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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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2020. 10. 20.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수민족병사도 있으며, 수천의 기민(饑民)들도 따라왔다. 서주에 도착한 후, 도겸은 자신의 4천 단양병을 유비에게 내준다. 이때 유비는 전해를 떠나 도겸에게 의탁한다.

 

전해는 공손찬의 부하였다. 그리고 유비는 전해의 부하였다. 이는 이때 유비는 비록 공손찬집단에 속해 있지만, 중간에 청주자사가 있었다. 이를 보면, 그는 공손찬집단내에서 중간관리에 불과했다. 실력과 명망이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겸이 병력을 유비에게 주고, 전해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도겸이 유비에게 이를 주면 유비를 감동시킬 수 있지만, 마찬가지 병력을 전해에게 주더라도 그는 감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겸은 유비에게 명목상의 예주자사를 내린다. 그리고 그에게 소패(小沛)에 주둔하게 한다. 도겸은 서주자사인데, 유비를 예주자사로 추천한다고 하여 조정이 이를 받아줄 것인가? 기실 이것이 바로 한말 삼국초기의 정치생태이다. 겉으로 보기에 너와 나는 모두 자사로 급이 같지만, 너는 내가 추천했고(아니면 직접 임명했고), 내 땅 안에 있는 것이므로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하고,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유비는 왜 공개적으로 공손찬을 떠났을까? 의문의 여지없이 유비는 더욱 발전하고 싶었다. 사실도 그러했다. 도겸의 임종때, 그는 전체 서주를 유비에게 넘긴다. 유비는 이를 통해 천하최고서열에 들어가는 제후가 된다.

 

유비의 서주에서의 기반은 튼튼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지의 남부전선에서 원술과 대진할 때, 원래 도겸의 부하였던 하비수장(下邳守將) 조표(曹豹)가 배신하여 여포를 맞아들이고, 유비가 하비성에 남겨두었던 처자식은 모두 여포의 포로가 된다. 비록 그동안 기복은 있었지만 결국 그는 여포에게 패배한다. 유비는 다시 부득이하게 조조에 의탁한다. 조조도 유비에게 예주자사를 내린다. 조조는 황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었기 땜에 이번에 유비가 받은 예주자사는 예전에 받은 것에 비해 무게가 있었다. 단지 아직 진정 그 땅을 가진 것은 아니다. 조조는 천하에 뜻을 두었고, 유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그래서 서주의 여포를 토벌할 때 그를 데리고 간다. 승리를 거두고 돌어온 후, 조조는 유비를 좌장군에 임명한다. 조조의 적계가 아니면서, 조조에게 통제받는 사람중에 유비는 아마도 최고높은 군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비는 그렇게 쉽게 통제되는 사람이 아니다. 서주로 가는 기회를 틈타, 유비는 조조의 서주자사 차주(車胄)를 죽이고, 조조에게서 벗어나 자립한다.

 

조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는 유비가 아직 기반을 다지지 못한 틈을 타서, 신속히 유비를 격패시킨다. 그러면서 유비의 처자식과 대장 관우도 붙잡아 간다. 유비는 청주로 패주하여, 원담(袁譚)에게 거두어진다. 원소는 마침 조조를 전면적으로 공격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유비를 크게 환영한다. 친히 업성 이백리바깥까지 나와서 영접한다.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진하고 있을 때, 마침 조조의 등 뒤에서 여남(汝南)의 환건적 잔당 유벽(劉辟)이 조조를 배반한다. 원소는 유비를 여남으로 보낸다. 유비는 조인(曹仁)에게 패배하고 원소의 군중으로 되돌아온다. 유비는 형주목 유표(劉表)와 연락한다는 명목으로 원소를 설득하고, 원소는 유비를 다시 여남으로 파견한다. 조조는 원소를 격패시킨 후, 머리를 돌려 유비를 공격한다. 유비는 다시 실패하고 할 수 없이 유표에 의탁한다.

 

유비는 원소가 대사를 이룰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보았거나, 스스로 남의 아래에 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비는 일생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의탁하나, 절대 조조에게는 의탁하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유비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조의 의탁하면, 영원히 자립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을. 삼국시대에 여러 제후들이 있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고, 어떤 사람은 왕을 칭한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조조의 아래로 들어간 사람은 얼마 후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유비는 일찌감치 이 점을 알았던 것같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형주의 상층부는 유비를 비교적 잘 알았다. 그래서 유표는 유비에게 병사도 주고, 높은 대우도 해준다. 다만 내심으로는 깊이 그를 경계했을 것이다. 유표가 죽을 때까지, 유비는 중용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의 주둔지는 형주의 북부이다. 조조를 막는 전선이다. 그에게 준 땅도 겨우 신야(新野)이다. 유비는 그러나 놀고 있지 않았다. 사서에 이렇게 쓰여 있다: "형조호걸중 유비에 귀순하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이는 유비가 계속하여 유표의 담장을 허물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상호간의 불신은 또 두 가지를 설명한다. 하나는 유표의 사후, 그의 후계자인 아들이 조조에 투항한다. 그때 아예 유비에게는 통지도 하지 않았다. 둘은 형주에 10여만명이 유비를 따라 남으로 철수했다. 앞의 사건이 설명하는 것은 형주의 상층부는 일찌감치 유비는 자기의 사람이 아니라고 배제했다는 것이고, 뒤의 사건이 설명하는 것은 유비가 일찌감치 유표와 갈라서는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유표의 아들이 조조에 투항했고, 유비는 다시 조조대군이 진격을 맞이해야 했다. 제갈량의 건의로 유비는 손권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합작은 주종이 분명했다. 먼저, 합작은 제갈량이 사신으로 가는데서 시작한다. 제갈량이 사신으로 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명을 받아 손장군에게 도움을 구하러 왔습니다." 다음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친 후, 유비가 얻은 남군은 손권에게서 빌린 것이다. 빌리면 돌려주어야 한다. 빌릴 때는 반환해야하는 기한도 명시되는 법이다. 유비의 약속은 익주를 얻으면 형주를 손권에게 반환한다는 것이다.

 

유비가 익주에 들어갈 때 처음에는 유장과 합작했다. 유장은 한중의 장로와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장로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유장은 이 골치거리를 제거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비를 모셔온 것이다. 그 뜻은 자신을 위하여 장로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혹은 장로를 없애면 더욱 좋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유비는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장로를 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널리 은덕을 베풀었다. 즉, 유방의 땅에서 유비는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유장의 담장을 파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여겼을 때, 유비는 직접 칼끝을 성도로 향한다. 두 사람의 합작은 결렬된 것이다. 유장은 외부사람을 끌어들여 적을 막으려 했다. 자신의 군사능력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년간 겨우겨우 버티고 결국 익주는 유비가 차지하게 된다.

 

원래 익주를 가지면 형주는 돌려주기로 했었다. 손권이 형주를 달라고 요구하자, 유비는 돌려주지 않고 버틴다. 그래서 유비가 익주를 얻은 1년후부터 둘은 싸우기 시작한다. 비록 경계를 획정하며 잠시 싸우는 것을 멈추었지만, 4년후의 강릉지전을 보면 둘간의 합작은 실제로 이미 파탄난 것이다. 그러나, 익주를 얻은 후 유비는 실질적인 자신의 땅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한중왕을 자칭한다. 이는 유비에게 이미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더 이상 다른 사람과 합작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하여 유비의 다른 제후와의 합작역사는 끝나게 된다. 

 

유비는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시종일관 유지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유비는 능력이 있으나, 세를 얻지 못했다.

 

유비는 황건적을 토벌할 때부터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한걸음 한걸음 발전했다. 모두 전공을 기반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는 제후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유비의 능력은 공인되었따. 그와 합작하는 제후들은 모두 그를 이용하여 최강의 적수를 막아내고자 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자신의 땅이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서주는 도겸의 수중에서 완전하게 넘겨받은 것이다. 그러나, 원술도 와서 빼앗으려 하고, 여포도 와서 빼앗으려 했다. 내부에 도겸의 옛부하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주는 한번도 유비가 진정 차지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방면에서 본다면, 유비는 진정으로 독립된 제후였던 적이 없었다. 제후들이 유비를 맞아들여 합작할 때는 항상 그를 한등급 아래의 제후로 취급했다. 혹은 사람들이 그에게 준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약간 독립되었지만 부하일 뿐이다. 마치 공손찬 수하의 전해, 원소 수하의 고간(高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껏해야 위나라에 소속된 공손강(公孫康) 정도이다. 혹은 이런 합작은 그 자체로 불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는 남의 아래에 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남의 아래에는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 있었다. 자신의 이상목표가 있었다. 조조가 그와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할 때, 천하의 영웅은 그들 둘만이라고 말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의문의 여지없이 조조의 말이 그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조조만이 그의 생각을 읽었던 것이다. 이런 추구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어찌 남의 부하로 기꺼이 남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바로 그런 이유로 유비는 원소가 중천에 뜬 해와 같을 때도 갖은 방법을 강구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싶어 했다. 마찬가지로, 유비가 한 장소에 막 자리를 잡았을 때도 제후들은 모두 그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에 대하여는 방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사례는 유표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보니, 합작이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유비는 능력이 있고,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 그러나 그는 전략적인 안목이 결핍되어 있었다.

 

두 가지 사건이 이를 설명한다: 하나는 여포를 서주로 진입하도록 받아들인 것이다. 둘은 제갈량의 융중대이다. 여포라는 사람은 당시에도 도의가 없는 사람의 대명사였다. 주군을 버리고 동맹을 버리며 아예 도덕적 기준이 없는 자이다. 조조와 여포는 생사의 원수이다. 당시 여포는 조조가 반드시 제거해야할 대상이었다. 유비는 당시 이미 서주를 가졌다. 왜 여포를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여포가 자기를 위하여 조조를 막게 하려 한 것인가? 이때 정말 조조와 안면몰수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포가 반드시 자신의 말을 들을 것으로 생각했을까?

 

다음으로 형주시기 제갈량의 '융중대'이다. 형주는 부유한 곳으로 유표는 지킬 수 없었다. 이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던 것이다. 노숙, 감녕같은 사람도 그러했다. 그런데 유비는 이를 보지 못했단 말인가? 유표의 사후 유종이 조조에 투항한다. 유비는 그러나 어디로 도망가야할지를 몰랐다. 당양에서 실패한 후, 유기가 아니었더라면, 유비의 발길은 어디로 향했을까? 유기에게 강하태수를 맡긴 것은 제갈량의 생각이었다. 유기, 유종 형제는 일찌감치 서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유비는 그런데도 전혀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제갈량이 유비를 위하여 이 '예비군'을 마련해 두지 않았더라면, 남으로 도망친 후의 유비가 어디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익주. 모두 유장은 '멍청하고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조만간 주인이 바뀔 곳이다. 다만 유비는 마찬가지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일 유비에게 그런 안목이 있었더라면, 일찌감치 유장과 연락하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의 몸값은 배로 뛰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유비에게 전략적 안목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같다. 단지 그의 전략적 안목은 뛰어나지 못했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는 그의 행동의 맹목성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그가 다른 사람들과의 합작이 단기성을 끝나게 된다. 제갈량은 만날 때까지. 이런 전략적인 약점은 동오와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나타난다. 앞의 한번은 한중을 비게 만들어, 간접적으로 나중의 강릉지전을 가져오게 된다. 뒤의 한번은 촉국의 대쇠퇴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 두 번의 전쟁은 촉한의 고위층에서 진지하게 토론해보지 않은 것같다. 특히 인식에서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같다.

 

능력은 있으나 결함도 있던 유비는 계속적으로 목표를 추구하여, 결국 일대웅주가 된다. 이는 아마도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합작하지 못한 가장 궁극적인 원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