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외교관: "여러 나라와 동시에 싸워서는 안된다"

댓글 0

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2020. 9. 13.

글: 원남생(袁南生)

(전 북경외교학원당위서기 겸 상무부원장, 주짐바브웨대사, 주수리남대사,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

 

여러 나라와 동시에 싸우지 않는다. 이는 중국 천년외교의 기본철칙이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사방에 적을 두게 되는 것은 가장 멍청한 외교전략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역사적 사실은 증명한다. 여러나라와 동시에 싸우는 것은 국가외교의 재난일 뿐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재난이 된다. 여러 나라들과 동시에 싸워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심도있게 살펴보는 것은 이론적인 의미뿐아니라 실천적인 의미도 있다.

 

사방수적(四方樹敵) 루견불선(屢見不鮮)

 

외교적으로 사방에 적을 두고, 여러 나라와 동시에 싸우는 현상은 중국고대외교사상에서 여러번 발생했다. 근대이래만 하더라도 여러번 나타났다.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선전유지(宣戰諭旨)를 내린다. 청군은 의화단과 함께,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11개국과 전쟁을 개시한다고 선포한다.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여 천년만년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한번 싸워서 자웅을 겨뤄보는 것이 낫다."

 

선전유지를 공표하기 하루 전날, 즉 6월 20일, 서태후는 청군과 의화단에 외국주중공사관에 총공격을 하도록 명령했다. 3일도 되지 않아, 4개의 공사관이 불에 탄다. 그후 프랑스 공사관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른다. 그리고 한때 독일공사관에도 진입했다. 실제로 열강에 대하여 선전포고없이 전쟁을 개시한 셈이다. 장친왕은 현상금을 내건다. 오랑캐남자 1명을 죽이면 은 50냥을 주고, 오랑캐여자 1명을 죽이면 은 40냥을 주며, 어린아이를 죽이면 은20냥을 주겠다고 한다. 6월 25일, 밀지를 각 성에 내러 서양인을 죽이도록 명한다. 이렇게 여러 나라와 동시에 싸운 결과는 참혹했다. 국권을 상실하는 <신축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10년동란기간에 중국의 당시 구호는 이러했다: "타도미제, 타도소수(소련수정주의), 타도각국반동파!" 정부외교측면만에서 사방에 적을 만들었을 뿐아니라, 당정외교측면에서도 논전을 계속했다: 소련, 인도, 이탈리아, 프랑스등의 공산당도 마구 공격한다. 구평소공중앙공개신(九評蘇共中央公開信), <마샬을 반박한다>(마샬은 프랑스공산당중앙총서기), <단지를 반박한다>(단지는 인도공산당중앙총서기), <톨리아티 동지와 우리의 의견차이>(톨리아티는 이탈리아공산당중앙총서기)등 중공의 글이 <인민일보> 1면에 계속 실렸다.   

 

극좌사조의 영향으로 문혁초기 중국은 몽골, 불가리아, 인도, 미얀마, 케냐, 체코슬로바키아, 인도네시아, 영국 및 동독과 소련등 10개국가와 심각한 외교충돌을 일으킨다. 그리고 30여개국가와는 외교분쟁을 일으킨다. 많은 나라들은 중국대사관의 '혁명수출'을 우려하여 중국과 단교했다. 중국의 주외국영사관은 14개에서 5개로 줄어든다. 외국의 주중영사관은 원래의 30여개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외교적으로 사방에 적을 만든 것은 중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세계사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계속 대외확장을 하여 유럽각국의 권력균형을 파괴하고, 유럽각국의 봉건제도에 침중한 타격을 가하고, 프랑스대혁명의 성과를 지켜냈다. 다만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은 모두 정의의 전쟁이 아니다. 전쟁의 성격은 자위반격에서 점점 침략확장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나라들과 대항하게 된다. 1792년 오스트리아, 사르데냐, 나폴리, 프로이센, 스페인 및 영국기 제1차반프랑스동맹을 체결한다. 1813년 2월에는 러시아, 프로이센이 동맹을 맺고,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오스트리아가 차례로 가입하여 제6차 반프랑스동맹이 맺어진다. 20여년동안 프랑스는 전후로 6번이나 반프랑스연맹과 대항헤야 했고, 결국 철저히 실패하고 만다.

 

각국에 도전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나라와 동시에 대항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통치자에게 재난이 될 뿐아니라, 민초인 백성들에게도 재난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외교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친구를 사귀는 기술이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외교적 돌파이다. 친구가 많을수록 외교는 성공한 것이다.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외교적 비극이다. 여러 나라와 동시에 싸우는 것은 외교의 철저한 실패이다.

 

한 국가가 사방에 적을 두거나, 적으로 둘러싸이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주관적인 원인이 있고, 객관적인 원인도 있다. 더 많은 것은 주관적인 원인이다. 사방에 적을 두고, 적으로 둘러싸이는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외교전략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스트정권은 여러나라와 싸웠다. 도처에 적을 만들었고, 계속 적을 추가시켰다. 근본원인은 파시스트국가가 국제규칙을 깔아뭉갰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타국의 위에 놓았다. 침략전쟁을 통해 자신의 국가이익을 계속 확대했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인류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당연히 어떤 때는 한 나라가 적으로 둘러싸이지만, 그 나라가 무슨 잘못한 일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확실히 그런 경우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 나라가 적으로 둘러싸이는 상황은 여러 방면의 원인이 있고, 최소한 아래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이데올로기가 주변의 나라들과 다르다. 춘추시기 진(晋)과 초(楚)는 백년간 싸웠다. 초나라가 창끝을 진나라로 향하기만 하면 쉽게 여러 나라가 동시에 초나라를 공격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때는 사방에 적을 맞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진나라는 송, 노등과 함께 화하민족으로 인정받았지만, 초나라는 계속 반인반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오랑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아족류(非我族類), 기심필이(其心必異)"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니면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 당시의 주류 이데올로기이다.

 

춘추시대의 외교는 농후한 이데올로기외교의 색채가 있다. 이는 진나라로 하여금 진초쟁패과정에서 독특한 소프트파워가 된다. 이데올로기의 이익은 각국 제후들이 진초쟁패때 어느 편을 설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둘째, 전략오판, 야심팽창으로 사방에 적을 맞게 되는 경우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서 일본제국통치자는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여, 국가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1941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동시에 미국, 영국과 네덜란드를 기습공격한다. 비록 당시 소련과의 사이에도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에도. 일본이 영국을 공격한 것은 영국태평양지역의 영토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전쟁을 선언한 것과 같았다. 일본군은 그후 오스트레일리아를 공습한다.

 

1945년, 미국의 두 발의 원자폭탄이 일본의 나가사키, 히로시망 투하된다. 소련은 동북삼성의 일본관동군에 공격을 진행한다. 같은 해 8월 15일, 일본은 결국 국면을 되돌리지 못학고 '무조건항복'을 한다.

 

셋째, 세계최강국에 도전하여 적으로 둘러싸이는 경우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같다. 국제사회의 최강국이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큰형님이 있다. 그 관계는 서로 비슷하다. 항상 최강국의 앞뒤를 따르는 동생국가들이 있기 마련이고, 형님국가는 동생국가를 돌봐준다. 만일 누군가 형님국가에 도전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동생국가들에도 도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최강국에 도전하게 되면 사방에 적을 맞이하게 된다.

 

2차대전때 일본이 진주만기습을 함으로써, 일본은 동시에 영국, 프랑스, 소련, 오스트레일리아, 중국등과 전쟁상태에 들어간다. 신중국이 개국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등등하게 압록강을 넘어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유엔군과 전쟁을 시작한다. 유엔군은 유엔안보이사회 제84호 결의로 만든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터키, 콜롬비아, 타이, 필리핀, 남아공, 이디오피아의 16개국의 부대로 구성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교전했고, 이로 인하여 중국은 16개국과 대항상태가 된다. 당시 전세계의 7,80개국가가 존재했으므로, 신중국개국초기에 세계의 1/4국가와 전쟁터에서 마주한 것이다.

 

넷째, 어느 국가집단의 한 나라와 대항하는 것은 왕왕 전체 국가집단과 대항하는 것이 된다. 자고이래로 국가와 국가간에는 동맹을 맺어 동맹국간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국가집단에서 갑국은 왕왕 을국에 국가안전을 보장하거나 혹은 상호간에 안전을 보장한다. 2차대전 이전에, 영국, 프랑스는 독일의 심각한 위혀블 받는 폴란드에 안전보장을 해준다. 독일이 폴란드에 침공한 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하여 2차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2차대전후 미국은 NATO를 만든다. 어느 국가든 NATO의 구성원중 한 나라를 공격하면, 연쇄반응으로 NATO의 여러 나라들과 동시에 싸우는 국면이 될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 제1대국과 제2대국은 처신이 어렵다. "목수어림풍필최지(木秀於林風必摧之), 행고어인중필비지(行高於人衆必非之)"(나무가 빼어나면 바람이 반드시 그것을 꺽고, 사람들 중에서 두드러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 진(秦)나라가 독보적으로 강해지자, 제, 초, 연, 한, 조, 위의 6국이 연합하여 합종으로 진나라에 대항한다. 제1대국이 되면 뎌러 나라와 대항하는 국면이 벌어지기 쉽다. 또한 연횡으로 제1강국에 불리한 다국연합을 깨트려버리기도 한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제2대국은 왕왕 적에 둘러싸이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렇가? 제1대국이 경계하기 때문이다. 셋째, 넷째는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려 할 것이다. 

 

나머지 나라들은 제1대국과 제2대국이 싸우면, 줄을 서야 할 때, 중립에 서게 할 수 있다면 제2대국으로서는 괜찮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많은 나라는 제1대국에 줄을 선다. 그렇기 때문에 제2대국이 되면 쉽게 여러 나라들과 대항하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대수환사(對手環伺) 출로하재(出路何在)

 

사방에 적이 둘러싸인 상황하에서, 세계제1대국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는 것이 대외관계의 관건이다. 당금세계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야 하고, 미중관계를 잘 처리하는 것이 대외관계의 핵심이다. 이것을 잘 해내면 전체국면이 쉽게 풀릴 수 있다.

 

사방에 적이 둘러싸인 상황하에서는 반드시 국가의 발전방향을 잘 정해야 한다. 포잔수결(抱殘守缺)의 옛길이나 복벽도퇴(復辟倒退)의 옆길로 새서도 안된다. 진나라는 적대국으로 둘러싸인 열악한 환경하에서 역사발전추세와 인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상앙병법을 견지하며, 부국강병해서, 통일육국의 기초를 쌓았다. 청말에는 제국주의열강에 둘러싸인 상황하에서 왜 무너졌을까? 근본원인중 하나는 세계대세를 보지 못했고,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개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하에서 다투기도 하고, 양보도 해야 한다. 외교는 투쟁의 예술이다. 타협의 예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타협'이라는 개념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것은 폄하하는 말로 여기고 '타협'은 '투항'이라고 여긴다. 기실 이는 오해이다. 외교는 여러 이익관계를 조정하는 것이고, 각종 이익갈등을 균형맞추는 일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타협이 필요하다. 이성적이고 정명하고 교묘하며 적절한 타협은 뛰어난 투쟁예술이다. 잠시 혹은 부분적인 양보를 통해 윈윈을 달성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받는 것이다.

 

고유균(顧維鈞)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중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속담인 '차라리 옥쇄를 할지언정, 와전을 구하지 않겠다(寧爲玉碎, 不爲瓦全)는 말을 얘기하고 싶다. 외교상으로는 이 속담을 받아들일 수 없다.왜냐하면 국가는 부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외교상으로 100%성공을 바랄 수는 없다. 만일 네가 100%성공을 거두려고 한다면, 상대방도 그렇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성공한 외교가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는 합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고유균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외교를 하려면 다투기도 하고 양보도 해야 한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양보해야 할 때는 양보해야 한다. 그저 다투기만 하고 양보하지 않는 것은 명령이고, 상대방에게 나의 명령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는 자손만대의 일이다. 우리 대의 사람은 그저 우리 대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자손만대의 일을 할 수는 없다. 개인은 옥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민족이 옥쇄할 수는 없다. 외교는 이치를 다투는 것이고, 적당히 양보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반격하는 것이다." 매번 강경하고, 기계적으로 대등보복을 할 수만은 없다. 적당히 잘 다루지 못하면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이는 곤경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하에서 외교가 여론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된다. 적으로 둘러싸였을 때는 강경하면서도 유연해야 한다. 외교의 기준을 평가하는 것은 외교가 강경하냐 아니냐로 따져야할 것이 아니라, 강경한 정도가 적절했느냐 아니냐로 따여쟈 하고, 유연한 정도가 적절했느냐 아니냐로 따져야 한다. 외교는 국가이익을 위하여 제대로 봉사하여야 비로소 외교가 성공하는 것이다. 강경외교와 유연외교는 모두 외교가 국가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목적이 아니다.

 

국수주의, 극단민족주의가 왕왕 민의를 볼모로 잡게 된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여론이 외교를 볼모로 잡게 되고,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곤경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계속 외부환경이 악화되게 된다.

 

청나라말기 원래 제국주의열강이 둘러싸고 있어서 외부환경이 더 나쁠 수 없는 상황인데, 여론에 볼모로 잡힌 만청외교는 주화입마하여 청군이 의화단과 손을 잡고 열강의 중국내 공사관을 공격했고, 독일 주중국공사 Clemens Freiherr von Ketteler등을 살해했다. 팔국연합군이 중국을 쳐들어오고, 결국 중국에 <신축조약>을 강제했다. 중국은 더욱 반식민지상태로 빠져든다. 이 피의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