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왕치산과 런즈창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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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잡학/런즈창사건

2020. 4. 4.

글: 왕우군(王友群)

 

2020년, '중국바이러스'가 전세계 200여개국가와 지구를 휩쓸고 있고, 14억 중국인은 하나 또 하나, 한 무리 또 한무리, 용감하게 박차고 일어나서, 오천년 중화문화유전자를 전승해온 염황자손의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인류대재난을 일으킨 중국공산당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미 은퇴하고 의식주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중국의 저명한 부동산사업가인 런즈창은 원래 "일 하나 더하는 것보다 일 하나 덜하는 것이 낫고, 일 하나 덜하는 것보다 일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말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난이 닥치자 그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반드시 '사자후'를 내어 잠들어있는 양심, 도덕, 정의와 인간성을 깨워야 했다. 그리하여, 붓을 들어 바른 소리를 써내려 갔고, 그의 일생중 가장 중요한 경세문(警世文)이 나왔다.

 

이 글 때문에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전중국 심지어 전세계에서 유명한 살아있는 사람이 '실종되었다' 런즈창은 현임 중국국가부주석 왕치산과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에, 그이 글은 창끝을 직접 현임 중공당수, 국가주석, 중앙군위주석인 시진핑을 향했다. 시진핑, 왕치산, 런즈창의 관계는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런즈창사건으로 시진핑, 왕치산은 이미 결렬되었다고. 시진핑, 왕치산은 정말 결렬되었을까?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시진핑과 왕치산의 관계

 

시진핑, 왕치산의 관계는 당금 중국정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그들은 모두 '태자당'에 속한다.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은 일찌기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 전인대 부위원장을 지냈다. 왕치산의 장인인 야오이린(姚依林)은 일찌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다. 그들의 장기간이 우의는 예전에 연안에 하방되었을 때 두 사람은 일찌기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은 침대에서 잤을 정도라고 한다.

 

가장 주요한 것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시진핑의 제1차임기때, 왕치산은 그를 도와 반부타호(反腐打虎)를 진행하여, 최고권력을 빼앗아 오는데 큰 공을 세운다. 시진핑, 왕치산이 조사하여 처버한 부성장(차관)급이상의 고위관리는 440여명인데, 대다수가 장쩌민, 쩡칭홍에 의해 발탁되고 중용된 인물들이다. 그중 전 정치국 상임위원이며 중앙정법위서기였던 저우용캉, 정치국 위원이며 중앙군사위부주석이었던 쉬차이허우, 궈보슝은 일찌기, 장쩌민, 쩡칭홍이 장악한 '칼잡이'와 '총잡이'의 핵심심복들이었다. 정치국위원, 충칭시위서기인 보시라이, 쑨정차이는 장쩌민, 쩡칭홍이 시진핑을 대체하려고 준비했던 후계자들이다.

 

당시, 시진핑, 왕치산의 타호기세는 아주 맹렬했고, 장쩌민은 사망한 중공지도자들의 추도활동때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아주 어려울 정도였고, 쩡칭홍은 오랫동안 공개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될 정도였다. '경친왕(慶親王)'이라는 말만 나와도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 이렇게 5년간 지속된 반부타호활동으로 인하여, 장쩌민, 쩡칭홍은 시진핑, 왕치산에 대하여 뼛속까지 한을 품을 정도이다. 언제든지 그들의 목숨을 없애고자 할 정도였다. 아쉽게도 중공19대전에 시진핑은 스스로 대권을 이미 손에 넣었다고 여기고, 금적(擒賊)하면서 금왕(擒王)하지 못하고, 장쩌민, 쩡칭홍은 집어넣지 못했다. 장쩌민, 쩡칭홍이 '고개를 숙이는' 겉모습만 보고 그들과 타협하고 만다.

 

금적불금왕(擒賊不擒王)을 하였으니 반드시 재앙을 당하게 된다. 장쩌민, 쩡칭홍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를 얻은 후, 막후에 숨어서 그들의 심복을 지휘하여 계속하여 국면을 교란시킨다. 그리고, 시진핑과 왕치산을 이간질한 후, 각개격파하고, 권력을 되찾아오려고 한다. '이간계'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중공19대이후, 왕치산은 비록 국가부주석을 맡았지만, 점점 밀려난다. 2019년 7월 1일 왕치산은 외빈을 접견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현재 주석을 도와 약간의 예의성 외교를 도와주는 것을 책임지고 있다."

 

3월 6일, 런즈창의 반시진핑문장이 발표되자, 장쩌민, 쩡칭홍의 국내외 심복들은 환호한다. 즉시 왕치산과 런즈창의 관계를 가지고 떠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시진핑과 왕치산이 철저히 결렬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각종 유언비어가 떠돌게 된다. 다만, 현재 시진핑과 왕치산이 결렬되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시기가 빠르다. 중국역사상 여러가지 예언이 있었고, 아주 정확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역사는 정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 모택동의 처인 강청이 한대 여황제를 꿈꾼 바 있다. 그 결과 사형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결국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보시라이는 일찌기 중남해의 주인이 되고자 했으나, 현재는 진성감옥에서 만두나 씹고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시진핑, 왕치산은 불가분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사람들을 체포했으므로, 그들은 하나로 묶여 있다. 시진핑이 쫓겨나면 왕치산도 마찬가지이고, 왕치산이 쫓겨나면 시진핑은 아주 위험해진다. 현재 시진핑, 왕치산은 소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노래는 끝나지 않았고, 사람도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런즈창과 왕치산의 관계

 

런즈창과 왕치산의 관계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런즈창은 자서전인 <야심우아>에서 이렇게 썼다: "중학을 다닐 때, 왕치산은 나의 반의 보도원이었다. 그때 같은 학교의 고등학생이 중학생의 보도원을 맡는 것이 유행했는데, 우리반의 제1대 보도원은 야오밍웨이(姚明偉, 왕치산의 처의 오빠)이고, 중간에 장샤오췐(蔣小泉)이 있었고, 나중에 왕치산이었다. '문혁', '복과뇨혁명(復課閙革命)'때부터 농촌삽대까지, 우리는 함께 있었다. 당시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그는 우리와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같이 한 보도원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상산하향할 때까지, 그리고 다시 북경에서 일을 할 때까지, 나는 그와 각종각양의 연락을 유지했다. 지금 그는 가끔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오고, 우리는 자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다."

 

시진핑이 2012년 11월 취임하여 집권한 후, 왕치산은 중공정치국상임위원, 중기위서기를 맡는다. 그후 런즈창은 여러번 '출격(出格)' 언론을 발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런즈창은 북경대학 강연때 이렇게 말한다. 중공체제는 완전히 썩었다. 이 벽을 밀어서 무너뜨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2015년 2월 14일, '중국경제50인포럼 연도대회"때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과도하게 총잡이와 칼잡이를 강조하고, 서방의 가치관을 반대하여, 문혁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같은 해 9월 21일, 런즈창은 웨이보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공산주의 후계자라는 구호는 십여년간 속여왔다." 런즈창의 '출격'언론에는 이런 것도 있다: "시진핑의 팀은 수레바퀴를 걲로 돌리고, 군대는 '총구를 내부로 향하고' 있다." "시진핑은 연이어 엉터리수를 두고 있다." "공산당극권은 합법이 아니다."등등

 

2016년 2월 19일, 시진핑의 '당매성당(黨媒姓黨)'의 주장에 대하여, 런즈창은 웨이보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매체가 서을 가지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을 때, 인민은 잊혀진 구석으로 버려지게 된다!" 이 말이 나오자, 중국공산당의 매체들이 즉시 문혁식의 비판을 쏟아낸다. 연속 10일간 그를 욕했다. 어떤 매체는 그를 '엄중하게 국가정치안전을 위해하고, 헌법에 위반하며, <국가안전법>에 위반했다", "서방헌정민주의 메가폰이다" "보통민중이 당과 정부에 반대하는 과격정서를 선동한다" 반드시 런즈창을 '출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월 22일, 천룡망에는 <누가 런즈창에게 '반당'의 배짱을 주었는가?>라는 글을 싣고 이런 의문을 싣는다: "한밤중에 지도자에게 전화걸기를 좋아하는 런즈창에게 도대체 누가 튀어올라 담장을 밀어뜨리는 '용기'를 주었는가?"

 

2016년 2월 29일, 중기위서기 왕치산이 이끄는 <중국기검감찰보>에는 <천인지낙낙(千人之諾諾), 불여일사지악악(不如一士的諤諤)>(천명의 지당하다는 말은 한명 선비의 올곧은 말만 못하다)는 글을 싣는다. 이 글에는 시진핑이 허베이성 상임위원회 "전제민주생활회"에 참석했을 때의 강화를 인용한다: "작은 문제를 아무도 일깨워주지 않고, 큰 문제를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면, 큰 잘못을 조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천인지낙낙, 불여일사지악악'이다." 문장은 또한 당태종과 위징의 관계등 역사고사를 인용하며, 널리 언로를 열고, 건의를 받아들이느냐 여부가 항상 한 왕조의 성쇠를 결정한다고 하였다. 그후, 각 대매체는 런즈창에 대한 비판을 돌연 중단한다. 같은 해 5월 2일 중공북경시 서성구위는 런즈창에게 "유당관찰1년"의 처분을 내린다.

 

만일 왕치산이 힘껏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런즈창은 분명히 일찌기 출당당하고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런즈창의 그렇게 많은 '출격' 언론에 대하여 왕치산은 왜 그를 보호해 주었을까? 기실 아주 간단하다. 왕치산이 친히 중기위감찰부를 지휘하여 많은 대형사건 중요사건을 처리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중공이 이미 어느 정도 썩었는지. 입으로는 항상 '인의도덕'을 외치는 탐관오리는 머리속에 온통 '남도여창(男盜女娼)'만 들어있다는 것을.

 

런즈창사건은 시진핑 왕치산을 결렬시킬 것인가?

 

시진핑과 왕치산의 결렬은 그들의 최대정적 장쩌민, 쩡칭홍이 가장 보고싶어하는 결과이다. 또한 그들이 조사처벌한 수백명의 '노호(호랑이)' 및 '호랑이자식' '호랑이손자'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결과이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런즈창사건으로 시진핑과 왕치산이 결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원인은 네가지이다.

 

첫째, 런즈창이 이번에 나선 것은 진실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70이고, 돈도 있고, 이름도 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쓸 것이 부족한게 없다. 이 나라가 중공에 의하여 가장 위험한 지경까지 몰리지 않았다면, 그는 떨치고 일어설 이유가 없었다. 노자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민불외사(民不畏死), 내하이사구지(奈何以死惧之)"(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죽음으로 겁먹게 할 수 있겠는가?) 런즈창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시진핑이 그를 어떡할 수 있겠는가?

 

둘째, 중국정부의 인화(人禍)로 이번 우한폐렴사태가 났다. 세계대전이 아니지만, 세계대전보다 심하게 전인류에게 생명, 생활, 경제, 정치, 문화에 큰 재난을 불러왔다. 3월 17일, 미국의 보수파조직인 'Judicial Watch'와 'Freedom Watch'의 창립자인 래리 클레이만 변호사는 텍사스주 북부법원에 솟장을 제출하여 중국정부가 생물무기를 연구개발하여, 중국바이러스가 전세계에 유행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최소 25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국제적으로 중국정부에 대한 책임추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시진핑하야'의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3월 22일, 홍콩의 양광위성TV 동사장 천핑은 공개서신을 포워딩하면서 중국정치국확대회의를 소집개최하여, 시진핑의 책임을 묻자고 요구한다. 이때 시진핑이 런즈창을 엄벌하는 것은 국내외에 역효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셋째, 왕치산도 좋고, 시진핑도 좋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중국공산당이 어느 정도 부패했는지 잘 알고 있다. ㅖ를 하나 들어보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시진핑, 왕치산이 철완을 휘둘러 반부타호를 진행했고, 독한 말도 내뱉었으며 많은 법률법규도 만들었고, 크고 작은 회의도 개최하면서, 440여명의 부부장급이상의 고관을 조사처벌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형을 내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의 눈아래에서, 중남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 북경시부시장 천강(陳鋼)은 2018년 한해만 받은 뇌물이 7천만위안에 달했다. 중국의 부패라는 암은 이미 치료할 약이 없는 상황이다. 아무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다.

 

중국공산당은 100% 끝났다. 시진핑도 좋고, 왕치산도 좋고, 그들은 현재 죽어라 체면을 지키려 억지로 버티고 있다. 2월 4일, 청화대학 교수 쉬장룬이 시평문장을 발표하여 이렇게 말한다: "국민의 분노는 이미 화산폭발과 같다. 그리고 분노한 인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런즈창을 하나 쓰러뜨리면, 천만명의 런즈창이 깃대를 들고 일어설 것이다.

 

넷째, 시진핑, 왕치산의 최대정적인 장쩌민, 쩡칭홍의 사람들이 런즈창사건을 기화로 시끄럽게 떠들어서 런즈창을 엄벌하게 하려 한다. 그렇게 하여 시진핑이 인심을 모조리 잃고, 시진핑과 왕치산이 결렬하게 만들어, 시진핑으로 하여금 가장 유력한 조력자를 잃게 만드려는 것이다. 일단 시진핑이 쫓겨나면, 바로 그들이 복수의 칼을 드는 날이 될 것이다. 시진핑일가의 노소는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고, 왕치산도 시진핑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시진핑, 왕치산이 결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국면의 발전과 더불어, 시진핑이 어려운 시기에 빠지게 되면, 시진핑은 다시 왕치산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중국공산당은 역도채매커니즘(열승우태(劣勝優汰)를 가지고 있어, 한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시진핑이 쓸만한 사람은 아주 적다. 작년 홍콩에서 그렇게 큰 사건이 벌어졌으면, 마땅히 해외유학배경을 지니고, 광동말을 할 줄 알고, 글로벌시야가 있으면서, 최대한도로 홍콩각계를 단결시켜 앞으로 전진하게 만들 힘있는 사람을 홍콩에 보냈어야 한다. 시진핑이 이리저리 골랐지만, 결국 이선으로 물러나 있고, 오랫동안 내지에서 일했으며, 정치적업적이 평범한 뤄후이닝(駱惠寧)으로 하여금 중공주홍콩연락판공실 주임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왕치산은 당금 중국고위층 중에서 보기 드문 인재이다. 5년의 반부타호로 탐관오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염왕을 만날지언정 노왕(왕치산)은 보지 않겠다"고 할 정도이다. 차라리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목을 매고, 독을 마셔 자살할 지언정, 왕치산에게 끌려가서 조사받지는 않으려 하였다.

 

거대한 변혁의 역사적 특수시기에 시진핑, 왕치산이 손을 잡고 적군, 아군, 우군을 명확히 하여, 적의 왕 즉 장쩌민, 쩡칭홍을 잡아들이면 혹시라도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