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司馬懿) vs. 제갈량(諸葛亮)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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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2017. 7. 22.

3.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일대위인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일이 어렵고 쉽고는, 일이 큰지 작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에 있다; 시기가 되지 않으면 헛수고이고 아무런 득이 없다." 제갈량이 어떤 목적에서 북벌을 하였건, 그가 발동한 시기는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즉, 그가 북벌을 발동한 조건은 성숙되지 못해고, 그래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마의는 재능이 출중하고, 뜻이 높고 크며, 대세를 파악했을 뿐아니라,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먼저, 사마의는 "은인고수(隱忍高手)"이다. 사마의는 재능과 지혜가 남달랐다. 다만 초기에 조조의 수하로 일을 할 때, 계속 겸손한 저자세였고, 날카로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조같은 간웅조차도 그는 속여넘긴다. 이를 보면, 사마의의 은인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조조가 사망하자 그는 기회를 잡아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조비의 중용을 받는다. 다시 그 후에,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그는 더더욱 '인(忍)"을 극치로 발휘한다. 끝까지 나서서 싸우지 않고, 제갈량을 말려죽였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 사마의의 일생은 "인"자를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로 운용한다. 확실히 참는 것 하나로 하늘을 열었다. 


사출기산(四出祁山)을 예로 들어보자. 231년(건흥9년), 축군이 제4차북벌을 개시한다. 위군의 총사령관 사마의가 맞이해 싸운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이끄는 부대의 기세가 아주 강한 것을 보고는, 그 날카로움을 상대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한다. 동시에 이렇게 추측한다. 촉군은 멀리 원정을 왔고, 군량미가 부족하다. 그래서, "염군의험(斂軍依險)" 군대를 거두고 험준한 지세에 의지한다는 계책을 쓴다. 부대에게 방어권을 축소하도록 명령하고, 험준한 형세에 기대어 군영을 차리고, 전투하러 나서지 않는다. 제갈량은 속전속결하고 싶었는데, 사마의가 수비만 하고 나서서 싸우려 하지 않자, 사병들에게 매일 위나라군영앞으로 가서 욕을 하며 도전한다. 격장계로 출병하게 하려한 것이다. 위나라장수들은 촉나라군대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위나라의 명성에 해가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위군의 사기를 꺽는다고 여겼다. 차라리 제갈량에게 한번 힘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면서 계속 은인자중한다. 그는 마음 속으로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 지리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고, "급히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천천히 대응하는 것"이 약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단 촉군의 군대에 기세가 약해지고 군량미가 부족하게 되면 반드시 퇴각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위군은 싸우지 않고 이기게 되는 것이다. 과연 육월이 되자,촉군의 양초가 부족하게 되고, 제갈량은 할 수 없이 철군명령을 내린다.


다음으로, 사마의는 기회를 기다리는데 고수이다. 234년 봄 이월, 제갈량은 촉군 10만명을 모아서, 다시 전국의 병력을 다 모아 북벌을 진행한다. 육출기산이다. 오장원(지금의 섬서성 미현 서쪽)에 군영을 차린다. 사마의는 그 사실을 알고난 후, 친히 주력군을 이끌고 먼저 위하를 건넌다. 그리고 강안에 군영을 차린다. 높은 누대를 쌓아서, 촉군과 대치하는 형세를 이룬다. 사마의는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역시 이일대로(以逸待勞), 즉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면서 멀리서 피곤하게 행군해온 적군을 상대하는 전략을 쓴다. 그렇게 하여 촉군이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양식이 떨어져서 퇴경할 때 다시 기회를 잡아 출격하기로 한다. 제갈량은 이런 수비만 하고 싸우지 않은 전략에 일찌감치 대비책을 세워두었다. 이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그는 교묘한 계책을 쓴다.


묘책 하나: "군민대생산" 일부 병사를 뽑아서, 밭으로 보낸다. 그리고 농민을 도와서 농사를 지어준다. 사람들에게 장기간 주둔할 생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묘책 둘, 욕을 한다. 사병을 위군군영앞에 보내어 북을 치며 소리치게 한다. 욕을 해대는 수법을 쓴 것이다. 촉나라병사들이 욕을 하는 식으로 도전하는 것에 대하여 사마의의 수하들은 속속 분을 참지 못한다. 이는 위나라에 큰 치욕이라고 여기고 속속 주먹을 쥐고 흔들며 돌진해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노모심산의 사마의는 엄히 명령을 내린다: "여러 장수들은 군영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진지를 굳게 지켜라. 본장군의 명령이 없이는 모두 경거망동하지 말라"


묘책 셋, 전서(戰書)를 보낸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제갈량은 계속 사마의의 군영에 사자를 보내어 전서를 전달한다. 양군이 교전할 시간과 장소를 약정할 것을 요구한다. 매번 사마의는 가볍게 회신한다. 하늘을 얘기하고 땅을 얘기하는데, 전투에 대한 것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백여번 오고가면서 쌍방의 서신은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러나 제대로된 싸움은 한번도 붙지 않는다. 서로 대치하는 국면을 타파하기는 어려웠다.


묘책 넷, 사마의에게 여자옷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제갈량은 하나의 묘계를 생각해 낸다. 사람을 시켜서 사마의에게 여자옷을 한벌 보낸다. 조소와 멸시로 사마의를 분노하게 만드려는 것이고, 그가 나와서 싸우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재상의 뱃속에는 배를 저을 수 있어야 한다. 여자옷을 거두고, 장계취계로 연회를 베풀어 제갈량의 사자를 대접한다. 그리고 주석에서 "전쟁에 관한 일은 꺼내지도 않는다." 그저 공명의 "기거(起居)와 일의 번간(繁簡)"만을 묻는다. 사자의 말에서 제갈량의 병이 위중하다는 중대한 비밀을 알아낸다. 사후에 사마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제갈량은 "식사를 적게 하고,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나중에, 사마의는 과연 제갈량을 말려죽인다. 234년 팔월, 54세의 제갈량은 큰 뜻을 완전히 펴지 못한 유감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제갈량의 사망은 장기간 국사에 머리를 쓰고, 일이 생기면 직접 처리하고, 지나치게 과로한 탓이다. 그래서 유진등고(油盡燈枯) 즉 기름이 다하면 등불이 꺼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동시에 육출기산이 순조롭지 못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사마의가 "싸우지않고 방어만 하는" 전략하에 제갈량은 위군을 물리칠 여하한 기회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더욱 초조해하고, 침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결국은 한을 품고 죽어야 했다. 사마의는 기다리는 것을 가지고, 승국으로 이끈다. 기다리는 것으로 승리의 과실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병법"이다. 절대로 '상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마의는 도광양회의 고수이다. 사마의는 은인할 줄 안다. 그러나 그는 소극적인 은인이 아니다. 소극적인 은인으로는 아무 것도 못이룬다. 그는 이상이 있는 살미이다. 그는 은인하는 와중에 역량을 축적했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기회를 찾았다. 도광양회를 하면서 스스로를 키운 것이다. 도광양회는 재능을 숨기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말에서 1990년대초까지 등소평은 "도광양회"와 "유소작위(有所作爲)"전략을 내놓았다. 기실, 사마의는 바로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를 노화순청까지 운용한 대단한 인물이다. 은잉과 기다림은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다. 사마의는 절대로 기분대로 일처리하지 않았고, 그는 시국을 판별했고, 인심을 읽었고, 사태를 관망했으며, 참아야할 때는 참았고, 참으면서도 기회를 기다렸다. 참으면서 심지를 단련했다. 참으면서 전략과 전술을 기획했으며 자신의 목표의 성공율을 높여갔다.


조방(曹芳)이 황제에 오른 후, 조상(曹爽)과 사마의는 공동으로 보정이 된다. 조상은 대권을 독점하고자 사마의를 배척한다. 사마의는 표면적으로 회피하며(도광양회), 암중으로 권력탈취를 위한 준비(유소작위)를 한다. 정시9년(248년) 겨울, 조상의 심복 이승(李勝)이 형주자사가 된다. 조상은 그에게 사마의에게 하직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동정을 살피도록 시킨다. 사마의는 일찌감치 이승이 오는 이유를 알았고, 병이 든 것처럼 위장한다. 이승을 만났을 때, 그는 두 시녀로 하여금 부축하게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그 뜻은 목마르다는 말이었다. 시녀는 죽 한 그릇을 가져와서 그에게 먹였다. 사마의는 한편으로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입 한쪽으로 죽이 흘러내렸다. 그리하여 가슴까지 다 젖는다. 이승은 이런 장면을 보고, 연민의 마음이 들어 이렇게 말한다: "듣기로 예전 풍질이 다시 도지셨다는데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마의는 말을 매우 느릿느릿하게 해야 겨우 숨을 제대로 쉬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듣기로 병주의 관리로 간다면서, 거기는 오랑캐와 가까운 곳이니 몸조심 하시게." 이승이 말한다. "저는 병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형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못알아들은 척 하면서 헛소리를 한바탕 한다. 이성은 다시 큰 소리로 설명했고, 그제서야 사마의가 알아들었다. 그는 말한다: 너는 형주에 자사로 가는구나. 내 생각에 나는 이제 얼마 못갈테니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오늘 생사의 이별을 하는 것이니 나는 나의 아들 사마사, 사마소를 너와 친구로 사귀게 하고 싶다. 그들을 버리지 말아달라." 말을 마치고는 눈물을 흘리며 목이 매었다. 그 모습이 아주 처참했다. 이승은 돌아간 후, 조상에게 사마의의 모습을 보고하고, 조상은 사마의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 나중에 사마의는 조상이 대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정변을 일으켜 대권을 빼앗는다.


4.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인재전략을 잘 알았다.


삼국역사에서 제갈량은 인재를 배양하는데 뛰어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촉국은 후기에 인재가 결핍되어 패망하게 되었다라는 견해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지고 있다. 반대로 위나라의 후기를 보면, 인재가 많았다. 이는 위나라 후기에 중심역할을 한 사마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마의는 '교련형 지도자'이다. 그는 인재배양에 능했고, 특히 자신의 후계자를 기르는데 뛰어났다.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는 이로 인하여 진나라로 통일하는 기초를 세우게 된다.


지도자의 여러가지 풍격중에서 "교련형 지도자"는 날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지도자의 임무중 하나는 부하를 배양하는 것이다. 좋은 부하를 배양하려면, 먼저 반드시 부하에게 단련할 플랫폼을 제공해야 하고, 그의 발전에 책임져야 한다. 다음으로 부하의 장점을 살려서 세심하게 지도해야 하며 그의 성장에 책임저야 한다. 그다음으로 부하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그가 상승할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사마의는 이 몇 가지 방면에서 아주 잘 해냈다. 


제갈량의 육출기산에서 전략목표는 아주 간단했다. 중원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조위를 멸망시키며, 한실을 부흥시킨다는 것이다. 사마의의 전략목표는 복잡했다. 첫째는 촉군의 진격을 막아내야 한다. 둘째는 역량을 축적하여 조위를 대체해야 한다. 셋째는 병력을 길러서 기회를 보아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 이런 다중적인 성격의 전략목적은 사마의로 하여금 현상을 유지하게 만드는 평형전략을 세우기 한다. 한편으로, 제갈량이 큰 우세를 점하는 것을 막아서, 위나라와 자기에 대하여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제갈량을 완전히 궤멸시켜서는 안된다. 제갈량의 공격력은 보존시켜주어야 했다. 만일 제갈량이 철저히 무너진다면, 사마의는 역대공신의 '토사구팽'의 희극적인 운명을 반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상을 대표로 하는 사마의의 적대세력은 계속하여 날로 강해지는 사마씨가족을 없애버릴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사마의는 실전에서 인재를 훈련시키는 것을 중시한다. 오,촉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매번 소전투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장군과 사병을 보내여 참여하게 했다. 실전을 통하여 장병을 단련시킨 것이다. 실전을 통하여 군대를 기르면서, 성공적으로 전투력이 뛰어난 군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제갈량의 모든 일에서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스타일과 달리, 사마의는 전체국면을 장악한 상황하에서, 부하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었다. 위나라후기에 오나라와 촉나라를 멸망시킨 대장 곽준, 왕창, 등애등은 모두 사마의가 기산전투에서 직접 배양하고 발탁한 인재들이다. 이는 나중에 오,촉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이랗는데 군사인재측면에서의 대비가 된다.


사마의는 자기의 수하 겸 사업의 계승자인 사마사와 사마소에 대하여 더욱 실천과 단련을 중시한다. 매번 출정할 때마다 그들을 데리고 갔다. 그들에게 전쟁터에서 구르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피와 불, 생과 사의 단련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범을 보이고, 직접 가르친다. 이는 몸소 시범을 보여서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갈량을 보면, 비록 아들을 가르치는데 신경을 썼고, <계자서>같이 천고에 유명한 문장을 남겨서 아들을 교육했지만, 제갈량은 아들 제갈첨에게 이런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가 실전을 통하여 단련하도록 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촉을 멸망시키는 전쟁에서, 등애가 부현(涪縣)으로 진격할 때, 상서랑 황숭은 제갈첨의 병력을 따라 부현으로 간다. 대군이 여기에서 배회하고 망설이며 적시에 전진하지 못하자 황숭은 여러번 제갈첨에게 신속히 진격하여 험요한 지세를 선점해야한다고 권한다.그렇게 하여야 상대가 사천의 평탄한 지역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그러나 제갈첨은 여전히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황숭은 이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한다. 등애가 진격해 들어오자, 제갈첨은 등애와 면죽의 평원에서 회전을 벌이고,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사마의는 수하를 훈련시키는데 방법이 있었다. 국면을 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내일 때, 대담하게 권한을 내려보내어 수하의 장점을 취대한 발휘하게 해준다. 그렇게 하여 수하로 하여금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게 한다. 그리고 수하가 실행할 때 세심하게 지도한다. 수하가 자신의 생각에서 잘못된 부분과 장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서 생각을 넓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하의 능력과 소질을 제고시킨다. 249년, 사마의는 조상이 성을 나서 능에 제사지내는 틈을 타서, 거사를 일으켜 조상을 타도한다. 전날 저녁 그는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를 밀실로 불러 세 사람이 진지하게 상의한다. 끝난 후, 그는 두 아들에게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라고 한다. 그리하여 기운을 유지하도록 해서 다음 날 대전을 준비하게 한 것이다. 그후, 사마의는 심복을 찾아서, 그로 하여금 두 아들을 감시하게 한다. 대사를 치르기 전에 두 아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한 것이다. 그 결과 큰아들 사마사는 코를 골면서 잠을 잔다. 아주 양호한 심리적인 자질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휴식을 잘 해서 다음 날 병력이 모일 때 아주 기운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은 아들 사마소는 심리가 그렇게 강대하지 못했다. 전전반측하면서 잠을 제대로 못잤다. 다음 날 확실히 정력이 부족한 것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부대검열때, 큰아들을 칭찬하며 말한다: "이 아들은 됐다." 이를 보면 사마의는 수하와 후계자를 배양하는데, 특히 심리적 자질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그는 두 아들의 서로 다른 특징과 장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가정전투에서, 사마의는 군영을 차린 후, 둘째아들 사마소가 마음씀씀이가 세심하고 모략에 능하다는 특징을 알아서, 사마소를 파견하여 군영을 정탐하게 한다. 사마소는 축군이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간 것을 보고, 산을 포위하여 수원을 끊자고 건의한다. 그리하여 촉군병사는 싸우기도 전에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만일 사마의가 대담하게 배양하지 않았더라면, 사마소는 이렇게 군사적재능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갈량과 사마소는 삼국시대에 일대효웅 조조의 뒤를 잇는 두 명의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들 둘의 대결에서는 사마의가 완승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