유방에게 밀고된 것이다. 유방은 즉시 대노하여 모조리 하옥시키게 한다. 장오, 관고등은 장안에 압송되고, 장오의 모친,형제, 애첩등도 모조리 하내군에 갇혀버린다.

 

장오는 이번에 죽을 마음까지 가진다. 그러나 그는 유방을 죽일 생각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때 황후 여치가 나서서 사위를 위하여 말해준다. 그녀는 유방에게 말한다. 장오는 우리의 사위이다. 그가 어찌 장인을 죽일 생각을 품겠는가. 내 생각의 그의 수하 몇 몇이 그 몰래 한 짓일 것이다.

 

유방은 여후를 한번 노려보며, 아녀자의 생각이라고 하면서 여후에게 반문한다. 만일 장오가 나를 죽이고 천하를 빼앗으면 그에게 내 딸같은 미인이 없을 것같으냐! 여후는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다행히 관고는 의사(義士)였다. 그는 혼자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다. 그리고 황상을 죽이려는 일은 조왕 장오가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장오는 그제서야 죽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중요한 순간에, 그 배가 불러오는 조미인이 도움을 준다.

 

조미인은 옥중에서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희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내가 가진 것은 황제의 골육이다. 옥졸은 그 말을 듣자, 진짜냐고 묻는다. 이건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바로 위로 보고한다. 유방에게까지 보고가 된다. 그는 역시 장오가 예상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미인은 옥중에서 그 회신을 듣고 상심이 극도에 달하여, 황자(나중에 유장(劉長)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를 낳고, 자진한다. 영아는 유방에게 보내어진다. 유방은 한참을 쳐다보고는 부득이 인정한다. 확실히 짐의 아들이 맞다.

 

여후는 화가 난다. 그러나 화가 나는 것은 나는 것이고, 사위가 아직 옥중에 있지 않은가. 그녀는 이번에 유방에게 말한다. 사위는 이 일조차 당신을 위하여 감춰주었는데, 그가 모반하여 시해할 마음을 품었겠는가?

 

관고가 스스로 책임지고, 여후가 옆에서 말해주는 바람에, 겨우겨우 장오의 결백함이 밝혀지고, 장오는 석방된다. 그러나 더 이상 왕의 작위는 없었고, 선평후(宣平侯)로 강등된다.

 

한고조12년(기원전195년), 장오를 십여년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던 유방이 마침내 사망한다. 장오는 이제 자신은 제대로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의 장모 여후도 만만찮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장오와 노원공주의 사이에는 일남일녀가 있었다. 아들의 이름은 장언(張偃)이고, 딸의 이름은 장언(張嫣)이었다. 한혜제 유영이 등극하자, 모후 여씨가 권력을 장악한다. 그리고 유영에게 황후를 골라주어야 했다. 장오는 원래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후로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누가 알았으랴 여후가 사람을 시켜서 그의 집으로 오고, 여후는 그의 딸 장언을 유영에게 시집보내 황후로 책봉하려 한다고 하였다. 장오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유영은 언아의 외숙이 아닌가? 장모님...이게 말이 됩니까.

 

무슨 말이 되고 안되고가 있겠는가. 여후의 말이 곧 법이다. 내가 이렇게 정했는데 이는 친상가친(親上加親)이다!

 

장오는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그저 명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오는 여후원년(기원전182년)에 사망한다. 60까지도 못살았다. 황제의 사위로서,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더 없이 영광스럽고 폼나는 것같았지만, 장오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전전긍긍 살아왔는지, 무슨 일 하나도 스스로 셜정한 일이 없었고, 지금까지 억울한 사정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