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내부투쟁: 시진핑의 후계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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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2020. 10. 6.

글: 왕혁(王赫)

 

내부투쟁은 중공당사에 계속하여 존재했다. 오늘날의 중공내부투쟁은 이전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망당(亡黨)'은 이전에 주로 '위기감'이었으나 오늘날은 '현실화'되어서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보당(保黨)'에서 출발하여 중공은 강력한 '핵심'이 필요했고, 또한 안정적으로 후계자를 배양해야 했다. 이를 통해 권력승계문제로 인하여 내부투쟁이 격화되고, 망당을 가속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2007년 시진핑은 후계자가 된다. 이는 당시 각파세력이 상호 타협한 산물이다. 시진핑은 정통 '홍얼다이'이고, 선명한 파벌적 색채는 없었으며, 태자당 중에서는 뛰어났고, 드러나는 오점도 없었다. 그뿐아니라 시진핑의 '보당'심리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였다.

 

다만, 시진핑이 후계자에서 '핵심'으로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취임하기 전에 2012년 2월 왕리쥔사건이 발발하여 정치적 폭풍이 분다. 생사의 혈투를 거쳐, 보시라이를 낙마시키고, 2014년에는 저우용캉을 낙마시킨다. 장쩌민, 쩡칭홍으로 하여금 저우용캉과 선을 긋게 만든다. 2016년 18기 6중전회에서 '핵심'에 오른다. 2017년 19대의 정치국 및 상위인선을 주도하여, '시가군(習家軍)'을 속성으로 만든다. 2018년 봄, '헌법수정'으로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을 삭제하며, 시진핑은 빠르게 당내의 '핵심'이 되는 임무를 완성한다.

 

다만, '보당'을 위하여 반드시 완성해야할 또 하나의 임무가 있다. 후계자를 뽑아서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를 꺠트려버린다.

 

이 결과는 중공으로 하여금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시진핑은 기꺼이 힘든 일을 마다않고, 욕을 얻어먹으면서, '전면적으로 당의 영도를 강화했다' 심지어 모택동시대의 그림자도 은연중에 나타났다. 이것은 중공이 다행으로 여기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진핑은 등소평시대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된 5년1임, 2기까지. 격대후계자지정등등의 제도, 잠규칙을 모두 버렸다. 중공의 '후사를 끊은 것'이다. 동시에 큰 리스크에 놓이게 만들었다. 당이 시진핑을 콘트롤하는가, 아니면 시진핑이 당을 콘트롤하는가?

 

그러므로, 당은 시진핑에게 반드시 후계자를 확립시킬 것을 요구한다. 설사 예전의 후진타오처럼 '중남해유치원'에서 10년간 기다리게 하더라도. 이는 앞으로 개최될 5중전회에서 20대까지 중공내부투쟁의 메인라인이다.

 

모택동시대에 중공은 파벌정치였다. 비록 모택동이 모두 결정하기는 했지만. 등소펴시대부터, 중공저치는 과두정치로 변모한다. "500개가족이 중국의 사정을 결정한다." 여기에 사례가 있다. 시진핑의 '타호'는 기세가 흉흉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특수한 원인으로 낙마한 것을 제외하면, '태자당'중 누가 낙마했는가? 저우용캉, 쉬차이허우, 궈보슝, 링지화등등 낙마한 인물들은 모두 홍색핵심가정출신들이 아니다.

 

시진핑이 무대위에서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몸에는 끈이 하나 달려 있고, 그 끈은 막후로 이어져 있다.

 

작년 10월, 4중전회 전날, 소식통에 따르면 정치국상위에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2명이 증원되어 7명이 9명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고의로 소식을 흘린 것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다시 1년이 흘렀다. 중공에 있어서, 금년의 형세는 작년보다 훨씬 좋지 않다. 20대까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중공역사로 보면, 비록 인사조정은 주로 1중전회에서 이루어지지만, 5중전회도 인사안배의 중요창구이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추측한다면, 시진핑의 후계자문제는 5중전회 내부투쟁의 큰 촛점이 될 것이다.

 

시진핑이 후계자를 정하건 말건 어쨌든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둔다면 어떻게 둘 것이며, 누구로 할 것인가? 지금 두지 않는다면 언제 둘 것인가?

 

당연히 시진핑은 후계자를 두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힘을 들여 '헌법수정'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만일 후계자를 둔다면, 그것은 정적들이 합법적으로 움직일 기회를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시가군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시가군은 원래 실력이 강하지도 않고, 시간이 길지도 않으며, 충성도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계자를 둔다는 것은 스스로 진영을 흐트리는 꼴이 될 것이다.

 

다만, 후계자문제는 당이 존속하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각 정치파벌의 핵심이익에 관련이 된다. 그들은 당연히 죽기살기로 싸울 것이다. 5중전회가 바로 그런 싸움터가 될 것이다.

 

시진핑은 이런 싸움을 막을 수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것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않게 막는 것이다. 모두 테이블아래에서 칼로 찌르든 말든, 테이블 위에서는 술잔을 같이 드는 것이다.

 

시진핑은 19대처럼 완전히 후계자의 인선을 주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시진핑의 첫 5년이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그의 두번째 5년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는 쫓겨날 수도 있다. 일거에 굴러떨어져서 나락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금년 봄에 우한폐렴이 중국을 휩쓸 때, 핀총왕(品蔥網)에 시진핑의 딸 '시밍저(習明澤)'의 이름으로 글이 하나 올라온다. 그 글에 따르면, "시진핑은 진정한 의미의 주석이 아니다. 정말 그는 단지 하나의 바둑돌에 불과하다. 시진핑의 집안은 조종당하는 대리인이다. 정변은 사실이다. 정변이 정변의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내부투쟁은 이미 백열화되었다. 늦어도 내년 반년동안 고위층의 40%는 도피할 것이고, 40%는 도태될 것이다. 남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금년 내년에 대두분의 사람들은 재산이 40-60% 줄어들 것이다" 운운.

 

이 글은 분명 누군가의 장난일 것이다. 그러나 약간은 실상을 드러냈다. 혹은 아마도 '앞선 예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