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왕(周文王)의 장남 백읍고(伯邑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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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2020. 4. 9.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백읍고는 주문왕 희창(姬昌)의 장남이다. 그는 성격이 돈후인애(敦厚仁愛)하였고, 효자였다. 그의 이름은 외자로 '고(考)'였다. 그리고 성은 희(姬)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명은 '희고(姬考)'이다. 그는 읍(邑)의 관직에 봉해지므로, 읍고(邑考)라 불렸다. 읍고는 주문왕의 아들들 중에서 장남이다. 옛날에 장유의 순서는 "백(伯), 중(仲), 숙(叔), 계(季), 현(顯), 혜(惠), 아(雅), 유(幼)"였으므로, 백읍고라고 불리게 된다.

 

주문왕은 주왕(紂王)의 분노를 사 감금된다. 백읍고는 부친을 구하기 위하여, 칠향거(七香車), 성주전(醒酒氊)과 백색원후(白色猿猴)의 세 가지 보물을 주왕에게 바쳤다. 달기(妲己)는 백읍고의 용모가 준미하고, 금예(琴藝)가 절륜한 것을 보자 가까이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백읍고가 엄정한 말로 거절하자, 이에 분노하여, 백읍고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백읍고가 바친 백원(흰원숭이)이 자신을 덥친 것을 기화로 백읍고가 백원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말한다. 또한, 백읍고의 금(琴)은 주왕이 무덕(無德)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백읍고는 사지를 잘리고, 칼질을 당해 죽는다. 그의 살을 발라 육병(肉餠)으로 만들어, 달기는 백읍고의 부친 희창에게 보내어 먹게 한다.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어느 날 달기가 백읍고의 방으로 가서 그를 유혹하려 했는데, 백읍고가 미색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달기가 부도(婦道)를 지키지 않는다고 질책한다. 그리고 호위무사를 부른다. 일이 커지자 주왕까지 알게 된다. 주왕은 사건의 경위를 조사한다. 그러자 달기는 모든 죄를 백읍고에게 뒤집어 씌웠다. 백읍고가 자신의 미색을 탐하여 억지로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왕은 분노하여 즉시 백읍고를 죽이고, 그를 육환(肉丸)으로 만들어, 주문왕에게 보내어 먹게 한다. 주문왕은 괘상(卦象)을 보고 자식이 화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고, 다음 날 아침에 육환이 올라왔지만, 그는 전혀 모르는 척하고, 그것을 먹어 주왕을 속인다. 그리하여, 주왕은 문왕이 복괘(卜卦)로 미래를 알아맞춘다는 것이 그저 헛소문이라고 여겼고, 결국 주문왕을 풀어준다.

 

마침내 서백후(西伯侯) 희창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막 서주의 땅을 밟았을 때, 속이 메스꺼워 입을 열었더니 토끼 3마리가 나왔다. 그는 이것이 백읍고의 삼혼(三魂)이 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이 토끼들은 좌우를 살펴보고나서 대로를 따라 서백후의 궁전으로 들어가서, 서백후의 부인과 모친의 주변을 배회했다. 두 여인은 어디에서 온 토끼인지 몰랐지만, 그것을 보자 내심으로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하늘이 이미 어두웠고, 토끼는 다시 마당으로 가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때, 항아(嫦娥)가 여와(女媧)의 명을 받고 내려와 그를 데리고 월궁(月宮)으로 갔다.

 

죽은 백읍고는 주왕을 토벌하는 전쟁에서 첫번째 희생자였다. 태백금성(太白金星)은 그를 자미성궁(紫微星宮)에 배치하고, 존귀지신(尊貴之神)으로 삼아, 존귀, 권력, 제왕을 상징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자미두수(紫微斗數)는 자미성을 으뜸으로 삼게 되는 기원이 된다. 주문왕은 귀국후 아들을 위해 복수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복수는 백읍고의 동생인 무왕 희발(姬發)이 물려받아 완성한다. 주무왕은 국력을 진흥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루고 일대군사 강자아(姜子牙)의 도움을 받아 상나라의 주왕을 토벌하고 중국의 세번째 왕조 주(周)를 건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