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袁紹)는 어떻게 기주(冀州)를 차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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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20. 10. 13.

글: 천추원(千秋遠)

 

삼국시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원소는 수수께끼같다. 그가 관도지전 이후에 보인 모습을 보면 그다지 우수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4개주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당시 전체 천하는 겨우 11개주인데, 그중 4개주를 차지하다니, 그 시대의 최강자가 아니었던가.

 

그중의 기주는 원소가 성공한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원소는 어떻게 기주를 얻었을까? 이건 기주목(冀州牧) 한복(韓馥)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1. 아무 생각이 없는 행운아 한복

 

기주라는 곳은 백성도 많고 물산도 풍부한 좋은 지방이다. '천하지중자(天下之重資)'라고 불렸다. 기주목은 자연히 좋은 관직이었다.

 

기주목 한복은 원래 어사중승이고, 기주는 그와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동탁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기주라는 좋은 땅을 한복에게 넘겨준다. 이후 기주목 한복이 눈부시게 등장한다.

 

그러나, 일방을 할거하는 제후로서, 한복은 살벌하고 과감한 효웅의 기질이 없었다. 그는 기질이 약했다.

 

예를 들어, "18로제후"가 동탁을 토벌하는 사건때, 한복도 그 중의 한 제후였다. 그러나 출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한복은 선택곤란증에 시달린다: "원씨를 도와야할까? 아니면 동탁을 도와야 할까?" 이렇게 묻자 그의 의동생인 유자혜(柳子惠)가 더 참지 못하고 말한다: "너는 대한왕조의 밥을 먹고 있는데, 군대를 일으킨다면 당연히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지, 무슨 원씨, 동탁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 그 말에 한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복이 그렇게 묻는 것은 멍청한 것이다. 자신의 의동생조차도 면박을 줄 정도였으니까. 다만 기실 이를 보면 한복이 자잘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원소는 명성이 크다. 그가 소재한 발해군은 자신과 거리도 가깝다. 원소가 정말 대사를 이루면, 한복은 편안히 지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사실은 증명한다. 한복의 우려는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관건은 이런 대시대비의 문제에서, 한복이 우왕좌왕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우유부단이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중요한 순간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2. 한복과 원소간에는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혀 있다.

 

기주목 외에 한복에게는 또 다른 신분이 있다. 즉 원씨문생(袁氏門生, 원씨집안의 제자)이다. 이는 원씨집안이 '사대삼공'을 지낸 이점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위직에 있다보니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문생도처유(門生到處有)'이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한복과 원소는 동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복과 원소의 첫번째 관계이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원소와 두번째 관계가 맺어진다. 189년, 황제를 폐립하는 건으로 인하여, 원소는 동탁과 결렬한다. 당장 동탁을 이길 수 없게 되자, 원소는 아예 도망쳐 버린다. 도망쳐 도착한 곳이 바로 기주이다. 원소가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동탁은 원래 수배령을 내려 원소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누군가 동탁을 만류한다: 원소는 대명자자한 '여남원가'의 인물이다. 원씨집안의 명성과 세력이 너무 크다. 원소를 죽이게 되면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를 군수 정도에 봉해주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인심을 얻을 수도 있고, 그가 조용히 살게 할 수도 있다. 동탁은 그 말을 듣고 이치에 맞다고 여겨 원소를 발해태수에 봉한다. 발해군은 바로 기주의 관할에 속한다. 이렇게 되니 한복과 원소는 상하관계가 된다. 이것이 한복과 원소의 두번째 관계이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8제후"가 동탁을 토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번에 동탁토벌연합군에서 제후들은 다시 일치하여 원소를 맹주로 추대한다. 한복은 그 제후중 하나이다. 명목상으로 맹주인 원소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원소와 한복의 세번째 관계이다.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나, 한복과 원소는 같이 음모를 꾸민다. 유우(劉虞)를 새 황제로 옹립하려 하는 것이다. 이 일에서, 이 두 사람은 다시 공모자의 관계가 된다. 이는 한복과 원소의 네번째 관계이다.

 

여기서 다시 간단히 정리해보면, 동문, 상하급, 동맹, 공모. 한복과 원소는 이런 복잡한 관계에 있다. 뗄레야 뗄 수 없고 정리가 되기 힘든 관계이다. 바로 이런 관계로 인하여, 한복과 원소는 굳게 묶여 있다. 이는 심지어 이후 한복에게 족쇄가 된다.

 

다만, 관계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군벌이 난립하던 난세에, 원소는 일찌감치 기주라는 이 좋은 땅을 욕심내고 있었다. 그저 하늘이 좋은 기회를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3. 원소의 기회

 

그 기회는 바로 왔다: 191년, 한복의 부장 국의(鞫義)가 돌연 반란을 일으킨다. 이번 반란의 원인은 이미 역사 속에 묻혀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번에 반란을 주도한 국의는 원소에게 귀인(貴人)이라 할 수 있다.

 

<삼국연의>에서 국의는 그저 지나가는 역할이다. 계교지전에서 조운의 창에 찔려 죽는다. 대단하지도 않고, 그저 조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한번 등장할 뿐이다. 다만 진실된 역사에서 그는 아주 용맹했다. 바로 그가 나중에 원소를 따라, 공손찬을 칠 때 백마장군의 기방대대를 물리친다. 

 

국의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자 한복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평정하러 간다. 그러나 한복이 오히려 국의에게 고전하며 밀린다. 곁에서 보고있던 원소는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나서게 된다.

 

4. 원소가 감독인 한편의 연극

 

한복의 동생 국의가 나서서 국면을 뒤집어놓자, 원래 평정했던 기주대지는 비바람이 분다. 다만 원소는 이 국면은 아직 충분히 어지러워지지 않았다고 여긴다. 최소한 이것만으로 원소가 직접 나서서 국면을 수습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더욱 혼란을 부추겨야' 한다고 여긴다.

 

원소가 혼란을 부추긴 방법은 북방의 공손찬이다. 원소는 이렇게 공손찬을 설득한다: 장군, 전체 북방에서 당신이 가장 대단한데, 기주는 엄청나게 큰 땅이다. 한복이라는 자는 보기에 멍청이이다. 내우외환으로 분명히 기주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우리 둘이 합작하자. 당신은 북방에서 남하하며 진격하고, 나는 이곳에서 호응하겠다. 함께 기주를 차지한 후, 이 땅을 나눠가집시다.

 

비록 나중에 둘은 숙적이 되지만, 당시로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긴밀하게 단결할 수 있었다. 원소의 말을 듣고, 공손찬은 과연 마음이 움직인다. 대군을 이끌고 유주에서 출발하여 기주의 땅을 빼앗는다. 원소도 발해군에서 병력을 일으킨다. 

 

이 국면에, 한복은 내우외환의 곤경에 빠져버린다. 동생 국의도 아직 평정하지 못했는데, 다시 공손찬과 원소가 밀려오다니, 한복은 졸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바로 이때, 원소는 다시 순심(荀諶, 순욱의 형제)을 보낸다. 그는 이렇게 한복을 속인다: 한형. 내가 보기에, 기주라는 땅을 당신이 지켜내기 어려울 것간다. 명성으로 보면 당신은 원소만 못하다. 그렇지 않은가? 지모나 용기로 봐도 당신은 역시 원소만 못하다. 그렇지 않은가? 은혜를 널리 베푼 것을 보더라도 당신은 역시 사세삼공의 원씨집안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다시 발해군을 보자. 그곳은 명목상으로 군이지만, 실제로는 주와 같다. 이렇게 보면 당신은 어느 것 하나 원소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기주는 내우외환에 빠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주를 원소에게 넘겨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소가 당신을 대신하여 기주를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주를 보전할 수 있고, 당신도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이 순심은 대사기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분명히 한복을 팔아먹으면서, 마치 한복을 생각해주는 것처럼 말하다니. 그 말을 듣고 한복은 정말 기주를 원소에게 넘겨주려 한다.

 

한복은 아마도 담량이 작고 흐리멍텅하다. 그러나 그의 부하중에서 똑똑한 사람이 있었다. 장사(長史) 경무(耿武), 별가 민순(閔純), 기도위 저수(沮授)가 모두 와서 한복을 말렸다: 우리 기주가 비록 적지만, 우리는 사람이 많다. 양식도 많다. 공손찬은 객지에 와서 싸우는 것이고 우리는 본거지에서 싸우는 것이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면 근본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원소는 양식도 우리가 공급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양식공급을 끊으면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이 한복은 항상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기주를 넘겨주는 문제에서는 아주 확실한 입장을 보인다: 아, 나는 원래 원씨집안이 키워준 사람이다. 여러 방면에서 나는 모두 원소만 못하다. 나에게는 자지지명(自知之明)이 있다. 기주를 원소에게 넘겨주겠다!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흐리멍텅하면, 아무도 구해줄 수가 없다. 한복은 즉시 사람을 보내 기주목의 인장을 원소에게 보낸다. 이러한 조작솜씨는 도겸(陶謙)이 서주를 넘겨주게 할 때보다도 깔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방천리, 용병백만의 기주는 이때부터 원소의 것이 된다.

 

한복은 원소에 의해 분무장군(奮武將軍)에 봉해진다. 이 명칭은 듣기에는 대단하지만, 기실 수하병력이 없다. 실권이 없는 것이다. 순수하게 직위명칭뿐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한복은 '양현(讓賢)'의 꿈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늦어버렸다.

 

5. 간략한 분석

 

한복은 죽는다. 그가 기주를 두 손으로 받쳐 넘겨준 후,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다만, 기실 한복은 죽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유한 기주는 사람이 많을 뿐아니라, 인재도 많았다.

 

다른 것은 빼놓고, 원소가 한복에게서 넘겨받은 일류인재들만 봐도 된다: 저수, 전풍(田豊), 장합(張郃), 고람(高覽), 안량(顔良), 문추(文醜), 국의.....

 

그러나, 운나쁘게 당한 것은 한복만이 아니다. 공손찬도 있다! 그는 원래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서, 돈도 벌고 땅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는 원소에게 속았다. 기주를 얻은 원소는 즉시 안면을 바꾼다. 무슨 밀약, 무슨 기주를 반분. 절대로 할 수 없다.

 

원소의 대답을 들은 공손찬은 화가 나서 폭발한다. 고생고생했는데 남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다. 

 

이 일로 원소와 공손찬은 서로 풀리지 않는 원한을 맺게 된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선혈과 무기로 맞부닥치게 된다.

 

6. 결론

 

원소가 기주를 얻은 수법은 유비가 서주를 얻은 과정과 꼭같다. 단지 유비가 서주를 얻을 때는 조조라는 '어시스터'가 스스로 진행하고, 유비는 협력해서 연출한 것인데, 공손찬이라는 '어시스터'는 '원감독'이 초청한 것이다. 기주를 양보하는 이 극은 원소가 스스로 짜고 스스로 감독하고 스스로 주연한 것이다. 만일 오스카상이 있다면 원소가 싹슬이했어야 할 것이다.

 

원소가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4개주를 얻는 과정에서 그가 기주를 얻은 수단이 가장 비열했다. 다만 이는 한말 삼국시대에 서로 속고 속이는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