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동오(東吳)에서 소년영웅이 많이 배출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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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20. 9. 21.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난세에 호걸이 많이 나온다. 삼국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에는 명장이 많이 배출되었을 뿐아니라, 나이가 젊을 때부터 군대에 들어가서 지휘를 한 소년영웅들도 많이 배출된다. 그런데, 위, 오, 촉 삼국중에서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은 명상이 가장 많은 나라는 조위도 아니고, 촉한도 아니며, 동오였다. '강동다영호(江東多英豪)'라는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소년영웅이 강동에서 많이 배출되었을까? 거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모범'의 역량이다. 강동의 기업은 손책(孫策)이 혼자 힘으로 일궈낸 것이다. 195년 손책은 원술(袁術)에게서 벗어나 장강을 건너 강동을 평정하는 전투를 시작한다. 몇년만에 일거에 강동육군(江東六郡)을 평정한다. 그러나 200년에 사망하니,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195년에 손책의 나이는 20살이다. 그러나 손책은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렸고, 십여세때 호걸들과 사귀어 수춘(壽春)일대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 손책과 같은 나이인 주유(周瑜)는 이때 손책과 알게 된다. 189년 손견(孫堅)이 동탁을 토벌할 때, 손책은 서현(舒縣)으로 옮겨온다.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주유와 친구로 사귀고, 사대부들을 모았다. 강,회(장강, 회하)일대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십여세의 소년 손책은 이때 이미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200년 손권이 강동의 정권을 물려받았을 때 그의 나이 겨우 18세였다. 손책이 남긴 인원들 외에 손권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즐겨 기용했다. 예를 들어, 같은 18살로 손권과 동창인 주연(朱然)등이다.

 

손책과 손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나이가 모두 많지 않았다. 한명은 십여세때 이미 명성을 떨쳤고, 20살때부터 강동을 휩쓸며 기업을 다졌다. 다른 한명은 18살에 강동의 지배자가 되고, 두 사람의 모범의 힘은 무궁했다. 당시 강동의 여러 장수들은 나이가 모두 많지 않았다. 공을 세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속속 투신했다. 거기에는 어려서부터 용맹하기로 이름난 정봉(丁奉)도 있었다.

 

둘째, 강동의 특수한 군사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동오의 군사제도는 아주 특별했다. 세가대족(世家大族)과 호강세력(豪强勢力)은 강동에서 뿌리가 깊었다. 손책이 강동을 평정할 때 속속 투항한 장수들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많은 부곡(部曲)을 이끌고 함께 가담했다. 이들 부곡은 사병(私兵)이라 할 수 있다. 손책과 손권이 강동을 통치하면서 철혈수단으로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들 부곡사병의 존재를 묵인했다. 이것이 바로 강동의 특수한 부곡가족사병제도이다.

 

이들 부곡은 모두 지휘하는 대장의 사병이므로 일단 대장이 병사하거나 전사하면, 그의 부곡은 손씨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조카 혹은 다른 후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이들 부곡을 지휘하는 장수가 된다. 만일 그 장수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리면, 그의 후계자도 나이는 많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명의 장수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먼저 여몽(呂蒙)이다. <삼국지.여몽전>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몽은 15,6세때 누나의 남편인 등당(鄧當)을 따라 손책의 휘하에서 이한다. 등당이 죽은 후, 그를 대신하여 그의 부곡은 나이가 어린 여몽이 지휘하게 된다. "몇년만에, 등당이 죽었다. 장소(張昭)는 여몽으로 하여금 등당을 대신하도록 추천했고, 별부사마가 된다."

 

그리고, 능통(凌統)이다. 능통의 부친 능조(凌操)는 황조(黃祖)를 토벌하다가 감녕(甘寧)의 화살에 목숨을 잃는다. <삼국지.능통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능통의 나이 15세때, 좌우에서 모두 그가 맡을만하다고 말한다. 손권은 능조가 국가의 일을 하다가 죽었으므로 능통을 별부사마로 봉하고, 파적도위를 맡겨 부친의 병사를 거느리게 했다." 능조가 죽은 후 나이 겨우 15살의 능통이 별부사마가 되어 부친 능조의 부곡사병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강동에서는 부친이 죽으면 아들이 부곡을 물려받는 관례가 있었다. 이것이 강동에 소년영웅이 많이 배출된 또 하나의 원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