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범(張弘範): 원군(元軍)을 지휘하여 송(宋)을 멸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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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2020. 7. 3.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애산(崖山)전투는 십여만의 대송군민이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떠오른 시신이 수십리에 이를 정도로 참혹했다. 나라를 세운지 삼백여년된 송왕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남경대학살에 비견할만한 사태를 만들어낸 도살자는 바로 원나라의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으로 이름은 장홍범이다.

 

전후 장홍범은 애산석벽에 글을 새기고 돌아온다. 글자는 "장홍범멸송어차(張弘範滅宋於此)" 장홍범이 송을 여기에서 멸망시키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송(宋)"자를 하나 덧붙여서, "송장홍범멸송어차(宋張弘範滅宋於此)"로 고쳤다. 그 뜻은 송나라의 매국노인 장홍범이 송나라를 멸망시켰다는 말이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당연히 이것은 그저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전설일 수도 있다.

 

필자는 장홍범에게 전혀 호감이 없었다. 설사 그는 뛰어난 군사가, 출중한 전략가라고 인정하더라도, 옛날 백기(白起)가 40만의 조나라군사를 갱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필자가 일찌기 <너는 백기를 어떻게 보느냐>라는 글에서 백기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였지만, 적게 보면 전략적인 목적을 위해서이고, 크게 보면 진나라의 통일에 공헌했기 때문이다. 다만, 장홍범은 전혀 그를 변호해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장홍범은 원나라사람들에게 있어서, 대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전투를 벌여서 원나라사람들의 야만적인 도륙을 시행했다. 그는 문천상(文天祥)을 생포하고, 장세걸(張世傑)을 물리치고, 남송의 마지막 전력을 모조리 소멸시켜버린다. 그리하여 육수부(陸秀夫)는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로 뛰어들었으며, 남송은 철저히 멸망한다. '송말삼걸(宋末三傑)'이 모두 그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장홍범은 자가 중주(仲疇)이고, 하북 정흥(定興) 사람이다. 일찌기 양양(襄陽)전투에 참여했고, 나중에 남하하여 남송을 공격하여 문천상과 장세걸을 격패시킨다. 그는 송을 멸망시킨 주요지휘관이다. 관직은 강동도선위사(江東道宣慰使)에 이르며, 원세조 쿠빌라이에게 중용되고, 나이 43살에 병사한다. 그후 상주국(上柱國)과 제국공(齊國公)에 봉해지고, 시호는 헌무(獻武)로 받는다.

 

장홍범은 바얀(伯顔)과 함께 남송을 공격했다. 지금 이 바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설사 알더라도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몽골인이 한족을 치는 것은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홍범은 후세인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는다. 만일 중국역사상의 매국노에게 랭킹을 매긴다면 그는 분명 5위내에 들어갈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족이기 때문이다. 한족이 몽골족을 도와서 자신의 동포를 쳤다. 말그대로 한간(漢奸, 매국노)이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문장 앞머리에서 말한 이야기가 사람들이 나중에 두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한간이라는 것이 현재의 보편적인 인식일 것이다.

 

기실, 간단하게 그를 한간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없다. 장홍범은 한족이어서 한간(漢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대로 말이 되겠지만, 만일 그가 한족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족정권인 남송에충성해야한다고 하면 이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남송은 이미 많은 영토와 인민을 포기했었기 때문이다.

 

진한이래, 지역이 아주 넓었지만, 한족이 사는 지역은 황하유력이 위주였다. 오랜 시간동안 각지에는 조인, 연인, 월인, 초인등 지역적인 특색으로 스스로를 불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것은 오랜시간동안의 형성기를 거쳤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한민족을 가지고 혹은 염황자손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당시의 사람들의 개념을 규정할 수 없다.

 

장홍범의 출생지는 하북 정흥이다. 이 지방은 일찌감치 그가 태어나기 수백년전에 오대의 석경산이 차지하고 있었고, 거란에 넘겨준다. 즉 당시의 요나라이다. 대송왕조는 계속 이 땅을 수복하고 싶어했고, 송태종 조광의는 화살을 한대 맞고 낭패해서 돌아가야 했다. 양가장의 양노령공도 포로로 잡힌 후 단식으로 죽는다. 이 지방은 대송의 역대황제가 평생 수복하기를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나중에 다시 금나라가 백여년간 점령한다. 그 이후에는 몽골인이 점령했다. 그래서 장홍범을 한간(漢奸)이라고 하려면 그의 몇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 것이다. 즉 그의 몸에는 한족의 피가 흐르지만, 여하한 정권과도 관련이 없다. 그래서 필자의 생각에 그를 한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다.

 

장홍범은 몽골족이 아니다. 그는 연운지방의 토착민이다. 그는 거란 요나라 혹은 여진 금나라, 혹은 몽골점령지에서 자랐다. 나중에 몽골인이 원나라를 건립했다. 그렇다면 그는 말그대로 원나라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조정을 위해 힘을 다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석경당이 연운십육주를 할양한 것으로 인하여 매국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나라의 진종황제는 전연지맹을 맺어 그들을 요나라사람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국가행위이다. 송고종의 '소흥의화'로 그들은 금나라사람이 된다. 이것도 정부행위이다.

 

남송의 이종때, 다시 그들을 몰골인의 품으로 밀어냈다. 수백년간 송나라에서 쌀한톨 받아본 적이 없는 장홍범이 무슨 이유로 남송의 한족정권을 위해 일해야한단 말인가!

 

만일 그를 한간이라고 한다면, 대청왕조의 그 변발했던 한족들은 동포를 도살했는데 역시 한간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증국번, 임칙서, 악종기등등도 모조리 한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다시 넓혀서 대청왕조의 백성은 거의 모두 한간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청나라를 위해서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 청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간이라는 단어는 근대에 나타난 개념이다. 특히 항일전쟁때 널리 사용되었다. 현대의 정의대로라면, '중화민족을 배반하고 침략자에 투신하여, 그들의 주구가 되고 중국의 국가와 민족이익을 팔아먹을 패류'이다. 다만 이 정의로 고대인들을 평가하기는 너무나 부적절하다.

 

새 주인을 도와서 옛주인을 치는 것이라면 홍승주도 한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시랑도 청왕조를 도와 정종의 한족정권을 쳐서 대만을 수복했는데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누구도 왕맹이 부견을 도왔다고 하여 한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알아야 할 것은 항일전쟁때 일본군내에는 20만의 대만인이 있었다. 전후에 그들을 한간으로 취급하여 처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찌기 갑오년 청일전쟁후 대만은 일본에 할양되었기 때문이다.

 

장홍범은 금나라가 몽골인에게 멸망한 4년후 태어났다. 그의 집은 금나라사람들이 유주를 점령한 후, 대대로 금왕조의 신민이었다. 그의 부친은 몽골군에 항거하다가 포로로 잡힌 후 투항했다. 그래서 장홍범은 남송의 조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무를 겸비했고, 의표도 당당했다. 풍보가 뛰어났으며 몽골-송의 전쟁에서 요충지인 양양전투에서 그는 방대한 한족무장을 이끌고 송군과 6년간 격전을 치른다. 결국 수비장수 여문환(呂文煥)의 항복을 받아낸다.

 

이어서, 그는 진강(鎭江)에서 장세걸이 이끄는 수군을 궤멸시킨다. 그리고 다시 정가주(丁家洲)전투에서 가사도(賈似道)가 이끄는 13만 송군을 격패시킨다. 다시 진격하여 남송의 도성 임안으로 진격한다. 그 자신이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사태후(謝太后)를 설득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임안이 함락된다.

 

이어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계속 추격하여 문천상을 격패시키고 포로로 잡는다. 마지막으로 애산에서 남송의 남은 잔여세력을 모조리 섬멸시킨다. 남송은 이렇게 멸망한다. 전국의 모든 저항세력은 무기를 내려놓는다. 원나라사람들에게 있어서 장홍범은 불세의 공을 세운 것이다.

 

다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의 건강상태는 악화되고, 다음 해에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다. 장년의 나이에 그만 죽고마는 것이다. 사후에 원나라조정은 그에게 많은 영예와 칭호를 부여한다.

 

장홍범은 필자가 싫어하는 고대명인중 하나이다. 당연히 나는 한민족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가 대표한 것은 야만적인 이민족이고, 한족정권을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화문명에 단층이 생기게 만들었다. 한족으로서, 필자는어쨌든 그를 좋아할 수 없다.

 

현재 논쟁의 촛점은 그가 한간인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논쟁할 필요도 없다. 역사의 진전은 많은 개념을 모호하게 만든다. 현대의 이념으로 고대의 사람이나 일을 얘기하는 것은 현대의 칼로 옜날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아내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과 같다. 토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악비가 민족영웅이냐 아니냐도 현재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싸운 금나라는 현재 중화민족 대가족의 일원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당시의 전쟁은 내전이고, 형제간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비록 이런 주장이 민간에서는 그다지 통하지 않지만, 정부에서는 일부러 이런 개념을 유지한다. 역사교과서에서 민족영웅이라는 칭호를 없앴을 뿐아니라, 관련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흉노를 쳤던 위청, 곽거병까지도 민족영웅이라는 칭호를 누리지 못한다. 그런데 하물며 악비는 말할 것도 없다.

 

민족영웅이 없다면, 중화민족의 현재 판도내에서, 한간은 없다는 말이다. 모두 '형제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정부의 입장으로는 장홍범이 한간(매국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조상 몇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송나라사람이 아니고, 그에게는 그의 정부와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지 그가 이민족정권에서 목숩바쳐 일하면서, 동족인 민중을 살륙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칭찬해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 한민족인 필자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악비는 한족의 민족영웅이다. 그의 상대인 금나라의 올술은 여진족의 민족영웅일 것이다. 장홍범은 무엇인가? 그는 그저 영웅일 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영웅이다. 만일 중화민족 대가정의 개념으로 따진다면, 그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민족영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송나라를 멸망시킨 주력장수로서, 그는 유장(儒將)이다. 그는 전쟁터를 질타했을 뿐아니라, 그의 시사(詩詞)도 아주 괜찮다. 이는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의 무장이라는 신분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고전서>는 그에 대하여, "아운청(雅韻淸), 사옹용(詞雍容), 해협(諧協), 고비복개주자소급(故非服介胄者所及)"라고 썼다.

 

장홍범의 시사를 모은 책은 <회양집(淮陽集)>이다. 그는 회양왕에 봉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중 그가 슨 백여수의 시와 수십수의 사가 있다. 이들 시사를 보면, 그의 문학수준은 상당히 높다. 그금사회에서는 "풍조불감안소산(風調不減晏小山)"이라고 했다.

 

안기도(晏幾道)와 비견할 정도라니 그에 대한 평가는 높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이는 약간 과장된 면도 있다. 필자는 그의 사를 잃어보았지만, 그다지 놀라운 점은 없었다. 물론 사의 수준은 확실히 낮지 않았고, 이류라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이와 비교하자면 그의 시는 훨씬 좋다. 특히 오율은. 깊이 감사해보면 맛이 있다. 송나라때는 사가 비교적 유행했고, 시는 칠언이 위주였는데, 장홍범은 오언을 잘 썼다. 그것도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송시는 필자도 적지 않게 읽어보았는데, 장홍점의 시는 이들 송시와 큰 차이가 있다. 마치 당시의 운과 같고, 기세가 다른 송시보다 훨신 높다. 만일 동시대의 강호시파와 비교한다면 그는 가슴에 품은 뜻을 표현하는데서 기개가 훨씬 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그가 문인으로써 전쟁터를 누볐기 때문일 것이다.

 

백주수동음(白酒誰同飮)

청준지자개(靑尊秪自開)

산풍취우거(山風吹雨去)

해월상천래(海月上天來)

아흥고천고(雅興高千古)

광가부일배(狂歌復一杯)

하당호이백(何當呼李白)

동취봉황대(同醉鳳凰臺)

 

이 시의 제목은 <월야독작>으로 이백의 시와 같은 이름이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적선(謫仙)과 같은 광방(狂放)이다. 장구령의 "해상생명월(海上生明月)"과 같은 광활함도 있고, 댓구가 공정하며, 기세가 비범하다. 마치 당시중에서 하나 뽑아놓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당연히 현재 장홍범이 이런 문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의 좋은 시는 일찌감치 송나라를 멸망시킨 것때문에 묻혀버리고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장군이 등불아래 책을 읽는 이미지는 아무도 모르게 매몰되어 버렸고, 이미 누렇게 바뀌어 버렸다. 더더구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