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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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2018. 8. 2.

글: 장궁유심(長弓有心)


1.

[한국] 고구려는 부여(扶餘)인이 건립했다. 부여인은 조선인의 주요 뿌리중 하나이다. 고구려(졸본부여)와 백제(남부여)는 모두 부여국의 연속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주요주민은 신라와 발해의 주민이 된다. 긜고 발해국이 거란에 멸망한 후, 그 주민은 대부분 왕씨고려로 이주했다. (주석: 전쟁에서 군대와 평민은 다르다.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의 한반도내 평민 대부분은 한반도에 남았다.) 왕씨고려가 건립되기 전에, 신라귀족 궁예는 일찌기 고구려부흥을 내걸고 후고구려를 건립한 바 있다. 이를 보면, 신라인과 왕씨고려는 모두 그들이 고구려와 동일한 민족의 서로 다른 갈래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두 고려로 자신이 왕조를 명명한다.


[중국] 부여인은 고구려와 백제의 왕실을 구성한다. 그러나 고구려의 하층은 당시 중국동북지방에 있던 여러개의 서로 다른 부족을 포함하고 있다. 한반도 남부의 삼한부락과는 차이가 아주 컸다. 발해국의 주민 '대부분'이 왕씨고려로 이주했다는 단언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발해국 주민중 현지에 남거나 거란에 약탈되어 중원으로 들어온 인구의 수가 왕씨고려로 이주한 인구보다 훨씬 많다.


2.

[한국] 고구려는 700년간 존속했다. 중국의 어느 왕조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존속한 적이 없다. 독립성은 분명하다. 만일 고구려를 단순히 중국의 일개 지방정권으로 본다면, 당왕조는 절대로 한반도에서 신라를 도와 고구려를 점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인이 중국동북에 발해국을 건립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한국인은 고구려의 역사를 이었다는데 자부심을 가진다. 그러나 중국인으로서 고구려의 역사를 보면, 통상적으로 그저 국가역사의 작은 부분으로 본다. 그리고 거기에 감격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고구려국가의 규모는 비교적 작고, 정치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것이 고구려국이 오랫동안 지속한 주요 원인으로 본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보편적으로 거시적인 역사적 시야가 결핍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특징에 대하여 확실히 인식이 부족하다. 중국초기의 조대인 주왕조는 800년간 존속했고, 연속기간이 고구려보다 더욱 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한과 동한을 합치면 400여년이 된다. 그리고 국가규모에서도 주왕조는 이미 고구려보다 5-10배나 된다. 한왕조는 동서로 만리나 되는 제국이다. 국가규모가 개략 고구려정권의 70배나 된다. 이는 고구려가 한쪽 지방에서 700면간 할거한 것과는 비교적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고구려의 존속기간을 가지고 독립성을 증명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다.


3.

[한국] 통치자의 성씨와 민족의 교체는 왕조교체계승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선비족혈통의 양씨수왕조와 이씨당왕조는 한족조씨의 송왕조로 교체되었다. 이것을 중국인들은 왕조계승으로 본다. 고구려가 신라, 왕씨고려로 교체된 것도 마찬가지의 계승관계이다. (주석: 이런 계승관계는 한반도 패주지위의 계승을 의미한다)


[중국] 당연히 통치자의 성씨와 민족교체가 왕조교체승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왕씨고려시기의 사람도 왕씨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우리는 이 책의 체계나 배치, 그리고 내용의 상세하고 간략한 정도를 보면 왕씨고려인들은 신라를 정통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고대역사학자인 김부식은 왕씨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라고 보지 않았다. 왕씨고려시기의 학자인 인 최해(崔瀣)의 <동인문서(東人文序)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동방은 멀리 기자로부터 주나라의 분봉을 받았고, 사람들은 중국의 존귀함을 알았다. 옛날 신라가 전성기일 때, 항상 자제를 당나라로 보내어 '숙위원'을 두고 공부하게 했다. 그래서 당나라의 진사에 '빈공과'가 있었다...삼한이 하나로 통일되어 의관전례는 신라의 옛 것을 이어받았고, 16,7명이 왕이 이어졌다. 대대로 인의를 추구하고 중국의 풍속을 앙모했다. 서쪽왕조로는 송, 북쪽으로는 요, 금이 있다. 훈도를 받아서 인재가 흥성하고, 문장이 찬란해진다. 그래서 모두 볼만하게 되었다."


최해는 신라의 거유 최치원의 후예이다. 집안학문의 연원으로 보면 그는 문물제도의 변화에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그는 왕씨고려가 신라의 직접적인 계승자라고 보았는데, 바로 우리에게 분명히 설명한다 후인들은 확실히 고구려와 왕씨고려를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것은 신라야말로 왕씨고려의 전신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왕씨고려와 고씨고려(고구려)의 영토범위와 민족구성에서 모두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학자들은 보편적으로 왕씨고려가 고려라는 이름을 쓴 것은 왕건이 의도적으로 중국이 오대로 잠시 분열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북진하여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은 송의 통일과 요의 강대함으로 인하여 좌절된다.


4.

[한국]일부 고구려영토는 현재 중국경내에 있다. 이것을 가지고 그것이 중국의 역사라 할 수는 없다. 중국의 동북은 역사적으로 주로 소수민족이 통치했다. 한인통치는 아주 약했다. 하물며 일부 고구려영토는 한반도에 있다.


[중국] 사실상, 중국학자들 중에서 고구려가 단지 중국역사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한국이 배타적으로 고구려의 모든 역사유산을 계승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한국은은 계속하여 강조한다. "중국의 동북은 역사적으로 주로 소수민족이 통치했고, 한인통치는 아주 약했다"라고 이는 중국동북과 모체와의 역사연결을 분리시키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일찌기 여러 한국 역사학자의 역사저작을 읽어 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중국'을 단지 한족과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민족은 중국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는 아주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오늘의 한족은 바로 '중국동북의 역사상 주요한 소수민족을 흡수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얘기하는 소수민족은 지금의 한족을 형성했다. 소위 '역사상 중국동북을 통치한 소수민족에는 발해인(한국인은 발해인이 주로 한반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근거가 부족하다), 요(거란인), 금(여진인)이 포함된다. 그리고 청나라때 동북지방을 통치한 만주족은 현재 이미 중화문화에 완전히 융합된 중국공민이다. 이 일체의 사실은 모두 의문의 여지없이 중국이 고구려역사에 대하여 합리적인 역사적 권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 한국이 공동으로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이 중국역사에서 고구려역사를 분리시키고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기도는 잘못되었다.


5.

[한국] 한국에는 여러 왕조와 국가가 있었다. 예를 들어, 신라, 고려, 조선이 모두 중국의 중앙봉건통치자에게 책봉을 받았다. 이것만 가지고 그들이 중국의 일부분이라 할 수는 없다.


[중국] 이런 견해는 역사적 사실을 혼동한 것이다. 신라, 고려, 조선은 비록 책봉받았지만, 고구려처럼 고대에 중국,한국에 의하여 멸망되고 흡수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당연히 중국의 일부분이 아니다.(구대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일찌기 중국의 관할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고구려는 1천여년전에 이미 멸망한 고대국가이다. 그의 역사유산은 인구와 영토와 고적을 포함하여 각각 현대의 중국과 한국의 양국이 계승하고 접수했다. 그래서 고구려는 당연히 중국고대역사와 문화의 구성부분이다. 같은 이치로, 한국도 고구려가 한국고대역사와 문화의 구성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반드시 얘기할 것은 한국의 민족주의자들도 반드시 중원고대문화가 한국민족에 끼친 영향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를 분리시키고, 이 고대국가의 역사문화를 가지고 본민족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자신의 고대문화가 중국과 무관하다는 견해는 더더구나 자기기인(自欺欺人)의 도피일 뿐이다. 고대문화에서, 한국의 조상은 일부분 고구려인을 포함해서 모두 중화문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점을 인정한다고 하여 한민족의 오늘날 독립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중국과 우호적으로 공존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6. 

[한국] 고구려의 민속과 문화는 한국인과 비슷하다.


[중국] 우리는 한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즉, 비슷하다는 것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한국인, 중국인은 물질문화에서 이미 서구화되었다. 한국은 더더구나 아시아최대의 기독교국가이다. 설마 우리가 한국인이 유럽인의 문화와 비슷하다고, 한국인이 유럽인을 계승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합리할 것이다. 이들 문화가 유사한 현상은 그저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인류의 문화는 신속히 전파되고 있고, 서로 영향을 끼친다. 고구려의 역사는 아주 명확하다. 그것은 이미 멸망한 고대국가이다. 그 민족은 중국, 한국의 고대국가에 흡수되었다. 그래서 한국에 고구려인과 비슷한 생할습속이 남아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신라인은 한반도남부의 삼한부락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인은 동북지구의 예맥인에게서 유래한다. 그들은 아마도 종족상의 연결이 있을 것이다. 다만 처음에는 그저 각자 떨어진 지리공간에서 발전했다. 분명히 동일한 민족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한국역사체계에 편입된 것은 한국고대사학자 김부식이 편차한 <함국사기>이다. <삼국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신라의 직접적인 계승자인 왕시고려인은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인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김부식은 고루려를 '해동삼국'으로 신라, 백제와 나란히 두었다. 그리고 '해동삼국'이라는 구분은 현재 우리가 말하는 '동아시아국가', '유렵국가', '극동제국'과 같은 유형의 말이다. 거기에는 동일종족, 동일문화, 동일언어, 동일국가의 가치판단이나 암시가 들어가 있지는 않다.


7.

[한국] 중국의 삼황오제 및 하왕조는 모두 전설이다. 단군조선의 진실성에 대한 공격은 잘못되었다.


[중국] 단군조선의 진실성은 역사적 유적으로 지지되거나 증명되지 않았다. 중국경내에는 현재 대량의 하왕조와 동일한 시기의 이리두유적을 대표로 하는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설사 하왕조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원전16세기의 중국상왕조 유적, 문물, 문자자료는 모두 아주 풍부하다. 중국인은 지금까지 신화를 가지고 자기의 역사가 유구하고 민족이 위대하다고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은 자신의 역사가 유구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그저 기원전12세기에 나타난 단군신화로 증명하려 한다.


8.

[한국] 중국은 이전에 고구려를 조선삼국의 하나로 인식했다. 이는 세계학술계가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동북공정은 학술을 이용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다. 남북한통일후, 한국이 영토요구를 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 학술연구의 심화는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져온다. 세계학술계는 고구려를 '단지' 한국역사에 속한다는 이런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바 없다. 만일 정말 그런 컨센서스가 있다면, 분명히 일련의 영문논문으로 이를 논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한국역사학계가 그런 논문자료를 제공해줄 것을 희망한다. 중국의 동북영토에 대한 주권은 역사가 형성한 것이고 완전히 국제법에 부합한다. 그래서 중국은 역사상의 고대국가의 역사귀속이 영토를 잃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는다. 당대에, 여하한 영토주권의 변경은 모두 전쟁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