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군에 생포된 중국군인은 스파이일까, 도망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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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2020. 10. 21.

글: 장림(張林)

 

어제 한명의 중공군대의 하사가 혼자서 인도군대 통제구역에서 활동하다가, 인도군에 생포되었다. 이는 별게 아닌 일처럼 보인다. 다만 인도와 많은 서방의 매체는 즉시 보도했다. 중인국경은 몇달동안 계속 긴장상태였고, 조그만 사건으로도 격렬한 충돌을 불러올 수 있고, 나아가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은 중공매체도 그날 신속히 이 사건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라다크 전선에 주둔하는 장갑차부대의 수리병이며, 이름은 왕야룽(王亞龍)이며, 당시 혼자서 야크를 찾다가 길을 잃어서, 잘못 인도군통제지역으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

 

중공이 이웃나라들과 수십년간 계속 충돌해온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공은 이런 류이 사건을 절대 보도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번 라다크에서 인도군대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수십명(아마도 수백명일지도 모른다)이 사상당한 구체적인 상황도 지금까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중공은 심지어 인도대체의 보도에 크게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환구시보는 공공연히 인도특이 이 일을 키워서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비난했다. 중공은 쌍방간의 비밀협상을 통해 모든 갈등을 해소하자고 요구했다. 그래서 이번에 환구시보가 서둘러 이 일을 보도한 것에 대하여 네티즌들은 의론이 분분하다.

 

매체에서이 보도중 한 가지 사항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즉 그는 몸에 군대와 지방의 문건을 약간 휴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감옥에 16년간 갇혀 있었기 때문에 중공군의 관리방식을 잘 알고 있다. 고의가 아니라면 절대로 문건을 휴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모든 감옥, 간수소, 노동개조대의 관리간부는 대부분 군대를 마친 관병이다. 그래서 그들의 관리방식은 해방군과 똑같다. 심지어 감옥에서 불필요한 군사훈련, 바른걸음으로 걷기까지 모두 군대식으로 하고 있다.

 

중국군의 관리는 아주 엄격하다. 자주 급습하여 인원을 모아놓고, 몸수색을 벌인다. 그렇게 모든 개인물품을 검사한다. 각양각색의 금지물품이 발견되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중국의 보통군인은 절대로 무슨 문건을 휴대할 수 없다! 지방문건도 휴대할 수 없지만, 군대문건은 바로 범죄가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공군 하사가 길을 잃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네티즌은 인도군대의 생각과 같다. 이 중국군은 스파이라는 것이다. 가서 인도군의 배치를 현지정찰한 것이라는 것이다. 라다크는 산지이고, 지형이 복잡하다. 위성, 조기경보기, 지면망원경으로도 모두 보이지 않는 맹구(盲區)가 있다. 그래서 중국군은 정탐병을 보낸다. 만일 붙잡히면 길을 잃었다고 말하면 어쨌든 얻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문건을 휴대한 것은 아마도 중국군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인도군을 우롱하기 위해서, 이는 스파이전의 일종형식이다: 적을 미혹시킨다.

 

인도군은 이 중국군을 생포한 후, 그가 방한복장도 하지 않고, 산소병도 없다는 것을 발견해서 급히 그에게 제공해준다. 그리고 끓인 물과 가열한 식품도 주었다. 공산군의 하층관병은 아주 비참하다. 생활물품도 아주 엉망이다. 모두 자주 얼굴, 코와 귀가 동상에 걸린다. 이는 민주국가의 군인들이 잘 보살핌을 받는 것과 다른 점이다.

 

인도군은 그후 이 중국군에 대한 심문을 진행한다. 어제 인도군의 대번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왕야룽이 길을 잃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후 석방하여 돌려보낼 것이다. 다만, 오늘 인도군은 일부 문제에 대해 추가로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또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이 중국군이 도망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대와 지방문건을 신경써서 수집한 후, 인도군에 투항할 때 성의를 보이기 위해 가져간 것이다.

 

중국군의 내부는 갈등이 첨애햐다. 하급관병은 자주 얻어맞고 욕을 먹는다. 도망치려고 하는 병사들이 아주 많다. 다만 중국군은 상호감시가 아주 엄밀하고, 혼자서 외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혹은 야외에서 부대와 오미터이상의 거리가 떨어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항상 2명 내지 3명의 병사가 한묶음으로 서로 감시한다. 신병과 노병을 섞어 놓는다. 그래서 중국군의 한 사병이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왕야룽은 이후의 전투에서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였거나 혹은 근본적으로 중공을 위하여 싸우고 싶지 않았거나 하여, 도망친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인도에 투항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