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왜 화타를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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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2017. 6. 16.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화타(華佗)는 동봉(董奉), 장중경(張仲景)과 함께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라불리웠다. 조조에게 살해당할 때, 모든 의서(醫書)가 불에 타버린다. 이는 중국의학역사상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다


조조는 왜 화타를 죽였을까?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화타가 거짓말을 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신지화(殺身之禍)'를 자초햔 것이다.


화타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자가 원화(元化)이고, 패국(沛國) 초현(樵縣) 사람이다. 고증에 따르면, 그는 한나라 영가원년(145년)에 태어났고, 건안13년(208년)에 죽었다. 어려서 외지로 공부하기 위하여 떠난 적이 있으며, 그는 의술을 연구하고, 관직에 나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의술을 행한 족적은 안휘, 산동, 하남, 강소등지에 미친다.


그는 일생동안 각지방을 돌아가니며 치료해주었고, 명성을 크게 얻는다. 의삭적으로도 여러가지 성취를 거둔다. 그는 내과, 외과, 소아과, 침구등 여러 분야에 정통했고, 특히 외과(外科)는 두드러졌다.


조조를 처음 만나다.


화타는 일찌기 광릉태수 진등(陳登)을 치료한 바 있다. 당시 진등은 얼굴색이 저홍색이었고 정서가 불안했다. 부하중에서 화타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여, 나중에 그는 사람을 시켜 화타를 모셔와서 자기의 병을 치료받고자 한다. 화타는 먼저 그에게 10개의 세숫대야를 준비해달라고 말하고, 그를 위하여 치료하는데, 결과적으로 진등은 세숫대야 수십개에 붉은 머리의 벌레를 토해낸다. 화타는 그에게 약방을 주면서 이릏게 말한다. 진등은 물고기를 먹다가 이 병을 얻었다. 그에게 이 병은 3년후에 재발한다고 말해줘라. 그때가 되면 다시 그에게 약방을 내려주겠다. 그러면 이 병은 뿌리까지 치료될 것이다. 그리고는 떠나기 전에 자기 집의 주소를 알려주나. 그해 진등은 36살이었는데, 과연 3년이 지나니 병이 재발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화타를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화타의 약동(藥童)은 화타가 산으로 약초를 캐러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진등은 사망하고 만다.


주태(周泰)가 부상을 입었을 때, 화타가 그를 치료해서 완치시킨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사람이 조조에게 화타를 추천할 때 이렇게 말한다. "강동에서 주태를 완쾌시킨 자입니다."


두가지 사인


화타의 사인에 대하여는 현재 주로 두가지가 있다.


첫째 의견: 화타는 의술을 업으로 하여 마음 속으로 항상 불만이 있었다(중국봉건사회에서 의술은 '방기(方技)' 혹은 '천업(賤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조조가 직접 국사를 처리하게 되었을 때 병(두통)을 얻었는데 아주 심했다. 화타에게 그를 치료하도록 했는데, 화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병은 단기간내에 치료하기 어렵다. 설사 장기간 치료한다하더라도 그저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다"


화타는 집을 떠난지 너무 오래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잠시 가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후에는 처가 병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계속 휴가기간을 연장하면서 조조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후 조조는 여러번 서신을 보내어 화타에게 돌아오라고 하였고, 주변의 군현들에 그를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화타는 자신의 재주가 뛰어난 것을 믿고, 다란 사람의 밑에서 시키는대로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여전히 길을 떠나지 않았다. 조조는 화가 많이 나서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도록 한다: "만일 그의 처가 정말 병들었으면, 소두 4천승을 하사하고 휴가기간을 연장해주어라: 만일 속인 것이면 바로 체포해서 압송하라.


조사한 결과는 화타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수레에 태워서 허창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심문을 거쳐 화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한율(漢律)에 따르면 첫째 기군지죄(欺君之罪, 임금을 속인 죄), 둘째 부종정죄(不從征罪)이다. 순욱(荀彧)은 조조에게 용서해줄 것을 청한다. "화타의 의술은 확실히 고명합니다. 사람의 생명과 관계됩니다. 그를 널리 포용하고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조조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할 것 없다. 천하에 이런 무능한 자들이 없을 것인가." 결국 화타는 옥중에서 고문을 받다가 죽는다. 화타는 죽기 직전에 의서를 꺼내어 옥리에게 건제주며, "이 책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옥리는 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감히 그 책을 받지 못했다. 화타는 할 수 없이 불을 달라고 하여 책을 불살라 버린다.


둘째 견해: <삼국연의>에서 조조는 일찌기 주태를 치료한 바 있는 명의 화타를 불러 자신의 두통을 여러해 동안 치료하게 했다. 그러나, 화타는 조조의 병은 머리를 쪼개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마비산(麻沸散)을 써서 마취시키고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심이 많은 조조는 화타가 그 틈을 타서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살하려 했다는 죄를 씌워서 감독에 가두고, 화타는 고문을 받다가 결국 죽는다.


진실한 사인


그렇다면 진실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이런 원인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화타는 조조를 위하여 여러 해동안 병치료를 해왔다. 그러나 성격이 괴이하여 조조는 화타에게 관직을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화타는 고의로 조조의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조조가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게 나중에 조조에게 발가괴어 결국 피살된 것이다.


당시 의원은 멸시받는 직업이었다. 소위 의복성상(醫卜星象)은 모두 말류(末流)에 속한다. 화타가 조조에게 취한 수단은 병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즉, 조조의 병을 더 좋게 만들지도 않고, 더 나빠지지도 않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병을 지니고 있는 상태로 유지시킨 것이다. 그렇게 하여 조조가 자신을 떠날 수 없도록 만들고, 부득이하게 자신에게 관직을 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 했다. 조조가 어찌 이렇게 다른 사람의 계산대로 놀아날 사람인가. 그래서 화타는 피살당한 것이다. 어찌도면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다고 할 수 있다. 병을 치료하지 않을지언정 소인을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시정에서 쓰이는 말로 "양병이자중(養病以自重)"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고의로 병을 다 치료하지 않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중시하게 만든다는 바로 그런 뜻이다.


어느 원인에 의하서이건, 화타의 성격중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 견해에서, 처가 병들었다고 거짓말하여 고의로 돌아가는 시간을 미루면서 조조를 치료해주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조조가 알게 된다면 분명히 목숨이 날아갈 일이다. 다시 둘째 견해를 보자. 자신이 도깨를 들고 조조의 머리를 내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현재의 대형병원에서도 뇌출혈이 아니면 머리를 여는 수술은 하지 않는다. 보통의 두통때문에 의사가 머리를 여는 수술은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의술수준으로는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화타는 거짓말을 너무 자주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