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대학(武漢大學)의 벚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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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대학

2019. 5. 5.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벚꽃(櫻花)의 원산지는 히말라야산맥이다. 인공재배후, 이 나무는 점차 중국의 장강유역, 서남지구 및 대만으로 전해진다. 진한(秦漢)시기에 궁중의 황족들은 이미 벚꽃을 심었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당(漢唐)시대에는 이미 개인화원에도 보편적으로 식재되었다. 성당(盛唐)시기에 궁중정원에서 민간논밭까지 어디에서든지 찬란하게 꽃을 피워서 태평성대를 돋보이게 만드는 벚꽃을 볼 수 있었다.


당시는 만국내조(萬國來朝)하였고, 일본은 중화문화를 깊이 숭배하여, 벚꽃은 건축, 복식, 차도, 검도등과 함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가져갔다.


일본인들을 벚꽃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하여 교배를 통해 새로운 우량품종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아주 풍부하고, 300여종에 달하는 "벚꽃가족"이 생겨나게 된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널리 재배되며 동시에 관상성이 좋은 것은 "일본사쿠라"라고 불리는 벚꽃이다.


1939년 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본국에서 벚꽃의 묘목을 가져온다. 우한대학 낙가산(珞珈山)에 최초의 28그루의 벚꽃나무를 심게 된다. 일반적으로, 일본군이 낙가산에 벚꽃을 심은 주요 목적은, 이곳에서 휴양하던 많은 일본군 부상병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들의 전공과 장기점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낙가산 캠퍼스의 이 제1차 일본사쿠라는 일본의 중국침략을 상징하고, 국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3년후인 1972년 중일국교가 정상화된다. 1973년 3월 유관부서는 일본의 우인(友人)이 주은래 총리에게 보내온 "산앵화(山櫻花, 일명 후쿠시마사쿠라, '청부앵(靑膚櫻)'등으로 불린다) 20그루를 우한대학에 증여한다. 학교는 낙가산 북록의 반산려(半山廬) 앞에 심는다.


1983년 1월, 중일수교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본의 니시진오리(西陣織)주식회사는 당시 교토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우한대학 생물학과의 왕밍췐(王明全) 교수에게 100그루의 "수지대엽조영(垂枝大葉早櫻, 일명 '사앵(絲櫻), 수피안앵(垂彼岸櫻), 팔중앵(八重櫻)등으로 부른다) 묘목을 풍원(楓園)과 앵원(櫻園)에 심는다.


1992년, 중일수교2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 히로시마의 주코쿠(中國)주식회사내의 중국호북붕우회 사전수부(砂田壽夫) 선생은 방문단을 이끌고 우한대학으로 가서, '일본사쿠라' 묘목 약 200그루를 증여한다. 이 벚꽃은 인문과학관 동쪽의 팔구묘포에 심는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사병이었던 사전수부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여러번 당시 일본노병을 조직하여 호북으로 '감사인사'를 하러 온다. 동시에 대량의 벚꽃나무를 증여한다. 이는 중일우호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는다.


그외에 1989년 봄, 우한대학은 동호마산식물원으로부터 중국 운남이 원산지인 '홍화고분앵(紅花高盆櫻)' 16그루를 도입하여, 학교 병원 옆에 심는다.


1939년 중국침략 일본군이 심은 그 28그루의 벚꽃나무는 1980-1990년대에 이르러 하나하나 죽고 만다. 그중 마지막 나무는 개략 1997년을 전후하여 죽었다. 현재 우한대학의 '앵화대도'에서 볼 수 있는 일본사쿠라는 이미 더 이상 중국침략일본군이 심었던 그것들이 아니다. 많은 것은 원종의 제2대, 제3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