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인도의 충돌: 중국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인도를 친다

댓글 1

중국의 정치/중인국경분쟁

2020. 6. 22.

글: 정효농(程曉農)

 

금년 5월이래, 중국-인도간에는 58년간 지속되던 평화상태가 깨져버리고 다시 한번 충돌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국은 매번 대외관계가 긴장되고 대내경제사회정책이 실패하면 비교적 약한 이웃나라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택된 약한 이웃나라는 두번 모두 인도였다. 옛날 모택동이 곤경에 처했을 때의 기본전략은 "잘못을 범할수록 담담하게 전선을 옮겨서 출로를 찾는다." 현재 다시 한번 이 전략이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1962년 중인전쟁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 두번의 굴기, 두번의 곤경

 

최근에 폭발한 중국-인도국경충돌은 사건 자체로만 보자면, 마치 오랫동안 양국의 국경분쟁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인도국경은 아직 미해결상태이고, 근 100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쌍방간에 오직 두번 충돌이 발생한다. 한번은 1962년이고, 또 한번은 현재이다. 이 두번의 충돌간에 58년의 기간이 있는데, 쌍방은 근 1갑자동안 평화를 유지해왔다. 거의 1갑자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왜 충돌이 일어난 것일까? 아마도 답안은 시기에 있는 것같다. 그러나, 달력에서의 연도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두 개의 특정연도의 시대배경을 보아야 설명이 된다.

 

중국-인도충돌이 발생한 두 연도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 사상유례없는 국내국제적 곤경을 맞이했을 때라는 것이다. 이런 곤경은 중국의 '굴기' 방침에 따른 필연적 산물이었다. 1962년 모택동이 일으킨 '대약진'은 영국,미국과 소련을 추월하려고 했으나 철저히 실패한 때이다. 2020년은 역시 중국이 굴기방침으로 미국을 추월하려고 하였으나, 미국의 반격에 내외적 곤경에 빠진 해이다.

 

이 두번이 굴기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국의 국제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경제형의 국내경제와 내외공격형의 정책을 실시하여 결국 국내경제는 심각하게 하락하고, 동시에 우방들이 등을 돌린다. 이로 인하여 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한다. '대약진'은 농촌공산화로 농업생산을 증가시키려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농업이 붕괴되고 수천만 농민이 아사했다. 모택동은 1958년 금문도 포격전을 벌였고, 심지어 소련에 이로 인하여 발생할 지도 모르는 미국과의 핵전쟁에 참가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런 미친 정책으로 소련은 중국과의 밀월을 끝내고, 대중국기술원조를 중지한다. 중소, 중미관계가 동시에 악화된다. 현재의 국내경제의 곤경은 근원을 찾아보면 , 후진하오-원자바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부동산버블방침으로 중국경제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누적된 문제가 최근 몇년간 폭발한다. 경제는 하락하는 것이 '신상태'가 되고, 미국을 추월하여 굴기한다는 전략도 후진타오-원자바오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굴기를 위하여, 미국에 대하여 대규모 기술절도활동을 진행하고, 여기에 장기간의 거액의 대미무역흑자를 나타냈다. 그리고 공공연히 국제해양법을 위반하여 남해에서의 공해해역에 인공섬을 건설한다. 이를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대중국핵미사일잠수함의 '심해보루'를 건설하려 했다. 트럼프당국은 중국의 여러가지 위협에 대하여 반격조치를 취한다. 중국경제의 하락을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신종코로나는 미중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2, 잘못을 범할수록 담담하게, 전선을 옮겨서 출로를 찾는다.

 

만일 이런 내외적인 곤경이 민주국가에서 발생했다면, 아마도 내각이 물러나거나 책임추궁을 당했을 것이다. 다만, 공산국가에서 당국은 한번도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런 국가가 만일 지도자의 개인독재상황이라면, 곤경에 빠진 지도자는 국내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하여 대외충돌로 민족주의를 환기시킬 것이다. 도잇에 당내에서 군대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보여줌으로써 잠재적인 내부도전자들의 움직임을 막으려 할 것이다.

 

당시 모택동이 곤경에 빠진 중공을 위한 기본전략은 "잘못을 범하면 범할수록 담담하게 전선을 옮겨서 출로를 찾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담담하다는 것은 죽어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출로를 찾는다는 것은 바로 내정과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전선을 구하고, 새로운 투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접국이 횡액을 당한다. 그 인접국은 소국이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겨도 자랑스럽지 않다. 민족주의적인 선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주변나라들 중에서, 유일하게 크면서 약한 나라가 인도이다. 쌍방은 오랫동안 미결상태인 국경문제도 있다. 그리하여 마찰을 일으켜, 인도를 타격하는 것이 중공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다만, 중공도 마지노선은 있다. 충돌을 만들더라도 인도내지로 깊이 들어가면서 영토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고립이 심화될 뿐아니라, 닭도 훔치지 못하면서 쌀만 좀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도와의 충돌은 영토를 빼앗거나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시선을 옮기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인 것이다.

 

중국-인도간에 국경을 확정한 지도는 1인치가 8마일인 지도 위에 그어져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지도에서의 국경은 하류나 산공등 자연지리를 경계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지도의 선은 정확한 경도위도의 좌표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지면에 옮길 수가 없다. 더더구나 무슨 국경표시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국경상황은 쌍방이 모두 자신의 실질통제지역이 있다. 양측의 실질통제지역간에는 쌍방이 모두 점령하고 있지 않은 완충지역이 있다. 한측이 완충지역에서 무슨 동작을 하면, 예를 들어, 공사를 하거나 보루를 설치하거나 하면 바로 마찰이 일어난다. 이때 한측이 손을 쓰려고 하면 바로 충돌이 일어난다. 1962년의 중국-인도분쟁이 바로 그러했다. 금년의 중국-인도분쟁도 또한 그러하다.

 

두번의 중국-인도충돌은 공통의 모델이 있다. 중국측은 국경이 미해결된 현상을 이용하여 마찰을 일으킨다. 그 후에 병력을 보내어 충돌방안을 설계하고, 돌연 기습한다. 그후에 사태를 축소하고, 국경을 원상으로 되돌리거나 적절히 후퇴한다. 그리고 평화를 회복한다. 매번 충돌은 중국이 군사상 주도권을 쥐었고, 미리 준비를 했다가 돌연 기습했다. 아래에서는 두 번의 충돌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3. 1962년 중-인전쟁의 승패

 

1962년 겨울 중국은 중-인전쟁을 일으킨다. 그해 10월 20일 중국군대는 중-인국경의 동부지역에서 공격을 감행한다. 인도군은 패전한다; 11월 16일 중국군대는 다시 국경선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에서 장거리기습의 전법으로 인도주둔군을 포위공격한다. 다시 한번 대량의 인도군을 섬멸한다. 군사적으로 중국군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외교적으로 큰 실패를 겪는다. 세계에서 서방국가, 공산국가와 기타 개발도상국에서 50여개국가가 공개적으로 인도를 지지한다. 그외에 또 다른 일련의 국가들 이집트, 이라크, 스리랑카, 네팔, 몽골,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등의 국가는 중립을 유지한다. 공개적으로 중국지지를 선언한 국가는 많지 않았다. 오직 베트남, 북한, 파키스탄정도였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이유와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 가장 주요한 것은 미국, 소련 양국이 확실하게 인도를 지지한 것이다. 그들에게 대량의 군사원조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대형수송기, 전투기와 헬기가 포함된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인도군은 미국, 소련에서 제공한 대량의 현대식 장비를 도입한 후 실력이 증가한다. 중국군대가 더 이상 싸운다면 이제는 유리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모택동은 완전철수를 명령한다. 일부 공격하기 전의 점령지역까지 포기한다.

 

위키백과의 소개에 따르면, 당시 인도의 호주기자인 네빌 막스빌(그는 친중인 편이다)은 <인도의 대중국전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군대가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중국정부는 돌연 일방적으로 무조건철군을 선언했다. 이는 전세계로 하여금 안도의 숨을 내쉬게 했다기보다, 전세계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세계전쟁사상 한번도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승리한 측에서 패전한 측에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상황하에서 일방적으로 무조건철군을 하다니 실제상 자신이 거대한 댓가를 들여서 얻은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대작가인 진휘(金輝)의 장편일기 <티벳 모투(墨脫)의 유혹>에서 그 시기의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승리자와 실패자는 모두 아주 명확하다. 다만 근 30년이 지난 후, 현재 다시 한번 그때의 전쟁과 성과를 되돌아보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승리자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명목외에 실패자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실패자는 승리하지 못했다는 명목외에 승리자의 모든 것을 얻었다. 승리자는 승리했다는 것으로 아무 것도 못한다. 심지어 승리의 성과를 모조리 잃어버리는 거대한 굴욕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라나 실패자는 오직 승리자라는 허명만 얻지 못했을 뿐, 계속 주먹을 쥐고, 복수하겠다고 맹세한다. 아마도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4. 2020년의 중국-인도충돌

 

역사는 항상 현실의 거울이다. 금년에 충돌이 다시 일어났다. 충돌지역은 중국-인도국경의 서부지역의 네팔에 가까운 지역이다. 거기는 황무지인 고해발의 극한지역이다. 기후는 열악하고, 지형은 험준하며, 교통은 불편하다. 쌍방은 모두 주민이 없다. 쟁탈할만한 자원도 없다. 과거에 국경순찰인원은 완충지역에서 플랭카드를 펼쳐서 각자의 주장을 하고는 다시 각자 자기 갈 길을 가곤 했다. 최근 들어 인도는 매년 수백차례 중국측이 실제통제선을 넘는 사건을 기록한다. 중국측은 심지어 인도측의 실질통제이역까지 들어와서 군영을 세우고 수주간 대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대치는 모두 인원사망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구타나 적의도 표시하지 않았다.

 

최근, 인도의 순찰병이 완충지역에서 중국군대가 만드는 일부 건축물을 발견한다. 인도군은 이 건축물을 파괴하려 했는데, 중국순찰병의 공격을 받는다. 중국-인도 쌍방은 비무장합의가 있으므로, 쌍방은 군사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모두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쌍방군대의 충돌은 맨손으로 싸우는 것이다. 5월말의 쌍방충돌에서, 중국군은 72명의 인도군을 때려서 상처입히고, 5명을 포로로 잡는다. 1번만에 거의 1개연대의 인도군을 부상입힌 것이다. 이를 보면 중국군대의 충동병력은 수백명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6월 15일 저녁 다시 충돌이 발발한다. 몇시간동안 지속되었는데, 중국측이 철질려(鐵蒺藜)를 부착한 몽둥이를 썼다. 맨손의 인도장병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인도군 백명이상이 몽둥이에 맞아 산아래로 추락했고, 지형이 험준하여 적시에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최소 20명이 저온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전에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여 공격형 몽둥이를 준비했던 점을 보면, 금년의 중-인충돌은 중국이 사전에 준비한 선발제인(先發制人)의 기습공격이다. 군인은 명령이 없이는 대규모 공격을 일으킬 수 없다. 이를 보면 중국군대는 이번의 기습배후에 정부의 도발하겠다는 정책결정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마찰을 일으키려 했고, 군인들은 명을 받아 행동한 것이다. 현재 쌍방은 잠시 충돌현장에서 벗어나 있다. 다만 각자 전선에 대규모 병력과 중장비를 모으고 있다. 이후 국면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한다.

 

며칠 전에 중국의 관영매체에서도 "이번의 중-인충돌사건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인도간에는 성숙한 매커니즘으로 이견을 관리한다. 이것이 쌍방간에 수십년간 계속된 충돌에서도 사망사례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이다. (그러나) 중국은 1962년 중-인국경충돌에서 발생한 심리적 우세는 여전히 뿌리깊다." 중국이 고의로 중-인국경충돌을 일으킨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5. 중국은 재차 '승리'할 것인가?

 

중국은 현재 왜 다시 중-인국경충돌을 일으킨 것일까? 그 심층적 원인은 위에서 이미 분석한 바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마도 중국이 미중냉전이 시작된 후 국제사회에서 계속 견제받고 있으며, 그중 인도가 중국과의 협력을 거절한 것도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미국의 경제압력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계속 벽에 부딛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이번에 이노를 한번 쳐서 인도로 하여금 말을 듣게 하고 싶었던 것같다. 과거 1년여동안 인도는 일본이 앞장선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 Pacific Partnership(CPTPP)"의 참여를 거절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RCEP)"의 가입도 거절했다. 인도가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중국은 이를 갈고 있었고, 그리하여 이번 충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번 충돌은 1962년 중-인전쟁과 비교하면, 규모와 심각성에서 훨씬 약하다. 쌍방은 아직 총포를 동원하지 않았다. 다만, 국제적인 영향은 1962년과 비슷하다. 중국은 이번 충돌에서 마찬가지로 외교적 고립에 처한다. 어느 국가도 공개적으로 중국을 지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국제형세는 이미 1962년과 크게 다르다. 첫째, UN은 점점 반서방의 개발도상국이 다수가 되었고, UN은 중국의 무대가 되었을 뿐아니라, 미국의 상대가 되었다. 그래서 UN이 다시 국제정의를 주도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더 이상 이번 중-인분쟁의 효과적인 중재자가 될 수 없다. 둘째, 중국이 경제글로벌화를 한 후에, 경제적인 이익으로 유혹하여, 적지 않은 나라를 회유했다. 그리하여 중국은 이런 소규모 충돌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을 것으로 생각지 않고 있다.

 

인도의 국제지위와 경제력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의 역량만으로도 국제적인 성원이 없이 정치와 경제에서 중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독일의 소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번 국경충돌후, 인도는 신속히 외교와 경제정책을 변경하여, 중국에 반격을 가했다. 주로 다음의 몇 가지 방식이다:

 

첫째, 화웨이의 5G를 거부한다.

둘째, 중국제품을 거부한다. 전인도상인연합회(CAIT) 전국비서 마하잔(Ashwani Mahajan)은 7천만 인도상인으로 구성된 전인도상인연합회는 이미 전국에서 중국상품불매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셋쨰, 계쏙하여 중국의 우한폐렴근원에 대한 조사압력을 가한다.

넷째, 집단으로 중국에 대항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뉴델리가 현재 지연정치관계를 조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중국과 충돌로 인도는 미국의 유세를 받아들여,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여 중국이 남해에서 확장하고 군사활동하는 것을 억제할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 국제참여를 확대한다. 전문가를 국제조직에 파견하고, 학술계와 민영부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발언권을 확보한다.

여섯째, 군사력을 증강시킨다.

 

중국은 1962년의 중-인전쟁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