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校事): 조조 신변의 '특무'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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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2015. 2. 10.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몇년전, 영화 <금의위>가 상영된 후,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대명왕조가 '특무기구'가 가장 많고, 특무가 가장 창궐하고 사회가 가장 어두웠던 시대라고 여긴다. 주원장은 '특무'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정보를 획득하고, 관리와 백성을 감시하는 선하(先河)를 열었다고 본다.


이것은 약간은 주원장과 대명왕조를 치켜세워주는 측면이 있다. 기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조금만 주의하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기반을 닦은 조조가 설치한 "교사"는 바로 명나라때 동창, 서창과 유사한 특무기구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다. 조조는 의심이 많고, 누구에 대하여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적시에 여러 신하들과 민간이 그에 대하여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널리 이목을 깔아서, 은밀한 비밀을 캐낸다. 이는 궤사잔인(詭詐殘忍), 선용권모(善用權謀)의 심리와도 들어맞는다.


<삼국지>에서는 말한다. 건안원년, 조조는 사공(司空, 삼공의 관직)에 오른다. 3년, 허창으로 돌아오고, 처음에 군사제주(軍師祭酒, 이는 사공의 산하에 있는 직위이고, 역시 조조과 관직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를 두고, 나중에 특수한 관리 "교사(校事)"를 둔다. 첫번째 교사의 두목은 노홍(盧洪), 조달(趙達)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마음대로 하고, 권력을 남용하며, 무고한 자들을 해쳤는지에 대하여 고전전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다만 당시 군대내에서 유행하던 말을 기록되어 있다: "조공은 두렵지 않으나, 노홍은 두렵다. 노홍은 그래도 괜찮지만, 조달은 나를 죽인다." 이는 대명왕조관리와 백성들이 위충현, 유근의 악명을 들으면 즉시 두려워하는 심리와 마찬가지이다. 이는 조조의 '특무'가 모두 귀견수(鬼見愁)와 같은 인물임을 충분히 설명한다.


조조때의 법조연(法曹椽, 현재의 대법관에 해당함) 고유(高柔)는 '교사'가 조정과 체제등을 엄중히 파괴한다고 보아 조조에게 간언한다: "법을 제정하여 관직을 나누고, 각각의 분담업무를 두었다. 그런데 이제 교사를 두었는데, 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신뢰하는 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조달등의 인물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기준으로 마음대로 위세를 부리니, 마땅히 이를 조사하여 치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조조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경이 조달등을 아는 것은 아마도 내가 아는 것만큼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일이 크고 작고 모든 것을 정탐해서 알아내려면, 현인이나 군자들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조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이는 설명한다. 이들 '교사'는 조조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다만 조조가 그들을 인간취급해주었는가? 최소한 교사를 현인,군자와 같은 반열에 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조조가 '특무'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대명왕조의 통치자들이 특무를 총애한 것과 가장 큰 구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고유와 같은 정직한 법관들은 분명 특무의 암산을 받았을 것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여러 해동안 백성과 관리가 '교사'의 정탐과 비밀체포되는 사건이 수만건에 달했다고 한다. 고유등은 시종 글을 올려 허실을 따져서 백성들의 억울함을 밝혔다. 이런 기록을 보면, 조위의 '특무'가 여러 건의 원안(寃案), 가안(假案), 착안(錯案)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명왕조의 동창,서창 및 금의위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었다.


'특무'를 설치하는데 있어서, 조조의 후손은 주원장의 후손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창궐했다. 조위의 제4대 조방이 즉위할 때 교사의 권력은 명나라때의 동창, 서창보다 전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위로는 궁묘(宮廟)를 살피고, 아래로는 여러 관청을 겁주었다. 사마씨가 권력을 농단하고 난 후, 교사는 모두 조위의 옛사람임을 고려하여, 교사라는 직을 철폐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