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잉(宋祖英), 멍거(夢鴿) 및 펑리위안(彭麗媛)의 은원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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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음악

2020. 10. 18.

글: 주리(朱莉), 임중우(林中宇)

 

중국 군대고위층을 잘 아는 사람이 최근 장쩌민과 송주잉의 음란한 관계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중공군내에서 3명이 가장 유명한 가수인 송주잉, 멍거 및 펑리위안간의 미묘한 관계도 폭로했다.

 

이들을 잘 아는 Z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한 친구집은 총참(총참모부)에 있는데 완셔우루(萬壽路)부근에 거주하며, 다른 한 친구집은 총정(총정치부)에 있는데, 원래 대원(大院)은 위췐루(玉泉路) 부근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들 군대기관내의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장쩌민과 송주잉의 일을 얘기하자면, Z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장쩌민과 송주잉의 관계는 사실이다. 장쩌민이 여러번 총정 가무단을 시찰했는데, 국가지도자로서 자주 이런 단위에 간다는 것을 당시에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보았다.

 

그녀들이 사는 대원내의 사람들 말에 따르면, 송주잉은 가무단에서의 생활이 비교적 단조롭다고 한다. 원래는 자주 구내식당에 와서 식사를 받았다. 다만 그녀가 장쩌민과 관계를 갖게 된 후, 식당에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장쩌민이 은퇴하고 나서 차츰 사라지게 된 후, 송주잉은 다시 식당에 나타나서 식사를 받았다. 

 

당시, 펑리위안, 멍거와 송주잉은 같이 거주했다. 송주잉이 득세한 후, 항간에 그녀와 장쩌민간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후 대원(총정가무단) 내에서 자주 송주잉이 아주 발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송주잉의 남동생은 지능이 낮은 질병이 있었는데, 전체 대원내의 사람들은 자주 그녀가 남동생을 데리고 식당으로 식사를 받으러 가는 것을 보았다. 어쨌든 그녀의 남동생은 질병이 장애인이어서 약간의 소문이 있었다. 송주잉은 그런 소문을 들은 후에 크게 화를 냈다. 그녀는 일처리를 하면서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뒷배경이 강했으므로 일부러 남동생을 데리고 나온 것같았다. 마치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기실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샀다. 그녀의 당시 동료인 멍거, 펑리위안을 포함하여 모두 불만이 있었다.

 

세월은 돌고 도는 법이다.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정권을 넘겨준 후, 분명하게 송주잉이 이전처럼 발호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대원내에 사는 사람들이 한 말이다. 그후에 일처리나 행동이 나대지 않게 된다. 이런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 대원내의자제들은 장쩌민과 송주잉이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 사건에는 내력이 있다. 그녀의 성격상의 변화를 보아도 그녀와 장쩌민과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대원내부에서 전해진 소식이다.

 

Z선생에 따르면 송주잉에게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남편과 같이 다니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동생과 다니거나 그녀 혼자 다니는 것은 자주 보지만, 아마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남편이 남부끄럽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재미있는 일이다."

 

군대여가수중이 세 사람을 애기하려면 멍거, 송주잉, 펑리위안이다. Z선생에 따르면 그들은 동료이며, 서로 경쟁관계라고 한다. 세 사람은 모두 배경이 풀뿌리출신이다. 모두 무슨 관료자제나 홍얼다이, 홍산다이의 가족이 아니다. 모두 자신의 힘으로 거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 3명은 평민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 간에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상호간에 서로를 무시하는 것이다. 서로 질투하고, 서로 무시한다.

 

멍거도 총정의 스타이다. 군대내에서 어느 정도 지위도 있다. 그녀는 권력자에 빌붙은 여인을 경멸했다. 당연히 그녀도 그런 방식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원래 리쐉장(李雙江)의 제자인데, 나중에 부부가 되었다.

 

멍거와 리쐉장은 장쩌민파이다. 장쩌민은 리쐉장을 아주 좋아했다. 리쐉장의 진정 득세한 것은 장쩌민집권시기이다.

 

Z선생은 말한다. 펑리위안과 멍거도 구원이 있다. 두 사람간에 알력이 생긴 것은 10여년 전이다. 2008년경, CCTV는 "개혁개방30주년" 행사를 진행한다. 이는 중공이 아주 중시하는 CCTV 만회(晩會)이다. 원래 펑리위안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희망의 들판 위에서(在希望的田野上)>이다. 당시 펑리위안도 세력이 컸다. 그러나 그녀의 세력은 지방에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그녀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와 시진핑의 관계때문이다. 나중에 이 만회때, 그 노래를 펑리위안이 부른 것이 아니라, 멍거가 불렀다. 이것으로 두 사람간에는 앙금이 남는다. 어쨌든 동료간이지만 경쟁관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희망의 들판 위에서>는 원래 펑리위안이 주로 부르던 노래였기 때문에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펑리위안과 송주잉이 경우 두 사람의 차이는 펑리위안은 인간관계가 비교적 좋은데, 송주잉은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외에 펑리위안은 행동이 비교적 조용조용하다. 펑리위안은 부친이 문화관의 관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교적 문화적 바탕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산동의 현에서 총정까지 올라왔고, 결국 국가수뇌의 부인이 된다. 그녀도 수완이 남다른 것이다.

 

Z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송주잉은 장쩌민의 정부로서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간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고위층의 놀이개였을 뿐이다. 송주잉이 무슨 일을 벌이거나 정치에 간여하기는 힘들었다.

 

그외에 비록 멍거와 송주잉은 모두 장쩌민파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장쩌민파의 내부에서 서로 다른 소파벌끼리 서로 싸우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 간의 싸움은 기껏해야 말싸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멍거는 장쩌민파를 대표하고, 펑리위안은 시진핑파를 대표한다. 이렇게 싸우게 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장쩌민이 리쐉장을 좋아하고, 펑리위안과 장쩌민간에 원한이 있다는 것은 예전에도 보도된 바 있다.

 

홍콩매체 <쟁명>잡지는 일찌기 펑리위안이 장쩌민의 공연요청을 거절한 내막을 소개한 바 있다. 2000년 봄, 해방군예술학원 40주년때 저명한 교우들이 학교로 돌아와서 보고회를 가진다는 명목으로 비공개로 장쩌민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였다. 학원의 고위층은 리쐉장을 통해 총정의 유명가수 펑리위안을 모시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펑리위안은 '난 그 학교졸업생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하여 이쐉장은 난감하게 되고, 장쩌민도 불쾌해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