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국경: 45년만에 다시 총성이 울리다.

댓글 0

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2020. 9. 9.

글: 석산(石山)

 

중인국경은 최근 계속하여 아주 긴장되어 있다. 쌍방군대는 서로 싸워왔다. 물론 손을 쓰기도 하고, 발을 쓰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간에 총기를 사용한 군사충돌이 발생한지 벌써 45년이 흘렀다. 그런데, 어제, 총성이 다시 울렸다. 현재 모두 이 총성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중인간에 이런 분위기는 갈수록 긴장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인도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인도군과 중국군의 사이에 어제 라다크(Ladakh) 동부국경지역에서 총기발사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중인간에 총기사용금지협정 45년이레 첫번째 총기사용이다.

 

Hindustan Times는 보도를 통해, 중국군대측에서는 인도군이 국경선을 넘었고, 반공초 남안에서 그들을 향해 '경고사격'을 했으며, 그리하여 중국군도 '반격동작'을 했다고 했다.

 

중국군대 서부전구대변인 장쉐이리(張水利) 대교(大校, 우리나라의 대령에 해당함)는 성명을 발표하여, 인도군대가 7일 다시 불법적으로 국경선을 넘었고, 중인국경 서단 반공초 남안의 신포산(神炮山)지역으로 진입하였으며 더구나 중국측 변방부대 순찰인원에게 총을 쏘며 위협했다고 말하며, 이는 인도측의 심각한 군사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측은 인도측에 즉각 위험행동을 중지하고 즉시 국경을 넘은 인원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중국군대가 어떤 반격조치를 취했을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도측에서도 중국군이 어떤 '반격동작'을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번 총기충돌사건에서 부상, 사망자가 발생했는지에 대하여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모두 알고 있다. 중국과 인도간에는 1962년 전쟁이 발생한 적이 있다는 것을 중국측이 승리했다. 중인국경은 2,800킬로미터이고 중국과 외국간에 세번째로 긴 국경선이다. 현재 중국과 외국의 국경선은 몽골이 가장 길고, 두번쨰가 러시아이다. 세번째가 바로 인도이다. 이전에 가장 긴 곳은 소련이었으나, 중앙아시아의 몇개 나라가 독립한 후, 현재는 몽골과의 국경선이 가장 길어서 약 4천킬로미터에 달한다.

 

1962년, 중국군대는 돌연 기습했다. 중인국경선의 두 곳이다. 동단과 서단의 양쪽에서 출격한 것이다. 신속히 인도수비군을 무너뜨렸다. 당시 인도총리 네루는 중국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비록 중국과 사소한 국경충돌은 있지만,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것이라 여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인도측은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인도군의 국경부대가 궤멸되고, 3천여명이 포로로 잡힌다. 최고계급은 여단장이었다.

 

나중에 인도는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이 전쟁상태로 접어든다. 그리고 직접 소련에 도움을 구한다. 많은 군사원조가 인도로 들어오고, 중국과 대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그 결과 중국은 스스로 철수했고, 포로를 풀어준다. 그리고 인도군에게서 노획한 장비도 돌려준다. 동선과 서선 양쪽에서 중국은 원래의 실제통제선의 뒤로 철수했다. 바로 국제적으로 말하는 맥마흔선이다. 단지 1곳에서만 철수하지 않았는데, 그곳이 바로 모두 다투고 있는 라다크지역이다.

 

기실, 중국과 인도간에는 1967년에도 심각한 국경충돌이 있었다. 소규모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충돌은 1967년 9월과 10월이다. 장소는 시킴왕국이다. 히말라야산맥에는 인도와 티벳 외에 몇개의 소국이 있다. 가장 큰 나라는 네팔이고, 부탄과 시킴이 있다. 그중 부탄과 시킴은 인도의 보호국이다. 즉 인도가 이들 국가의 군사방어를 책임지고, 외교도 대리한다. 홍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군사외교외에 나머지는 자주적이다.

 

1967년의 충돌은 바로 시킴에서 발생한다. 장소는 히말라야산 촐라(Cho La Pass, 卓拉山口)와 나투라(Nathu La, 乃堆拉山口)이다. 인도측에서는 인도군 88명사망, 172명 부상, 중국군 340명 사망, 450명부상이라고 주장하고, 중국측은 인도군의 사상자가 607명, 중국군은 사망 32명 부상 91명이라고 말한다.

 

이 전투와 관련한 중국군대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자료를 보면 비록 인도가 도발했다고는 하였고, 자주 총기사격이 있었다고 하였지만, 전투는 확실히 중국군대가 일으켰다. 그리고 몇 달간의 준비를 거쳐 돌연 기습한 것이다.

 

시킴문제는 인도와 중국간의 큰 문제였다. 1975년 시킴이 인도에 편입된다. 중국은 인도가 시킴을 병합했다고 주장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국경선에서도 다시 긴장이 흘렀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도 양국은 1975년 합의를 체결하고, 쌍방이 총기를 사용하기 않기로 합의한다. 그리하여 최근 40여년간 중인국경에서는 총성이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금년, 중인쌍방은 국경문제에서 날카롭게 부딛쳤다. 주로 라다크지구이다. 즉 1962년 전쟁후 중국이 철군하지 않은 지역이다. 6월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여, 쌍방ㅇ느 서로 돌을 던졌다. 인도군은 중국군이 낭아봉을 사용하여 최소 20명의 인도군이 사망했다고 말한다.

 

6월이후, 양측은 병력과 군사무기를 증파한다. 8월 31일, 인도군은 논쟁장소인 주요고지를 점령한다.

 

여기에서 한번 분석해 보자. 왜 어제의 총성이 심각한 문제인지를.

 

1975년 쌍방이 총기사용금지를 합의한 후, 쌍방간에는 묵계가 있었다. 즉 전선의 순찰부대는 총기를 휴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고위층간에 합의가 있더라도, 군인은 임무가 있으니 영토를 포기할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 그래서 일단 충돌이 있을 때, 총기를 들고 있으면 바로 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대에게 총기휴대를 금지한 것이다. 이는 총기사고를 방지하고 충돌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다만 어제, 총성이 울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도군대는 전선에 이미 총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원래의 묵계는 이미 깨졌다. 중국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중국군도 총기를 휴대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협의는 어려울 것같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즉, 앞으로 중인간에 다시 충돌이 발생하면 그것은 낭아봉이나 돌맹이럴 던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8월말의 사건으로 인도군이 지뢰로 폭사했다. 총을 쏘지 않겠다고만 했지, 지뢰를 매설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뢰에 폭사한 것은 상대방을 죽인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는 아마도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인도군에 있으서 이 사망한 인도군은 중국의 화기에 죽은 것이다.

 

그 죽은 인도군은 티벳인이다. 이름은 Tenzin Nyima이고, 인도의 특수부대인 SFF(Special Frontier Force)에 속해 있다. 이는 인도의 비밀특수부대이다. 60년대 창립되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이 부대는 3,500명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3,500명은 거의 전부 티벳인일 것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이 특수부대는 '정예부대이다. 특히 산악지형에서."

 

SFF의 구성원은 주로 망명 티벳인과 그 후손이다. 나중에는 네팔의 한 부락도 포함되었다. 홍콩인들에게 익숙한 구르카(Gurkha)이다. SFF의 본부는 인도 Úttarakhaṇḍa에 소재하고 있는데, 라다크에서 700킬로미터 거리이다.

 

사실상 이 특수부대는 인도육군의 일부가 아니다. 대외정보수집기구인 인도조사분석국(R&AW. Research and Analysis Wing)에 속해 있다.

 

인도매체인 Hindustan Times에 따르면, 이 부대의 운영은 기밀사항이고 군대에서도 내용을 잘 모른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부대의 주요임무는 특수수사, 기습과 비밀작전등이다. 그래서 많은 SFF의 전적을 외부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기실 중국군대에도 특수병과가 있다. 인도에 망명한 티벳인에 따르면, 국경에 주둔한 중국군대중에 티벳인만이 아니라 몽골인도 있으며 그들은 체격이 건장하고, 격투기와 씨름등에 능하다고 한다.

 

얼마전, 다람살라 티벳망명정부의 관리인 bskal bzang rgyal mtshan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은 티벳 운동선수를 국경부대에 배치하여, 인도군 혹은 티벳후예들과 싸우게 하고 있다. 이들 티뱃인들은 대다수가 체육학교 출신이다. 특히 체육학교의 격투기팀의 티벳인이다. 중인양국의 군인들은 국경지구에서 몸싸움을 벌이는데, 이전에는 인도군이 우세를 점했다. 왜냐하면 신체가 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벳족과 몽골족의 씨름, 격투기선수를 배치한 후 우세를 빼앗아 갔다.

 

1960년대말, 중국은 흑룡강성에서 소련군대와 충돌했다. 그때도 같은 방법을 썼다. 중국군인은 키가 작고, 말라서 육박전에서 소련군과 싸울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사위원회는 특별히 몽골 씨름팀안에서 사람을 찾아 러시아인들과 싸우게 했다.

 

그런데, 현재 중국은 아주 골치아플 것이다. 티벳인과 몽골인들에게 모두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현재 중국의 이런 국제환경은 1962년과 유사하다. 그때도 미국, 일본, 대만, 소련과 싸웠다. 티벳에서도 반란이 일어난다. 국내는 대기근, 경제위기로 곤경에 빠졌다. 그래서 모택동은 인도를 공격한다. 현재의 상황도 유사하지 않은가? 단지 현재 중국은 두 가지가 다르다. 첫째, 시진핑은 모택동이 아니다. 그는 모택동같은 절대적인 권위가 없다. 둘째, 중국군대는 이미 예전의 군대가 아니다. 1960년대초의 중국군대의 하급군관은 모두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고, 노병이다. 모두 피바람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고위장교들은 더더욱 30년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틀 전, <환구시보>의 총편집인 후시진은 이런 글을 발표했다. "자주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들이 불만을 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장, 티벳, 홍콩문제에서 세계 대다수국가는 우리를 비난하고 있다고. 그리고 남해충돌, 중인충돌을 둘러싸고 국제여론은 대부분 상대방의 편을 들어 얘기한다고. 중국은 사상유례없이 고립되었다고."

 

그러면서, 후시진은 말한다. "그것은 엄중한 착각이다" 왜 착각인가? 1960년대 중국이 가장 고립되었을 때도, <인민일보>는 자주 말했다. "우리의 친구는 천하에 널려 있다." 후시진은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나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착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현재, 남해, 대만해협, 인도에서의 충돌지점에서는 언제든지 총기가 불을 뿜을 수 있다. 내부상황도 아주 엉망이다. 경제는 하락하고, 신장, 티벳, 내몽골, 홍콩의 문제까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호시탐탐 노린다는 것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시진핑의 당내권위가 바닥에 떨어져, 대부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국면이라면 작은 사건 하나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