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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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군사

2020. 9. 17.

글: 심주(沈舟)

 

1903년 라이트형제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첫 비행에 성공한 후, 사람들은 하늘을 날으는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은 바다 위에서 갈매기처럼 날개를 펴고 날고 싶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항공모함도 탄생하게 된다.

 

바다에서 비행기를 띄우다.

 

1910년 11월 14일 Eugene Burton Ely는 미국해군 버밍햄호 순양함의 갑판에서 성공적으로 비행기를 띄운다. 당시 군함은 버지니아주의 노보크해군기지 부근에 정박해 있었다.

 

1911년 1월 18일, 역시 Eugene Burton Ely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순양함 펜실베니아호에 착륙한다. 당시 군함은 샌프란시스코만에 정박해 있었다.

 

1912년 5월 9일, 세계최초로 운항중인 영국해군전투함 히버니호의 갑판에서 비행기를 이륙시켜, 비행기가 항해중인 전선에서 이륙하는 선례를 남긴다.

 

수상비행기모함

 

1911년 11월 29일, 프랑스의 어뢰정 La Foudre는 수상비행기모함으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선수에 갑판을 설치하여, 수상비행기가 갑판에서 이륙할 수 있게 한다. 다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먼저 수상에 착륙한 후 다시 배 위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1912년 6월, 프랑스의 수상비행기 모함 La Foudre에서 전술훈련을 실시한다. 주로 해상정찰에 이용하는 것으로 세계최초의 수상비행기모함이 된다.

 

1913년 4월에서 5월에 영국해군도 잠시 수상비행기모함을 시험해본다.

 

1914년 8월, 일본해군의 수상비행기모함 와카미야호(若宮丸)가 투입사용된다. 이는 운송선을 개조한 것으로 4척의 수상비행기를 배치했다. 다만 기중기로 비행기를 바다 위에 내려놓고, 그 후에 수상에서 이륙한다. 임무완성후에도 다시 물위로 착륙한 후 배에 끌어올린다.

 

1914년 9월 6일, 일본해군의 와카미야호 수상비행기모함은 세계최초로 해군공습을 실시한다. 수상비행기는 폭탄을 휴대하고, 칭다오에 있는 독일 순양함과 포함을 공격했다. 그러나 명중되지는 않는다.

 

항공모함의 프로토타입

 

1917년, 영국은 최초의 항공모함 프로토타입을 보유한다. 순양함 Furious호에 갑판을 덧대어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게 한다. 다만 훈련과정에서 상당히 휘험했다. 특히 착륙은.

 

1918년 7월 19일, 영국해군 Furious호가 처음 출격한다. 7대의 비행기가 갑판에서 이륙하고, 세게최초로 갑판에서 이륙하여 해군공습을 한다.

 

비행중, 1대의 비행기가 엔진고장을 일으켜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포기하게 된다. 나머지 6대는 독일공군기지에 도착한다. 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습이었고, 독일의 비행정 2척은 완전히 파괴된다.

 

공습이 끝난 후, 3척의 비행기는 연료부족을 느끼고 덴마크에 착륙한다. 나머지 3대는 모함으로 돌아오려고 시도했으나, 1척은 비행기를 포기해야 했고, 1척은 엔진고장을 일으켰고, 1척은 실종된다.

 

1918년 영국해군은 또 다른 Argus호를 투입한다. 이는 항공모함의 진정한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다. 세계최초의 통갑판을 지닌 항공모함이라 부를 수 있다. 1918년부터 1944년까지 복역했는데, 처음에는 항공모함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계속 훈련에 사용되었는데, 2차대전때 비로소 긴급하게 전선에 투입된다.

 

정식으로 건조된 최초의 항공모함

 

Hermes호는 영국최초로 항공모함으로 전문설계된 전함이다. 현대항공모함의 시조라 불린다. 1918년에 건조에 착수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구조배치에서 여러가지 실험을 진행하면서 건조공정이 느려진다. 1923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어 복역된다. 그리하여 세계 최초로 정식 복역된 항공모함은 되지 못한다.

 

Hermes호 항공모함은 증기엔진을 사용했고, 항속은 25노트이다. 항공모함의 선교, 난간, 연통을 합하여 하나의 대형 섬처럼 만들었다. 갑판의 우측은 완전히 통하게 만들어 현대 항공모함의 원형이 된다. 최초의 함재기는 20대이고, 나중에 대형 함재기를 사용하여 수량은 16대로 줄어든다. 항공모함의 만재배수량은 13,200톤이고 속도는 18노트, 항해거리는 6000해리였다.

 

1942년 4월 9일, 태평양초기의 해전에서 영국의 Hermes호는 인도양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함재기의 공습을 받아 침몰한다.

 

정식 복역한 최초의 항공모함

 

1919년, 일본은 항공모함 호쇼호(鳳翔)를 건조하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이 건조하는 Hermes 항공모함은 이미 진수하였으나, 영국은 신기술을 검증하고, 건조순위등의 문제가 있어 건조의 진척이 느렸다.

 

기술부족에 건조착수가 늦은 일본은 영국의 Sempill Mission을 요청하여, 영국의 당시 항공모함건조경험을 도입한다. 일본은 또한 영국 공군의 퇴역장군을 초청하여 함재기의 착륙기술을 전수받는다. 일본의 호쇼호는 1922년에 완공되어, 세계최초로 완공되어 복역한 항공모함이 된다.

 

호쇼호 항공모함을 완성할 때, 만재배수량은 9,646톤이었다. 영국설계를 참고하여 증기엔진 2대를 슨다. 최고속도는 25노트이다. 준공때 함재기는 24대인데, 전투기 6대, 공격기 9대(또 다른 9대는 예비용). 나중에 개전시 함재기는 19대로, 전투기 8대(나머지 3대는 예비용), 공격기 6대(나머지 2대는 예비용)였다.

 

호쇼호는 최초로 중국침략전쟁에 참가한다. 그후 대미 진주만공습에 참가하고, 미드웨이해전에도 참가한다. 일본에 돌아온 후에는 훈련에만 사용한다.

 

1945년, 호쇼호는 항구내에서 미군의 공습을 받는다. 수리를 마친 후 운송선으로 고쳤고, 각국에서 귀국하는 군민들을 수송한다. 1946년에 해체된다.

 

최초의 전문적 항공모함

 

랭글리호(USS Langley CV-1/AV-3)는 미국해군 최초의 항공모함이다. 석탄운송선 Jupiter호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1922년 3월 20일 랭글리호로 이름을 바꾼다. 미국의 항공선구자이며 물리학자이며 천문학자인 Samuel Pierpont Langley박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랭클리호 항공모함은 전통식(全通式) 갑판을 채택했고, 여러 신기술을 발전시킨다. 예를 들어, 사출기, 착륙지휘관제도, 착륙그물등 진정한 전문적인 항공모함이 탄생한 것이다.

 

1922년 10월 17일, Virgil C. Griffin 대위는 Vought VE-7-SF전투기를 몰고 처음 항공모함에서 이륙한다. 9일후인 10월 26일 Godfrey De Courcelles Chevalier 소령이 Aeromarine 38B를 몰고 처음으로 랭글리호 갑판에 착륙한다. 11월 18일, 함장인 Kenneth Whiting은 PT수상비행기를 몰고 처음으로 항공모함의 사출기로 이륙한다.

 

이어진 10여년동안, 랭글리호는 미국 서해안에서 하와이의 해역에서 조종사와 함대의 전술훈련을 한다. 미국의 이어진 두 척의 대형 항공모함 즉 렉싱턴호와 사라토가호에 여러 자격을 갖춘 함재기조종사를 제공하고, 태평양해전에서 핵심역할을 한다.

 

1936년 10월 25일, 랭글리호는 다시 수상비행기모함으로 개조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때, 랭글리호는 필리핀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후 다시 비행기운송모함이 된다.

 

1942년 3월 27일, 랭글리호는 자바섬 부근에서 일본의 공습을 받는다. 포탄을 맞아 큰 불이 나서 할 수 없이 배를 포기한다. 일본해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군 구축함은 어뢰를 발사하여 랭글리호를 격침시킨다.

 

태평양해전에서 1942년 5월 7일, 미일 항공모함이 산호해에서 세계최초의 항공모함대결을 펼친다. 이후 항공모함은 전통해군전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