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白蓮敎): 중국에서 천년간 반란을 일으켜온 종교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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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종교

2018. 12. 12.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중국의 반란 혹은 의거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부득이 하나의 종교를 언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백련교'이다. 백련교는 중국에서 가장 '사문(邪門)'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권력을 잡든디 그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반란은 천년간 지속된다. 교파를 살펴보면 이들보다 더욱 고집스러운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백련교에 대하여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백련교의 역사와 그들이 천년간 반란을 일으켜온 것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교파로서 백련교는 남송(南宋)때 시작된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소주(蘇州) 곤산(昆山)의 모자원(茅子元)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정토결사(淨土結社)의 기초 위에 하나의 작은 백련참당(白蓮懺堂)을 만든다. 이어서 교의가 간단하여 이해하기 쉬어, 신속하게 하층민의 환영을 받고 점점 새로운 교파로 성장한다. 그리하여 백련종(白蓮宗)이라 불린다. 바로 백련교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모자원의 이 거동이 중국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송부터 청나라까지 백련교는 중국역사무대에서 활약한다. 평화시기이던 전쟁시기이던 백련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에 백련교는 관방의 금지를 당한다. 모자원은 강서 구강(九江)으로 유배된다. 비록 모자원을 끌어내렸지만, 수천수만의 모자원이 백련교를 믿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마도 송나라의 통치는 비교적 느슨해서인지 아니면 백련교의 발전초기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송나라때는 백련교의 난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항원(抗元)투쟁에 참가한다.


원나라에 이르러, 백련교는 한때 정부에서 승인을 받는다. 그러나 금방 다시 탄압당한다. "백련사를 금하고 그 사당을 부순다(禁白蓮社, 毁其祠宇)" 이로 인하여 백련교는 원나라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백련교에 참가한 사람이 주로 중하층백성이었기 때문에 당시 원나라사회의 모순이 격화될 때 백련교는 반원(反元)의 주요역량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나라말기 홍건적의 난때의 지도자인 한산동(韓山童), 유복통(劉福通), 서수휘(徐壽輝), 추보승(鄒普勝)등이 모두 백련교도이다. 그들이 앞장서서 원말 농민의거를 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백련교가 없었다면, 원나라는 아마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명나라가 건립된 후, 주원장은 백련교를 엄금한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당초 주원장의 부대에는 많은 백련교도들이 있었다. 주원장, 주체등은 그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금지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금지시키자 백련교도의 반발을 불러온다. 명나라 초기, 사천, 호북, 강서, 산동 등지에서 여러번 백련교도의 무장반란이 일어난다. 어떤 경우는 황제을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진압당하다. 명나라 중엽이후, 민간종교의 명목이 아주 많았지만,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백련교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명나라의 문향교(聞香敎)도 백련교에서 파생된 한 갈래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명나라는 시종 백련교의 반란이 있었다.


청나라가 북경으로 들어온 후, 백련교의 반청복명사상까지 더해져서, 조정은 백련교에 대하여 탄압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청나라때의 백련교는 계속 정부와 고도의 적대상태를 유지한다. 순치, 강희, 옹정, 건륭시기에 백련교는 계속하여 반청복명활동을 벌인다.


건륭제때(1774년), 청수교도(淸水敎徒) 왕륜(王倫)의 반란, 가경원년(1796년) 호북, 하남, 사천, 섬서, 감숙 5개성의 농민반란, 가경18년 이문성(李文成)등이 영도한 천리교(天理敎)의 난이 있다. 특히 건륭말기, 가경초기의 백련교의 난은 거의 중국의 절반을 석권한다. 지속기간도 9년에 달했다. 2억의 백은을 들였다. 지금의 청나라 묘장성(苗長城)같은 것은 모두 백련교의 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왜 백련교는 계속 정부와 적대관계였을까? 누가 권력을 잡든 그에게 반대했을까?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백련교는 영향력이 큰 민간집단조직이어서 정부에서 마음을 놓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탄압한 것이다. '어디를 억누르면 거기가 터진다'는 것처럼 이는 백련교의 반발을 불러온다. 백련교는 모든 왕조에서 탄압을 받았고, 자연히 그에 항거한 것이다. 당연히 그중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도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원,청의 백련교의 난은 일정한 범위에서 '구제달로(驅除韃虜)'의 의미가 있다.


백련교에 대하여 3가지는 중요하게 언급해야 한다: 첫째, 백련교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의 비밀단체이다. 그래서 조정이 우려하게 만들었다. 둘째, 교의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다. 발전속도가 아주 빠르다. '우부우부(愚夫愚婦)가 서로 전하며 미혹되어, 밭에 모여서 헛된 교리를 즐겨 믿는다" 쉽게 무리를 지어 사건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정에서 무서워한 것이다. 셋째, 교의가 아주 효과적이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련교주는 신도들에게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사음(邪淫)하지 말며, 헛된 말(妄語)을 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라고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