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계(空城計)로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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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사마의)

2017. 7. 29.

글: 문재봉(文裁縫)


고전명저 <삼국연의> 소설에서 전반부의 클라이칵스는 "화소적벽(火燒赤壁)"이고,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는 "육출기산(六出祁山)"이다. 제갈량이 육출시간할 때, 신기묘산의 공명선생은 강대한 적수를 만난다. 그의 복성사마(司馬)이고 단명은 의(懿)이다. 하남 온현 효경리(지금의 하남성 온현) 사람이다. <삼국연의>에서 사마의는 매우 늦게 등장한다. 94회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무대에 나선디ㅏ. 이때는 적벽대전으로부터 이미 20여년이 지난 때이다. 조조, 유비, 관우, 장비같은 대영웅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사마의는 후반부에 등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외롭지 않았다. 역사는 그에게 자신의 재능을 과시할 기회를 주었다. 제갈량도 외롭지 않았다. 운명은 제갈량에게 강대한 적수를 하나 마련해 준다. 사마의와 제갈량 이 두명의 강자는 우주의 두 개의 행성과 같이, 각자 곡절있는 인생궤적을 겪은 후, 마침내 기산이라는 이 자그마한 장소에서 '펑'하고 맞부닥친다. 그래서 기산에서 파란만장하고 웅장한 용쟁호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228년의 봄, 기산의 깊은 곳에 위치한 서성(西城)은 아주 조용했다. 대낮에도 길거리에 사람 하나 없이 너무나 조용했다. 2500여명의 서촉 사병은 길가의 점포 안에 매복해 있었고, 표정은 엄숙했으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록 아무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에는 공황이 드러났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한 사람이다. 바로 사마의이다.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버렸다" 사마의가 뭐 두려울게 있냐고. 기실 사마의는 두려워할 게 없다. 두려운 것은 사마의가 뒤에 데려오는 15만대군이다. 15만대군도 무섭지 않다고 할 수 있다면, 무서운 일은 이 자그마한 서성에 겨우 2500여명의 사병만 있고, 제갈량의 곁에는 장수가 하나도 없으며 모조리 문관들만 있다는 것이다. 한 무리의 서생이 2500여명의 사병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마의의 15만 대군을 막아낼 것인가? 이들 사병들은 절망했다. 모두 신기묘산, 호풍환우의 제갈량이 사람들에게 살아날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제갈량은 한 가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이 장면에 관하여, <삼국연의>에는 아주 재미있게 쓰고 있다. 제갈량이 성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멀리 쳐다보니, 먼 곳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위군이 두 갈래로 나누어 쇄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제갈량은 수하들에게 깃발을 숨기라고 말하고, 네 개의 문을 활짝 열게 한다. 문마다 20명의 군사로 하여금 백성으로 변장하고 바닥을 쓸게 했다. 다시 이 제갈승상은 머리에 윤건을 메고, 몸에 학창의를 입고, 두 명의 소동을 데리고, 앞에는 금(琴)을 하나 놓고서 높은 누각에서 난간에 의지하여 앉은 다음에, 향을 태우며 금을 켜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고, 아주 자연스러웠다.


사마의의 부대가 성아래 도착해서는 깜짝 놀란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이렇게 그를 맞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때, 사마의에게는 선택이 남았다. 성으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성으로 진입하지 않을 것인가. 성으로 진입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 성공한다면 제갈량을 생포할 수 있다. 만일 실패하면, 상대방에게 생포당한다. "닭훔치려다 실패하면 쌀만 잃는다"는 격이다. 만일 성으로 진입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면, 성에 매복이 없을 경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이는 "다 삶아놓은 오리가 날개가 달려 날라갔다"는 겻이다.


우리는 분석해보자. 제갈량은 왜 과감하게 성문을 다 열어놓았을까> 기실 제갈량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첫째, 제갈량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왜 어쩔 수 없었는가? 병사가 필요한데, 병사도 없고, 장수가 필요한데 장수도 없었다. 겨우 2500명으로는 싸운 수가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둘째, 제갈량은 아주 자신이 있었다. 제갈량의 판단으로, 사마의의 의심이 많은 성격을 보면, 자신과 처음 싸우면서, 이렇게 이상한 국면을 보게 된다면, 그는 절대로 뮈험을 무릎쓰고 성안으로 진격하지 않을 것이다. 제갈량은 여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잘 판단한 것인가? 사마의는 정말 이런 장면때문에 멈춘 것인가? <삼국연의>에는 이렇게 말한다. 사마의가 서성의 앞에 도착했을 때, 정찰병은 상황을 사마의에게 보고한다: "대도독께 보고드립니다. 성문이 크게 열려 있고, 제갈량은 금을 타고 있습니다." 사마의는 무슨 반응을 보였는가? <삼국연의>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마의는 웃으면서 믿지 않았다(笑而不信)" '소이불신'을 통해서 우리는 볼 수 있다. 사마의는 국면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갈량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제갈량은 아주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일을 벌이겠는가? 그래서 사마의는 친히 말을 타고 성아래로 가서 보게 된다. 성아래에 도착하자, 사마의는 정말 깜짝 놀란다. 눈을 들어보니 상문은 다 열려있고, 20여명의 백성들이 거기서 질서있게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성루의 위에는 제갈량이 웃음을 띄우고 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왼쪽의 소동은 검을 쥐고 있고, 오른 쪽의 소동은 불진(拂塵)을 쥐고 있었다. 사마의는 죽어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15만대군을 이끌고 왔는데, 제갈량은 성 위에서 이런 모습으로 맞이할 줄은.


사마의가 어찌 이러한 장면의 비밀을 알지 못했을 것인가. 사마의의 인생경험은 그에게 하나의 기본적인 일처리원칙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형세가 불명확하면, 이해득실이 불명확하면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뒤쳐질 지언정 절대로 모험을 하진 않는다. 그래서 사마의는 군령을 내려, 전군을 후군으로 바꾸고, 후군을 전군으로 바꾸어 북산으로 퇴각한다.


사마의가 퇴각한 후, 제갈량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제갈량은 수하에게 말한다, "내 생각에 그는 내가 평생 조심성있게 살아온 것을 알고 위험한 일을 벌이지 않는 걸 알고 있다. 사방의 성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퇴각할 것이다." 제갈량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말한다. "승상의 신기묘산입니다. 만일 우리들이라면 일찌감치 2500명을 데리고 물러났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말한다. "그들은 15만대군을 가지고 있다. 우리 2500명이 퇴각하려 한다면, 일찌감치 그들에게 생포되었을 것이다." 말을 마친 후 손바닥을 만지며 크게 웃는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제갈량이 웃을 때, 사마의는 곡을 했을 것이라고. '공성계'에 속아서 좋은 기회를 잃었으니 실로 참담한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모두 하나의 기준을 추구하기를 좋아한다. 바로 완벽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기산의 전투에서, 사마의와 제갈량의 제1차 전투 이전에, 쌍방은 모두 멋진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제갈량의 '공성계'에 속아서 완벽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그의 겁쟁이같은 거동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나, 현대 경영학의 눈으로 보면, 사마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다른 지혜를 보여준다. 이 지혜는 의사결정과정에서 특히 중요하다. 즉,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추구한다."


사마의가 이번에 제갈량과 싸우면서, 그가 직면한 국면은 "위기"라는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연의> 제92회는 "조자룡이 무장들을 참하고, 제갈량의 세개의 성을 지략으로 차지하다"이고, 제93회는 "강백표가 공명에게 투항하고, 무향후가 왕랑을 욕으로 죽이다"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제갈량의 이번 출병은 연이은 승리를 거둔다. 조자룡은 조위의 5명의 무장을 참하고, 안정, 남안, 천수의 3개 성은 제갈량에게 점령된다. 하후무를 이기고, 조진을 이기고, 곽준을 이기고 전체 전쟁을 석권한다. 그리하여, "관동이 진동하고, 천하가 진동한다." 형세가 아주 위급했고, 조위정권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사마의를 보내어 임시로 전투를 지휘하게 한 것이다. 사마의는 이런 상황하에서 전쟁터로 나왔다. 이때 사마의의 손에 있는 병사는 제갈량만큼 많지 않았고, 장수도 제갈량만큼 많지 않았다. 이런 피동적인 상황하에서 제갈량을 물러나게만 한다면, 이미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는 권투의 챔피언전과 같다. 상대를 쓰러뜨리거나비기면 이긴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서성으로 진입하여 제갈량을 생포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고. 확실히 그렇게 했다면 100점이다. 이는 "금상첨화(錦上添花), 밀리가당(蜜裏加糖), 백금 위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격이다.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서성에서 제갈량의 매복에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힘들게 얻은 승리의 과실을 잃게 된다.


사마의의 철군은 이해관계를 모두 비교형량한 결과이다. 우리는 사마의를 대신하여 한변 비교형량해보기로 하자. 서성을 들어가지 않으면, 상대방이 철수할 것이고 실지를 회복할 수 있다. 이 선택은 90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성에 들어가면, 일단 제갈량을 생포한다면 100점이다. 다만 매복에 걸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0점이다.


이 두 개의 노선중 여러분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사마의는 앞의 것으로 선택했다. 90점만 받아도 괜찮은 점수이다. 굳이 모험해서 100점을 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 이 원칙을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추구한다."고 부른다


기실, 현실생활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결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누가 모르겠는가. 완벽을 추구하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객관적으로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완벽을 추구할 시간과 비용이 없다. 우리는 그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범위내에서 비교적 만족할 결과를 얻으면 된다.


그래서, 인생의 선택에서 90점을 얻는 것은 노력으로 되고, 100점을 얻는 것은 운으로 되는 것이다. 되면 좋은 것이지만, 안되면 90점도 좋다. 그래서, 사마의의 원칙은 바로 내가 제갈량을 물러나게 할 수 있으면, 실지를 회복할 수 있으면 이미 충분하다. 반드시 100점을 받으려고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적이다"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일을 처리하면서,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되면, 국면은 변질될 수 있다. 오히려 반작용이 나올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적당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사마의는 생각한 것이다. 내가 제갈량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만족스럽다. 굳이 추격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래서 사마의는 부대를 퇴각시킨 것이다.


사마의는 큰 리스크를 안으면서 최고의 결과를 추구하지 않았고, 아주 이성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승리국면을 유지했다. 경영자라면 반드시 잘 알아야 한다. "최고를 추구하지 말고, 만족을 추구하라" 이것이 아주 고명한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